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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MgvjZNC5z1U
날짜 2024-01-03
본문말씀 골로새서 1:1~12(신약 324면)
설교자 정보배목사
주제어 골로새서,개요,수신자,발신자,기록목적,에바브라,격려,문제해결,영지주의,유대율법주의,금욕주의,에베소서,그리스도론,비밀,하나님의비밀,그리스도의비밀

2024-01-03(수) 수요기도회

제목: [골로새서강해(01)] 골로새서, 과연 어떤 책인가?(골1:1~1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MgvjZNC5z1U [또는 https://tv.naver.com/v/45422967]

 

1. 들어가며

  골로새서, 과연 어떤 책인가?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쓴 13권의 신약성경 가운데 한 권의 편지다. 이 책은 사도 바울이 A.D.62~63년경 로마 감옥에 있을 때에 썼던 4권의 성경책들 곧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의 책들 중의 하나다. 그런데 바울이 썼던 13권의 편지 가운데는 교회에게 보낸 편지가 9권이며, 목회자 개인에게 보낸 편지가 또한 4권이다. 그런데 이들 9권의 교회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바울이 개척하지 않았던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는 로마 교회와 골로새 교회다. 그렇다면 바울은 자신이 개척하지도 않았던 골로새 교회에게 왜 이 편지를 써야 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 편지의 중심 내용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편지는 에베소서와 상당히 유사하여 에베소서의 축소판처럼 느껴지는데, 어떻게 되어서 에베소서와 비슷한 편지가 쓰여졌던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편지는 에베소서와 근본적인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오늘은 골로새서 강해 각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골로새서에 관련된 전반적인 사항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2. 골로새서는 누가 누구에게 언제 썼던 책인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인 바울은 자신의 형제인 디모데와 함께 골로새에 있는 거룩한 이들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실한 형제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골1:1~2). 그러므로 어쩌면 바울과 디모데가 함께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편지는 바울  자신이 혼자 썼다는 사실을 이내 밝힌다. 왜냐하면 이 편지의 인삿말(골1:1~12)을 보면, 주어가 1인칭 복수('우리')로 나오기는 하지만,  인삿말이 끝나자마자 주어를 1인칭 단수('나')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편지의 말미에 가서도 바울은 '나 자신이 친필로 문안한다'고 기록함으로써 이 편지를 바울이 직접 쓰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골4:18). 그러므로 이 편지는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게 보낸 편지임에 틀림 없다. 

  그럼, 바울은 지금 언제 어디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었는가? 그것은 그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조카인 마가와 함께 갇혀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골4:10), 또한 자신은 당시에 결박당한 채 있다고도 말했던 것이다(골4:18). 그리고 당시 자신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고 있다고도 언급을 하였다(골1:24). 왜냐하면 당시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힌 채 고난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장소는 로마 감옥인 것으로 추정되며, 그 시기도 학자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대략 A.D.62~63년경에 이 편지를 썼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3. 에바브라와 바울은 대체 어떤 일로 아는 사이가 되었는가?

  골로새 교회는 사실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아니었다. 그 교회는 에바브라가 개척한 교회였기 때문이다(골1:7~8, 4:12). 그런데 에바브라는 그때 골로새 교회만 개척했던 것이 아니라, 지리적으로 아주 가까이 있는 다른 두 도시들 곧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 지역 교회의 설립에도 많이 관여하였었다(골4:12~16). 그가 다른 두 교회들을 시간적인 간격을 둔 채 개척했는지, 아니면 두 교회가 개척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가 골로새 교회를 개척한 것이고, 다른 두 개 교회가 세워지는 일에 많이 수고했다는 것이다(골4:12). 

  그럼, 에바브라는 어떻게 되어서 골로새 교회를 개척했던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바울이 3차전도여행(A.D.53~58) 여행 중 에베소에 머물고 있으면서 3년간 신학교를 운영한 적이 있는데, 그때 두란노 서원에서 공부했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때 에바브라는 에베소에서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은 후 회심하였고 또한 자신의 고향인 골로새로 가서 가정을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했던 것이다(골4:15, 몬1:2). 한 마디로 에바브라는 바울의 제자이자 바울로부터 파송받아 교회를 세운 동료 종이었던던 것이다. 

