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5(주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17)] 마지막 때에 있을 성도들의 휴거에 대한 오해와 진실(계14:14~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fFbryO_izc [또는 https://tv.naver.com/v/43802502]
1. 들어가며
'휴거'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휴거란 예수께서 오실 때에 성도들이 공중으로 낚아채지듯 올라가는 것을 가리키는 특별한 기독교적 용어다. 휴거는 '천년왕국'이라는 단어처럼 성경에서 명사적으로 표현된 적은 없다. 하지만 마11:12, 12:29, 13:19, 요5:15, 10:12, 10:28, 행8:39, 23:10, 고후12:2,4, 살전4:17, 유1:13, 계12:5에서 총14번에 걸쳐 동사로 나온다. 그 동사는 바로 '하르파죠'이다. 이 단어를 번역하면 '훔치다, 잡아채다, 데려가다, 낚아채다, 채여 올라가다, 이끌려 올라가다' 뜻인데, 살전4:17에서는 '끌어 올려'라는 말로 번역하였다. 그래서 이것을 한자어로, '이끌 휴, 들 거'라는 단어를 써서 '휴거'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휴거는 과연 언제 일어나는가? 그것은 환난 전인가 환난 중간인가 환난 후인가? 그리고 휴거의 대상은 대체 누구인가? 모든 성도들인가 아니면 일부의 성도들인가? 그리고 만약 성도들에게 휴거가 일어난다면 우리 성도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러나 휴거에 대한 이러한 궁금증을 모두 해소하기에는 그리 쉽지 않다. 왜냐하면 휴거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과 학설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깝다 보니, 온전하지는 않아도 누군가는 정리를 해 줄 필요가 있기에 그동안 알려진 천국의 실상과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한다. 이 문제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2. 휴거의 문제를 언급할 때 꼭 알고 있어야 할 용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우리가 휴거의 문제를 언급할 때 먼저 알아 두어야 할 개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재림과 휴거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 재림이란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출발하여 이 세상으로 강림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런데 성도의 휴거란 성도가 주님의 강림시에 주님이 계시는 하늘의 영역으로 올라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주님만이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도 공중으로 올라가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다(살후2:1). 그러므로 휴거라는 단어는 우리 인간편에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또 다른 용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부활과 휴거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성도가 부활하는 것과 성도가 휴거하는 것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사실 부활이란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죽은 자가 살아나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부활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휴거가 일어나는 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육체가 살아 있는 사람이 갑자기 변화체를 입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휴거가 산 사람의 변화를 가리킨다면, 부활은 죽은 자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이라는 단어가 산 사람의 변화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폭넓은 개념이기에, 부활이 휴거보다 좀더 큰 개념으로서 휴거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휴거는 좁은 의미로서, 살아 있는 사람이 갑자기 변화체를 입고 사라지는 것을 가리키는 특별한 용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3. 휴거는 언제 일어나는가?
그렇다면 성도들에게 휴거는 언제 일어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강림(파루시아=임함, 오심, 도착) 때에 일어난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그리스도의 오심은 두 가지 방면이 있다. 하나는 구름 속으로 오시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상으로 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휴거는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휴거는 산 자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이 갑자기 휴거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산 자들이 휴거되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구약의 성도 가운데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되어 올라간 성도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에녹이고 또 한 사람은 엘리야다. 그러므로 평소 때 사람이 죽어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휴거가 아니다. 그것은 부활인 것이다(정확히는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에 살아 있는 성도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휴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휴거는 주님의 재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휴거가 언제 있는가 하는 문제는 거꾸로 보면, 주님의 재림이 언제 있는가라는 질문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주님의 재림은 과연 언제 있는가?
주님의 재림은 언제 있는가? 주님의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 많은 학설들이 있다. 그 때가 '환난 전'이라는 사람도 있고 '환난 중간'이라는 사람도 있고, '환난 후'라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설들에는 각기 성경적인 근거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느 것이 보다 더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알려면 분별력이 조금 필요하다. 이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어떻게 주님의 재림에 대해 혹은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 말씀하셨는가?
첫째, 예수께서는 그 때가 대환난의 어느 경점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마24:22). 왜냐하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주님이 적그리스도에 의한 대환난의 날을 단축시켜 주지 않는다면,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는 구원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리고 또한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대환난의 날을 단축시켜 주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성도들이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대환난의 날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둘째, 예수께서는 그 때가 대환난의 끝은 아닐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마24:40~42).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그날이 도둑 같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만약 대환난을 마치고 주님이 오시게 된다면, 그날은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여 약 42달 동안 활동한 후가 될 것이다(계13:5). 그러면 그날을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성립되기가 어렵다.
