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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1frit9JAR50
날짜 2024-04-03
본문말씀 히브리서 3:1~4:13(신약 355면)
설교자 정보배목사
주제어 히브리서구분,모세와그리스도의비교,이스라엘백성의멸망,가나안입성제외,구원탈락,안식에들어감과천국,하나님의말씀

2024-04-03(수) 수요기도회

제목: [히브리서강해(04)] 모세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와 참된 안식에 이르지 못할 자들에 대한 경고(히3:1~4: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1frit9JAR50

 

1. 들어가며

  히브리서는 히브리인들에게 주는 경고가 들어있는 책이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수신자인 히브리인들은 그냥 히브리인이 아니었다. 히브리인이었다가 기독교인이 된 자들이었는데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너무나 심해졌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재산도 몰수당하고 집도 빼앗기도 감옥에도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인이었으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던 자들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한때는 이들과 함께하고 있었고 또한 그들을 지도했던 위치였으나 잠시 그들과 떠나있어야 했던 히브리서 기자는 다시 그들에게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아직은 상황이 아니므로 먼저 그들에게 편지를 써보낸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대체로 무겁다. 배교에 대한 강한 경고가 무려 5군데나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을 때에 보통 은혜로운 말씀만 듣다가 히브리서를 들으면 강력한 심판의 메시지와 배교에 대한 경고 때문에 정신이 아찔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믿음이 과연 반석 위에 세워진 믿음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복음을 거부한 자들이 맞게 될 심판의 엄중함을 다시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히브리인이자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자들에게 주시는 히브리서 기자의 엄청난 심판과 경고의 메시지를 통해하여 이미 구원을 받았으나 하늘에 준비된 참된 안식에 들어가기까지는 아직 구원이 완성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히브리서 기자의 메시지에 주목하고 또 주목해야 한다. 

 

2. 히브리서 3:1~4:13은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가?

  신약성경 중 하나인 히브리서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 이렇게 두 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1:1~10:18)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고 완성시키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각종 구약적인 요소들에 대한 우월성을 제시한다. 그렇지만 후반부(10:19~13:25)는 인내하는 믿음과 그에 합당한 생활에 대한 권면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다시 전반부(1:1~10:18)는 예수의 신분과 구원자로서의 우월성을 다루는 1:1~4:13의 말씀과 아울러, 예수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지위와 사역의 우월성을 다루는 4:14~10:18의 말씀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시간에 다루는 히3:1~4:13의 말씀은 본 편지의 서두격인 히1:1~3의 말씀 곧 구약에 이른 신약계시의 전달자인 그리스도의 실체에 관한 말씀과 더불어 히1:4~2:13의 말씀 곧 천사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 이후에 주어지는 말씀이다. 히3:1~4:13의 말씀은 다시 예수께서 얼마나 모세보다 뛰어나신 구원자이신지를 말씀하고(히3:1~9), 이어서 당시 모세의 인도를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례를 통하여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배반했을 경우 맞이한 결과들에 대한 강력하게 경고한다(히3:7~19). 그리고 오직 순종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게 될 것을 강조한다(히4:1~13). 그렇다. 모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갈 안식을 약속받고 출발했다. 하지만 그 약속에 대한 불신앙과 그것에 따른 불순종으로 인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그만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히3:9, 4:2). 마찬가지로 신약 성도들도 역시 창세 때부터 확정된 바 있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주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철을 밟는다면 이들도 역시 참된 하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3. 예수님과 성도들은 어떤 존재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천사를 비교한 뒤에 우리 성도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리스도께서 과연 어떤 분이신지를 증거한다. 그리고 성도들을 격려한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첫째,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히3:1). 둘째, 예수님의 피로 거룩함을 입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히3:1). 셋째, 예수님의 동생들이기 때문이다(히3:1).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 예수께서 주신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2가지를 해야 한다. 하나는 신약 성도들의 신앙고백의 사도이신 예수님을 깊이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히3:1). 이는 성도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떨어지지 아니하려면 하나님의 파송받은 사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분이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져서 없이해주는 영원한 대제사장이라는 것이다(히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의 성도들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저버린다거나 소홀히 여긴다면 그는 하늘에서 파송받아 이땅에 와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인도자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쳤을 뿐만 아니라 직접 대제사장이 되어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린 예수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4. 예수는 어떻게 모세보다 뛰어나신 분이신가?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우러르고 받는 인물 가운데 하나는 역시 율법을 하나님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해 주었던 모세일 것이다. 모세는 사실 애굽땅 종되었던 곳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여 광야로 데리고 나온 구원자였고, 광야에서 40년동안 2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을 인도했으나 굶겨죽게 하시고 옷이 헤어지거나 신발이 헤지지 않도록 이끌었던 지도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터 율법을 받고 성막을 계시받은 자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모세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3~2:18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얼마나 천사보다 뛰어나신지를 언급한 후에 곧바로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함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라는 신약성도가 얼마나 더 복을 받은 자인지를 언급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모세보다 무엇에 있어서 우월하신 분이신가?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은 2가지로 비교하여 언급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나 그리스도가 맡은 일에 충성했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고 하겠지만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 2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첫째는 모세가 집(건축물)에 해당한다면, 그리스도는 집지은 건축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연 누가 더 뛰어난 영광을 받고 누가 더 뛰어난 존경을 받아야 하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리고 이서더 둘째는 모세는 집 안에서 사환으로 충성했지만 그리스도는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서 충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사환이기에 의무적으로 자신의 일을 감당해야 할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은 아들이기에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인 순종으로 그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을 비롯한 로마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는 신약적인 사람들이므로, 자발적으로 주님께 순종하여 하늘에서 주시는 놀라운 상과 면류관을 받으라고 권면한다. 

