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도행전 시대
1,초대 교회의 탄생(1-7장)
1) 성령으로 시작하는 교회(1-3장)
(1)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라(1장)
A)부활 이후 주의 행적과 승천 사건 회고(1-11절)
2절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이것을 주의 모든 사역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제자들의 복음 전파 사역 역시 성령에 의한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주님이 마지막 지상 명령(마28:18-20; 막16:15-18; 눅24:44-49)에서 성령으로 명하셨다는 기록은 없지만 예수의 사역 전체가 성령의 인도에 의해 이루어졌고(눅3:21, 22; 4:1, 18; 10:21; 행1:4; 10:38), 구약의 예언대로(사61:1) 그분은 항상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면서(요20:22) 제자들의 모든 사역이 성령으로 말미암을 것임을 친히 강조하셨다(8절). 누가는 이러한 성령의 사역을 사도행전에서 특별히 강조를 하고 있다(행1:8, 16; 2:4, 14-41; 8:29; 9:31; 10:45).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도행전은 성령 행전으로도 불리운다.
5절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의 구속 사역을 이루신 오늘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영이 모든 육체에 부어질 것”이라는 구약 예언처럼(사32:15; 욜2:28) 성령이 그들의 모든 삶을 주장하실 것임을 알아야 한다. 즉 요한의 물 세례가 죄를 씻는다는 상징적인 의미의 외적 의식인 반면(마3:6, 11; 막1:4), 성령 세례는 내적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초월적인 역사와 은혜로만 가능하다(롬6:3, 4; 골2:12). 따라서 회개 없는 성령의 세례나 성령의 체험이 없는 회개는 있을 수가 없다(마16:16, 17; 고전12:3; 요일4:15).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 역시 성령의 체험을 통하여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고서야(요3:5) 온전히 에수의 증인으로서의 사역을 감당할 수가 있었다.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오직"에 강조점이 있다. 즉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때와 기한을 알려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데 최우선 과제인 복음 전파에 심혈을 기울이라는 말이다. 앞에서 주님은 “성령의 임함"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말씀하셨는데, (4, 5절) 본절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 “권능을 받고" 여기서 “권능에 해당되는 헬라어 “뒤나민"은 본래 자연적인 힘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인격적인 힘(고전1:18)과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행8:13; 고후12:12)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따라서"권능을 받고”라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힙입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주님의 말씀이 전파되어야 할 전영역을 가리키듯이 복음은 예루살렘으로부터(행1:1-7:60)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행8:1-12:25), “땅 끝까지”는 성경에서 “모든 국가들"을 지칭하고 있는데(시2:8; 19:4; 사48:20; 슥9:10), 이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온 천하 만민에 대한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준다. 그리고 “내 증인이 되리라”고 사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명은 역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으로서 이미 주님께서도 계속적으로 강조하셨다. 더욱 “증인" 헬라어 “마르튀레스"의 의미는 “순교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주에 관해 보고 들은 바를 증거할 뿐 아니라(벧전5:1; 요일1:1-3) 주를 위하여 순교할 자세가 되어 있는 것을 의미하면서 성령이 임하면 제자들은 성령에 인도하심에 따라 복음의 증거자들이 될 것임을 약속하시는 것이었다.
9절 저희 보는 데서 올리어 가시니… “내 증인이 되리라“(8절)는 말씀대로 이제 주의 제자들은 주임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증거해야 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더불어 십자가 고난부터 죽음, 부활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리워 가시는 승천과 본 그대로 오시리라는 재림을 증거해야만 했다.
B)성령 강림을 기다리는 사도와 제자들(12-14절)
예수님의 승천이라는 위대한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의 분부에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주의 약속대로 성령이 임하시기까지 모여 성령이 임하기를 기다리며 기도하였다. 누가복음에도 예수님의 승천 후에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음이 기록되어 있는데(눅24:52, 53), 이는 이들이 예수님의 분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주의 약속대로 성령이 임하시기까지 기도에 힘썼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성령이 강림한 후에 예루살렘에 있던 이 다락방은 초대 교회의 요람이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모체로 발전하였다. 이 다락방은 행12:12의 마가의 다락방과 동일시 되고있다. 한편 이 때 기도했던 무리들은 사도들과 예수님의 모친과 형제, 그리고 예수님을 좇던 여인들로 성령을 받은 후에 복음을 널리 확장시키는 기수들이 되었다.
C)가룟 유다의 죽음과 새 사도 맛디아 선출(15-26)
사단의 하수인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판 가룟 유다의 비참한 최후와 죽음에 관련하여 마태는 슥11:12을 인용, 베드로는 시109:8의 다윗의 시를 인용, 두 기록 모두 가룟 유다의 배신과 죽음이 구약 예언의 성취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는 동일하다. 이 가룟 유다의 자리를 대신할 사도직에 제비를 뽑아 맛디아가 선출되는 과정을 보도한다(23-26절).
( 2)오순절을 통과하라(2장)
오순절은 유월절 후 첫 안식일 다음날로부터 50일째 되는 날로서 가나안 땅에서 첫 수확을 거둬들인 것을 기념하는 감사 절기이다(민9:11; 28:26), 따라서 오순절은 큰 권능과 위엄을 갖추시고 시내 산에 강림하신 사건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라 아니할 수 없다(출19:16-19). 그런데 이러한 오순절 성령 강림은 구약에도 이미 예언된 것이고(욜2:28-32), 예수께서도 12사도에게 수차 약속하신 것으로(요16:6; 행1:4) 다음가 같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성령 강림은 하나님이 새언약의 공동체이자 그리스도의 몸인 신약교회의 탄생을 알리는 성화가 켜지는 순간이었고, 구속사를 이끌어 가는 주체가 성부 하나님에서 성자 하나님으로 그리고 이제 성령 하나님으로 새롭게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즉 신약시대에 예수님은 전날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심으로 이 땅에 오셨듯이 성령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리하여 각 개인 성도에게 임하여 예수의 복음을 믿어 중생케함은 물론 계속 그 심령에 내주하여 성경 진리를 조명해 주심으로 믿음 안에서 성장케 하시는 보혜사의 사역을 감당하시도록 하셨다. 오순절 강림 사건이란 바로 이를 위하여 무덤에서 부활하신 뒤 40일을 더 계시다가 감람산에서 승천하신 주님의 최후 약속대로 그로부터 열흘 뒤 성령이 최초로 이 땅 역사에 강림하셨던 A.D. 30년의 대 구속사적 사건을 가리킨다.
2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하늘로 부터“ 이는 성령의 기원을 암시, 즉, 성령은 하늘에 계시는 성부와 성자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것,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구약세서 “바람"은 종종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 주는 현상 중의 하나로 언급되었다(왕상19:11; 시104:4). 본절에서는 성령 하나님이 온 집에 충만하게 임재한 사실을 급하고 강한 바람의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충만하게 임한 성령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한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행1:8).
3절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 2절의 “바람"과 마찬가지로 “불" 역시 성령 임재를 나타내 주는 현상 중 하나이다(출19:18; 24:17). 한편 여기서 “불의 혀"는 불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것을 묘사한 것인데 혹자는 이를 4절의 방언의 은사와 관련시키기도 한다(Chase). 즉 그는 과거 구약시대 당시 바벨탑 사건 이후 언어가 나뉘고 혼잡하게 된 인류(창11:1-9)를 회복시키시는 역사를 의사 소통을 가능케 한 방언을 통해서 보여 주셨다고 보고 있다.
14-36절 “베드로의 첫번째 설교"신약교회 탄생의 분수령이 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1-4절)과 그에 대한 무리들의 반응(5-13절)을 언급한데 이어 본문에서는 성령 강림 사건과 성령 강림의 외적 현상으로 나타난 만국 방언에 대해 조롱하는 무리들에게 베드로가 설교를 통하여 성령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하여 변증하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베드로의 담대한 설교는 그의 이전의 모습, 즉 주를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연약한 모습과는 실로 엄청난 대조를 이루는 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당신을 부인하고 낙심에 빠져있던 베드로에게 나타나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에 걸쳐 하신 말씀의 성취라 할 수 있다. 또한 무식한 어부 출신의 베드로가 성령 강림 이후 이처럼 능력 있는 설교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2:41)고 할 수 있을 만큼 능력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 충만한 자의 능력 있는 모습을 잘 보여 준다 할 것이다.
(3)능력을 행하는 자가되라(3장)
A)성전 앉은뱅이의 치유 사건 (1-10절)
앉은뱅이가 일시에 일어나 뛰었던 치유 이적은 구속사적으로는 죄에 묶여 신음하는 인간의 영혼이 일시에 자유와 영생의 구원을 얻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나 구속사적 관점에서는 특히 다음 두 가지 사실에 조목하게 된다.
첫째는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가 않으뱅이를 불쌍히 여기는 사라와 그를 치유하고 고칠 능력과 사랑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베드로나 요한이 처음부터 이런 사랑과 능력의 사도였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별다른 학시이나 재능이 없는 자였음은 물론 성급하고 능력은 없으면서 야심만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수난당하시는 주를 배반하고 도망하거나, 아예 주를 부인하가까지 했던 자들이다(마26:56, 69-75; 막14:53-65; 요18:15-18, 25-27). 그러나 이제 주의 부활 승천과 성령 강림 사건을 체험한 그들은 이처럼 놀라운 사랑과 능력의 사도가 되었던 것이다.
두번째 사실은 앉은뱅이를 치유하면서 베드로가 그를 향하여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6절)라고 선포했고 또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B)베드로의 솔로몬 행각 설교(11-26절)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난 앉은뱅이 치유 이적을 보고 놀라는 유대인들에게 행한 베드로의 솔로몬 행각 설교의 내용은 아직 초대 교회가 예루살렘에 국한되었던 이 당시에 설교의 대상자가 일단 유대인이었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먼저 자신이 방금 그의 이름을 의지하여 놀라운 이적을 행했던 구주 예수를 전날 무고하게 주였었던 유대인의 범죄를 지적했다(11-16절). 그리고 예수가 우리의 그리스도 곧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으신 구속주가 되심은 자신이 방금 그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한 사실로써만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세를 위시한 구약의 모든 선자들의 시대를 초월하여 다양한 예언을 통하여 증언한 사실로도 입증됨을 지적함으로써 거듭 예수의 그리스도직을 확증하였다(시2:7; 16:10; 45:6, 7; 68:18; 사61:1, 2; 슥9:9). 동시에 이런 구주 예수를 죽인 유대인의 범죄 조차도 하나님의 예언(시22:7; 41:9; 69:21; 사50:6; 53:9; 슥11:12)속에 포함되어 있던 섭리의 결과임을 지적하면서 과거에는 예수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범죄하였으니 예수의 그리스도직을 깨달은 이제라도 회개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역설하였다(17-26절)
2) 시련으로 성장하는 교회(4-7장)
(1)외적 핍박을 이기는 일꾼(4장)
예루살렘에 갓 태동된 초대 교회의 성장을 유대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핍박내지 저지하려고 하였으나 조금도 굽힘이 없는 사도들의 확고한 신앙에 의해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예루살렘 초대 교회는 더욱더 성장을 거듭하였음을 보도하고 있다.