 

4. 바울은 자신이 개척하지도 않은 골로새 교회에 왜 이 편지를 써야 했는가?

  그렇다면 왜 바울은 자신이 개척하지도 않은 교회에게 정말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이 편지를 썼던 것일까? 그것은 에바브라가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을 찾아와서 자신과 골로새 교회의 근황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골1:7~8). 이는 바울이 에바브라를 자신의 동료 종(골1:7)이자 예수의 종(골4:12)이라고 일컫는 부분에서도 그 힌트를 찾을 수가 있다.

  그럼 왜 바울은 이 편지를 써서 두기고를 통해 골로새 교회에 보냈는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자신에게서 복음을 들었던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를 개척했는데, 그 교회가 잘 자라서 당시에도 열매맺고 있다는 소식을 에바브라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골1:7~8). 영적으로 본다면, 자기의 아들이 나가서 교회를 개척했고 그 교회를 성공적으로 성장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마디로 매우 기뻤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격려해주려고 이 편지를 쓴 것이다. 둘째는 그러나 그 교회에 몇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에바브라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골2:8~23). 그래서 그 문제들을 해결해주려고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5. 당시 골로새 교회는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었는가?

  에바브라가 개척했언 골로새 교회는 당시에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그러므로 그 문제를 상의하고자 에바브라가 로마로 달려간 것이다. 그때 에바브라고 전해준 골로새 교회의 상황은 교회가 3가지의 위험에 직면에 있었다는 것이다. 

  첫째, 골로새 교회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미혹받고 있었기 때문이다(골2:8).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으로서, 이것이 교회 내에 침투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세상의 철학사조가 교회 안에 침투해서 들어왔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시 지혜 사상으로서, 이것은 3세기가 되면 초기 교회를 흔들어놓을 만큼 큰 영향을 미쳤던 영지주의의 발아형태였다. 왜냐하면 당시 이러한 사상은 누구든지 영지(영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으면 그는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기에 육체적으로 어떤 죄를 지어도 그것이 자신의 영혼과 구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야말로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의 창고라고 언급을 하면서(골2:3),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온 에온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그분 자신이 곧 하나님, 다시 말해 하나님의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 분이라고 알려주었던 것이다(골2:9~10).

  둘째, 골로새 교회가 유대주의적 율법론적 구원관에 미혹받고 있었기 때문이다(골2:16). 그것은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만 믿어서는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록 자신이 이방인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누구든지 유대인들처럼 할례도 받아야 하고 안식일도 지켜야 하며 음식도 가려서 먹는 등 정결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골로새 교회에 침투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먹고 마시는 것을 구별해야 하고, 안식일을 비롯하여 절기나 초하루가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율법 가운데 의식법들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사도행전 10장에 의하면, 그리스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후에는 더이상 필요가 없어져서 폐해진 것들이다. 그런데 원래 하나님을 믿었던 유대인들이 와서 그러한 이야기를 하니 골로새 교인들도 흔들린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법들은 장래에 나타날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었는데(골2:17), 그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를 하고 있으니 흔들릴만도 하다.