 

5. 모세 당시 출애굽 1세들은 어떻게 되어서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는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만세전에 자신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았으니 자신의 구원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바람일 뿐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실제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죽을 때에 이름이 지워짐으로 성밖으로 던져지는 성도들과 심지어 불못지옥까지 떨어지는 자들도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실제로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겨우 몇 %도 정도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머지 90~95%의 성도들은 구원에서 탈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례와 거의 똑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기 위해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정작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자는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기 때문이다. 출애굽한 장정 60만 3,550명 가운데 단 두 명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다.

  그럼, 왜 출애굽 1세대들은 출애굽했으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는가? 그것은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나안 일곱족속을 무찌르러 가라는 주님의 말씀에 대항하고 대적하는 불순종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결국 믿지 아니함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엎드려져 죽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다윗의 시편 가운데 하나인 시95:7~11의 말씀을 인용하여, 어떻게 되어서 출애굽 1세대들이 죽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히3:7~11). 그것은 그들의 주의 음성을 듣기는 들었지만 그들은 끝까지 마음을 완고하게 가져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또 시험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주려고 인도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은 채 당장 눈 앞에 펼쳐지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만 탓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이 떨어지면 목말라 죽게 하려고 데려왔느냐고 원망하였고 먹을 것이 떨어지면 굶겨죽이려고 데려왔느냐고 원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의식주의 문제 때문에 그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마고 약속한 땅을 정탐하고 나서는 그 땅에 안 들어가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척박한 광야에서 원망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원망했던 그들을 하나님은 용서하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성도들도 불신의 악한 마음을 품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이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히3:12~14). '오늘'이라고 일컬어지는 현재의 삶에서 매일 서로 권면하여 죄의 유혹에서 마음이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도는 진정 안식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처음 믿을 때에 확신했던 신앙을 끝까지 견고하게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참여자들 곧 그리스도와 함께 저 하늘나라의 공동상속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출애굽 1세대들은 결국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주님을 격노하게 한 죄를 진 채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엎드려져 죽은 것이다(히3:15~19). 

  

6. 구약적 약속으로서 가나안 땅이 아니라 신약적인 약속으로서 영원한 안식을 약속받은 성도들이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구약시대에 애굽에서 탈출하여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는 한 사람도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그들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땅을 취하러 가라는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믿음이 없으면 순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믿음이 진정 있다면 그는 어떠한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한 안식으로 초청받았던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면 그들도 역시 이스라엘 백성의 선례처럼 안식에 이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히4:1~2). 복음을 접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이라도 복된 소식을 듣고 믿음으로 응답하지 못한다면 그에게 주어진 복된 소식이 아무 유익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진정 힘써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준비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히4:3~10). 왜냐햐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불순종해서 광야에서 엎드려져 죽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살아있고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서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때에 여섯째 날까지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자는 하나님이 창조역사를 마친 후에 제칠일에 쉬셨던 것처럼 진정 자기의 일을 쉴 때가 올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쁜 선례를 보고 흔들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만을 바라보며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히4:11).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쁜 전철을 밟아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7. 출애굽한 1세대들과 신약의 성도들에 주어진 안식에 대한 차이점은 무엇인가?