고로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실에 비추어, 우리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성도들은 환난을 전혀 받지 않은 채 7년 대환난이 있기 전에 휴거되어 올라간다고 하는 말에 미혹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성도들은 대환난을 다 통과한 후에 주님이 오신다는 말에도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대환난기의 어느 경점에 갑자기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날짜와 그 시간을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만약 우리가 그 날짜와 시간을 알 수 있다면, 주께서 아무도 모르게 오신다는 말씀이 성취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5.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 어떠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가?
그렇다면, 종말의 때를 언급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한 가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강림과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의 기록들에서도 그 때가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에서도 그 때가 언제인지가 감추어진 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대강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종합해 보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총 2번의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요한계시록에서는 일곱 번째 나팔이 울려퍼지고 일곱 대접재앙들이 쏟아지기 전 어느 시점에 예수께서 구름 속으로 오셔서 익은 곡식을 추수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계14:14~16). 그 말씀을 헬라어에서 직접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계14:14~16[헬라어 직역]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스스로] 앉으셨는데, 그[의]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의]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스스로]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추수하소서) [왜냐하면]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왔기 때문)이니이다 하니 16 구름 위에 [스스로] 앉으신 이가 [그분의] 낫을 땅[위]에 휘두르매(던지니),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추수가 되었다)
그렇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구름 가운데 오신 예수께서 성도들을 추수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때 추수되는 성도는 땅의 익은 곡식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당신의 낫으로 추수를 하시는데, 이 낫은 천사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구름 속으로 오셔서 일부의 성도들을 휴거시킬 것인데, 이때는 익은 곡식만, 곧 성숙한 성도들만 공중으로 휴거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때는 과연 언제인가? 이때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혹은 보좌 앞에서 내려와 공중의 구름 속으로 오시는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때는 일곱째 나팔이 울려퍼진 후(계11:15)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일곱째 나팔이 울려퍼지기 전까지 예수께서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로서 언급되어졌으며, 또한 일곱 인들을 떼시고 있는 분이지만, 이제는 두루마리를 어떤 힘센 다른 천사에게 넘겨주시고, 구름 속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10장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일곱째 나팔이 울려퍼진 후 하나님에 대한 호칭은 이제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는 이"로 바뀌신다(계11:18). '장차 오실 이'가 구름 속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한편 이때 예수께서는 대다수의 믿는 이들을 추수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 진실한 성도들 전부를 빼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은 그때에 거의 다 추수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때가 되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가? 그 상황은 예수께서 마24장과 눅17장에서 말씀해 주셨다.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지만 또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24:40~41). 그 상황이 어느 나라에서는 낮에 일어나는 상황이겠지만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게는 밤의 상황에 일어날 것이다(눅17:34~35).
마24:40~41 그 때에 두 사람(남자)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눅17:34~35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둘째, 요한계시록에서는 마지막 추수를 위한 휴거가 한 번 더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계:19:11~16). 이때는 그리스도께서 백마를 타시고 아마겟돈 전쟁에서 악의 무리를 처단하시러 오시는 그런 때이다. 그런데 이때 예수께서는 백마를 타고서 자신을 따르는 거룩한 자들과 함께 오실 것이다. 뒤따르는 무리는 한편으로는 거룩한 천사들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한 성도들일 것이다(살전3:13). 이때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왕 노릇하는 성도들도 있을 것이고, 대환난의 어느 경점에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간 익은 곡식 성도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아마겟돈 전쟁에서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끝내실 것이기 때문에, 그때에 죽은 성도들과 그때까지 살아 있고 남아 있는 성도들도 주님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에 있을 휴거는 이삭 추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환난의 때에 대다수의 믿는 이들은 익은 곡식이 되어 이미 공중으로 올라간 상태이고, 나머지만 조금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는 적그리스도의 대환난의 막바지이기 때문에 신앙을 간직하기도 어렵고 신앙을 새로 갖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고로 숫자는 적겠지만,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도 또 한 번의 휴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상황을 사도 바울이 성경에 기록하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고전15:51~52의 말씀과 살전4:16~17의 말씀이다.
고전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6.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휴거에 있어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오해와 진실은 무엇인가?
이상의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오해를 바로잡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오해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영역이 있다.