  셋째, 골로새 교회가 세상의 초등학문인 금욕주의나 천사숭배 사상에 의해 미혹받고 있었기 때문이다(골2:20~21,18). 골로새 교회를 흔들어놓은 세 번째는 바로 금욕주의와 천사숭배 사상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것이든지 붙잡아서도 아니되고, 맛보아서도 아니되며, 만져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육체를 철저히 복종시켜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것을 금해야 한다는 사상이었다. 이름하여 '금욕주의'가 교회에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못입고 못먹고 가난하게 사는 것이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미덕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이러한 사상은 몸을 괴롭게 하는 데에는 지혜있는 모양이나 실제로 육체의 본성을 이기는 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골2:23).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혼란을 겪고 있는 3가지 당면한 문제를 바르게 교정해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이 편지를 써서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6. 골로새서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바울이 썼던 편지들을 살펴보면 주로 교리편이 앞부분에 배치되고 생활편이 뒤에 배치가 된다. 예를 들어서 로마서를 보면, 교리편은 1~11장에 배치되어 있고, 생활편은 13~16장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에베소서의 경우, 교리편은 1~3장에 나오지만, 생활편은 4~6장에 나오고 있다. 마찬가지로 골로새서도 교리편이 1~2장에 먼저 나오고 있으며, 생활편은 나중에 3~4장에 나온다. 특히 골로새서의 경우 그 내용을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신성과 우월성을 제시를 통한 이단사상을 경계하는 부분이 앞에 나오고(1~2장), 성도의 거룩한 삶을 권면하는 부분이 뒤에 나온다(3~4장).

  그리고 내용적으로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한다면, 골로새서는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먼저는 서론 부분으로서 1:1~12에서는 골로새서의 송수신자와 중보기도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본론부분으로서 2:1~23에서는 그리스도의 탁월성 및 이단에 대한 경계의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3:1~4:6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권면하는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론부분으로서 4:7~18에서는 개인적인 권고와 문안인사 그리고 끝인사가 나온다. 

  그리고 서론부분인 1:1~12의 부분은 일종의 도입부로서, 가장 먼저는 발신자와 수신자의 표기 및 축도가 나오고(1~2절), 이어서 복음에 근거한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 대한 감사가 나오고(3~6절), 고로새 교회의 개척자인 에바브라에 대한 칭찬이 나오며*7~8절), 마지막으로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가 나온다(9~12절).

 

7.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는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왜냐하면 그 구조에 있어서 그리고 내용에 있어서 거의 동일하게 편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골로새서의 본문이 에베소서의 본문보다 더 짧다. 그 이유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 두 서신은 A.D.62~63년경 바울이 로마 감옥에 1차에 갇혀 있을 때에 쓴 것들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에베소서를 먼저 쓰고 골로새서를 나중에 쓸 수도 있다. 에베소라는 도시는 대도시이고 골로새라는 도시는 시골의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에베소서를 더 많은 분량으로 기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골로새서를 먼저 쓰고 좀 더 확대해서 에베소서를 쓸 수도 있다. 보통 복음서의 기록이 이러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는 어떤 구조와 내용에서 닮아 있는가? 첫째로 구조가 똑같다. 이는 둘 다 교리편이 나오고, 또한 생활편이 나중에 나오기 때문이다. 둘째로, 내용도 매우 유사하다. 에베소서나 골로새서가 그 내용에 있어서 비슷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가장 먼저 구속 곧 죄사함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고, 하늘의 천사들의 계급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과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옛 사람과 새 사람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생활윤리로서 아내들과 남편들, 자녀들과 아비들, 종들과 자녀들에 대해서 권면을 둘 다 똑같은 순서대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것은 첫째로, 조금 전에도 언급했지만 골로새서의 본문이 에베소서의 본문보다 짧다는 것이다. 둘째로, 둘 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에베소서는 교회론을 부각시키고 있다면, 골로새서는 그리스도론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에베소서에서는 교회를 다음과 같은 7가지 항목으로 묘사한다. 그리스도의 몸(엡1:23), 단체적인 새 사람(엡2:15), 하늘나라의 시민(엠3:19), 하나님의 가족(엡2:19), 성전 곧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엡2:21),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아내(엡5:25,32), 영적 전사(엡6:12)가 그것이다.