  히브리서를 읽고 있으면 무섭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서를 알면 알수록 복음을 받았으나 복음을 저버린 자들에 받을 결과가 너무나 크고 엄청나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사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평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거역한 것은 그들 모두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원망불평이나 거역의 사건에 가담하지 않은 자도 있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반역자 고라의 자손들 중에도 천국에 들어간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편에 고라자손의 시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렇다. 출애굽 1세대가 비록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광야에 엎드려져 죽었으나 모든 사람이 다 불못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의 대부분이 불못에 들어갔고 그들중에 그래도 상당수는 천국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사실 수백억의 가치를 가진 성막은 다 출애굽 1세대들의 헌신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망불평과하고 거역한 자들은 주로 남자들 위주였지 여자나 어린아이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천국에 가보면, 하나님 앞에 144,000석의 보좌가 놓여있는데, 거기에 들어간 출애굽 1세대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총체적인 죄가 그들의 육신을 광야에서 죽게 한 것이다. 그러나 진정 그들 마음에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 일부는 원망불평의 죄나 거역의 죄에 동참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성막을 짓는데 헌신했던 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 중의 대표가 브살렐과 오홀리압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출애굽 1세대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다 지옥에 떨어진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육신적으로 그들을 징계하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복음을 받아들인 신약의 성도들은 이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구약의 성도들은 죄를 지었으면 그들이 회개하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메시야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신약의 성도들은 자신의 구원자로 오셨던 예수님을 거부한다면 그 죄를 용서해줄 메시야는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는 육신만 멸망당했을 뿐 영혼은 구원받은 자들도 있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약의 시대는 어떠한가? 예수님을 믿고도 죄를 지은 채 회개하지 않으면 그는 반드시 구원에서 탈락하는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성밖으로 쫓겨나는 것이며 불못에 던져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징계는 육신의 징계이상의 징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의 멸망이 곧바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 더 정신차려야 한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죽음을 우리의 영혼마저 지옥에 던져버리는 징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8.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처럼 히브리서 기자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례를 열거하면서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의 성도들보다 더 정신차려야 한다고 말씀한다. 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고 권면한다. 서로 권면하여 죄의 유혹으로부터 속히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것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이 가진 파괴적인 능력을 언급하면서, 용서의 복음의 말씀을 거역한 자들이 자들이 받을 형벌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명확히 제시한다(히4:12~13).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효력을 가지고 있어서, 확실하게 천국에 들어갈 자와 천국에 못들어갈 자를 구별한다는 것이다. 갈라낸다는 것이다. 마치 예리한 칼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눈 앞에서는 어떤 것도 감출 수 없으며, 위장할 수 없다고 하였다. 마치 벌거벗은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 고스란히 드러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무섭고도 떨리는 말씀인가?

 

9. 나오며

  히브리서는 정말 강력한 경고의 책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신약의 성도들을 이처럼 강하게 책망하고 훈계하는 책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2장에서는 이미 구원받은 자라도 복음을 소홀히 여긴다면 그 받을 형벌이 얼마나 크겠느냐고 말씀하고 있지 아니했던가? 그리고믿는 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두 번째 경고의 말씀을 히브리서 3:7~4:13에서 다시 한 번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에게 있어서 모세는 구원자요 인도자요 율법전달자요 수여자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님에 비하면 모세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예수님을 그 집을 설계하신 자요 건축하신 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세는 단지 하나님의 집에서 사환으로 일한 것에 불과하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 충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채 자꾸 모세시대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모세 시대를 돌아보자. 그때에는 각자의 마음에 성령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동에 흔들렸다. 그들 앞에서 인도하는 자들의 말에 선동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세와 아론을 못 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자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늘 훼방을 받기 일쑤였다. 끄떡하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으며, 애굽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우기지를 않나, 참으로 오합지졸의 그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마실 것과 먹을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불평하는 것에는 어느정도 참아주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려고 데려온, 젖과 꿀이 흐를는 땅을 거역하자 그들을 그냥 두시지 아니하셨다. 그래서 그들의 잘못된 인도자들이었던 거짓  선동꾼이자 정탐꾼 10명을 징계로 죽이셨다. 그리고 그들을 뒤따르던 자들을 다 심판하여 그 광에서 죽기까지 그곳에서 방황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 1세대들 모두가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광야에서 성막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역의 죄에 동참하지 않은 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 중에는 비록 육체로서는 광야에서 죽었지만 그이 영혼이 천국에 들어간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신약의 성도들은 그들과는 다르다. 우리들 역시 복음을 받아들여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어려운 환경 때문에 주님을 원망하거나 주님을 떠난다면, 그는 결코 자신의 죄를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메시야 거부죄와 메시야 능욕죄는 더이상 용서가 되지 않기 땜누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그들은 영원한 안식이자 안식의  처소인 새 예루살렘 성 안에 결국 못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신약의 성도들인 우리도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2024년 04월 03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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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4.04.05 09:02