1-31절은 베드로와 요한의 체포와 변론 그리고 석방 등의 기사를 보도한다. 보다 상술하자면 전장의 솔로몬 행각 설교에 의하여 남자만 오천 명이 회개하는 대역사가 발생하자 그 옛날 자신들의 무고하게 처형한 예수의 부활과 구원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혐오한 유대 정치,종교 지도자들의 지시에 의하여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수비대에 투옥되었음이 보도된다(1-4절). 그리고 그후 베드로와 요한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예수의 부활과 구원의 복음의 메시지를 당당히 변론하였고(5-12절) 지금 당장 앉은뱅이가 일어나 서 있는 너무도 명백한 사실과 군중의 눈이 두려운 나머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공연한 협박과 위협만 하고 부득이 사도들을 석방할 수밖에 없었음이 보도된다(13-22절). 그리하여 두 사도의 석방을 계기로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큰 감사 한양 집회를 통하여 더욱 더 큰 성령의 체험하였음이 보도된다(23-31절). 후반부 32-37절은 이런 핍박을 이겨낸 에루살렘 초대 교회가 신앙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더욱 크게 성장해 갔음이 개략적으로 보도된다.
(2)내적 시험을 통과하는 일꾼(5장)
성령 충만과 인도를 받은 사도들의 지도로 예루살렘 초대 교회가 내.외의 갈등과 핍박을 무릅쓰고 꾸준히 성정해 나갔음을 보도하고 있다. 보다 상술하자면 1-11절은 세상의 일시적 유익과 천국에서의 영원한 축복을 온전히 구분하지 않고 양다리를 걸치는 이중적 신앙을 가진 게에서 나아가 마침내 거짓 헌금사건으로 성령을 시험하는 큰 죄까지 범하여 초대교회의 순수성과 일치를 위협하다 심판받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보도한다. 끝으로 후반부 17-42절은 다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전날 자신들이 무고히 죽인 예수의 부활과 그의 구속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핍박하여 투옥시켰으나 찬사들의 이적적으로 출옥시킨 이적등이 복음에 대한 확신과 선교를 계쏙할 의지를 전혀 굽히지 않고 당당히 주장한 사실(25-32절) 마침내 바리새인 가말리엘의 신중한 논 리와 중재로 사도들의 선교사역이 참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진정성이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핍박할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역사의 심판에 맡겨 하나님과 사람 앞에 시험거리로 남겨두기로 하고 채찎질을 한뒤 일단 방면한 일련의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33-42절).
(3)교회를 부흥시키는 일꾼(6장)
1-7절에서는 이제 예루살렘 초대 교회가 12사도 이외에 새로이 교회 행정 실무를 담당할 일곱 집사들까지 선출해야 할 정도로 성장한 사실을 보도한다. 그리고 후반부 8-15절은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집사의 한 사람으로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던 스데반 집사의 체포사건(8-15절)을 보도함으로써 초대 교회에 대한 핍박이 계속 고조되어 갔으나 초대 교회는 불굴의 신앙으로 이를 극복하였음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4)순교적 죽음을 각오한 일꾼(7장)
스데반의 능력있는 설교(1-53절)는 강퍅하고 완악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비위를 심히 상하게 하여 초대 교회 최초의 순교자를 발생시킨다. 종교 지도자들의 목적은 공정한 송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데반의 정죄를 통한 초대 교회의 박해에 있었기에 그의 설교를 진지하게 경청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명의 스데반이 의외로 논리 정연하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개괄하면서 자신들의 위선과 악행을 정확히 지적하자 저들은 시기와 분노가 일어나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것이다. 중심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는 순교이 원인이다. 산헤드린 공회는 스데반을 죽이기 위해 그에게 신성 모독죄와 율법 파괴죄를 적용하였다(행6:13, 14). 그래서 스데반은 율법에 따라 성 밖에서 돌로쳐 죽임을 당하였다(58절; 레24:11-14).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이 스데반을 죽인 진짜 이유는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즉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고 사도들을 박해한 것처럼 스데반을 죽인 것이다. 더구나 로마의 속국으로 사형 집행권이 없었던 유대 공회에서 사형을 결정하고 시행했다는 것은 이들의 행위가 분명히 불법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내 준다.
둘쨰는 순교의 태도이다. 스데반은 시종 일관 성령 충만한 모습을 유지하였고(55, 56절) 심지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를 죽이는 데 가담한 이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중보의 기도를 드렸따(59, 60절). 이러한 스데반의 모습은 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를 드러내어(눅23:34) 예수님이 참된 제자됨을 실천으로 보여 준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스데반을 죽인 종교 지도자들의 태도는 살기가 등등하였고, 악한 분노로 가득차 있어 스데반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54, 57절).
셋째는 순교의 결과이다. 스데반의 순교를 기점으로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는 박해가 가증되었고 성도들이 흩어지는 어려움을 당했따.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도피하는 성도들을 통하여 복음이 유대 전지역과 사마리아 및 땅 끝까지 전파되는 복음의 확장을 가져왔다(행8:1-3). 더욱이 스데반이 죽음은 그 죽음의 증인이 되었던 청년 사울(58절)을 복음의 사도로 변화시켜 이방 세계의 복음 전도자가 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행9:15).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섭리이지만 결국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깨닫을 수 있다(롬8:28)
2, 디아스포라 교회(8-12장)
1)빌립의 사마리아 복음전도(8장)
1-3절은 사울을 위시한 여러 유대주의자들이 스데반이 순교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핍박을 시작하게 되어 예루살렘 초대교회 성도들이 각처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초대교회의 선교지도 더욱 확장되게 만들어서 이제 초대교회 선교가 자연적으로 전팔레스틴 지역에까지 미치게된 전환점이 이루어졌음이 보도된다. 그리고 특히 후에 바울로 개명하여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던 바울이 회심 이전에 아직 사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을 떄에 초대교회를 박해하던 유대주의자들ㅇ 중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하였던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중반부 4-25절은 비립 집사가 사마리아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선교 사역을 수행하였고 마침내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이 지역을 방문하여 이 지역 개종자들에게 성령 세례를 받게 함으로써 초대 교회가 이제 예루살렘을 넘어 사마리아 지역에까지 공고히 뿌리를 내린 사실이 일부 주의 복음을 곡해한 마술사 시몬같은 자가 있기도 하였다는 객관적 사실 기록과 함께 보도된다. 끝으로 후반부 26-40절은 초대 교회의 선교를 배후에서 주도하시던 성령의 가장 역동적인 사역의 하나로 빌립 집사가 엣 불레셋 땅 가사에서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여 세레를 베풀었고 그 직후 빌립은 다시 성령에 이끌려 홀연히 사라졌다가 다시 역시 옛 불레셋 땅의 하나였던 아소도에서 복음을 전하였던 사건을 보도한다. 이는 일단 예수의 복음이 사마리아 전지역에 전해졌고 나아가 세계 각지로 뻗어 나가기 시작하였음을 강력히 암시하는 사건이었다.
2)사울, 이방인을 위한 도구로(9장)
1-31절은 철저한 유대주이 자로서 초대교회 핍박에 앞장섰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로는 완전히 변화하여 오히려 순교의 위험을 무릅쓰고 주릐 복음을 전하며 특히 이방인의 대사도로서 사역하였던 사울 곧 바울의 대회심과 관련된 일련사건을 보도한다. 그리고 후반부 32-43절은 베드로 사도의 팔레스틴 순회사역을 룻다와 욥바에서 애니아와 다비다를 각각 치유하고 소생시킨 이적을 중심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런 본장은 전반부가 후에 이방인의 대사도가 된 바울의 회심을 다루고 후반부가 예수의 12제자 중 수제자요 12사도 중 대표였던 베드로 사도가 직접 예루살렘을 떠나 순회 사역을 행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다음 장에 보도되듯이 가이사랴에서 이방인 고넬료에게 성령 세례를 받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게된 과장을 암시함으로써 결국 이제 초대 교회의 복음 전파 사역이 이미 주께서 예고 하셨듯이(행1:8) 일단 팔레스틴 지역에 퍼지고 마침내는 모든 이방인을 향하여까지 전달되게 된 상황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3)베드로를 초청한 고넬료(10장)
먼저 성령께서 역동적으로 사역하셔서 고넬료와 베드로에게 각기 환상을 보여주사(1-16절) 서로가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17-33절). 그리하여 지금껏 주로 유대인과 이미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는데 주력하였던 초대교회의 대사도인 베드로가 직접 이방인 고넬료에게 예수이 복음을 증거하게 하시고(34-43절) 또 이를 통하여 고넬료의 집에 모인 자들에게 성령강림이 이루어지게 하심으로써 (44-48절) 이제 구원의 복음이 전 이방인 에게로 전해지기 시작하며 또 마땅히 전해져야만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일련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4)고넬로의 개종, 안디옥교회 설립(11장)
1-18절은 전장에서 발생한 이방인 고넬료의 개종 사건을 두고 고넬료의 사건이 있기 전의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이에 대하여 베드로가 그 전과정을 소상히 밝히면서 그것이 성령으로부터 기인한 사건임을 변론한 사실을 보도한다. 그리고 후반부 19-30절은 이제 마침내 이방 땅 안디옥에 이방인들을 주축으로한 교회가 건립되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파송된 바나바와 바나바가 초빙한 바울사도의 협동 사역으로 크게 성장한 과정(19-26절)과 후에는 안디옥 교회가 유대 성도들이 경제적 위기에 빠졌을 때 구제 운동을 벌임으로써 예루살렘 교회와 주 안에서 교제를 유지하였음을 보도한다(27-30절).
5)헤롯의 핍박과 베드로 탈옥(12장)
헤롯 가문의 후손인 헤롯 아그립바 1세(B.C.10-A.D.44)가 유대주의자들과의 정치적 이해에 얽혀 크게 탄압한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헤롯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역동적 개입과 초대 교회 성도들의 굳건한 믿음으로 탄압자인 헤롯은 급사한 반면 초대 교회는 더 흥왕해 감을 보도한다.
