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는 안식일을 지켰는가?(1)
2004.08.16. 12:53 |
안증회와 안식교는 초대교회에서는 안식일을 지켰는데, 콘스탄틴황제 이후부터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게 되었다고 주장을 한다. 안증회는 거짓말만 하는 집단이다. 과연 그럴까?
안식일은 예배를 드리는 날이 아니다. 안식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는 날이다.
성경은 여종과 남종, 손님과 육축까지 쉬라고 말하고 있다.
안식일은 쉬는 날이었으므로 예배를 드리기가 어려웠다. 그 날은 짐도 들 수 없었고 먼 길을 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에 예배를 드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초대교회 문헌과 역사를 통하여 초대교회 교인들이 언제 예배를 드렸는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2000년 전의 역사이므로, 아무도 초대교회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역사에 대해서는 기록된 문헌이 일부 남아 있음으로 인하여, 그 문헌을 참고할 수 있다. 그 문서를 보면 안증회나 안식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1) 이그나시우스의 편지
이그나시우스는 안디옥의 감독이었으며 속사도 교부로 불려졌다.
그는 죽음에 임박하여 각 교회에 7개의 서신을 보내었다. 그는 트라쟌 황제 통치시기인 AD98-117년 사이에 순교를 당하였다.
그 중에서 “마그네시아인들에게”( To the magnsians) 이라는 서신을 보면 다음과 같다.
“잘못된 가르침이나 오래된 이야기로 인해 미혹을 당하지 않도록 하십시요. 우리가 아직 유대주의의 관심을 계속 지킨다면 우리가 은혜를 받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옛 관심에 따라 살던 사람들이 이제는 새로운 소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님의 날에 의해 살게 되었습니다. 그 날에 그들의 생명과 우리의 생명이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나쁜 누룩을 피하십시요.....” (The Christianity of Ignatius of Antioch, 1935, 5page: 초대교회의 형성, 성광문화사 66쪽))
어느 안증회와 안식교는 이 글에 대해서 “주님의 날”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주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비판을 한다.
그렇다면 “이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라는 구절이 무엇을 뜻하는가? 라고 물으면 침묵하고 있다.
이들은 이그나시우스의 서신의 위작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변명을 하는데, 위작으로 의심되는 본문을 예로 들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원문에서는 Lord's day가 아니라 "Lord's"라고 하는 형용사만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인데, 앞의 본문이 "안식일"이라고 되어있으므로, 뒤에서는 day가 생략되어질 수 있다.
그들의 궁색한 변명을 백번 양보하여도, 문제는 주님의 날이 계시록의 주의 날과 같은가? 주님의 날이 일요일을 말하는가가 아니다.
“이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시 말하여 "주의 날"은 "안식일"과 다른 날이라는 것을 누구든지 알 수 있다. 속사도라고 불리는 1세기의 초대교회 감독이 “안식일을 지키지 말자”고 말하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주님의 날이 어떤 날인지 다른 문헌을 통하여 살펴 보면 그대로 밝혀진다.
(2) 12사도의 교훈
12사도의 교훈은 그 유명한 “디다케”라고 불려지는 것이다. 그것은 속사도들의 작품이며, 1세기 말 혹은 2세기 초에 수리아 지방의 초대교회의 교리문답과 교회규범을 한데 묶어 놓은 문서로서 초대교회를 연구하는 귀중한 문헌이 되고 있다.
“주의 날은 특별한 날이므로 주의 날마다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감사를 돌릴 것입니다. 먼저 죄를 고백함으로서 제사를 깨끗하게 드려야 합니다. 이웃과 불의한 사람은 화목할 때까지 여기에 참석하지 말 것입니다.”(기독교 고전전집 1권, 초기기독교교부 171-179, 초대교회의 형성, 성광문화사 77-78쪽)
이미 이그나시우스의 서신에서 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주의 날을 지키자는 내용이 있음을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그 주의 날에 함께 모여 떡을 뗀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그 주의 날은 분명히 안식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떡을 떼는 일이 유월절에 국한 되었던 것도 아니었다. 또 다른 문헌을 살펴보자.
(3) 바나바의 편지
주후 70-13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 바나바의 서신은 반유대주의적 입장을 말하는 내용이다.. 그 편지 15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 히브리서의 내용과 같이 안식일을 종말적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때에 가서야만 우리는 참으로 쉴 수 있고,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다. 의롭다함을 받은 후에 그리고 약속을 받은 후에만 참으로 안식할 수 있다. 여덟째 날은 새로운 세계의 시작인 바 천년왕국의 안식 후에 마지막 영광을 바라본다.”(바나바서신 15장)
안식일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있으며, 또 여덟째 날을 언급하고 있다.