  그리고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에 대해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그분을 높이고 있다. 구속자(골1:14),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골1:15),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프로토토코스)(골1:15), 창조주(골1:16), 만물보다 먼저 계신 이(골1:17), 몸인 교회의 머리(골1:18), 시작이자 근본(골1:18),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신 이(프로토토코스)(골1:18), 만물의 으뜸(골1:18), 아버지의 충만(골1:19), 영광의 소망(골1:27), 하나님의 비밀(골2:2),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의 창고(골2:3), 주와 그리스도(골2:6, 3:24),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 분(골2:9),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골2:20), 이긴 자(골2:15), 온 몸의 머리(골2:19),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이(골3:1), 생명(골3:4), 만유(골3:11), 만유 안에 계신 이(골3:11). 실로 놀랍지 아니한가?

 

8. 골로새서의 주제는 무엇이며,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의 비밀과 그리스도의 비밀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골로새서의 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우월성을 제시를 통한 이단 사상의 경계와 성도의 거룩한 삶'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한 마디로 '탁월하신 그리스도'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이나 요한계시록을 제외하고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렇게까지 많은 것들을 제시한 신약성경이 없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에바브라로부터 골로새 교회의 상황을 들으면서, 철학과 헛된 속임수와 유대교적 율법주의과 천사숭배 및 금욕주의가 어떻게 잘못되었고 이것들보다도 더 뛰어나신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골로새서를 읽을 때에 주의해야 할 것은 '비밀'이라는 단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소개하고 있고, '교회'를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체현으로서 사람 속에 들어와 계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려주시려고 생명주는 영이 되어서 사람 속에 들어와 계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체현이듯이 교회 또한 그리스도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즉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의 각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9. 나오며

  골로새서는 짧지만 참으로 귀한 책이다. 이 짧은 책에서 이렇게 많은 영적인 사실들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 먼저 신기하고 또한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이렇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그리고 위대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기만 하다. 그렇다. 그리스도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이다(골3:11). 그리고 그리스도는 몸된 교회의 머리이시며, 만물의 머리이시자, 모든 천사들의 머리이시다. 그분이 모든 만물 안에 계시면서 만물을 통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붙잡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들을 체험할 수 있으며, 이단사상에도 빠지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에게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껏 모형과 그림자 속에서만 살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경륜이 실로 어떠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으로 인하여 지금도 우리는 보좌와 주권, 통치와 권세를 쥐고 있는 모든 악한 영들(귀신들)마저 이길 수가 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그들을 무장해제시키셨기 때문이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로 오신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자. "아멘, 주 예수여, 영원히 찬양받으소서!" 아멘. 

 

 

2023년 01월 03일(수)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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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4.01.09 10:51

    1. 들어가며

      골로새서, 과연 어떤 책인가?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쓴 13권의 신약성경 가운데 한 권의 편지다. 이 책은 사도 바울이 A.D.62~63년경 로마 감옥에 있을 때에 썼던 4권의 성경책들(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중의 하나다. 그런데 바울이 썼던 13권의 편지 가운데는 교회에게 보낸 편지가 9권이며, 목회자 개인에게 보낸 편지가 4권이다. 그런데 이들 9권의 교회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바울이 개척하지 않았던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는 로마교회와 골로새교회다. 그렇다면 바울은 자신이 개척하지도 않았던 골로새교회에게 왜 이 편지를 써야 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 편지의 중심 내용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편지는 에베소서와 상당히 유사하여 에베소서의 축소판처럼 느껴지는데, 어떻게 되어서 에베소서와 비슷한 편지가 쓰여졌던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편지는 에베소서와 근본적인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오늘은 골로새서 강해 각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골로새서에 관련된 전반적인 사항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2. 골로새서는 누가 누구에게 언제 썼던 책인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인 바울은 자신의 형제인 디모데와 함께 골로새에 있는 거룩한 이들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실한 형제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골1:1~2). 그러므로 어쩌면 바울과 디모데가 함께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편지는 바울 자신이 혼자 썼다는 사실을 이내 밝힌다. 왜냐하면 이 편지의 인말(골1:1~12)을 보면, 주어가 1인칭 복수('우리')로 나오기는 하지만,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주어를 1인칭 단수('나')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편지의 말미에 가서도 바울은 '나 자신이 친필로 문안한다'고 기록함으로써 이 편지를 바울이 직접 쓰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골4:18). 그러므로 이 편지는 바울이 골로새교회에게 보낸 편지임에 틀림없다. 