첫째, 환난 전에 모든 성도들이 다 휴거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건 아니다. 대다수 성도들의 휴거는 대환난의 어느 경점에 있을 것이고, 그때의 휴거는 익은 곡식만 휴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대주의적 전천년론자들은 7년 대환난 전에 성도(교회)가 다 휴거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때는 은혜로 모든 성도가 휴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때는 이기는 자들로서 익은 곡식만 휴거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휴거는 한 번만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도 올바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믿는 이들의 휴거는 대환난의 어느 경점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의 휴거와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인 인류 맨 마지막 때 곧 아마겟돈 전쟁 직전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은 휴거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한 번만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모든 성도들이 대환난을 통과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대환난의 어느 경점에 성도들 중 익은 곡식이 먼저 휴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의 추수는 대다수 성도들의 추수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다 대환난을 통과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일부의 뜨뜻미지근한 성도들만이 남겨져서 대환난의 시기를 통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절망하지는 말라. 이들을 위한 사명자들이 지금 지구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성도들은 날마다 휴거가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려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대환난이 오기 전에 죽은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가서 왕 노릇할 자는 왕 노릇을 하며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굳이 대환난 치하에 남겨져서, 그 어려운 대환난의 날을 통과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지금 이기는 성도가 되면 되기 때문이다. 지금 익은 곡식이 되면 되기 때문이다. 고로 지금이 중요하다. 지금 죽어도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면, 대환난의 날이 속히 오라고 일부러 기도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환난의 날은 고통이 아주 극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 구원받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7. 성도들이 휴거를 받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 성도들에게 만약 대환난의 때에 휴거를 받아야 할 상황이 발생한다면, 익은 곡식이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다음 네 가지 것에 주의하기를 바란다.
첫째, 그날까지 죄를 짓고 있다가 주님의 재림을 갑자기 맞이하는 성도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눅21:34~36). 그날까지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에 휩싸여서 그날을 준비하지 못한 채 그날을 맞이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면 대다수 믿는 이들의 휴거 때에 그 사람은 남겨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대환난의 날에는 순교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 귀신이 우리와 함께 있는 한 우리는 죄를 짓지 아니하고 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날마다 자기의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계22:14). 이는 회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생명책에 기록된 자기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날이 될 때 들림 받는 성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는 성도는 귀신이 많이 들어 있기에 그날 휴거를 받지 못할 것이다.
셋째, 내게 주어진 일과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이 땅에 어느 일과 사명이 주어진 채 보내어졌다. 그러므로 진정 회개를 충분히 했다면, 그는 은사를 되찾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성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내가 지금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의 경우라면, 그때는 때를 따라 돕는 양식을 성도들에게 공급해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마24:45~47). 그래야만 주님이 오셔서 그에게 상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어떤 댓가를 치러서라도 주님을 맞이할 기름을 잘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련한 다섯 처녀가 되지 말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 의하면, 신랑을 맞을 준비 하다가 혼인잔치의 때를 맞이하는 처녀들의 비유가 나온다(마25:1~13). 이들은 모두 처녀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중에 한 무리인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충분한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리고 신랑의 도착이 지연되자 다 졸며 자게 되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신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열 처녀가 깨어났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의 등잔에는 기름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자 슬기로운 처녀에게 기름을 좀 나눠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둘이 쓰기에는 부족할까 하니 가서 기름을 사 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도착하였고 슬기로운 처녀가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렇다. 혼인잔치에 참여하려면 충분한 기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기름은 댓가를 지불하고 사는 것이다. 그냥 주어지는 은혜가 결코 아니다. 이처럼 그날을 준비하는 데에는 땀과 피와 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그때에 충분한 기름이 준비되지 못한 자는 들림받지 못하고 이 땅에 남겨지게 될 것이다.
8. 나오며
그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회개하고 충성하여 이기는 자들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이기는 자들만이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할 것이며(계2:26~27), 아마겟돈 전쟁에서 그리스도의 군대가 되어 전쟁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다(계19:11~16). 이기는 자들이 된다는 것은 주님께서 언제 추수를 한다고 할지라도 추수의 대상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만약 그날이 주님께서 공중으로 오시는 그때가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 죽으면 죽은 즉시 천국에 들어갈 것이고, 그곳에서 왕 노릇을 할 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기는 자들이 되지 못한다면, 그날에 환난 치하에 남겨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목숨으로서 자신의 신앙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혹독한 날이 될 것이다(마24:22). 그러므로 그때에 남겨져서 비로소 익을 것이 아니라 지금 익은 곡식이 되어야 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회개하는 성도,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가족부터 생명의 천국복음을 전해 주어서 저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게 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는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게 된다면 그때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라. 회개하려면 지금 하라. 충성하려면 지금 하라. 기름을 준비하려면 지금 준비하라. 전도하려면 지금 해야 한다.
2023년 11월 05일(주일)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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