1-5절은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초대 교회의 발원지인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대탄압에 나서서 야고보 사도를 처형하고 베드로 사도를 투옥시키는 등의 위급한 재난이 발생하였음을 보도한다. 중반부 6-19절은 아직은 당장 순교하기 보다는 새사도로서 초대 교회 건립이라는 비상한 구속사적 소명에 더 헌신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며 특히 아직도 유약한 초대 교회이 싹을 보존해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적적으로 개입하셔서 천사를 보냄으로 베드로가 탈옥한 사건을 보도한다. 끝으로 후반부 20-25절은 예루살렘교회를 탄압하고 심지어 무지한 추종자들로부터 신으로까지 추앙되며 교만하던 헤롯은 급사한 반면 탄압받던 초대 교회는 더욱 굳건히 흥왕하여 갔던 대조적 사건을 보도한다.
바울 제1차 전도 여행의 시작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의 시작 (행13:1-14:28)
바울의 전3회에 걸친 전도 여행 기사는 과거 철저한 유대주의자로서 열렬히 복음을 탄압하던 바울을 회심시키시고 바로 그를 이제는 정반대로 순교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하나님이 오묘하신 섭리 가운데 바울을 중심으로한 제1차 전도여행(A.D.47-49년)의 일련 기사이다.
⓵ 수리아 안디옥(행13:1-3)
A, 출발지와 파송지
이 선교의 출발지와 파송지가 안디옥 교회라는 사실(1절)은 이방인들을 주측으로 한 교회로 유대주의적 편견으로 인해 이방인에게 배타적인 예루살렘 교회보다는 이방 선교에 더 적합했다, 그리고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 로마,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안디옥이 세번째 큰 도시로 지정학상 으로도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이방 선교에 더욱 용의했다. 더구나 안디옥 교회는 복음을 영접한 이후 급성장하여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금을 보내는 등 신앙에 대한 열심과 성도들에 대한 사랑 헌신적인 곧 선교에 적합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안디옥 교회를 이방 선교이 전진 기지로 준비하시고 여기에서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훈련시키신 것이다.
B, 파송한 일꾼들의 준비(1-3절)
안디옥교회의 주요 일꾼들은 바나바와 바울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교회를 훌륭한 신앙 공동체로 이끌어 가고 있었다. 더구나 이들은 교회를 금식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운영하였으며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할 때에도 온 성도들과 합심하여 금식과 기도로 준비하는 등 모든 일에 있어서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의존하였다. 안디옥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적합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C,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3절)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중심적인 지도자들로서 실질적으로 목회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안디옥 교회는 눈앞에 보이는 교회 유익에 급급하지 않고 더 넓은 세계 선교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선교사로 파송한 것이다. 사실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로도 훌륭하였지만 선교를 위해서는 더욱 중요하고 적합한 인물 이었다. 바나바는 이미 예루살렘 교회에서부터 인정을 받은 성령이 충만한 인격자였고(행4:36; 11:22-24) 바울을 키운 후견인이었다. 또한 바울은 이미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심을 받은 자인 것이다(행9:15). 한편 본문을 보면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택한 이는 안디옥 교회가 아니라 바로 성령이셨는데(2절), 이는 이후 이방 선교 사역이 전적으로 성령의 주도하에 진행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의 선교사 파송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시작되었다.
⓶ 구브로(사이프러스, 행13:4-12)
구브로 섬을 첫 선교지로 정하고(4절) 살라미에서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새 바나바의 생질(골4:10) 마가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다(5절) . 이곳은 바나바의 고향이기도 한 곳(행4:36)으로, 헬라인 거주이였지만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어 유대인이 회당이 여러 개 있었다. 그래서 두 전도자는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 전파 활동을 (살라미- 바보) 펴 나갔는데, 주목할 내용 : 첫째는 사도 바울이 바예수라하는 박수 엘루마에게 능력을 행한 것이다(6-11절). 이 박수 엘루마는 거짓 선지자요 사술을 행하는 자로 미신을 퍼뜨리고 사람들을 미혹하였으며 또한 바나바와 사울의 전도 사역을 힘써 방해하였다. 이 박수 엘루마를 사도 바울이 성령이 능력으로 소경되게 함으로써 복음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입증시킨 것이다. 둘째는 성령의 능력을 본 구브로의 총독 서기오 바울이 주의 복음을 영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12절). 이 총독은 이방인의 대표를 상징하는데 그가 바울의 이방 선교의 공식적인 첫 개종자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 성령의 능력과 복음 전파로 인하여 세계 선교가 이루어질 것을 예시해 준다. 셋째는 구브로 전도에서 전도의 주역은 역시 성령이셨는데, 이는 인간은 성령의 조력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꺠닫게 해 준다. 넷째는 히브리식의 사울(<하나님께> 간구하다)의 이름이 로마식의 바울(작은자)로 개명되었다는 사실이다(9절). 이는 바울의 생애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음을 알리는 표식이라 하겠다.
⓷ 버가 (밤빌리아, 행13:13)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구브로 섬의 바보에서 출항하여 밤빌리아의 버가에 이르렀는데 이때에 마가 요한이 선교 여행을 중도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사태가 발생한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요한이 동행 문제가 바울과 바나바가 2차 여행 준비 과정에서 갈라지는 원인이 된 것으로 보아 바울은 마가 요한의 귀환에 매우 실망한 것 같다(행15:37-39).
⓸ 비시디아 안디옥 복음 전파와
유대인들의 박해 (행13:13-52)
A, 비시디아 안디옥 복음 전파(13-43절)
마가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사태 속에서도 바울과 바나바는 흔들리지 않고 전도 여행을 계속하여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설교(15-41절)에 나타난 특징을 살펴보면 Ⓐ베드로의 설교(행3:13-26)나 스데반의 설교(행7:2-53)와 같이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이 섭리와 언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되심을 선포한다. 즉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구속 역사를 통하여 다윗의 자손으로 언약된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다는 것이다. Ⓑ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득의 사상은 바울 신학과 기독교 신아의 제일 원리가 되었다(롬1:17; 3:28; 2:16).Ⓒ 바울은 구약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접목시킴으로 예수님의 신성과 메시야되심을 강조했는데, 이것은 또 한편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와 역사를 분명히 하는 것으로서, 바울이 이방의 사도로 부름받기는 했지만(롬11:13) 강한 민족에와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바탕으로 "먼저는 유대인에게 다음은 이방인에게"라는 선교의 기본 전략(롬1:16)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B, 유대인들의 박해(44-52절)
바울의 설교로 비시디아 안디옥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난 사실과 복음을 좇는 사람의 수가 점차 증가하자 자신들이 권위와 지지 기반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44, 45절)하고 축출하는(50절) 장면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비난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그들이 복음을 거절하므로 이제 복음의 빛이 이방인에게로 옮겨지게될 것을 선포하였다(46-49절).
⓹ 이고니온 (콘야, 행14:1-7)
이고니온에서도 복음을 영접하는 무리와 박해하는 무리로 나누어 반응을 보이는데(1, 2, 4절)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들의 바해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장기간을 체류하며 복음을 전한것 같다(3절).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극심해지는 핍박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끝내는 루가오니아 지방의 루스드라로 필할 수밖에 없게 된다(5-7절). 바울의 일행이 가는 곳에는 반드시 유대인들의 박해가 뒤따랐고 유대인보다는 이방인들이 복음에 더 적극적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바울과 바나바의 복음전파 전략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주로 유대인의 회당에서 전도하였다. 이는 복음을 효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달한다는 전도의 원칙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당시 회당은 유대인 10여명 이상이 살고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회당이 있었고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유대교에 관심을 갖고 많이 모였다. 따라서 회당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기 적절했던 곳이었다. 또한 주님께서는 바울과 바나바에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능력을 주셔서 은혜의 말씀이 증거되도록 하였다(3절). 이러한 사실들은 전도와 선교에 있어서도 주님이 주신 지혜와 능력으로 효과적인 복음 전파의 전략과 기술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교훈해 준다.
한편 바울과 바나바는 여기서도 박해를 피하여 루스드라 지방으로 옮겨 갔는데 이것은 박해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선교 전략상 예수 그리스도의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마10:23)는 교훈을 지혜롭게 실천한 것이다. 따라서 사도들은 박해를 피해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오히려 복음을 더욱 널리 전파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어려움과 박해가 있을 때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담대한 믿ㅇ므을 가지고 지혜롭게 처신하는 분별력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엡3:12; 빌1:10, 히11:38).
⓺ 루스드라(루가오니아, 행14:8-18)
루스드라에서의 복음 전파는 바울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치자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그들이 섬기는 쓰스(제우스)와 허메(헤르메스)신으로 오해하게 되는데(11-13절) 이를 바울과 바나바가 자신들은 신이 아닌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지는 (14-18절)과정에서 이것을 계기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절대적인 신으로서의 하나님을 소개함은 물론 루스드라 사람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를 버리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촉구한다.
루스드라는 본래 퇴역한 로마 군인들의 집단 거주지로 조서오딘 곳으로 소수의 헬라인으로 구성된 엘리트 계층을 제외하고는 지적 수준이 낮고 미신적 경향이 짙은 도시였다. 이러한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의 능숙한 선교 전략을 보게 되는데, 이는 바울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에게 적합한 메시야관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던 반면(행13:33절), 미신적 사고에 물들어 있는 이방인들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을 전파하여 바른 신지식을 갖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한 것이다(행17:2).
아무튼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만드신 만물에 그의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나타내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과 영광을 무시하고 자신의 허망한 욕심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는 어리석은 죄악을 행하고 있다(롬1:19-23). 그러나 진실한 성도들은 우주와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고 하나님께만 참된 영광과 찬양을 드려야 할 것이다(히11:3).
⓻ 더베와 안디옥 교회로의 귀환(행14:19-28)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의 바울과 바나바의 복음 전파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유대인들이 루스드라에까지 쫓아와 무리를 선동하여 바울을 돌로 치는 사건이 나타난다. 이 사건은 고후11:24, 25에서 바울이 그의 고난을 회상하면서 다시 언급될 만큼 바울에게 큰 고통을 주었는데 유대인들이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버릴 정도였다(19절). 하지만 바울은 정신을 차린후에 다시 성안으로 들어가는 담대함을 보여 주었다(20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으로 바울과 바나마는 더 이상의 전도 여행을 계속하지 못하고 이튼날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한 후에(20, 21절) 원래의 파송지인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 교회로 귀환하게 된다(22-28절).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들이 개척한 교회들을 돌아보고 성도들에게 고난 가운데에서도 용기를 잃지 말 것을 구너면하는 동시에(22절) 장로들을 택하여 그들로 교회의 치리를 대신케 함을로써 교회를 굳건히 하였다(23절). 결국 바울이 출발지인 안디옥으로 귀환함으로써 1차 전도 여행의 모든 여정을 마치게 되는데,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전도 보고를 통하여 이방인 전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한다. 즉 이방인에 대한 전도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보고하여 계속해서 전도해야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것이 발판이 되어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 제2차 선교 여행을 준비하였고 안디옥 교회는 이방 전도이 중심지로서 그 위치를 굳히게 된다.