      그럼, 바울은 지금 언제 어디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었는가? 그것은 그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조카인 마가와 함께 갇혀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골4:10), 또한 자신은 당시에 결박당한 채 있다고도 말했던 것이다(골4:18). 그리고 당시 자신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고 있다고도 언급을 하였다(골1:24). 왜냐하면 당시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힌 채 고난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장소는 로마 감옥인 것으로 추정되며, 그 시기도 학자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대략 A.D.62~63년경에 이 편지를 썼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3. 에바브라와 바울은 대체 어떤 일로 아는 사이가 되었는가?

      골로새교회는 사실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아니었다. 그 교회는 에바브라가 개척한 교회였기 때문이다(골1:7~8, 4:12). 그런데 에바브라는 그때 골로새교회만 개척했던 것이 아니라, 지리적으로 아주 가까이 있는 다른 두 도시들 곧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 지역 교회의 설립에도 많이 관여하였었다(골4:12~16). 그가 다른 두 교회들을 시간적인 간격을 둔 채 개척했는지, 아니면 두 교회가 개척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가 골로새교회를 개척한 것이고, 다른 두 개 교회가 세워지는 일에 많이 수고했다는 것이다(골4:12). 

      그럼, 에바브라는 어떻게 되어서 골로새교회를 개척했던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A.D.53~58) 중 에베소에 머물고 있으면서 3년간 신학교를 운영한 적이 있는데, 그때 두란노 서원에서 공부했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때 에바브라는 에베소에서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은 후 회심하였고 또한 자신의 고향인 골로새로 가서 가정을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했던 것이다(골4:15, 몬1:2). 한 마디로 에바브라는 바울의 제자이자 바울로부터 파송받아 교회를 세운 동료 종이었 것이다. 

     

    4. 바울은 자신이 개척하지도 않은 골로새교회에 왜 이 편지를 써야 했는가?

      그렇다면 왜 바울은 자신이 개척하지도 않은 교회정말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이 편지를 썼던 것일까? 그것은 에바브라가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을 찾아와서 자신과 골로새교회의 근황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골1:7~8). 이는 바울이 에바브라를 자신의 동료 종(골1:7)이자 예수의 종(골4:12)이라고 일컫는 부분에서도 그 힌트를 찾을 수가 있다.

      그럼 왜 바울은 이 편지를 써서 두기고를 통해 골로새교회에 보냈는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째는 자신에게서 복음을 들었던 에바브라가 골로새교회를 개척했는데, 그 교회가 잘 자라서 당시에도 열매맺고 있다는 소식을 에바브라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골1:7~8). 영적으로 본다면, 자기의 아들이 나가서 교회를 개척했고 그 교회를 성공적으로 성장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마디로 매우 기뻤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격려해 주려고 이 편지를 쓴 것이다. 둘째는 그러나 그 교회에 몇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에바브라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골2:8~23). 그래서 그 문제들을 해결해 주려고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5. 당시 골로새교회는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었는가?

      에바브라가 개척했 골로새교회는 당시에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그러므로 그 문제를 상의하고자 에바브라가 로마로 달려간 것이다. 그때 에바브라해 준 골로새교회의 상황은 3가지의 위험에 직면에 있었다는 것이다. 

      첫째, 골로새교회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미혹받고 있었기 때문이다(골2:8).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으로서, 이것이 교회 내에 침투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세상의 철학사조가 교회 안에 침투해서 들어왔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시 지혜 사상으로서, 이것은 3세기가 되면 초기 교회를 흔들어 놓을 만큼 큰 영향을 미쳤던 영지주의의 발아 형태였다. 왜냐하면 당시 이러한 사상은 누구든지 영지(영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으면 그는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기에 육체적으로 어떤 죄를 지어도 그것이 자신의 영혼과 구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야말로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의 창고라고 언급을 하면서(골2:3),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온 에온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그분 자신이 곧 하나님, 다시 말해 하나님의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 분이라고 알려 주었던 것이다(골2:9~10).

