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아브라함'이라고 하면 '믿음'이라는 신앙의 대명사로 불린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간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도 실수와 허물이 있었다는 것이 성경의 기록이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도 우리도 똑같이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니 자기 목숨 하나 지켜 내려고 자기의 아내를 누이 동생이라고 속이고 결국 팔아 넘겨 버린 파렴치한이었으니 말이다. 대체 아브라함은 어찌해서 자기의 아내를 애굽 왕 바로에게 팔아 넘길 수 있었는가? 그가 애굽으로 내려가서 아내를 팔아 넘긴 일은 과연 실수에 불과한가? 아니면 그것을 죄인가? 아니면 위기에 처한 사람의 처세술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부름받은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저지른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아브라함은 이 실수로 인하여 그의 명예에 치명적인 손상이 입혀졌다. 뿐만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까지 많은 뒷걸음을 쳐야 했다. 그는 대체 무슨 죄를 지었던 것인가? 그가 저지른 실수는 자기 자신과 그의 후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지금도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2. 아브라함은 왜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 땅으로 들어갔는가?
아브라함은 오직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외로운 나그네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먼저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야 했다. 그곳은 갈대아 우르였다. 그리고 그는 삶의 터전마저 떠났다. 몇십 년 걸쳐 일구어 놓은 자신의 터전인 하란 땅을 떠났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아버지의 가문을 떠나서 홀로 새로운 가문을 세워야 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그가 정말 잘했다. 왜냐하면 그의 가문은 이전까지 우상숭배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그곳을 빠져나오는 일은 필수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아브라함은 자신의 땅(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탈출'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 땅까지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가 도착하하여 처음으로 장막을 친 곳은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 아래였다.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축복의 말씀도 받았다. 그리고 다시 푸른 초장을 따라 남쪽으로 조금씩 이동하여 벧엘과 아이 사이에 이르러 두 번째로 장막을 쳤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는 역시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이는 그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는 풀을 찾아서 또다시 남방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그가 거처하고 있던 땅에 기근이 찾아오고 말았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잠시 동안 애굽에 거주하다가 나오려고 애굽 땅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그가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 땅으로 들어간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그것은 기근 때문이었다. 사실 성경에서 '기근'과 '전쟁'과 '전염병'은 개인의 죄로 인한 징계가 아니다. 그것들은 한 지역이나 민족 전체가 죄를 지었을 경우 내리는 하나님의 형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땅에 기근이 찾아왔다는 것은 아브라함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가 그 기근을 피하여 애굽 땅으로 내려간 것은 커다란 실수였다.
3. 그가 애굽 땅에 내려가서 겪어야 했던 비굴하고 수치스러웠던 사건은 무엇인가?
그런데 기근으로 인하여 잠시 피하여 갔다가 온다고 한 것이 그만 아브라함에게는 커다란 실수가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가 애굽 땅에 들어감으로 기근은 피할 수 있었을른지 모르겠지만 그의 아내를 빼앗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아내는 애굽사람들에게는 눈에 띄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직 자녀를 낳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는 셈족이어서 피부가 하얬기에 그곳에 사는 함족 사람들의 눈에는 예쁘게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로 그녀가 애굽 땅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당장 바로왕에게 들어갔고 바로는 그녀를 통하여 양쪽의 종족 간의 우의를 다지고자 그녀를 자기 아내로 맞아들이려고 한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그녀를 자기 누이동생이라고 했기 때문이고, 그녀 역시 아브라함을 자기 오라버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아브라함이 그때 얼마나 비굴한 생각이 들었겠으며, 자신의 행동에 수치심을 느꼈겠는지를 말이다.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려고 아내를 자기의 누이동생이라고 속인 남자의 자존심은 또 어떠했겠는가? 이에 종족 간의 우의를 다지고자 했던 바로왕은 곧장 아브라함을 후대해준다. 그리하여 그녀 때문에 아브라함은 양떼와 소떼, 남종들과 여종들, 암수 나귀들과 낙타들을 선물로 받게 된다. 사래를 내준 것에 대한 답례품으로 말이다. 그때 아브라함은 그때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지를 생각해보라.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려고 했다가 자기 아내마저 빼앗겨 버린 형국이 되었으니 말이다.