예루살렘 공의회(행15장)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제1차 예루살렘 공의회(A.D.49년) 장면이 기록. 이러한 제1차 예루살렘 공의회는 본래 이방인 신자의 율법 준수와 할례 문제로 인하여 개최되었으나 그 결과는 공식적으로 이방 선교와 바울의 사도직 권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해진다.
1, 이방인 할례문제 제기(1-3절)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에 대한 제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와 있을 때에 율법주의 전통을 간직한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유대롭터 안디옥 교회로 찾아와 이방인도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얻는다고 주장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저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게 된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유대인 기독교인들의 문제 제기는 단순히 이방인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였다. 물론 이런 문제는 이미 앞에서 빌립 집사의 사마리아 전도(행8장)와 고넬료의 회심 사건(행10장) 때 예루살렘 교회에서 논란이 있었던 문제로 베드로의 변론(행11장)으로 일시 해결되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제 바울과 바나바에 의해 이미 이방 선교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는 과정에서 다시금 문제 제기가 된 것이다. 즉 아직도 율법적 전통과 선민 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유대인 신자들로서는 이방인들이 법적으로도 유대인화되지 않고 구원얻는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자연히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으며,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의 선물임을 주장하는 바울과 바나바와 저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의 본질과 기독교 공동체의 통일성을 지키기 위하여 안다옥 교회의 모체라 할 수 있는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하게 되었고,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의회를 개최하기에 이른 것이다(4-21절).
2, 예루살렘 공의회 개최(4-21절)
1) 바울과 바나자가 예루살렘 지도자 앞에서 1차 전도 여행의 결과를 보고하자 바리새파 출신의ㅏ 신자들이 이방인 신자들에게도 언약의 증표인 할례를 시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준수케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다(4, 5절). 이는 이미 유대인 신자들이 안디옥 교회에 찾아와 주장했던 것으로(1절). 이제 공의회가 개최되자 그들은 다시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2) 베드로의 변론 부분이다(7-11절). 베드로는 이때까지 적극적으로 이방인에 대하여 복음을 전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고넬료가의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하여 이방인 선교가 하나님의 뜻인 것을 깨닫고 있었다. 이에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토론이 무르익을 무렵 자리에서 일어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함을 선포한 것이다. 사실 베드로도 이 원리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것을 확신있는 구원의 원리로 인식하지 못했을 때는 이방인과 식사하는 것조차 기피할 정도였다(갈2:12)/ 그러나 그는 이제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를 체험하고 순수한 이신 득의의 구속 원리를 확신있게 선포하고 나선 것이다.
3) 베드로의 변론이 끝나자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 여행 중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와 이방인의 복음 영접을 증거함으로써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일한 구원의 은혜 안에 있음을 증거하였다. 그리고 이어 야고보가 결론적으로 이방인 구원의 당위성을 설명한 것이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이며 예수님의 동생으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그의 발언은 매우 근 양향을 끼쳤다(행12:17; 21:8; 갈2:9).
3,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의 및 통보(22-35절)
예루살렘 공회가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유다와 실라를 안디옥 교회에 파송할 자로 택하여(22절) 그들의 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과 율법의 멍에를 이방인에게는 지우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방인 성도의 할례 의무를 체지하고 네 가지 금지 사항만을 지키도록 하기로 정하고 이를 기록한 공식 문서를 전달하도록 의결 조치한 바(23-29절). 바울 일행이 안디옥에 도착하여 그 결의 사항을 교회에 전하자 안디옥 교회가 매우 큰 기쁨으로 즐거워하는 가운데 날로 흥왕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30-35절).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의 시작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의 시작(행15:40-18:22)
1, 두번째 전도 여행을 바나바에게 제의하는 바울(15:36-41)
바울은 두번째 전도 여행을 바나바에게 제의하가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의 제2차 전도 여행 계획은 바나바가 마가 요한을 그들의 조력자로 추천하면서(37절) 문제에 부딛히게 된다.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골4:10)로 제1차 전도 여행 때 선교사역을 도왔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여행 도중 버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말았었다(행13:13).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마가 요한을 불신하게 되었고 바나바의 제안을 거절하게 된다(38절). 결국 두 사람은 이 일로 심히 다투어 갈라서게 되는데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수종자로, 바울은 실라를 수종자로 택하여 각자 다른 길로 선교 여향을 떠나게 된다(39-41절).
2, 바울과 디모데와의 만남(16:1-5)
2차 전도 여행의 첫번째 사역지인 더베와 루스드라에서의 사역의 중심적 내용 : 첫째는 디모데와의 동역이다(1, 2절). 이곳이 1차 전도 여행 당시 이미 복음을 전파 하였던 지역이므로(행14:6, 7) 훌륱한 사역자요 제자였던 디모데와의 동역을 강조. 디모데는 여려서부터 성경에 익숙한 자로(딤후1:5; 3:15).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때에 복음을 받아들여 복음 사역에 중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롬16:21; 고전4:17; 딤전1:2). 디모데는 그 지방의ㅏ 성도들에게도 신앙적으로 칭찬을 받았기게 바울은 자신의 적합한 동역자로 생각하였다.
3, 바울이 본 마게도야인의 환상(16:6-10)
루스드라와 더베에서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고 2차 전도 사역을 시작한 바울(1-5절)은 계속해서 소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 증거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어떠한 방법이었는지 알수 없으나 바울은 성령의 제지를 받아 소아시아로 갈 수 없었다. ㅇ에 바울은 그 방향을 바꾸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 비두니아 지역으로 북상하려고 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그 길마저도 제지하셨다(6, 7절) 이렇게 되자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고 드로아에서 하나님이 뜻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는데(8절)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해 바울의 발길을 유럽쪽으로 돌리게 하신다(9,10절). 이러한 사실은 결국 바울의 전도 사역이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에 따른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특별히 누가는 본문에서 "성령"(6절), "예수의 영"(7절), "하나님"(10절) 등의 다양한 표현으로 이방 전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역을 기록함으로 전도의 주체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한편 바울은 성령의 뜻에 순종하여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는데 이런 전도자의 순종과 확신 있는 신앙적 태도는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르 ㄹ바라는 모든 전도자들의 필수적인 자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뜻에 겸손히 순종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잠16:9; 마7:21; 행5:29).
4, 마게도냐의 첫성 빌립보 전도(16:11-34)
1)빌리보에서의 루이다의 회심(11-15절)
성령의 지시를 받아 마게도냐 지경에 이른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루디아라는 회심자를 얻게 되는데 크게 두가지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먼저 바울의 빌립보에서의 전도이다(11-13절). 바울은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에순종하여 아시아에서 전도의 발길을 돌려 환상을 보여준 마게도냐를 향하여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 전도 여행에는 실라, 디모데, 누가등이 동행하였고 첫번째 지역으로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이 이르게 되었다. 특히 누가는 바울의 2,3차 전도 여행기록 중에서 빌립보 사역을 중요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빌립보가 바울의 전도 사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빌립보는 지리적으로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이었고 이곳에 서의 복음 전파는 성공을 거두어 교회의 기반을 다져 놓았던 것이다. 후에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지속적인 호의를 보였고 바울도 타 교회들에서는 복음 전파 사역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전혀 받지 않았던 재정 지원을 (고전9:3-14) 여기선 받을 만큼 성도들을 신뢰하였다(빌1:3-5; 4:18).
다음으로 자주 장사 루디아의 회심이다(14, 15절). 루디아는 이미 유대교의 교육을 받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였는데,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주님께서 그 마음을 감동시킴으로 복음을 영접하게 되었다. 여기서 누가는 바울이 복음을 전함에도 전도의 주체는 성령임을 다시 드러내고 있다. 아무튼 루디아의 회심은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재정적 도움을 주고 그가 감옥에 있을 때 돌봐줄 정도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빌4:18). 한편 루디아는 온 집안이 세례를 받고 바울을 청하여 자기 집에 머무르도록 하는 봉사를 베풀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체험한 성도들은 감격과 기쁨에 머무르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봉사하고 베푸는 성숙한 성도로 성장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마10:42; 딤전6:18; 히13:16).
2) 바울의 빌립보 감옥에 투옥됨과 구원(16-34절)
바울 일행은 기도처로 가는 도중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귀한 종임을 알라보고, 쫓아다니며 소리를 질러댄다(16, 17절). 이에 바울은 그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그녀를 고쳐 준다(18절). 그러자 여종의 주인들은 바울로 인해 여종의 점으로 얻는 수입이 끊어지자 바울을 백성을 현혹하며 로마를 해하는 이상한 풍속을 전하는 자로 모함하여 고소한다(19-21절). 그래서 결국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관원들에 의해 매를 맞고 옥에 갇히게 된다(22-24절). 이 고난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직접적으로 당한 최초의 기록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박해한 유대인들의 박해나 물질적 이익을 얻기 위한 이방인들의 박해는 모두 동일하게 부패한 인간의 세상적 욕망에서 기인했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아무튼 이 사건은 바울의 전도 사역이 고난과 핍박 속에서 이루어진 것을 보여 줌과 동시에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에게는 필연적으로 고난이 따르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요16:33).
다음으로 감옥 문을 여신 하나님이 역사를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25, 26절). 바울과 실라는 이유 없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으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였다. 이러한 그들의태도는 고난에 처한 성도의 취할 자세가 무엇인지를 교훈해 주는데 바울과 실라의 이러한 신앙적인 태도는 결국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약사가 일어나게 했다. 즉 하나님의 역사로 감옥 문이 열리고 바울과 실라의 발에 채원진 착고가 열린 것이다. 이상의 사실은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의 기도를 외면치 않고 들어주시며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욥5:19; 벧후2:7).
