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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Az97xgPahEQ
날짜 2024-05-26
본문말씀 요한계시록 3:20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4-05-26(주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바른 구원(04)]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계3:2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Az97xgPahEQ

 

1. 들어가며

   예수님을 믿으면 즉시 성령께서 내주하시는가? 그리고 예수믿으면 성령세례를 받은 것인가? 보통 장로교 쪽에서는 예수님을 믿은 자는 자기 속에 성령이 내주하시며(고전12:3),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가르친다(고전12:13). 그러나 오순절 쪽에서는 예수님을 믿어도 성령을 받지 못한 자가 있으며 성령세례는 따로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보통 신앙인들은 각 교단의 가르침을 받은 목회자의 견해를 따라간다. 그렇다면 진정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무엇인가? 우선 우리는 충격적인 기사를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교회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언급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나오는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있었고 또한 '교회'라고 칭함을 받고 있으나 예수께서 그들 속에 거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계3:20). 고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성령의 내주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믿고는 있으나 성령께서 내주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반대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성령께서 내주하게 되심으로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게 할 수가 있는가? 여기 그 해답이 있다. 

 

2.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령께서 내주하는 것은 일치하는 것인가?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께서 곧바로 내주하시는가? 성경은 그럴 수 있다고 말씀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믿은 후 나중에 비로소 성령께서 들어오신다고 말하기도 한다. 전자는 예루살렘 교회의 경우(행2장)와 이방인 고넬뇨 가정의 경우(행10장)가 그렇다고 나오고, 후자는 사마리아 교회(행8장)과 에베소 교회(행19장)가 그렇다고 나온다. 그렇다. 성령께서는 믿을 때 곧바로 들어오기도 하시지만 시간차를 두고 들어오시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는 순간에 성령께서 곧바로 들어오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이번 말씀에 나오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7개의 교회들 가운데 라오디게아 교회의 경우가 그랬다. 이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있는 교회였으나 그들 속에 예수께서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 서 계신 채 있었기 때문이다(계3:20).

 

3.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람의 이름이 언제 생명책에 기록되는가? 그것은 사실 예수님의 생명이 내 영 속에 들어올 때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거듭났다고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받게 되면 그것을 가리켜 거듭났다고 말하는데, 이때 보혜사 성령께서 예수 생명을 가지고 우리 영 속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속에 성령께서 예수님의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신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4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생명책이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책은 예수 생명이 들어간 자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무리 거듭났다고 주장하거나 아무리 구원받았다고 주장한다고 하여도, 생몀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는 자는 아직 거듭나지 않은 자이며 아직 완전히 구원받은 자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생명책을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들여다볼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둘째, 수호천사가 있는질 살펴보는 것이다.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수호천사가 2명이 달라붙는다. 어린아기에게는 아기천사 2명이 있고, 청소년 이상이 되면 청년천사 2명이 달라붙어 있다. 모두 흰 옷을 입은 천사들이다. 그러므로 수호천사 두 명이 발견되는 사람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수호천사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확인하기가 어렵다. 

  셋째, 이것은 결과론적으로 아는 방식으로서, 예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오게 되면 나타나는 결과들을 통해서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방언을 말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방언이란 내 영 속에 성령께서 예수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말하듯이 영도 태어나면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방언을 말하고 있다고 해서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고 100%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믿어서 거듭나서 성령의 은사와 표적을 체험하며 방언도 말하고 예언도 하고 귀신을 쫓아내었던 자라도 타락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이름을 살아있는 동안에도 생명책에서 얼마든지 지워버리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거듭난 자가 다 방언을 말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고전12:30), 방언만으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넷째, 이것도 일종의 결과론적 방식으로 아는 것인데, 그 사람의 손에서 예수님의 보혈이 나오는지를 보는 것이다. 사람이 갓 구원받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그 손바닦에 보혈의 뭉쳐 있다. 아직 터치지 않고 있을 뿐 손바닦에 보혈이 들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그 보혈이 손에서 터치고 흘러나온다. 작게는 작은 빨대 크기에서 점차 큰 빨대 크기로 커진다. 그래서 1cm, 2cm...10cm까지 커진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손가락 끝에서도 샤워기의 물줄기처럼 흘러온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 역시 영의 눈이 아니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낙심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보혈이 흘러나오는 자가 안수했을 때 그 결과들을 우리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치유다. 만약 자신이 병든 자에게 안수를 했는데 그 사람이 나았다고 한다면 자신의 손에서 보혈이 흘러나올 확률이 매우 높다. 

 

4.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느 시대의 교회 모습인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가?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7교회가 아주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의 이름이 거론되는 순서를 보면 그 지명이 시계방향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즉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는 시계방향으로 존재하는 교회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특징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이 7개의 교회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교회들의 모습들 곧 초기교회와 핍박받는 교회, 순교하는 교회와 중세 암흑시대의 교회, 죽은 교회와 선교시대의 교회 그리고 마지막 시대의 교회상을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은 뜨뜻미지근한 마지막 시대의 교회상을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첫째, 이 교회는 책망만 있는 유일한 교회이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주님께서 이들을 토하여 버리고 싶다고 말씀하셨겠는가? 둘째, 이 교회는 물질적으로나 외적으로 볼 때에는 부자였고 부요했으며 아무 부족함이 없어 보이나, 영적으로 내적으로 볼 때에는 믿음이 가장 가난한 교회였고,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었으며, 그들은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으나 영적으로 볼 때는 벌거벗어서 수치스러운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라오디게아 교회는 순서상 맨 마지막에 언급되고 있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는 있으나 아직 자기들 속에 예수 생명이 자리잡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 중 단 한 가지도 없었던 것이다. 

