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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8장에 보면, 인간 앞에 나타난 하나님께 사람이 드린 최초의 기도가 나온다. 그때에는 이 땅에 있는 아브라함이 사람으로 자기 앞에 오신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드리는 중보 기도였다. 그런데 이때 드린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즉각적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응답이 곧바로 떨어지게 했다. 대체 아브라함이 드린 기도는 어떤 기도였길래 즉시 응답되는 기도가 될 수 있었을까? 오늘은 아브라함이 드린 중보 기도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자.

1. 들어가며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장래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더불어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그때 그분이 아브라함의 장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은 어느 정도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의 사실을 꺼내신 것은 조금 의아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을 말해 주셨던 것일까? 거기에는 분명한 어떤 뜻과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그것을 알아차린 아브라함은 즉시 자기 앞에 서 계신 한 분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 즉각 응답을 얻낸다. 대체 아브라함은 어떤 기도를 드렸길래 이렇게 즉석에서 한 분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을 수 있었던 것인가? 그의 중보 기도는 대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오늘 우리도 기도를 해야 할 사람들인데 우리도 어떻게 하면 즉각즉각 응답받을 수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가?

 

2. 왜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을 아브라함에게 꺼내셨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어 음식을 공궤받으신 적은 창세기 18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온다. 한 분 하나님께서도 사람으로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이 정성껏 차려준 음식을 잘 드신다. 그리고 한 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내 사래가 어디 있는지를 물어보시고는 당신이 아브라함에게 다시 오게 될 터인데, 그때에는 그의 아내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즉 떠나려 하셨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두 천사들과 하나님을 배웅하러 나갔다. 그리고 두 명의 천사들은 소돔과 고모라성으로 떠났다. 그러자 아브라함 앞에 하나님만 서 계셨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멈추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장래의 축복에 대해 따로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그를 불러낸 이유도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에 대해 예고해 주셨다. 그 성에 대한 부르짖음이 매우 커다랗기에 가서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께서 지금 그러한 사실을 몰라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일까? 아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럼 왜 그 이야기를 아브라함에게 들려 주시고 있는가? 그러자, 아브라함은 즉시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자 함이었고, 거기에 있는 사람 하나라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거기에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따라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있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있었기 때문이다.

 

3. 오늘날 우리의 중보 기도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그러자 아브라함은 이때다 싶어 즉시 중보 기도를 시작한다. 사실 사람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대놓고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아마 이러한 기회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기도를 저 하늘에서 듣고 계신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아브라함의 바로 눈앞에서 그 기도를 들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때는 이때다 싶어 아브라함은 즉시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드린 기도를 살펴보니, 응답받는 기도란 대체 어떤 기도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기도를 드리기를 원하시는지를 알 수 있다.