마지막으로 간수와 그 가족의 획심과 구원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27-34절).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간수가 죄수를 놓칠 경우 죄수의 형량을 간수가 대신 져야 했다(행12:19). 그래서 옥문이 열린 것을 본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도망한 줄로 알고 자결하려 하였다(27절). 그러자 바울이 그를 만류하고 나셨는데(28절). 간수는 감옥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도망가지 않고 태연하게 있는 바울과 실라의 모습에서 신적 존경과 경 이로움까지 느끼고 영적인 구원을 요청하기에 이른다(29, 30절). 이렇게 하여 바울은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간수와 그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31-34절). 이렇케 볼 때 바울과 실라의 투옥은 이유없는 것이 아니라 빌립보 간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3) 바울의 공식 석방 (35-40절)
먼저 빌립보 관원들은 아전들을 보내어 바울과 실라를 놓아 주도록 했다(35, 36절). 어떻게 하여 빌립보 관원들이 하루 아침에 ㅂ바울과 실라르 ㄹ놓아주고자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빌립보 관원들은 태형과 투옥으로 충분한 경고가 된 줄로 알고 바울과 실라를 석방하려고 한 듯하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로마 시민권을 내세워 형벌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명예롭게 석방된다(37-40절).
당시 로마법은 로마 시민에 대하여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는 어떤 형벌을 가하는 것도 금지하였고 특히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는 판결에 불복하여 상고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과 실라의 로마 시민권 소식을 들은 관원들은 자신의 불법적인 처사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껴 바울 일행에게 정식으로 사과하였고 빌립보를 떠날 것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내세운 이유는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 자신이 빌립보를 떠난 후에도 빌립보 교인들이 박해를 받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고. 더 이상 그곳에서 박해로 인해 복음 전파에 방해르 받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여튼 바울의 빌립보 사역은 비록 박해와 핍박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처럼 영광스런 결과로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다는 것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5, 데살로니가 전도 사역(17:1-9)
빌립보에서 사역 도중 투옥되었다가 명예롭게 풀려난 바울과 실라(행16:11-40)는 빌립보에서 남서쪽으로 약160km 떠러져 있는 데살로니가에 이르게 되는데 본문은 바로 그 데살로니가에서의 전도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데사로니가는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로서 상당히 큰 상권을 형성 하였고 그만큼 교통이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유럽에 확산시키기에는 전략적으로 매우 알맞은 곳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이 도시를 복음화 시키고자 한 것이다. 한편 바울의 전도 사역은 전도와 박해의 반복적인 상황이 계속 되면서 복음이 확산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한 모습은 데살로니가에서도 예의는 아니었다. 즉 바울이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하자 경건한 헬라인이 큰 무리와 적지않은 귀부인이 복음을 영접했던 반면(1-4절), 유개인들은 오히려 바울을 시기하여 해하고자 혈안이되어 있었던 것이다(5-9절).
바울은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행13:46; 롬1:16)라는 그의 전도 원칙에 따라 안식일에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의 설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함으로써 그가 구세주되심을 선포하는 것이었다(1-3절).
다음으로 복음을 들은 자들의 반응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4-9절). 바울의 복음 전파는 무리들에게 두가지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즉 바울의 복음 전파는 많은 이방인들을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게 했다. 그러나 반대로 유대인들은 바울을 시기하고 해하려했기 때문에 세 안식일만 데살로니가에 머물을 수 있었다(2절). 이러한 양상은 바울이 가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복음은 항시 두 가지 반향을 불러이르키는데, 이는 복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생명을 얻는 기쁜 소식이 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저에게는 심판의 소식이 될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복음을 전하는 저에 대한 박해자들의 고소 죄목이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라는 것이다(6절; 행16:20, 21). 이는 복음 전파가 박해를 공식화할 수 있는 죄목이 될 수 없음을 입증한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처형 죄목도 정치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은 사단의 권세가 주로 세상 권력을 이용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하겠다.
한편 바울과 실라는 숨겨 주었던 야손과 그 형제들은 읍장들 앞에 끌려가 큰 곤욕을 치룬 끝에 바울과 접촉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풀려났는데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후에 사단의 방해로 그가 다시 데살로니가에 돌아가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살전2:18). 그러나 이러한 박해 중에서도 데살로니가에 전파된 복음의 씨앗은 크게 성장하여 열매를 맺고 유럽지역에 복음이 확산되는 기초가 된다(살전1:1-10). 여기서 우리는 복음이 생명력 있는역동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6, 베뢰아에서의 전도(17:10-15절)
데살로니가를 떠난 바울의 일행은 베뢰아 지방으로 향하였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남쪽으로 약80km 정도 떨어진 소도시로 그다지 중요한 도시는 아니었다.그런데 이곳에서도 베뢰아 사람들의 신사적인 태도와 유댕니들의 완악한 모습이 대조되어 나타난다.
먼저 베뢰아 사람의 신사적인 태도이다(10-12절), 바울은 베뢰아에서도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곳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인들보다 더 복음을 편견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열심 있게 받아들었다. 즉 이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과 구약의 말씀을 진지하게 고찰한 후 객관적으로 복음을 옳다 인정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여접한 것이다. 이러한 베뢰아인들의 복음과 말씀 연구에 대한 열의와 겸손은 오늘날 모든 성도들이 지녀야 할 아름다운 신앙의 태도이다.
둘째, 유대인의 박해이다(13-15절). 즉 바울이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베뢰아까지 쫓아와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전도 사역을 방해한 것이다(행14:19, 20), 이런 유대인들의 완악한 태도는 복음에 대한 오해와 영적 무지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죄악을 저지르게 되는가 하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엡4:17-20). 한편 유대인들의 거듭된 박해는 오히려 복음을 신속하게 여러 지바응로 전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는데, 이것도 복음 전파를 위한 성령의 섭리라 할 수 있다.
7, 아덴에서의 전도(17:16-34)
베뢰아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이 소동을 피해 배를 타고 아덴에 이르러 그곳에서 전도 사역을 펼치는 바울, 아덴은 아가야 지방에 있던 헬라 문화의 중심지로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학문과 철학, 예술로 유명한 곳이었다.
학문과 철학 등에 대해서는 유명했던 그곳이 종교 적으로는 매우 미신적이고 불경건했다. 또한 학자들에 따르면 당시 아덴에는 무려 300개의 공식화된 우상과 3만여개의 신상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아덴은 헬레니즘의 최고봉에 달할만큼 문화적으로 번창했던 반면, 영적으로는 심히 부패해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아덴 사람들의 모습을 분개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이해시키기 위해 철할적이고 사변적인 논쟁을 벌였다(16-21절). 이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적절하게 복음을 증거하려는 바울의 전도 전략의 일환이었다.
에덴인들의 철학적 경향에 따라 복음을 논리적으로변증하고자 한 바울의 소위 "이레오바고의 설교"를 세 부분으로 나뉜다 1) 하나님꼐서 참신이심을 밝힌다(22-25절). 즉 바울은 아덴의 종교성을 지적하면서 아덴 사람들이 섬기는 신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창조자요 만유의 주재이시며 완전하신 신이라는 사실을 선포한다. 아덴 사람들은 헬라적 신관에 따라 온갖 신을 섬겼으며 심지어는 알지 못하는 신까지 섬기므로 바울은 다른 신들은 모두 거짓되거나 피조된 우상에 불과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진정한 만유의 주재와 우일하신 신임을 증거한 것이다. 2) 하나님과 인간 관계를 밝힌다(26-28절). 3) 회개에의 촉구이다(29-31절). 바울은 우상 숭배를 허탄한 것으로 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심판을 선포하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바울의 전도는 지적 교만으로 인해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헬라인들의 배타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소수의 사람에게만 감동을 주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였을 뿐 큰 효과를 거둘수 없었다(32-34절). 결국 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교만과 자신의 사변적 설교의 한계를 통감하고 아덴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고린도로 행선지를 바꾸고 만다(행18:1). 뿐만 아니라 그는 사변적 설교를 통한 복음전파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고린도에서는 오직 "십자가의 도"(고전 2:2)만을 전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8, 고린도 사역(18:1-17)
본장은 2차전도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라 할 수 이는 고린도에서의 전도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1) 바울의 고린도 체류(1-4절)
고린도는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 아덴이 철학과 예술의 중심지라면 이곳은 상업과 무역의 요충지로 발칸 반도 남단에 위치하여 지중해의 무역권을 장악한 번영의 도시였다. 그러나 고린도는 물질적으로 번영한 이상으로 도덕적 타락이 심각하여 방탕하고 음란한 도시로도 유명하였다(곤전6:9, 10)실제로 이곳에 있던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천여 명의 여사제들이 있으면서 종교적 매음을 조장하기도 했다. 따라서 고린도는 그 어떠한 곳보다도 복음이 필요한 곳이었다.
아덴에서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1절)은 본도 출신 유대인으로 로마에 이주하여 그곳에서 살다가 글라우디오(A.D.41-54년) 황제의 로마에서의 유대인 추방령(A.D.49-50년)에 따라 고린도에 이주하여 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된다(2절). 그런데 마침 아굴라의 직업이 장막 만드는 일로 바울이 자급 전도를 위해 했던 일과 같았던 고로 바울은 아굴라의 집에 기거하며 평상시에는 장막 만드는 일을 하고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했다(3, 4절). 물론 여기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아마도 바울을 만나기 전에 이미 복음을 영접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여간 이들 부부는 바울이 영적으로 죽음의 도시와 같았던 고린도에서의 사역을 감당하는데 큰 힘과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훗날 바울의 기억 속에 자신을 위해 생명을 내어놓을 정도로 신실했던 동역자로 남게 되었다(롬16:3, 4).
2)고린도 전도 사역(5-11절)
바울의 본격적인 고린도 사역은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 함으로써 시작된다(5절). 즉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서 교회의 소식을 갖고 도착했고(살전3:6), 실라가 빌립보에서 교회의 소식과 전도사역에 필요한 빌립보 교회의 연보를 가지고 도착한 것이다(빌4:14, 15). 이에 바울은 생계를 위한 막한 만드는 일을 그만 두고 데모데와 실라와 더불어 안식일 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복음 증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린도에서의 전도 사역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즉 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바울을 대적하며 복음 증거를 훼방했던 유대인들이 이곳에서도 바울의 전도 사역이 본격화 되자 바울을 대적하며 복음 증거를 훼방하고 나선 것이다(6절). 이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눅9:5; 10:11)대로 옷을 떨어버리고 회당에서 유대인을 향한 복음 증거를 중단한 채 디도 유스도의 집에서 이방인을 향한 복음 증거를 증거하게된다(7절). 여기서 디도 유스도는 본래 로마인으로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바울의 복음을 듣고 다시 기독교로 개종한 인물인 듯하다. 하여튼 그는 자신의 집을 고린도 전도 사역의 본부로 제공함으로써 이후 고린도 교회의 탄생에 충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바울과 복음을 배척했지만 예외도 있었다는 것이다. 즉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가족과 더불어 주님을 영접한 거싱다(8절). 이러한 회당장 그리스도의 회심은 실로 많은 살마들에게 영햐을 미쳐 고린도 전도에 큰 기폭제가 되었을 것이다.
