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역시 하나님이신 것 같다(잠16:9). 사도바울의 전도여행을 보면 그렇다. 사울은 1차전도여행을 마친 후에 주의 말씀을 전했던 각 도시들을 다시 돌아보기를 원했다. 그래서 2차전도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성령에 이끌리어 자신이 전도하려던 길에서 성령께서 원하시는 길로 이동해갔는데 그곳은 바로 유럽이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유럽이 복음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이 시간에는 선교사역에서 과연 성령님께서는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와 선교에 있어서 2가지 핵심사항인 사람과 재정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잠깐 바울의 선교여행을 정리해보자. 바울일행이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1차전도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안디옥교회에 돌아오게 된 시간은 대략 2년이 걸렸다. 하지만 안디옥교회에는 예루살렘에 온 할례파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러자 바울은 이방인의 구원문제 즉 예수님만을 믿어서는 안 되고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바리새파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을 잠재우기 위해,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행15:1~5). 그때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인하여, 예루살렘공의회는 주께 돌아온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거나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린다. 다만 이방인이라도 4가지 것에는 주의하도록 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결의한다. 그것은 우상의 제물과 음행과 목매어 죽은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것이다(행15:20,29). 그래서 그 소식을 가지고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의 하나였던 유다와 실라가 안디옥교회에 파송을 받게 되었고 그 소식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안디옥교회도 다시 잠잠해졌고 안정을 되찾게된다.
그러자 바울은 이내 2차전도여행을 계획한다. 자신이 1차전도여행 때 다녔던 곳을 다시 찾아가서 형제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출발전부터 동행자 문제를 놓고 바나바와 바울은 다투게 된다. 바나바는 마가요한을 데리고 가자 하였지만, 바울은 전에 1차전도여행 때에 한 가지로 일하지 않고 중간에 돌아가버린 마가요한을 데리고 가서는 안 된다고 맞선 것이다. 결국 둘은 갈라서게 되었다. 냉철한 바울과 우유부단한 바나바 간에 양보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왜 싸우고 결별하게 되는가? 오직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양보하라. 그것이 천국과 지옥보내는 일이 아니면 양보하라. 남의 의견을 먼저 들어주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를 바꾸어 합력하게 선을 이루게 하시니, 결국 전도팀이 2개가 꾸려지게 되었다. 결국 바울팀과 바나바팀이 따로 전도여행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일부러 싸우거나 실수를 저지를 필요는 없다. 이번 경우처럼 그것이 복음전파를 위한 열정에서 나온 것일 때에라야 하나님께서도 오히려 실수를 선으로 바꾸어 사용하시는 것이다.
결국 바나바는 마가요한을 데리고 구브로섬으로 배타고 떠났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육로를 통하여, 길리기아를 거쳐 루가오니아지방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도시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렀을 때 바울은 이제 새로운 한 사람을 얻게 된다. 자신의 대를 이어 복음전파에 수고할 사람을 얻게 된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청년 디모데이다. 디모데는 사실 이방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유니게)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였다. 그는 바울의 1차전도여행시에 어머니와 함께 예수구원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은 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할례가 필요없었다. 하지만 바울은 그에게 할례를 주게 된다. 왜냐하면 그를 이방인을 위한 복음전파자로만 사용하지 않고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전도자가 되게 하려고 말이다. 바울은 복음전파에 거치는 것이 없도록 디모데를 그리한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 할 때에는 2가지가 필요하다. 한 파트는 사람으로서 인적자원이 필요하고, 또 한 파트는 재정으로서 물적자원이 필요하다. 바울은 비로소 2차전도여행 때에 2가지를 다 얻게 된다. 먼저 인적자원으로서 후계자인 디모데를 얻게 되고(행16:1~5), 주치의사인 누가를 얻게 된다(행16:6~10). 그리고 고린도에서 천만제조업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된다(행18:1~4). 그래서 바울은 사람과 재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게 되어 실로 놀라운 사역들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지원들이 필요하다. 만약 우리의 교회들도 바울처럼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이다.
그런데 선교사역을 감당할 때 주의할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선교사역의 주체에 대한 민감성이다. 사실 선교는 사람의 사역이기는 하지만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직 성령이 임하게 되 땅끝까지 주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 않았던가?(행1:8) 우리도 가끔씩 선교사역의 주체를 사람으로 볼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러면 아니된다. 사실 바울도 처음에는 선교사역의 주체를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자신이 계획한 대로 복음전파의 루트를 정하여 움직이고 시작했다. 하지만 2차전도여행부터는 하나님께서 그의 앞 길을 막으시기 시작했다. 성령께서 아시아에서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막으셨고, 중앙내륙인 브루기아와 갈라디아지방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며, 이제는 북쪽의 비두니아로 가려는 전도계획도 막으셨다. 그러자 그들은 드로아항구에 내려가야 했다. 그때 바울은 자신의 육체적인 약점이었던 어떤 질병(사탄의 사자, 가시)를 치료할 수 있는 의사를 만나게 된다. 그가 바로 드로아에서 만난 의사 '누가'다. 그리고 이어서 그곳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는 환상으로서 그의 갈 길을 일러주였다. 환상 중에 마케도냐(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지역을 중심으로한 큰 지방)인이 건너와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했기 때문이다(행16:9). 바울은 모든 길이 막힌 상태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자 그는 즉시 짐을 꾸려 에게해를 건너 마케도냐로 이동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2차전도여행가운데 가장 놀라운 일들의 하나인 마케도냐인의 환상과 유럽으로의 복음전파인 것이다. 이때 유럽선교의 길이 처음으로 열려졌기 때문이다. 바울은 아시아 내지는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및 비두니아 전도를 게획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그의 발걸음을 유럽쪽으로 인도하셨다. 그렇다. 선교사역의 주체는 우리 자신이 아니다. 성령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분의 음성과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한다. 내 고집만을 부릴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지금 어떻게 우리를 이끄시려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무턱대로 열정만을 가지고 선교사역을 감당하려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당신의 전도나 선교사역에 있어서 성령님의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 그분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분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기도하라. 그리고 그분의 인도를 받을 때까지 현재 그 자리에서 잠깐 멈추어 있으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해주실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