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과연 어떤 이름일까? 그 이름은 예수라는 이름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이름은 바로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당시에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게 되면 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그분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이름 대신 대명사를 사용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대신하여 쓰인 대명사들에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그러한 대명사들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주님"이라는 호칭이었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랍비"라는 대명사도 사용되었고, 귀신들에 의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대명사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대명사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는 대명사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윗의 자손"이라는 대명사도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호칭들 가운데 독특한 호칭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이다. 이 호칭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호칭에 피조물인 인간의 이름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대체 다윗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이었기에 하나님의 호칭에 "다윗"이라는 한낱 피조물의 이름이 들어갈 수 있었을까?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하고 있는 마태복음의 저자는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원문지역)" 헬라어원문에는 우리말성경과는 다른 어순으로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이라는 문구가 먼저 나온다.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마태복음의 저자가 메시야이신 예수님이야말로 "다윗의 자손"인 것을 소개하고 싶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마태는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서 한 사람만을 특별하게 소개하는데, 그것은 그 사람을 직책까지 써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누구일까? 그는 바로 "다윗"이다(마1:6). 그는 다윗을 왕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메시야신 우리 주 예수께서 다윗의 왕조를 이어받은 그의 후손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의 왕가에서 메시야가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은 언제부터 있었던 것일까? 그것의 출발은 B.C.995년경 다윗통치 15년 때부터였다(삼하7:12~14). 하지만 그 뒤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다윗의 왕족의 혈통에서 나올 것이라는 예언이 더해졌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B.C.734년경에 이사야의 선지자로부터 예언이 있었고(사9:6~7), B.C.585년경에는 에스겔선지자로부터 예언이 있었다(겔34:23~24). 그러니까 마태복음의 저자는 삼하7장부터 계속해서 예언되어온 바로 그 메시야가 에수님인 것을 증거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체 다윗은 누구였을까? 대체 그가 누구였길래 그는 예수님의 조상 중에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될 수 있었으며, 훗날 예수님마저도 자신을 소개할 때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할만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구약의 인물들 중에서 다윗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만세전부터 쓰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 같지만 사실 그 말은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다윗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흔히들 다윗을 말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선택하셨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니다. 그 반대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다보니 다윗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던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에 따라 사울은 결국 왕위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런데 그 시발점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셨다. 그것은 "앞으로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아낼 것이며, 그를 이스라엘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겠다(삼상13:14)"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다윗은 어떤 상태에 있었을까? 놀라지 말라. 다윗은 아직 태어나지도 아니한 때였다. 곧 이 말씀은 B.C.1048년에 주어진 것인데, 다윗은 B.C.1040년에 태어났으니, 이 말씀은 곧 다윗이 창조되기 8년전에 주어진 말씀임을 알 수 있다. 다윗은 사실 주전1040년에 태어났고, 1010년 30살에 왕위에 올랐으며, 40년간 왕위에 있다가 970년에 주님 품으로 간 인물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태어날 다윗을 생각한 채 그를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아직 다윗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아내어 그에게 차기왕직을 맡기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아무개라고 하는 어떤 인물을 예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이룰 사람을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 반대적인 예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룟유다를 예정해놓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팔 사람만을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어떤 뜻을 예정해놓고 그리고 나서 거기에 합당한 사람을 찾아내시는 방식을 취하신다.
그럼,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선택받은 것일까? 다윗의 생애에 있어서 몇 번의 중요한 사건들이 있다. 하나는 그가 사무엘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던 사건 그리고 소년으로서 골리앗을 물리친 사건, 밧세바와의 간음했던 사건, 법궤를 시온산성으로 옮겼던 사건, 나단 선지자를 불러다가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드리겠다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사건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 중에서 중요한 사건은 다윗이 언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선택받았는지와 다윗이 언제 메시야의 조상으로 선택받았는지 하는 것이다.
먼저,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선택받은 사건을 살펴보자. 그 사건은 B.C.1025년에 있었다. 이때 다윗의 나이는 15세였고, 그는 다른 7명의 형들과는 달리 혼자 밖에서 양떼를 치고 있었다. 당시 형들은 집안에서 사무엘선지자로부터 차기왕이 누가 될 것인지 선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다윗은 맨 막내인 관계로 들에 나가 아버지의 양떼를 돌보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불러 그를 이새의 집으로 보냈었다. 그리고 이새의 자식들 중에 자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를 차기왕으로 기름부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사무엘은 병이 기름을 채워 베들레헴에 있는 이새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이새의 아들들을 장남으로부터 하나씩 하나씩 자기의 앞을 지나가게 했다. 외모가 출중하고 키가 컸던 장남 엘리압으로부터 일곱번째 아들까지 지나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다급해진 사무엘은 이새에게 또 다른 아들이 없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이새는 아직은 어리고 보잘 것 없는 다윗이 들에서 양떼를 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를 빨리 데려오라고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가 바로 그니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다윗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을 흔들어놓았을까?