한편 주님께서는 한상 중에 나타나 바울을 위로하고 격려하시며 고린도에서의 전도 사역이 성공할 것을 말씀해 주셨는데(9, 10절) 이러한 주님이 말씀은 아마도 아덴에서의 성공적이지못한 전도 사역과 고린도에서의 박해 등으로 위축된 심령을 가지고 있던 바울에게 큰 햄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이 사역자를 버려두지 않고 돌보시며, 어려운 상황 가운데 더욱 강하게 역사 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비록 주님이 사명을 감당하다가 때로 낙심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더욱더 매진해야 한다(사41:13; 마10:30, 31; 눅12:32).
3)유대인의 바울 제소와 갈리오의 판결(12-17절)
바울이 고린도에서 일년 육개월을 머물먼서 복음을 전할 때(11절)에 발생한 사건으로 유대인들이 바울의 복음 증거를 막기 위해 당시 아가야 지방의총독이었던 갈리오에게 고소한(12, 13절) 사실과 그에 대한 갈리오의 판결 등을 소개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죄목은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는 것이었다. 즉 바울이 로마법상 정부가 허용하지 않은 불법적인 종교를 전파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로마가 허용한 종교에 한해 포교 활동이 가능했던 상황에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불법적인 종교로 몰아부쳐 기독교를 와해시키려는 음모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총독 갈리오가 유대인들의 고소가 순전히 유대인 자체의 종교 문제로 취급하여 그의 책임밖의 문제로 규정하고 고소 자체를 기각함으로써 바울을 음해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는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14-16절).
한편 유대인들의 고소가 갈리오에 의해 기각되자 주위에서 재판 진행 과정을 구경하고 있던 무리들은 회당장 소스테네를 구타하였다. 이 무리들은 아마도 반유대적 감정에 젖어있던 헬라인들이거나 아니면 고소가 기각된 책임을 소스에네에게 돌리려 했던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누구 였든지간에 바울을 박해하려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덫에 자신들이 걸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나아가 이번 사건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데 그것은 이번 사건이 전례가 되어 훗날에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바울에게 유익하게 작용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며 유대인들이 바울을 음해하려고 공권력을 이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9,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종료(18-22절)
고린도에서의 사역을 끝으로(1-17절) 바울은 그의 2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귀환하게 된다
1) 겐그리아에서(18절)
2차 여행을 마무리하고 귀환 여정 가운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18절), 그리고 바울이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은 일이다(18절). 그러나 바울이 머리를 깎은 이유나 동기는 전혀 언급이 없다.
2) 에베소에서 (19-21절)
바울이 고린도에서 팔레스틴으로 오는 중간 기착지인 에베소에서 복음을 증거한 일이다(19-21절). 당시의 배로는 고린도에서 팔레스틴까지 한번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배는 잠시 에베소에 머물게 외었고 바울은 이때를 이용하여 에베소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증거한 것이다. 에베소는 본래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시작했을 때에 복음을 증거하려다 성령의 섭리로 말미암아 복음을 증거하지 못한 곳이었다(행16:6). 하였튼 에베소에서의 복음 전파는 매우 성과가 좋았다. 그러나 바울은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다시 에베소에 올 것을 약속하고 부득불 에베소를 떠날 수밖에 없었으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거기 머물러 복음 전도사역을 지속케했다(19절). 바울이 이처럼 귀환을 급히 서두른 것은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키고자 했기 때문인 듯하다(21절). 하지만 바울은 3차 전도 여행 때 에베소를 재 방문하여 약 3년 동안을 그곳에서 목회를 하게 된다(행20:31).
3) 예루살렘에서(22절)
바울은 전도 여행이 끝날 때마다 매번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전도 결과를 보고하였다. 물론 이는 단순한 전도 보고만을 의미하지 않고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 교회간에 우의와 결속을 다지기 위한 목적의 일환이었다. 하여튼 바울은 전도 보고를 미친 후 안디옥으로 돌아감으로써 2차 전도 여행이 모든 여정을 마치게 되는 바. 얼마 있지 않아 곧바로 3차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된다(23절). 이처럼 바울은 이방 전도를 위해 일함에 있어서 조금도 자신의 평안함을 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증거되었다. 따라서 성도들은 복음에 빚진 자로서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소흘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롬1:14, 15; 10:14).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의 시작 (행18:23 - 21:19)
1, 에베소 사역 (행18:23-19:41)
1)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시작과 아볼로의 사역(18:23-28)
3차 전도 여행은 주로 2차 전도 여행 당시 복음을 전파했던 곳을 다시 들러 복음을 굳게 하는 이른 바 목회적 차원의 전도 활동이었다 할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3차 전도 여행에서의 핵심은 역시 약 3년이라는 긴 기간을 두고 사역한 에베소에서의 전도 사역이다(행19장). 에베소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에서 귀환할 때 잠시 들렀던 곳으로 다시 올 것을 약속했던 곳이다(21절).
바로 그같은 배경에서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이 시작된 사실(23절)과, 에베소 전도의 예비적 상황을 설명한 삽입적 기사로 에베소에 와서 예수를 증거하던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 의해 복음의 진수를 깨닫고 능력있는 주의 사역자로 변모된 사실(24-28절)을 소개하고 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구약 성경은 물론 헬라 철학과 웅변술 및 수사학에 능통한 자로 아마도 세례요한의 제자드들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듣고 에베소에 와서 사람들에게 예수에 관해 증거했다고는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등 복음의 핵심에 대해서는 무지하였으나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됨으로써 복음이 진수를 깨닫게 되었고 이후 초대 교회의 핵심적인 전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변모하였다(26-28절). 실제로 바울은 훗날 아볼로의 복음 사역을 가리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라고 고백하기도 하였다(고전3:6). 아볼로는 많은 학문과 지식을 겸비한 자였지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가르침을 겸손히 받다들었고 진리에 순종했던 것이다. 그러한 겸손이 아볼로로 하여금 훌륭한 복음의 사역자가 되게 하였는 바 하나님과 복음 앞에서의 겸손함이야말로 참 생명을 얻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변화시켜 주의 크신 사명을 감당케 한다는 것을 교훈받게 한다.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로 부터 복음의 진수를 확실히 깨달은 직후 곧바로 고린도로 떠났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게 되므로 에베소 사역이 시작되었다
2) 에베소의 성령 강림(19:1-7)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1절) "윗 지방"이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가리킨다(행18:23).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2절). 이러한 대답은 바울로 하여금 상당히 놀라게 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이들이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그의열 한 제자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보내주신 성령에 관해(행1:5, 8; 2:1-4)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저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았으면서도(3절) 요한이 증거한 예수의 "성령"(마3:11)에 관해 몰랐다는 것은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요한의 세례로"라(3절)는 의미는 세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주던 물 세례를 가리킨다(마3:6; 요3:23) 이러한 물 세례는 자신의 죄를 씻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였음을 상징적으로나타내 보이는 신앙 고백적 행위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구원의 필수 조건 또는 분명히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어디까지나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이를 가리켜 소위 "성령 세례" 또는 불 세례"라 한다 (요3:3-8)
3) 바울의 전반적인 에베소 사역 소개(8-10절)
바울은 처음에 에베소에서도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하였다(8절).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회당 중심의 복음 전도 사역은 역시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완악한 유대인의 배척으로 약3개월만에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일이 여기에 이르자 바울은 장소를 옮겨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증거하게 되는데 이러한 두란노 서원에서의 복음 증거는 은장색들의 소요가 있기까지(23-41절) 2여년 동안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음으로써 에베소에서의 복음 증거는 매우 큰 성공을 거두어 에베소는 물론 그 주변 지역에까지 복음이 확산되는 결실을 거두게 된다(9, 10절). 11-20절까지는 성공적인 에베소의 복음 사역을 대표적인 사건을 들어 소개하고 있다.
4) 바울의 이적적 권능과 에베소인들의 회개(11-20절)
바울의 에베소에서의 성공적인 복음 증거의 대표적인 사례 :
첫째는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치유돠 축사의 이적을 행한 것이다. 특별히 여기서 치유와 축사의 이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사명, 곧 이 세상에서 악의 세력을 축출하고 온전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눅7:21, 22)과 연계된 것으로 이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복음 증거는 큰 성과를 거두게 된다.
둘째는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의 어리석음으 ㄹ보여 주는 부분이다(13-16절). 당시 에베소에서는 주술사들이나 마술사들이 악령을 내좇을 목적으로 어떤 신적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의 이름을 사용하여 주문하는 일이 매우 흔했다. 그런데 바울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악귀를 축출하자 이를 목격한 마술하는 유대인들과 제사장 스게와의 아들들도 그같은 효험을 보고자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그러한 행위는 그 어떠한 효험도 볼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스게와 일곱 아들이 주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다가 귀신들로 부터 낭패를 당했다는 소식이 에베소 전역에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특별히 마술과 주술하는 자들도 복음을 영접하고 새사람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17-20절). 결국 에베소에서의 복음은 날로 흥왕하였고 주변 다른 지역에 까지 널리 전파되었다.
5) 바울의 전도 계획(21-22절)
바울의 에베소에서이 전도 사역을 언급하고 있는 중간 부분에 삽입된 기사로, 누가가 바울의 앞으로의 전도 계획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바울의전도 계획과 그 계획이 수정되게 된 불가피성 등에 대해서는 바울 서신에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후1:15-17)
하여튼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사역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게 되자 다시금 새롭게 전도 여행을 계획했다. 이러한 바울의 전도 계획은 본래 2차 전도 여행 당시 들렀던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을 들리어 2차 전도 여행에서의 귀환 때와 마찬가지로 고린도의 갠그리아 항구에서 출항하여 예루살ㄹ메으로 갔다가 다시금 로마로 가고자 하는 것이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고자 한 이유는 로마를 유럽 전도의 전초 기지로 개척하고 로마 교회의 도움을 받아 유럽 전도 여행을 떠나고자 함이었다. 소아시아 지역은 이미 복음이 많이 전파되었고 이미 복음을 전한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는 바울의 전도원칙(롬15:20)에 적합한 지역이 아니였다. 그래서 그는 유럽 쪽으로 그의 발걸음을 옮기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전도 계획은 일부 차질을 빚게 되었으니 고린도에서 바울을 해하려는 음모가 있어서(행20:3) 바울은 부득불 다시 마게도냐와 드로아 지역을 돌아 앗소에서 배를 타고 밀레도를 거쳐 비로소 가이사랴에 상륙하게 되었으며(행13장), 예루살렘에 도착한 뒤 바울은 유대인들의 고소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행21:27; 24:27). 그러나 비록 미결수의 몸으로라고는 하지만 바울은 그가 소원하던 서바나 전도까지 하였다고 하여 궁극적으로 그의 전도 계획이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여튼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다른 목회자를 배려하는 목회 윤리의 모범을 보게 된다.