여덟째 날이 첫 번째 날과 같은 요일이라는 사실은 말할 필요가 없다.
(4) 순교자 저스틴
“이 음식을 성찬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성찬을 아무나 취할 수 없고, 오직 우리가 가르치는 것이 참되다고 믿는 사람들..... 거룩하게 된 그 음식물은 바로 성육하신 예수님의 살이요, 피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예식 후에 우리는 항상 이와 같은 것들을 서로 기억하도록 합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은 부족한 사람들을 돕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모입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을 인하여 우리는 인류의 주께 그의 아들 에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하여 송축을 올립니다. 그리고 일요일이라고 부르는 날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나 시골에 사는 사람이나 한 곳에 모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글이나 선지자들의 글을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오래 읽습니다. 독경자가 읽기를 마칠 때에 사회자는 강론을 통해서 그 고상한 교훈들을 모방하도록 권면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모두 함께 일어서서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이미 위에서 말한대로 기도가 끝나면 빵과 물탄 술을 가져오고, 그리고 사회자가 높이 들고 그 거룩해진 음식물을 나누어 주어 모두 받게하고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집사들이 가져다 줍니다.....” (쇼트웰의 순교자저스틴의 성서강해, L.C.C. 66절 286page, 저스틴의 제1변증서)
저스틴은 아예 “일요일이라고 부르는 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일요일에 “빵과 물탄 술”을 나누었다는 기록도 있다.
혹시 안증회는 이러한 역사와 년륜이 오래된 문헌적인 증거들이 19-20세기의 안식교나 21세기의 안증회의 교리를 대비하기 위하여 조작된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지 않으리라고 본다.
(5) 제롬
제롬도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이교도들이 이 날을 태양의 날이라고 부른다면, 우리도 그 호칭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세상의 빛이 나타나시고 공의의 아들이 다시 살아나신 날이 바로 이 날이기 때문이다.”(Jerome, In die dominica Paschae Homilia, CCL 78. 성경의 27가지 미스테리, 생명의 말씀사, 261쪽)
(6) 이레니우스의 주해서
초대교회의 어느 교부는 이레니우스의 저술에 대해서 주해서를 썼는데, 그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일요일 에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일요일에는 무릎을 꿇지 않는 관습은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다. 부활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하게 되었다. 리웅의 감독인 순교자 이레니우스가 부활절에 관해라는 논문에서 밝혔듯이, 이 관습은 사도 시대부터 생겼다. 여기서 그는 오순절에도 무릎을 꿇지 않았던 사실을 언급한다. 오순절에는 주의 날과 같은 의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Iranaeus, Fragments from Lost Writtings of Irenaeus-Ante-Nicene Fathers)
(7) 일요일 휴업령
콘스탄틴황제가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라고 하였는가?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콘스탄틴황제는 321년 일요일을 휴일로 하는 칙령을 내렸을 뿐이며,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꾸지 않았다. 문헌을 살펴보면, 초대교회는 이미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황제는 그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에 쉬어야 한다. 그러나 시골 사람들은 방해받지 않고 농사일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종 이 날은 씨를 뿌리고 추수하기에 가장 알맞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주어진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적절한 계절은 짧기 때문이다. 주후 321년 3월 7일"(생명의말씀사, 교회사 핸드북 144쪽).
"콘스탄틴 치하에서 기독교의 공인은 몇 가지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콘스탄틴은 일요일이 로마의 다른 공휴일과 비슷한 공휴일이 되도록 칙령을 내렸다. 이로써 예배는 폭넓게 발전할 수 있었고 교회에는 더 많은 회중이 모일 수 있었다"(생명의말씀사, 교회사핸드북 144쪽).
그리고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386년에 일요일 휴식령을 강화시켰다.