다윗은 그때 목동이었다. 양떼를 치는 아이였던 것이다. 그의 나이가 15세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한 그러한 어린 소년을 찾아내어 자기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가 그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사실이 시편 말씀에 나온다. "또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는 어미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를 이끌어 내서 그의 백성인 야곱 고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78:70~71)."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들에서 온 맘을 다해서 부르고 있는 그의 찬양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 다윗은 이미 그때 스스로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줄 알았다. 또한 그는 아버지의 양떼를 치면서도 그 양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지만 자신이 양떼를 구해내는 데는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고백했다. 즉 사자와 곰이 와서 양새끼를 물어갈 때에 끝까지 쫓아가 그것들의 이빨들 사이에서 새끼양을 찾아왔으며, 그것들이 대들면 그것을 쳐죽였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이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렇다. 누가 과연 사자와 곰으로부터 자신의 새끼양을 건져내었는가? 다윗 자신이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이 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신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이 목자였지만 참된 목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던 것이다(시23:1~2).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찌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겠는가? 하나님께서 어찌 그를 흡족히 여기지 아니하셨겠는가? 형들이 선을 보고 있는 그 순간에도 그는 불평이나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양떼들을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그가 예수님의 조상으로 완전히 선택받은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B.C.995년경으로, 그가 왕위에 오른지 15년이 지난 때였다. 그는 이제 십여년간의 전쟁을 통해 주변의 나라들을 다 복속시켰다. 이때 그는 수 십 년간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러 있던 하나님의 궤를 자신의 궁으로 가져온다. 당시 다윗은 여부스인으로부터 산성을 빼앗은 산성에 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거하는 궁은 백향목으로 지어졌는데, 어찌 하나님의 궤를 펄럭이는 휘장 가운데 둘 수 있느냐고 생각했다. 그는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는 나단선지자를 불러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불러 정말 오랜만에 자신의 속마음을 말했다. "내가 애굽에서 나오던 날부터 지금까지 텐트에 살고 있었지만, 언제 내가 내 집을 지어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느냐? 하지만 다윗은 어떻게 나의 마음을 알고 나를 위해 집을 지어준다고 하느냐? 기특하도다. 정말 기특하도다." 하나님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다윗에게 놀라운 축복을 선포하신다. 첫째, 그를 이스라엘의 위대한 주권자로 삼을 것이며, 둘째, 그의 이름마저 위대하게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셋째, 그의 자손들에게 왕직을 주어 왕조를 형성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넷째, 그의 후손들이 혹 실수한다해도 인생채찍으로만 다스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째, 그의 씨를 통해서 메시야가 나오게 해 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되었을까? 그 약속은 전부 다 성취되었다. 먼저 정말로 그의 이름이 위대하게 되었다. 이 세상의 피조물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메시야의 호칭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이름을 그곳에 올렸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첫 장 첫 소절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간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이 올라갔던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의 후손에서 메시야가 탄생했던 것이다.
그렇다. 다윗은 과연 어떻게 되어서 메시야의 조상이 될 수 있었는가? 만세전에 그가 메시야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예정되어 있었거나 그러한 예언이 있었는가? 없었다. 그는 보잘 것 없는 촌사람이며 목동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의 조상이라는 영예를 안게 된 것은 순전히 그가 온 맘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집을 지어드리겠다는 갸륵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말씀들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가 누구보다도 주님을 온 맘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어떤 일이라도 맡은 바 책임을 잘 감당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선택받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 곧 오늘날로 말하면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건축하고 교회를 온전케 하는 데에 우리가 가진 물질이나 능력이나 신분이나 은사와 달란트를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해주실 것이다. 당신의 이름과 관련된 이름으로 우리 이름을 기억해주실 것이다. 자, 어떠한가? 나같은 사람이 무엇할 수 있겠느냐면서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지 말라.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하게 쓰임받았던 사람들은 다 만세전에 예정을 입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당신의 이름도 얼마든지 천국에서 빛나는 이름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이미 만세전에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주시는 것이다. 이제 어느덧 2015년도 다 지나가고 있다. 부족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한 것도 작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2016년도를 마음에 가득히 품으라.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으라. 그리고 작지만 자신이 가진 능력에 따라 그것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길 것이라고 작정하라. 그러면 언젠가 당신의 이름도 다윗처럼 위대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