6) 에베소 은장색들의 소요(23-41절)
본문 20절에 이어지는 부분으로 바울이 에베소에서 성공적인 전도 사역을 수행하고 있을 즈음에 발생한 은장색들과의 충돌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소동의 원인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23-27절). 에베소에서는 아데미 셔신에 대한 숭배가 대단하여 길이와 넓이가 각각 120m와 60m나 되는 신전이 있었으며 수많은 순례자가 끊이지 않았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아데미 신상이나 신전의 모형을 제작하여 파는 사업이 번창하였었다. 그런데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우상은 헛된 것이라고 전했기에 복음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 은장색 사업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리하여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이 같은 직종의 사람들을 선동하여 소요를 일으킨 표ㅕㄴ적인 이유는 바울의 복음 전도로 인하여 그들이 섬기는 아데미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바울의 복음 전도로 신상과 신전의 모형을 팔아 부를 얻는 자신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려는 조치였다. 결국 유대인이나 에베소의 은장색들이나 모두 종교를 자신들의 기득원 유지 방편으로 사용한 것이다.
둘째, 소동의 과정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28-34절). 데메드리오의 선동으로 흥분한 은장색들과 군중들은 바울과 같이 다니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연극장으로 끌고갔다. 이에 바울은 동료를 구하려는 마음으로 극장으로 들어가고자 하였지만 바울의 친구들은 그의 안전을 염려하여 만류하게 된다. 한편 여기서 이번 소요의 주동자인 데메드리오는 뒤로 빠졌고 군중 심리로 흥분한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극장 안에 모여 있을 뿐이었다.
셋째, 소동의 진정 국면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35-41절). 에베소의ㅏ 서기장이 지혜로운 말로 소동을 진정시키고 군중을 해산한 것이다. 즉 에베소의 서기장은 이 소요가 불법 사태임을 알면서도 군중들의 자존심과 그들의 종교심에 만족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소동이 합법적이 아님을 이해시켜 군중들의 소란을 진정시킨 것이다.
2, 마게도냐와 헬라 지방에서의 전도(행20:1-3)
3년간의 에베소 사역이 끝이나고 바울이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를 거쳐 헬라 지경으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를 돌아 드로아에 이르기까지의 10개월간의 전도 여행을 압축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바울은 실로 많은 일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가 이처럼 간략하게 압축하여 언급하는 것은 이 여행의 경로가 2차 전도 여행의 경로와 일치 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에베소를 떠난 바울은 여행 도중에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하나는 고린도 교회로부터 들려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하나는 예루살렘 교회에 보낼 구제 헌금을 모금하는 일이었다(롬15:25-27; 고전16:1-4; 고후8:1-9).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하여 디도로 하여금 고린도를 방문케 하고 드로아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드로아에 도착했으나 디도를 만나지 못한 까닭에 드로아에 복음의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부득불 마게도냐로 가게된다. 그리고 그곳 빌립보에서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가져온 디도를 만나(고후7:5-16) 고린도 후서를 기록, 디도로 하여금 재차 고린도를 방문케 하고(고후8:6-18). 그는 마게도냐의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한후(롬15:19)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게 된다(2절). 이때는 이미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된 뒤였다. 이에 바울은 기쁜 마음으로 그곳에서 3개월을 체류하며 복음을 증거함은 물론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담고 있는 로마서를 기록하기도 한다(롬16:23). 그후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로 귀환하려 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를 살해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를 알고 다시 왔던 길을 돌이켜 마게도냐를 거쳐 드로아로 돌아오게 된다(3-6절). 무론 이때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모은 구제헌금을 전달할 일곱 명의 각 교회 대표자들도 함께 동행했다.
이상의 사실에서 보듯 바울은 에베소를 떠날 때 실로 괴로운 심정을 억누룰 수 없었으나 이후 매우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기쁨과 평안을 얻음은 물론 많은 동역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낙심한 성도를 결코 그냥 버려두시지 않으시며 언제나 새로운 능력과 위로를 주신다(요14:18; 16:33; 고후1:3, 4).
3, 고린도에서 드로아(행 20:4-12)
1)헬라 지방에서 드로아까지의 귀환 여정(4-6절)
바울은 본래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를 해하려는 유대인드의 음모가 있자 부득불 에베소에서 고린도에 올 때 왔던 길로 돌이며 다시 마게도냐 지방을 거쳐 드로아로 가게된다. 이때 디모데를 비롯한 몇 사람이 바울과 함께 동행하게 되는데 그들은 마게도냐와 헬라 지방의 교회에서 거둔 구제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할 자들이었다(4절). 바울은 이들을 드로아로 먼저 보내고 자신은 빌립보에서 유월절을 보낸 후 배로 향해하여 닷새 후에 드로아에 이르러 그곳에서 앞서 보낸 헌금 전달자들과 합류하고 일주일을 그곳에서 체류하게된다(5, 6절).
2) 드로아에서의 유두고 소생 사건 (7-12절)
본문은 바울이 드로아에서 머물 때 발생한 사건인 유두고의 죽음과 소생 사건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한 바가 없다(고후2:12, 13). 그러나 복음은 아시아 전역에 급속히 확산되어 바울이 드로아에 도착했을 때는 그곳에도 신자들이 있었다. 이에 바울은 드로아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열심히 말씀을 강론했고, 떠나기 전날인 주일에는 신자들과 떡을 떼며 밤이 늦도록 강론했다(7절). 그런데 이날 밤에 뜻하지 아니한 사건이 발생했다. 즉 신자 중에 유두고라는 청년이 바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로 인해 환기를 위해 열어 놓은 창문에 걸터 앉아 졸다가 추락사를 한 것이다(8, 9절). 시로 유두고의 죽음은 드로아 교회에 큰 시련을 가져다 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바울이 성령의 능력으로 유두고를 다시 소생시킴으로 드로아 교회 성도들은 이 사건을 통해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드로아 교회가 더욱 강성해 질 수있는 계기만 제공한 것이다. 특히 유두고의 소생을 경험한 드로아 교회 성도들은 고난가 핍박 속에서도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가지게 됨으로 능히 인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4,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를 위한 바울의 고별 설교(행20:13-38)
1)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의 여정(3-16절)
바울은 드로아에서 그의 일행을 배를 태워 먼저 보내고 그는해안 도로를 따라 도보로 여행하던 중 앗소에서 일행과 합류하여 승선하게 된다(13, 14절). 드로아에서 앗소까지는 도보로 약40km되는 거리로 바울은 아마도 이 거리를 혼자 여행하는 동안 자신의 사명을 재다짐하고 예루살렘에서 받게 될 위험한 환난에 대비해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신앙인이 어떤 문제를 두고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은 무엇보다도 귀하고 소중하다.
한편 앗소에서 합류한 바울 일행은 미들레네- 기오-사모를 거쳐 밀레도에 이르게 된다(14, 15절). 이곳 밀레도는 바울이 3년 동안 목회했던 에베소와는 메우 가까운 곳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아시아에서는 오래 지체치 않기 위해 에베소에는 들리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바울이 어떻게든 오순절까지는 예루살렘에 당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16절). 즉 바울은 일전에 고린도에서 바로 예루살렘으로가서 유월절을 지키고자 했으나 유대인들의 음모로 비록 오던 길로 되돌아 가는 길을 택했지만(3절) 적어도 오순절에는 예루살렘에 당도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불러 권면함으로써 에베소 교회에 대한 그의 방문을 대신한다(17-38절).
2) 에베소 교회를 위한 바울의 고별 설교(17-38절)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초청하여 고별 설교를 함으로 권면하였는데 본문은 그 고별 설교 애용을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본서에서 이방인과 비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세 차례의 복음에 대한 선포를 하였고(행13:16-41; 14:15-17; 17:22-31) 다섯 번의 변증적인 설교를 강론했지만(22-26장), 이번 설교는 에베소 교회를 대상으로한 독특한 것으로 에베소 교회ㅏ에 대한 바울의 사랑과 관심이 부각되고 있다.
첫째, 에베소에서 행한 사역의 회상이다(18-21절). 바울은 복음의 사명자로서 유대인의 박해 속에서도 모든 노력을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였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떠나 있는 동안에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에 대한 비난을 일삼았을 것이므로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사심 없이 오직 예수님을 증거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 것이다.
둘째,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는 계획을 말한다(22-24절).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환난과 박해가 기다리지만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의 복음을 더 귀히 여겨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고자 하였다. 더욱이 성령님의 증거로 이미 어려움이 있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복음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결심했다는 사실은 주의 사명을 맏은 자가 어떤 헌신과 희생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교훈해 준다.
셋째. 바울 자신과 에베소 교회의 장래를 말해 준다(25-31절).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할 것과 에베소 교회에는 이단이 출현하여 배교의 길로 미혹할 것을 경고하였다. 이런 바울의 간절한 경고와 당부가 있었기에 후에 에베소 교회ㅏ는 사도를 사칭하느 자들과 니골라 당의 이단 사상에 빠지지 않았다는 사도 요한의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계2:1-6).
넷째, 설교의 결론이다(32-35절). 바울은 여기서 교회에 대한 축복의 기원과 함께 약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라고 교회의 사명을 당부한다. 특히 바울은 자신의 신앙 생활을 본받아 약한 자를 돌보라고 권면하는데, 이것은 그의 목회와 전도 생활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칭찬받을 만한 삶이엇음을 확신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즉 바울은 (1) 겸손과 눈물과 인내의 사람이었다(19절). (2) 복음 전파를 하는데 용기와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20-24절). (3) 무흠하고 충성스런 사람이었다(26, 27절). (4) 영적 통찰려과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28-30절). (5)사심이 없고 사랑과 긍휼을 가진 사람이었다(31-35절).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오늘날의ㅏ 목회자들에게 물론 몯ㄴ 성도들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삶을 살아야 할지 지표를 제공한다 할 것이다.