      둘째, 골로새교회가 유대주의적 율법론적 구원관에 미혹받고 있었기 때문이다(골2:16). 그것은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만 믿어되는 것이 아니라, 록 자신이 이방인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누구든지 유대인들처럼 할례도 받아야 하고 안식일도 지켜야 하며 음식도 가려서 먹는 등 정결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골로새교회에 침투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먹고 마시는 것을 구별해야 하고, 안식일을 비롯하여 절기나 초하루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율법 가운데 의식법들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사도행전 10장에 의하면, 그리스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후에는 더이상 필요가 없어져서 폐해진 것들이다. 그런데 원래 하나님을 믿었던 유대인들이 와서 그러한 이야기를 하니 골로새 교인들도 흔들린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법들은 장래에 나타날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었는데(골2:17), 그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를 하고 있으니 흔들릴만도 하다.

      셋째, 골로새교회가 세상의 초등학문인 금욕주의나 천사숭배 사상에 의해 미혹받고 있었기 때문이다(골2:20~21,18). 골로새교회를 흔들어 놓은 세 번째는 바로 금욕주의와 천사숭배 사상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것이든지 붙잡아서도 아니되고, 맛보아서도 아니되며, 만져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육체를 철저히 복종시켜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것을 금해야 한다는 사상이었다. 이름하여 '금욕주의'가 교회에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못 입못 먹고 가난하게 사는 것이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미덕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이러한 사상은 몸을 괴롭게 하는 데에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실제로 육체의 본성을 이기는 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골2:23).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 혼란을 겪고 있는 3가지 당면한 문제를 바르게 교정해 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이 편지를 써서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6. 골로새서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바울이 썼던 편지들을 살펴보면 주로 교리편이 앞부분에 배치되고 생활편이 뒤에 배치가 된다. 예를 들어서 로마서를 보면, 교리편은 1~11장에 배치되어 있고, 생활편은 13~16장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에베소서의 경우, 교리편은 1~3장에 나오지만, 생활편은 4~6장에 나오고 있다. 마찬가지로 골로새서도 교리편이 1~2장에 먼저 나오고 있으며, 생활편은 나중에 3~4장에 나온다. 특히 골로새서의 경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리스도의 신성과 우월성을 제시를 통한 이단 사상을 경계하는 부분이 앞에 나오고(1~2장), 성도의 거룩한 삶을 권면하는 부분이 뒤에 나온다(3~4장).

      그리고 내용적으로 좀더 세밀하게 분석한다면, 골로새서는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먼저는 서론 부분으로서 1:1~12에서는 골로새서의 송수신자와 중보기도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론 부분으로서 2:1~23에서는 그리스도의 탁월성 및 이단에 대한 경계의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3:1~4:6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권면하는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론 부분으로서 4:7~18에서는 개인적인 권고와 문안 인사 그리고 끝인사가 나온다. 

      그리고 서론 부분인 1:1~12의 부분은 일종의 도입부로서, 가장 먼저는 발신자와 수신자의 표기 및 축도가 나오고(1~2절), 이어서 복음에 근거한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 대한 감사가 나오고(3~6절), 새교회의 개척자인 에바브라에 대한 칭찬이 나오며(7~8절), 마지막으로로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가 나온다(9~12절).

     