    1. 들어가며

      히브리서는 히브리인들에게 주는 경고가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수신자인 히브리인들은 그냥 히브리인이 아니었다. 히브리인이었다가 기독교인이 된 자들이었는데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너무나 심해졌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재산 몰수당하고 집도 빼앗기 감옥에도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인이었으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던 자들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한때는 이들과 함께하고 있었고 또한 그들을 지도했던 위치였으나 잠시 그들과 떠나 있어야 했던 히브리서 기자는 다시 그들에게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아직은 상황이 아니므로 그들에게 먼저 편지를 써 보낸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대체로 무겁다. 배교에 대한 강한 경고가 무려 5군데나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을 때에 보통 은혜로운 말씀만 듣다가 히브리서를 들으면 강력한 심판의 메시지와 배교에 대한 경고 때문에 정신이 아찔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믿음이 과연 반석 위에 세워진 믿음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복음을 거부한 자들이 맞게 될 심판의 엄중함을 다시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히브리인이자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자들에게 주시는 엄청난 심판과 경고의 메시지를 통이미 구원을 받았으나 하늘에 준비된 참된 안식에 들어가기까지는 아직 구원이 완성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히브리서 기자의 메시지에 주목하고 또 주목하고자 한다. 

     

    2. 히브리서 3:1~4:13은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가?

      신약성경 중 하나인 히브리서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 이렇게 두 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1:1~10:18)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고 완성시키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각종 구약적인 요소들에 대한 우월성을 제시한다. 그렇지만 후반부(10:19~13:25)는 인내하는 믿음과 그에 합당한 생활에 대한 권면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다시 전반부(1:1~10:18)는 예수의 신분과 구원자로서의 우월성을 다루는 1:1~4:13의 말씀과 아울러, 예수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지위와 사역의 우월성을 다루는 4:14~10:18의 말씀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시간에 다루는 히3:1~4:13의 말씀은 본 편지의 서두격인 히1:1~3의 말씀 곧 구약에 이른 신약 계시의 전달자인 그리스도의 실체에 관한 말씀과 더불어 히1:4~2:13의 말씀 곧 천사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 이후에 주어지는 말씀이다. 히3:1~4:13의 말씀은 다시 예수께서 얼마나 모세보다 뛰어나신 구원자이신지를 말씀하고(히3:1~9), 이어서 당시 모세의 인도를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례를 통하여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배반했을 경우 맞이 결과들에 대 강력하게 경고한다(히3:7~19). 그리고 오직 순종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게 될 것을 강조한다(히4:1~13). 그렇다. 모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갈 안식을 약속받고 출발했다. 하지만 그 약속에 대한 불신앙과 그것에 따른 불순종으로 인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그만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히3:9, 4:2). 마찬가지로 신약 성도들도 역시 창세 때부터 확정된 바 있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주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철을 밟는다면 이들도 역시 참된 하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3. 예수님과 성도들은 어떤 존재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천사를 비교한 뒤에 우리 성도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리스도과연 어떤 분이신지를 증거한다. 그리고 성도들을 격려한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첫째,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히3:1). 둘째, 예수님의 피로 거룩함을 입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히3:1). 셋째, 예수님의 동생들이기 때문이다(히3:1).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 예수께서 주신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2가지를 해야 한다. 하나는 신약 성도들의 신앙고백의 사도이신 예수님을 깊이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히3:1). 이는 성도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떨어지지 아니하려면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받은 사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분이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져서 없이 해 주는 영원한 대제사장이라는 것이다(히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의 성도들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저버린다거나 소홀히 여긴다면 그는 하늘에서 파송받아 이 땅에 와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인도자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쳤을 뿐만 아니라 직접 대제사장이 되어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린 예수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4. 예수는 어떻게 모세보다 뛰어나신 분이신가?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우러르는 인물 가운데 하나는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해 주었던 모세일 것이다. 모세는 사실 애굽 땅 종되었던 곳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여 광야로 데리고 나온 구원자였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2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인도했으나 굶겨 죽지 않하고 옷이 헤어지거나 신발이 헤지지 않도록 이끌었던 지도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터 율법을 받고 성막을 계시받은 자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모세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3~2:18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얼마나 천사보다 뛰어나신지를 언급한 후에 곧바로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함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는 신약 성도가 얼마나 더 복을 받은 자인지를 언급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모세보다 무엇에 있어서 우월하신 분이신가?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 2가지로 비교하여 언급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나 그리스도가 맡은 일에 충성했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고 하겠지만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 2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첫째는 모세가 집(건축물)에 해당한다면, 그리스도는 집 지은 건축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연 누가 더 뛰어난 영광을 받고 누가 더 뛰어난 존경을 받아야 하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둘째는 모세는 집 안에서 사환으로 충성했지만 그리스도는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서 충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사환이기에 의무적으로 자신의 일을 감당해야 할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은 아들이기에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인 순종으로 그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을 비롯한 로마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는 신약적인 사람들이므로, 자발적으로 주님께 순종하여 하늘에서 주시는 놀라운 상과 면류관을 받으라고 권면한다. 