“우리 선조들이 주일이라고 옳게 불렀던 일요일에는 모든 기소와 소송에 관한 처리와 업무를 일체 중지할 것이다. (이 날에는) 아무도 빛을 갚으라고 요구하지 못할 것이다..... 누구나 거룩한 종교의 영감이나 의식에서부터 떠나는 자는 신성을 모독하는 파렴치한 자로 여길 것이다”(Codex Theodosius 8권, In Creeds, Councils, and Controversies, ed J. Stevenson. 157page)
“존귀한 태양의 날에는 관리들과 일반시민들로 하여금 안식을 취하게 하고, 모든 일터들도 문을 닫게 하라”(Constantine, 321년 3월7일, Codex Justinianus lib 3, tit. 12, 3. Philip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3, 380)
“이 칙령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일요일을 새로운 예배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 칙령은 일요일 휴무법의 초기사례를 보여주는 것뿐이며 일요일을 휴무일로 채택하고자 했던 기독교국가들의 법률과 유사하다. 예배일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시킨다는 언급은 전혀 없다. 수백만의 로마 그리스도인이 초기기독교 시대부터 한 주간의 첫째날인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점을 참작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일요일 휴무법을 만들었을 뿐이다.”(성경의 27가지 미스테리, 생명의 말씀사, 258쪽)
물론 콘스탄틴황제라는 개인에 대해서는 그가 완전한 기독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는 이방신도 숭배하고 기독교도 공인하는 혼합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로 인하여 기독교가 공인되었다는 점에서 하나님은 콘스탄틴을 도구로 사용하셨음은 분명하다.
“321년 교회들에게 유산을 물려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였고, 그로써 합법적인 법인 자격을 부여하였다. 태양의 날(일요일)이자, 기독교의 첫날을 휴일로 정하고 그 날은 노동을 금하는 법령을 제정하였다.”(기독교회사,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49-150쪽)
그러나 콘스탄틴이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꾸어 예배일을 변경시킨 것은 결코 아니다.
콘스탄틴황제는 교회에게 각종 혜택을 주었고, 그 혜택의 일부로서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여 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교회가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기독교의 예배일인 주일은 기독교회의 초기부터 성수되었다. 그것은 안식일(주간의 일곱째 날)을 지키는 유대교로부터의 이탈이었다. 한 주간의 첫날로 옮긴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마다 상기하기 위해서였다. 4세기초 콘스탄틴의 시대까지는 주일(일요일)이 공휴일로 지켜지지 못했다. 그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의 이른 아침이나 늦은 시간에 예배모임을 가졌다"(생명의 말씀사, 라이온사, 교회사 핸드북 9쪽).
초대교회가 안식일을 지켰는가(2) |
2006.09.20. |
서방에서는 콘스탄틴황제가 물비안다리에서 그리스도의 성호표시를 꿈에 보면서, 막센티우스를 이기고 서방의 황제가 됩니다. 그리고 동방에서는 리키니우스가 막시미누스를 이기고 동방의 황제가 되어집니다.
313년에 콘스탄틴과 리키니우스는 서로 만나 콘스탄틴의 요청에 의하여 소위 기독교를 관대하게 대하자고 하는 밀라노칙령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 서방지역은 기독교에게 많은 혜택을 주게 되지만, 그러나 리키니우스는 이교사상을 갖고 있던 자로서 교회에게 많은 특권을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그후 리키니우스의 불이행과 긴장고조가 지속되어지자, 324년에 콘스탄틴은 리키니우스를 침공하여 동서방을 모두 다스리는 유일한 지배자가 됩니다. 일요일 휴업령은 동서방을 모두 정복하기 몇년 전에 콘스탄틴황제가 321년에 발표합니다. 물론 동방지역에서 리키니우스는 그것을 이행하지 않았음이 명백합니다. (생명의 말씀사, 윌리스턴 워커의 기독교회사 145, 149 페이지를 참고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여 동방에서는 안식일을 지켰다는 안증회의 주장은 완전히 코메디 수준입니다. 동방지역도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에 에배를 드렸음이 분명하며, 다만 서방지역과 달리 일요일 휴업령이 발표되지 않았으므로 일요일에 휴업하는 것을 지키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안식일에 쉬었지요.
서방에서도 유대인들은 당연히 안식일을 토요일에 지켰습니다.
안증회는 마치 동방에서는 안식일에 예배를 드린 것처럼 거짓조작을 하고 있습니다. 동방에서는 서방지역과 달리 일요일 휴업령이 미치지 않았으므로 안식일에 쉬었던 것뿐입니다.