4. 하나님은 그 문제에 왜 개입하셨는가?
그러자 즉시 하나님께서 그 문제에 대해 개입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불러내실 때에 하신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4가지를 축복으로 약속해 주셨다. 첫째, 그는 모든 이방인을 포함한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다. 둘째,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크게) 해 주시겠다고 했다. 셋째, 그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겠지만 그를 하찮게 여기는 자에게는 저주할 것이라고 했다. 넷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세상의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창12:2~3). 그런데 여기서 세 번째 축복의 말씀이 참으로 귀하다. 이 약속 때문에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내나 그의 가족 및 가축들과 종들이 전혀 해를 입지 않고 애굽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세 번째 축복의 말씀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의 통로로 쓰시려고 선택하셨던 그 순간부터 그를 함부로 대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결코 가만 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건드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애굽인들과 애굽 왕 바로가 아브라함을 건드리고 말았다. 그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아 간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즉시 애굽 왕 바로와 그의 가문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 아마도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하기 전에 내렸던 10가지 재앙과 같은 것을 바로왕 애굽 집안 사람에게 내리셨던 것 같다. 그러자 깜짝 놀란 애굽 왕 바로는 그 원인을 알아보게 하였고 그것이 남의 아내를 빼앗은 것에 기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자 즉시 아브라함을 불러 놓고 야단을 친다. 아브라함의 거짓말 때문에 큰 잘못을 저지를 뻔했다고 하면서 그의 아내를 도로 내준 것이다. 그는 우선 재앙의 위기를 모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우양과 은금 패물을 자기고 애굽에서 나올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남방 땅을 거쳐서 그가 맨 처음 단을 쌓았던 장소로 올라간다.
5.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것은 죄라고 할 수 있는가?
여기서 잠깐 우리는 아브라함의 행동이 과연 죄였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간 일과 그의 아내를 바로에게 넘긴 것은 과연 죄라고 할 수 있을까? 혹시 곤경에 처한 아브라함의 처새술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인가?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의 그 행동이 죄였는지를 평가하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을 과연 그가 실천했는가 아니면 어겼는가를 보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브라함은 그때 죄를 지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일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을 거역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셨던 것인가? 그것은 2가지였다. 그 말씀 중, 하나는 창세기 12장 1절의 말씀이요, 또 하나는 창세기 12장 7절에 있는 말씀이다.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이 말씀들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첫 번째 말씀을 어긴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 어디를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애굽 땅으로 가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원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그리고 하란에서 불러내신 이유는 그를 그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바로 '가나안 땅'이었다. 또한 두 번째로 주신 명령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그때 머물렀던 땅은 벧엘과 아이 사이로서 가나안 땅의 한 중앙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어떤 상황이 올지라도 가나안 땅에 머물렀어야 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땅에 기근이 찾아오자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애굽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마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결단을 따라 움직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애굽 땅으로 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간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바로 죄였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아브라함이 애굽 땅에 들어가 자기의 아내를 바로왕에게 내준 것도 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두 번째로 주신 말씀 곧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씨)에게 주리라"는 말씀을 어겼기 때문이다. 당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래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런데 두 번째 명령은 그에게 자식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사래를 통해 아들을 낳아야 했다. 그런데 아내를 빼앗아가는 바로 왕에게 그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정략 결혼을 위한 답례품만 받았을 뿐이다. 얼마나 비굴한 모습인가? 아니,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와 그녀를 통해 자식을 얻게 하시겠다고 한 말씀은 또 어찌 될 것인가? 그렇다. 아브라함은 그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어긋난 행동을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약속의 씨를 낳아 줄 여인을 바로에게 내주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행동은 아담의 타락 직후 아담에게 그의 후손으로 메시야(구원자)를 보내 줄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이룰 수도 없게 만들 수도 있었다.