    7.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는 쌍둥이처럼 닮아 있. 왜냐하면 그 구조에 있어서 그리고 내용에 있어서 거의 동일하게 편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골로새서의 본문이 에베소서의 본문보다 더 짧다. 그 이유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 두 서신은 A.D.62~63년경 바울이 로마 감옥에 1차에 갇혀 있을 때에 쓴 것들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에베소서를 먼저 쓰고 골로새서를 나중에 쓸 수도 있다. 에베소라는 도시는 대도시이고 골로새라는 도시는 시골의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에베소서를 더 많은 분량으로 기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골로새서를 먼저 쓰고 좀더 확대해서 에베소서를 쓸 수도 있다. 보통 복음서의 기록이 이러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는 어떤 구조와 내용에서 닮아 있는가첫째로 구조가 똑같다. 이는 둘 다 교리편이 나오고, 또한 생활편이 나중에 나오기 때문이다. 둘째로, 내용도 매우 유사하다. 에베소서나 골로새서가 그 내용에 있어서 비슷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가장 먼저 구속 곧 죄사함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고, 하늘의 천사들의 계급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과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옛 사람과 새 사람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생활 윤리로서 아내들과 남편들, 자녀들과 아비들, 종들과 자녀들에 대해서 권면을 둘 다 똑같은 순서대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것은 첫째로, 조금 전에도 언급했지만 골로새서의 본문이 에베소서의 본문보다 짧다는 것이다. 둘째로, 둘 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에베소서는 교회론을 부각시키고 있다면, 골로새서는 그리스도론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에베소서에서는 교회를 다음과 같은 7가지 항목으로 묘사한다. 그리스도의 몸(엡1:23), 단체적인 새 사람(엡2:15), 하늘나라의 시민(엠3:19), 하나님의 가족(엡2:19), 성전 곧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엡2:21),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아내(엡5:25,32), 영적 전사(엡6:12)가 그것이다.

      그리고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에 대해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그분을 높이고 있다. 구속자(골1:14),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골1:15),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프로토토코스)(골1:15), 창조주(골1:16), 만물보다 먼저 계신 이(골1:17), 몸인 교회의 머리(골1:18), 시작이자 근본(골1:18),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신 이(프로토토코스)(골1:18), 만물의 으뜸(골1:18), 아버지의 충만(골1:19), 영광의 소망(골1:27), 하나님의 비밀(골2:2),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의 창고(골2:3), 주와 그리스도(골2:6, 3:24),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 분(골2:9),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골2:20), 이긴 자(골2:15), 온 몸의 머리(골2:19),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이(골3:1), 생명(골3:4), 만유(골3:11), 만유 안에 계신 이(골3:11), 실로 놀랍지 아니한가?

     

    8. 골로새서의 주제는 무엇이며,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의 비밀과 그리스도의 비밀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골로새서의 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우월성을 제시를 통한 이단 사상의 경계와 성도의 거룩한 삶'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한 마디로 '탁월하신 그리스도'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이나 요한계시록을 제외하고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렇게까지 많은 것들을 제시한 신약성경이 없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에바브라로부터 골로새교회의 상황을 들으면서, 철학과 헛된 속임수와 유대교적 율법주의과 천사숭배 및 금욕주의가 어떻게 잘못되었고 이것들보다도 더 뛰어나신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골로새서를 읽을 때에 주의해야 할 것은 '비밀'이라는 단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소개하고 있고, '교회'를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체현으로서 사람 속에 들어와 계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려 주시려고 생명주는 영이 되어서 사람 속에 들어와 계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체현이듯이 교회 또한 그리스도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즉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의 각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9. 나오며

      골로새서는 짧지만 참으로 귀한 책이다. 이 짧은 책에서 이렇게 많은 영적인 사실들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 먼저 신기하고 또한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이렇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그리고 위대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놀기만 하다. 그렇다. 그리스도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이다(골3:11). 그리고 그리스도는 몸된 교회의 머리이시며, 만물의 머리이시자, 모든 천사들의 머리이시다. 그분이 모든 만물 안에 계시면서 만물을 통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붙잡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들을 체험할 수 있으며, 이단 사상에도 빠지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에게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껏 모형과 그림자 속에서만 살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 실로 어떠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으로 인하여 지금도 우리는 보좌와 주권, 통치와 권세를 쥐고 있는 모든 악한 영들(귀신들)마저 이길 수가 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그들을 무장 해제시키셨기 때문이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로 오신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리자. "아멘, 주 예수여, 영원히 찬양받으소서!" 아멘. 

     

     

    2023년 01월 03일(수)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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