  문제는 과연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사람이 서 있을 자격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대체 어떤 상태가 되었길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보면서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인가? 여기에는 하나의 비밀이 있다. 오늘날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것을 모르고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즉 어떤 경우에 하나님 앞에 우리가 서서 기도드릴 수 있는지를 잘 모르는 것이다. 오늘날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서 기도할 때 그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상달될 수 있게 하는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지금 하나님의 면전에서 기도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사실 2가지 일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아브라함이 비로소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창세기 12~16장까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았던 74세부터 99세때까지 그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아브라함은 자신의 실수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달았다. 그래서 창세기 18장에 와서는 비로소 아브라함도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러자 아브라함도 그때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간구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 누가 과연 하나님 앞에 서서 응답받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만이 전능하신 분으로서 못하실 것이 없다는 것을 믿는 순간에서부터다. 둘째, 아브라함이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를 하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첫  번째 실수를 할 때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잘 몰랐다. 그러니 그것은 두 번째 실수로 이어졌다. 그것은 자신의 아내의 말을 듣고 첩을 들여서 자식을 낳으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어 13년이 지난 후에야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는 당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시고 그에게 회개하라고 하셨다. 이전에 저지른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으로, 자기 집안에 있는 모든 남자들로 하여금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날 즉시 모든 남자들을 다 데려다가 할례를 행했다. 몰론 자신도 할례를 받았다. 그럼, 이 할례란 대체 무슨 뜻인가? 그것을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세례'라고 해석했다. 자신의 죄를 씻어내는 의식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그렇다. 그날 아브라함이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바로 회개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중보 기도에 대한 응답도 어떤 것은 잘 되는 것 같지만 또 어떤 것은 안 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중보기도자가 얼마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있으며, 자신 또한 진정 회개를 하였는지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않는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잘 받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은 자의 기도도 역시 하나님은 잘 들으시지도 않으신다. 이 두 가지 사항을 명심한다면 우리의 도에 대한 응답이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4. 아브라함 하나님께 드린 중보 기도는 5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오늘 아브라함이 드린 중보 기도는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그가 드린 최초의 기도이자 마지막 기도였다. 그런데 이 기도를 보면 아브라함의 기도가 왜 즉시 응답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가 살펴볼 수 있다. 아브라함이 드린 중보기도의 특징은 약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에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어떻게 칭했는가? 하나는 '아도나이'라고 칭하였다는 것이다(창18:30). 이는 그가 하나님을 모든 역사의 주인으로 고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다음 사항이 더 중요한데 그것은 하나님을 "세상(온 땅)을 심판하시는 이"라고 고백했다는 것이다(창18:25).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온 세상의 재판장이자 심판자로 믿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자기 부족의 신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는 이미 한 분 하나님을 모든 신들 위에 있는 최고의 신이요, 모든 역사를 주관하는 분으로서, 온 땅을 통치하는 신으로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몇 번 만나지도 않았지만, 아븍라함을 온 땅을 심판하시는 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의 기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둘째,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는 하나님의 속성을 알고 드리는 기도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요청에 귀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속성을 잘 알고 그것을 말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공의로운 분께서 의인과 악인을 같이 죽이려 하심은 부당한 것이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취급하심도 부당하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또한 "온 땅을 심판하실 분이 공의로워야 하지 않겠습니까?(창18:23~25)"하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기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공의로우신 분이 재판을 불의하게 행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셋째,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는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연약함과 겸손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분의 모든 것은 공의로워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근거로 아브라함은 롯을 구출해 주시도록 청구할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매우 겸손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연약하며 부질없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기도의 두 번째 간구를 보면 "보소서,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아도나이에게 아뢰나이다(창18:27)"라고 말씀드렸던 것이다. 그리고 "아도나이여,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노하지 마옵소서"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표현했던 것이다(창18:30,32). 그리고 "내가 감히 주께 아뢸 수 없지만 아뢰오니 나의 청을 들어주시기를 바라나이다"고도 말했다(창18:31). 이처럼 아브라함은 자기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말함으로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요청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넷째,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는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끝까지 끈질기게 매달리어 간구하는 모습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는 하나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한 번으로 끝내는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어찌하든지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 또 구하고 또 구하는 그러한 기도였다. 처음에 아브라함은 소돔성에 의인이 50명이 있다면 그래도 그 성을 멸할 것인지를 여쭈어 보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들어보시고는 혹 그렇다면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조금씩 조금씩 더 숫자를 줄이는 기도를 계속하였다. 어찌하든지 소돔성의 멸망을 저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성 안에는 자신의 조카 롯이 살고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가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면 그 성의 파멸에서 그를 건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소돔 성에는 롯의 식구가 최소한 8명 이상은 살고 있었기 때문문이다. 사실 소돔 성 안에는 롯과 그의 아내, 결혼한 두 명 이상의 딸들과 사위들, 그리고 결혼하지 아니한 두 명의 처녀 딸들이 있었다(창19:12~14,16). 그래서 아브라함은 소돔 성이 멸망당하지 않기 위한 의인의 숫자를 의인 50명에서 45명으로, 40명에서 30명으로, 30명에서 20명으로 그리하여 결국 10명까지 낮추는 기도를 계속 시도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소돔성이 멸망당하지 않기 위한 의인의 숫자를 무려 10명까지 줄일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성 안에는 의인 10명이 없었다. 이는 지금에 아브라함의 기도를 생각해 보면, 그가 얼마나 대범한 사람이었는지를 직감하게 된다. 그는 매우 겸손했지만 또한 매우 대범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런 자들이 사실 큰 일도 한다. 

  다섯째,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는 나보다는 남을 더 생각하는 마음 곧 형제와 이웃 사랑의 마음이 빼곡히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의 마지막 특징은 그의 기도가 자기나 자신의 가족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자기보다 더 남을 생각하는 기도 곧 자신의 형제와 이웃을 살려 달라는 기도였다는 데에 큰 방점이 있다. 자기를 위한 기도를 하다보면 보통은 이기적인 기도가 나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남을 위한 기도는 이기적인 기도가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가 이처럼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그가 이타적인 삶을 살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 그는 자기 가족을 위한 기도보다 자신의 조카 롯을 구출해 달라고 하는 기도를 먼저 드렸던 것이다. 그가 하나님께 드린 이 최초의 기도는 자기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으며 남을 위한 중보 기도였던 것이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 중보자로 오셔서 중보 기도를 하신 것처럼, 우리도 중보자적인 입장에서 드린 아브라함의 기도를 따라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아브라함의 기도를 매우 기쁘게 받으셨기 때문이다. 

 

5. 나오며

  오늘날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어떻게 드려야 할 지 잘 모르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러한 분들에게 정말 추천할 기도의 모범은 역시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의 사례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에 과연 우리는 아떻게 기도하고 있는가? 정말 주님께서 바로 내 눈 앞에서 서신 채 내 기도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을까? 더욱이 하나님에 대하여 올바른 신앙 고백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얼마나 신뢰하면서 기도하고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회개를 한 상태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을까? 그리고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기도하고 있으며, 얼마나 끈질지게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그리고 나보다는 얼마나 남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를 통하여 배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지금 나 자신이 드려야 할 기도가 있다면,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할 것인지를 잘 살펴보고 더불어 회개한 후에 기도를 드려보라. 그러면 우리도 즉각즉각 응답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05월 09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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