6. 아브라함의 첫 번째 실수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저지른 첫 번째 실수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6가지 항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라도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이라도 순간적인 판단 미숙으로 인하여 실수하고 넘어지며 심지어 비굴한 사람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말씀)이 없는 곳에는 사탄의 약탈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 없이 고안해 낸 인간의 잔꾀는 자신에게 비굴함과 수치와 모멸감만 안겨 준다는 것이다. 넷째, 약속의 땅에도 가끔 기근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천국 이외에 그 어떤 장소에도 안전한 곳이란 없다. 참된 만족과 안정과 안식이 있는 곳은 오직 천국 뿐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약속의 땅 곧 하나님의 말씀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하나님께 묻지 않고 행한 일의 결과는 두고두고 화근이 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마지막 여섯 번째 항목은 계속해서 살펴보아야 할 항목 중의 항목이다.
7. 애굽 땅에 들어갔다가 나온 아브라함의 최대의 실수는 무엇이며, 그가 행한 실수가 천추의 한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이나 하나님의 허락 없이 약속의 땅을 벗어나 애굽 땅으로 간 것은 그의 커다란 실수였다. 그의 판단 미숙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생각해 보라. 그가 애굽 땅에 들어갔으나 얼마만에 다시 나온 것인가? 사실 그 날짜는 며칠이 아니다. 그런데 잠깐 기근을 모면하려고 애굽에 들어갔다가 그는 그만 아내를 잃을 뻔 했다. 약속의 자손을 낳아 줄 여인을 빼앗길 뻔 한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실수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사탄이 아브라함의 실수로 인하여 은밀히 뿌려 놓은 씨앗을 가지고 나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천추의 한이 될 만큼 큰 것이었다. 그것은 애굽 땅에서 올라오면서 그만 애굽 여자 하갈을 데리고 왔다는 데에 있었다. 우리는 무심코 읽었겠지만 창세기 12:16에는 바로가 아브라함에게 준 선물이 있다. 거기에는 '노비'도 나온다. 여기서 '노비'라 함은 '남종들과 여종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여자 종들 중에 '하갈'이 있었던 것이다. 구약성경의 참고자료인 '야살의 책'에 의하면, 하갈은 당시 바로 왕의 첩이 낳은 딸이었다. 바로가 그 딸을 아브라함에게 준 것이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자기의 동생을 바로에게 내 준 것이고, 바로는 자기의 딸을 아브라함에게 내 준 것이 된다. 비록 첩의 자식이지만 말이다. 결국 하갈은 사래의 몸종이 되었다. 그런데 나중 하갈은 아브라함의 첩이 되었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게 되는데, 이스마엘은 아랍인의 조상이 되고 결국 그것으로 인해 이슬람 종교가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아랍인 간에는 서로 철천지 원수가 되어 있지 아니한가! 그렇다. 이때 아브라함이 빚었던 최대의 실수는 하갈을 데려온 것이다. 그것은 사탄이 아브라함에게 심어 놓은 가장 올무라 된 것이다.
8. 나오며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하여 애굽(미쯔라임)과 바로(파라오)와 애굽 왕에게 속한 것들이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애굽'은 사탄의 제국을 상징하고, '바로' 왕은 사탄을 그리고 '바로에 속한 것들'은 귀신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아브라함의 실수로 인해 그에게 귀신이 달라붙어 들어온 것이다. 처음에는 잠잠한 상태에 있었지만, 곧이어 그것은 아브라함의 생애 아니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가장 큰 화근으로 작용하고 만다. 하갈은 유대인과 기독교인 그리고 이슬람 간의 치열한 살육의 씨앗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도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죄를 지은 후에 철저한 회개하지 못한다면 우리 몸에 귀신이 침투해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놈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이 우리의 인생과 신앙의 발목을 잡아 넘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실수하지 말라. 그리고 실수했더라도 철저히 회개하기를 바란다. 죄는 싹이 될 만한 어떤 것들도 용납하지 말라.
2021년 04월 23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