5, 두로 사역(행21:1-6)
두로는 시돈과 함께 유명한 베니게의 오랜 항구 도시이다. 또한 중요한 상업 도시이기도 하였는데, 상업의 번영과 함께 각종 사치와 항락, 우상 숭배의 온상이 되었는 바 늘 선지자들의 책망의 대상이었다(사23:1; 겔26:3; 암1:9; 눅10:13).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마친 후 고스 - 로드 - 바다라를 거쳐서 베니게의 두로에 도착하였고 여기에서 배에 실은 짐을 내리는 동안 일주일을 머물게 된다(1-6절). 바울은 이 기간을 이용해서도 제자들을 찾아 교제를 나누었다. 짧은 기간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성령 안에서 매우 강한 신앙의 유대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5절)에서 느낄수 있다.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4절) 이것은 베드로가 예수의 수난 길을 만류한 것과 유사하다(마16:22) 그런데 바울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려했다.
유대로부터 온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11절)과 같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체포되어 고통을 겪게 되리라는 것을 성령의 감동에 의해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적으로 바울게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권유한 것이지 성령의 지시함에 따라 예루살렘을 중단토록 만류한 것은 아니다.
6, 가이사라 사역(행21:7-14)
바울은 두로를 떠나 돌레마이에서 하루동안 휴식을 취한 뒤 이튼날 돌레마이를 떠나 가이사랴에 도착했고 일곱 집사 중 하나인(행6:5) 빌립 집사의 집에서 약 보름 간 머물다 에루살렘으로 향하였다(7, 8, 15, 16).
한편 누가는 이 여행의 과정을 누가복음에 기록한 예수님의 예루살렘 여행 과정과 비슷한 모습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예수님께서 구속의 때가 차매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결정한 것과 같이(눅9:51) 바울도 이방인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결정하였다는 것과(행19:21), 예수님의 예루살렘입성 과정과 같이 바울의 여행 일정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눅17:11-19:27; 행20:1-21:16) 박해와 환난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예루살렘에 가기를 결심한것 등을 기록하고 있다(13, 14절; 눅18:31-33). 이는 아마도 바울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는 온전한 삶을 살았음을 강조하기 위함인것 같다.
7, 예루살렘 귀환(행21:17-40)
1) 바울의 예루살렘귀환(17-26절)
전3차에 걸친 전도 여행으로 아시아와 유럽에까지 복음을 전파한 바울은(행13:1-21:16) 이제 예루살렘에 방문하여 체포되지만 이를 계기로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이다(행21:17-28:31).
드디어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그의 최후의 방문이 된 다섯번째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먼저 야고보와 장로들을 챀아 이방 선교 활동을 성령의 인도하에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을 보고하고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교회에서 모금한 헌금을 전달하였다(롬15:25-27). 이에 야고보와 장로들은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인식함은 물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바울은 전3차에 걸친 전도 여행과 전도 보고를 통해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 교회 사이에 놓인 민족적, 종교적 차별이 완전히 철폐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예루살렘에 돌아와보니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규례를 지키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하여 바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21절)
하여튼 당장의 문제는 유대인 신자들의 오해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했다. 그래서 바울은 야고보와 장로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그와 그의 동역자들이 유대인의 전통적인 규례인 결례를 행하여 그가 모세의 율법과 유대인의 전통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 주고 유대인 산자들의 오해를 풀기로 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는 바 그것은 진리에 대해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굴복해서는 안되지만, 비록 자신이모든 일에 자유롭다 할지라도 타인의 영혼을 구하는 일이라면 자신이 자유를 억제하는 사랑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롬14:13-23).
2) 바울의 체포(27-36절)
바울은 유대인 신자들의 오해를 시정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 지조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일주일을 기간으로 성전에서 결례를 행했다(26절). 그런데 결례의 기간이 끝나갈 즈음에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무리들을 충동질하여 바울이 이방인 드로비모를 성전의 안뜰에 데리고 들어감으로써 성전을 더럽혔다고 모함하였다(27-29절). 결국 바울은 훙분한 유대인들에 의해 성전 밖으로 끌려나가 몰매를 맞으며 죽음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30, 31절). 이때에 백성들의 소요를 들은 천부장이 달려와 바울을 체포함으로써 바울은 다행히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32-36절). 이로써 바울은 5년간의 옥중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본문 이후의 기사는 바울이 미결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기까지 모두 그의 옥중 생활과 관련된 내용이다. 한편 여기서 보듯이 바울은 로마 병사들에 의해 소요죄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바울이 체포된 근본 원인은 유대교와 기독교간의 갈등이다.
바울은 이처럼 사악한 자들의 궤계 때문에 옥에 같히는 신세가 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이를 바울이 로마에 가게 되는 계기로 만드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복음은 사악한 자들의 어떠한 방해와 훼방에도 불구하고 전파되고 급기야는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됨으로 주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시게 되는 것이다(마24:14).
3) 변론을 요구하는 바울(37-40절)
로마 군인들에 의해 체포된 직후 바울이 천부장에게 변론을 요청하여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게 되는 장면이다.
바울은 그의 입장을 변호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천부장에게 헬라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바울을 처음에는 A.D.54년경 민란을 꾀하다 사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광야로 잠적해 버린 애굽인으로 오해하게 된다(38절). 그러나 바울의 해명을 들은 천부장은 그가 학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임을 깨닫고 즉시 바울이 변론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39, 40절). 이로써 바울은 다음 장에서 긴 변론을 시작하게 된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이런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루살렘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로마 전도를 마치기까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가 있을 것을 믿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이제 체포를 당해서도 그는 그 사실을 확신했던 까닭에 조금도 굴함이 없이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복음 전도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확신할 때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마28:20; 요16:33; 엡6:19).
4) 유대 군중 앞에서 행한 바울의 변론(행22: 1- 30)
바울은 변론을 시작하면서 우대인들의 호응을 얻기 위하여 자신과의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하였다(1-4절), 즉 (1) 유대인들에게 친숙한 히브리 방언으로 증거하였으며(2절), (2) 또 자신에 대해 소개하면서는 자기도 유대인의 혈통에서 태어난 자이고 어려서부터 정통 유대교에서 교육받은 자임을 확인시킨다(3절). (3) 그리고 자신이 유대교에 대한 열심으로 인해 복음을 핍박하던 자임을 강조한다(4절).
이어 바울은 이렇게 유대교에 철저했던 자신이 변화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였다. 첫째는 다메섹 도상이 체험에 대한 증거이다(5-11절).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서 변회했다는 극적인 반전을 간증하여 자신의 영적 변화를 더욱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둘때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던 체험을 간증한다(12-21절). 바울은 여기서 이방인 선교에 대한 사명이 자신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이루어졌음을 역설한다.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바울의 말에 경청하는 듯 했으나 완악했던 유대인들은 다시 소동을 일으키게된다(22, 23절). 즉 유대인들은 민족적 편견과 선민 의식에 찌든 편협한 신앙 때문에 이방인도 하나님을 그들과 동등하게 믿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바울의 변론을 신성 모독과 유대 민족에 모욕으로 생각하여 바울을 죽이자고 부르짖은 것이다. 이에 히브리 방언으 ㄹ모르므로 무리들이 소동을 일으킨 자초지종을 알 수 없었던 로마의 천부장 루시아는 유대 군중을 인단 무마하는 동시에 사태의 실상을 알고자하여 바울을 채찍질 하고자 하였다(24절0> 그러나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임을 내세워 채찍 맞을 이기를 모면하고(25-29절) 이튼날 산헤드린 공회에서 정식으로 자신을 변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게 된 것이다(30절).
5) 바울의 변론으로 인한 공회의 분열과 바울 살해 음모 및 바울의 가이사랴 호송(23장)
(1) 대제사장과 관련된 변호(1-5)
(2) 부활에 대한 논쟁의 두 그룹과 천부장과 로마 군대 간여와 위로 (6-11)
(3)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의 40명의ㅏ 특공대화 천부장을 통한 하나님의 보호(12-35)
6) 바울은 율법 모독자로 고소하는 더둘로의 논고와 바울의 변론 및 벨릭스 총독의 선고 연기와 새 총독 베스도의 취임(24장)
(1)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어떤 장로들이 변호사 더들로를 세워 바울을 고소함(1-9)
(2) 바울의 변론<변증들> (10-21)
(3)총독 벨릭스의 직무 태만(22-27)
7) 신임 총독 베스도 앞에서의 유대인들의 고소와 바울의 변론 및 헤롯 아그립바의 등장(25장)
(1) 베스도가 벨릭스의 후임으로 예루살렘에 옴(1)
(2) 유대인들의 음모와 베스도의 재판(2-12)
(3) 아그립바 왕이 재판석에 앉음(23-27)
8)바울이 헤롯 아그립바 앞에서 행한 복음과 선교 사역에 대한 변론과 바울의 무죄 판정 및 로마 압송 결정(26장).
(1) 바울의 자기 고백(1-17)
a, 바울의 겸허한 자기 고백(1-3)
b, 과거의 바리새인으로서의 자기 고백(4-5)
c. 현재 복음전도자로서의ㅏ 자기고백(6-7)
(2) 바울의 자기 간증(8-25)
a, 바울을 개종시킨 부활의 그리스도(8-9)
b, 바울은 그의 어리석었던 과거를 고백하고 있습니다(9-12)
c, 바울 사도의 다메섹의 회심 사건(13-15)
d, 바울의 새 인생과 새 사명(16-18)
e, 바울의 복음 전파의 방법(19-23)
9) 바울의 로마 여행 개시와 가이사랴에서 미항까지의 여정 및 유라굴로 광풍 전, 후 사건(27장)
(1) 이탈리아행 출항<가이사랴 - 미항> (1-8)
(2) 풍랑을 만난 바울의 일행(9-20)
(3) 풍랑 중에 위로와 소망을 줌(21-26)
(4) 풍랑 속에서 구원을 받음(27-44)
10) 바울의 멜리데 섬 체류 기간 중의 이적들과 멜리데에서 로마까지의 여정 및 바울의 2년간의 로마 사역 요약(28장)
4차 로마전도(28장)
1) 로마사역(28장)
(1) 멜리데 섬에서의 바울(28:1-10)
(2) 멜리데 섬에서 로마(28:11-15)
(3) 로마에서의 바울(28:16-29)
(4) 바울의 말년과 복음전파(28:30-31)
[출처] 사도활동 시대 : 1, 사도행전 시대 2, 서신서 시대|작성자 모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