     

    5. 모세 당시 출애굽 1세들은 어떻게 되어서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는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만세 전에 자신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았으니 자신의 구원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바람일 뿐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실제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죽을 때에 이름이 지워짐으로 성밖으로 던져지는 성도들과 심지어 불못 지옥까지 떨어지는 자들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실제로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겨우 5퍼센트 정도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머지 90~95%의 성도들은 구원에서 탈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례와 거의 똑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기 위해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정작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자는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기 때문이다. 출애굽한 장정 60만 3,550명 가운데 단 두 명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다.

      그럼, 왜 출애굽 1세대들은 출애굽은 했으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는가? 그것은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나안 일곱 족속을 무찌르러 가라는 주님의 말씀 대항하고 대적하는 불순종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결국 믿지 아니함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엎드려져 죽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다윗의 시편 가운데 하나인 시95:7~11의 말씀을 인용하여, 어떻게 되어서 출애굽 1세대들이 죽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히3:7~11). 그것은 그들 주의 음성을 듣기는 들었으나 그들은 끝까지 마음을 완고하게 가져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또 시험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주려고 인도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은 채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만 탓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이 떨어지면 목말라 죽게 하려고 데려왔느냐고 원망하였고 먹을 것이 떨어지면 굶겨 죽이려고 데려왔느냐 원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의식주의 문제 때문에 그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마고 약속한 땅을 정탐하고 나그 땅에 안 들어가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 척박한 광야에서 원망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원망했던 그들을 하나님은 용서하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성도들도 불신의 악한 마음을 품어서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이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히3:12~14). '오늘'이라고 일컬어지는 현재의 삶에서 매일 서로 권면하여 죄의 유혹에서 마음이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도는 진정 안식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처음 믿을 때에 확신했던 신앙을 끝까지 견고하게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참여자들 곧 그리스도와 함께 저 하늘나라의 공동 상속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출애굽 1세대들은 결국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주님을 격노하게 한 죄를 진 채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엎드려져 죽은 것이다(히3:15~19). 

      

    6. 구약적 약속으로서 가나안 땅이 아니라 신약적인 약속으로서 영원한 안식을 약속받은 성도들이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구약시대에 애굽에서 탈출하여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 한 사람도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그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땅을 취하러 가라는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믿음이 없으면 순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믿음이 진정 있다면 그는 어떠한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한 안식으로 초청받았던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면 그들도 역시 이스라엘 백성의 선례처럼 안식에 이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히4:1~2). 복음을 접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이라도 복된 소식을 듣고 믿음으로 응답하지 못한다면 그에게 주어진 복된 소식이 아무 유익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진정 힘써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준비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히4:3~10). 왜냐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불순종해서 광야에서 엎드려져 죽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살아 있고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서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때에 여섯째 날까지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자는 하나님이 창조 역사를 마친 후에 제 칠일에 쉬셨던 것처럼 진정 자기의 일을 쉴 때가 올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쁜 선례를 보고 흔들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만을 바라보며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히4:11).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쁜 전철을 밟아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7. 출애굽한 1세대들과 신약의 성도들에 주어진 안식에 대한 차이점은 무엇인가?