안증회,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1-2세기의 초대교회에서 안식일에 예배를 드렸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4세기(324년)에 콘스탄틴황제 때에 일요일 휴업령을 통하여 안식일 예배가 일요일 예배로 변경되었다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올렸던 교회사 자료와 같이 1-2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예배를 드렸다는 문헌적인 증거가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안증회교인들이 스스로 많은 교회사를 찾아보고 읽어보면 그 실제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안증회는 보편적인 교회사를 절대 인용하지 않습니다. 혹시 다른 문헌에 혹시 달리 기록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도록 기록된 것이 없는가를 찾을 뿐입니다. 그 사실적인 교회사를 거짓으로 조작하고 은폐시키기 위하여 모든 문장이 아니라 부분적인 문장으로만 인용하고 있으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내용만을 선택하여 인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유대교에서 개종한 혼합적 율법주의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에 예배를 지키는 경우는 있었습니다.
어떤 이단들은 안식일과 일요일에 동시에 예배를 드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혼합율법주의는 초대교회의 사도들에게 이단이라고 불려졌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이미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문헌적인 증거는 안증회의 주장을 거짓말로 만드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입니다.
- 역사적 증거에 의하면 1세기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토요일 안식일에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이는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모세오경에서 권위를 부여한 관습을 중단하라고 유대인들에게 지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유대인 신자들 중에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부활 날인 일요일의 예배에 참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다시 말해서,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에 걸쳐 예배드리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많았다. 여러 교회 저술가들은 유대교의 안식일과 그리스도인의 주일 간의 차이점에 주목했다. 초기교회의 저술가인 테오도레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던 에비온파라는 이단적인 그리스도 집단에 관해 썼다. “그들은 유대교 율법에 따라 안식일을 지키며 또한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주일을 지킨다”.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의 토요일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일이자 오순절날인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다. (성경의 27가지 미스테리, 생명의 말씀사, 262쪽)
"최초의 유대인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안식일에 회당에 출석했다."(IVP 성경신학사전 855쪽)
- AD 321년에 공표된 콘스탄티누스황제의 칙령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존귀한 태양의 날에는 관리들과 일반 시민들로 하여금 안식을 취하게 하고 모든 일터들도 문을 닫게 하라” 이 칙령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일요일을 새로운 예배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 칙령은 “일요일휴무법”의 초기사례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며, 일요일을 휴무일로 채택하고자 했던 기독교 국가들의 법률과 유사하다. 예배일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시킨다는 언급은 전혀 없다. 수백만의 로마 그리스도인들이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한 주간의 첫째 날인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점을 참작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일요일 휴무법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부활이후부터 일요일 예배를 드렸음을 나타내는 역사적, 성경적인 증거는 확연하다. 만일 로마황제의 독단적인 칙령으로 교회의 예배일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꾸려 했다면 수백만 그리스도인들이 반발하며 강렬하게 저항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가 발생했다거나 그처럼 독단적인 칙령에 대한 반발이 일어았다고 하는 역사적인 증거는 전혀 없다. 만일 누군가가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일을 독단적으로 바꾸려 한다면, 열띤 논쟁이나 저항사건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 마련일 것이다.(성경의 27가지 미스테리, 생명의 말씀사. 258-259쪽)
- 321년 교회들에게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였고, 그로써 합법적인 법인자격을 부여하였다. 태양의 날(일요일)이자 기독교의 '첫날'을 주간 휴일로 정하고 그 날은 노동을 금하는 법령을 제정하였다. (기독교회사 149쪽, 생명의 말씀사)
1-2세기부터 주일은 예배를 위한 날이었으며, 그 주일이 쉬게된 공휴일 제도가 콘스탄틴황제부터 였습니다.
"안식일은 예배를 위한 날이기보다는 안식을 위한 날이었으며, 주일은 예배를 위한 날이 되었으나, 처음부터 안식의 날은 아니었다"(IVP성경신학사전 855쪽)
안식일은 예배를 드리는 날이 아니었다.
다만 예루살렘지역과 같은 동방지역에서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도 예배를 드렸고, 안식일에도 예배를 드렸다. 그것이 점차적으로 주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 변경된 시기는 안증회가 주장하듯이 콘스탄틴황제의 일요일 후업령이 있는 후가 아니라, 주후 1-2세기부터 이었던 것이다.
"오순절의 성령강림이 있은 이후 예루살렘에서는 베드로의 설교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구주로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급속히 성장하게 되었다. 처음에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모임을 가졌다. 제자들은 이레중 첫날 즉 일요일을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라고 하여 그날에 모임을 가져 예배하였다. 그들은 유대인의 관습대로 안식일에도 모임을 가졌으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날이 감에 따라 안식일에 모이는 것을 폐지하고 주일에 예배하는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럼으로서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유대교와 차별화하였다.(기독교교회사 46쪽, 김영재, 이레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