      히브리서를 읽고 있으면 무섭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서를 알면 알수록 복음을 받았으나 복음을 저버린 자들 받을 결과가 너무나 크고 엄청나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사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평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거역한 것은 그들 모두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원망 불평이나 거역의 사건에 가담하지 않은 자도 있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반역자 고라의 자손들 중에도 천국에 들어간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편에 고라 자손의 시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렇다. 출애굽 1세대가 비록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광야에 엎드려져 죽었으나 모든 사람이 다 불못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의 대부분이 불못에 들어갔고 그들 중에 상당수는 천국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사실 수백 억의 가치를 가진 성막은 다 출애굽 1세대들의 헌신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망 불평하고 거역한 자들은 주로 남자들 위주였지 여자나 어린아이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천국에 가 보면, 하나님 앞에 144,000석의 보좌가 놓여 있는데, 거기에 출애굽 1세대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총체적인 죄가 그들의 육신을 광야에서 죽게 한 것이다. 진정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 일부는 원망 불평의 죄나 거역의 죄에 동참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성막을 짓는데 헌신했던 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 중의 대표가 브살렐과 오홀리압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출애굽 1세대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다 지옥에 떨어진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육신적으로 그들을 징계하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복음을 받아들인 신약의 성도들은 이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구약의 성도들은 죄를 지었으면 그들이 회개하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메시야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신약의 성도들은 자신의 구원자로 오셨던 예수님을 거부한다면 그 죄를 용서해 줄 메시야는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성도는 육신만 멸망당했을 뿐 영혼은 구원받은 자들도 있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약의 시대는 어떠한가? 예수님을 믿고도 죄를 지은 채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구원에서 탈락하는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성밖으로 쫓겨나는 것이며 불못에 던져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징계는 육신의 징계 이상의 징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의 멸망이 곧바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 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죽음 우리의 영혼마저 지옥에 던져버리는 징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과연 얼마나 될까?

     

    8.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처럼 히브리서 기자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례를 열거하면서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의 성도들보다 더 정신차려야 한다고 말씀한다. 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고 권면한다. 서로 권면하여 죄의 유혹으로부터 속히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것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이 가진 파괴적인 능력을 언급하면서, 용서의 복음의 말씀을 거역한 자들이 받을 형벌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명확히 제시한다(히4:12~13).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효력을 가지고 있어서, 확실하게 천국에 들어갈 자와 천국에 못 들어갈 자를 구별한다는 것이다. 갈라낸다는 것이다. 마치 예리한 칼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어떤 것도 감출 수 없으며, 위장할 수 없다고 하다. 마치 벌거벗은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 고스란히 드러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무섭고도 떨리는 말씀인가?

     

    9. 나오며

      히브리서는 정말 강력한 경고의 책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신약의 성도들을 이처럼 강하게 책망하고 훈계하는 책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2장에서는 이미 구원받은 자라도 복음을 소홀히 여긴다면 그 받을 형벌이 얼마나 크겠느냐고 말씀하고 있지 아니했던가? 그리고 믿는 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두 번째 경고의 말씀을 히브리서 3:7~4:13에서 다시 한번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에게 있어서 모세는 구원자요 인도자요 율법 전달자요 수여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님에 비하면 모세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예수님 그 집을 설계하신 자요 건축하신 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세는 단지 하나님의 집에서 사환으로 일한 것에 불과하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 충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채 자꾸 모세 시대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모세 시대를 돌아보자. 그때에는 각자의 마음에 성령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동에 흔들렸다. 그들 앞에서 인도하는 자들의 말에 선동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세와 아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자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늘 훼방을 받기 일쑤였다. 하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으며, 애굽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우기지를 않나, 참으로 오합지졸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마실 것과 먹을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불평하는 것은 어느 정도 참아주셨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려고 데려온, 젖과 꿀이 흐는 땅을 거역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냥 두시지 아니하셨다. 그래서 그들의 잘못된 인도자들이었던 거짓 선동꾼이자 정탐꾼 10명을 징계로 죽이셨다. 그리고 그들을 뒤따르던 자들을 다 심판하여 그 광에서 죽기까지 그곳에서 방황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 1세대들 모두가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광야에서 성막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역의 죄에 동참하지 않은 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 중에는 비록 육체는 광야에서 죽었지만 영혼이 천국에 들어간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신약의 성도들은 그들과는 다르다. 우리들 역시 복음을 받아들여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어려운 환경 때문에 주님을 원망하거나 주님을 떠난다면, 그는 결코 자신의 죄를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메시야 거부죄와 메시야 능욕죄는 더 이상 용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영원한 안식이자 안식의 처소인 새 예루살렘 성 안에 결국 못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신약의 성도들인 우리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완성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2024년 04월 03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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