 

5.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없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렇다면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아직 없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주님께서 그들을 자신의 입에서 토해버리고 싶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3:16). 그들의 존재는 예수님의 입 속에 있었다. 아직 주님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않고 입가에 멤돌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런가? 그들이 역겨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열정이 그만 다 식어 있었고, 죄에 대해서는 거부하지도 않는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그들을 뱉어버리고 싶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둘째, 주님께서 이제까지 계속해서 그들의 마음문 밖에서 서 계신 채 있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3:20). 언제부터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 밖에 서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오래 된 일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때도 끊임없이 그들의 마음의 문을 노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 속에는 예수 생명이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셋째, 주님께서 이 교회를 책망하시면서 자신을 소개하실 때에 아멘(참으로)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라고 소개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니었으며, 증인된 삶을 전혀 살고 있지도 않았으며, 영적으로 볼 때에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영적으로 새로운 창조를 시작해야 한다고 언급하신 것이다. 

 

6. 생명책에 자기의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반대로 자기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의 특징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조그마한 것이라도 칭찬을 들었던 나머지 6개의 교회의 사례를 통하여 과연 자기 안에 예수 생명을 가진 자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첫째, 에베소 교회의 이기고 있는 자와 같이 주님과 첫사랑을 해 본이 적이 있다면 그 사람 안에는 예수 생명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서머나 교회의 이기고 있는 자와 같이 핍박과 환란 가운데서도 죽기까지 충성하고 있다면 그 사람 안에도 역시 예수 생명이 있는 것이다. 셋째, 버가모 교회의 이기고 있는 자와 같이 대적자들에 의해 죽임당하는 순간에서도 결코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면 그 사람 안에 예수 생명이 있는 것이다. 넷째, 두아디라 교회의 이기고 있는 자와 같이 거짓된 선지자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고 그들에게 결코 좌지우지 되지 않고 있다면 그도 역시 예수 생명을 가진 자이다. 다섯째, 사데 교회의 이기고 있는 자와 같이 죄를 짓지 않거나 회개하여서 자신의 옷을 더럽히지 않고 있을 뿐더러, 또한 주님께서 원하시는 합당한 삶을 살아냄으로 흰 옷을 입고 있다면 그 사람 안에도 예수 생명이 있는 것이다. 마지막 여섯째로, 빌라델비아 교회의 이기는 자와 같이,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있다면 그도 역시 자기 안에 예수 생명이 있어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7.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데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입 속에 있는 라오디게아 성도의 처지일 수 있다. 믿고는 있지만 완전한 주님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경계선상에 있어서는 아니 된다. 아직도 외부에 있다면 이제는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하늘의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처방책에 순종하면 되는 것이다. 

  첫째, 뜨뜻미지근한 신앙을 버리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되 회개를 잘 하는 것이다(계3:19).

  둘째,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이자 하나님으로 인격적으로 모셔들이는 것이다(계3:20). 이 때에는 다음과 같이 진실된 마음으로 고백하여, 주님을 자기의 마음 속에 모셔들이기를 바란다. 

"주여, 이 시간 저는 새로운 각오와 결단을 주 예수님께 올려드립니다. 지금까지 저는 뜨뜻미지근하게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내 속에 예수님을 진정한 왕으로 모셔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롭게 출발하기를 원합니다. 2천년전 나를 위해 사람이 되시기를 자처하시고,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우리 주 예수님을 이 시간 내 마음 속에 영접합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심은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함이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나의 죄값을 처리하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또한 나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신 나의 주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의 죽음은 나의 죄를 씻어주기 위한 죽음이었고, 나를 살려주기 위한 죽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정작 죄가 없으셨기에, 죽으신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천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 이 시간 그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원히 맞아들입니다. 주님, 주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영원히 모셔들입니다. 내 마음 속에 들어오셔서 영원히 나와 함께 계시고, 세상 끝날까지 나를 떠나가지 마시고 나와 동행하옵소서. 주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시요, 나를 천국까지 인도해주실 영원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셋째, 이제까지 육적인 것을 추구하던 삶을 벗어나서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계3:17~18). 물질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기를 힘쓰는 것이다. 세상의 비싼 옷을 입었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세상 것을 추구하는 육적인 눈은 닫아버리고, 영적인 눈을 떠서 저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장차 하늘에서 받고 누릴 지위와 신분을 위해 부지런히 달려가는 것이다. 

 

8. 나오며

  예수님이 자기의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그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분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나도 좋아하고, 그분이 싫어하는 것이라면 나도 싫어하며, 그분이 추구하는 것이라면 나도 추구하는 것이다. 내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예수님 중심적으로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있는 자다. 이런 자의 이름이 바로 하늘에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의 것이나 물질적인 것이나 찰나적인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하늘의 것이요 영적인 것이며 그리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로 지금까지 뜨뜻미지근하게 살아온 성도가 있다면 이제부터는 자신의 삶을 가던 길에서 유턴해야 한다. 날마다 더욱더 순결한 믿음을 얻기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죄짓지 말고 죄를 지었으면 빨리 회개하여 날마다 자신의 더러워진 옷을 희고 깨끗한 옷이 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에서 지위와 신분을 얻는 데에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달란트를 아낌없이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그렇게 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삶이 바로 자기 안에 예수 생명이 있는 자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2024년 05월 26일(주일)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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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4.05.27 15:13

    1. 들어가며

      예수님을 믿으면 즉시 성령께서 내주하시는가? 그리고 예수믿으면 성령세례를 받은 것인가? 보통 장로교 쪽에서는 예수님을 믿은 자는 자기 속에 성령이 내주하시며(고전12:3),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가르친다(고전12:13). 그러나 오순절 쪽에서는 예수님을 믿어도 성령을 받지 못한 자가 있으며 성령세례는 따로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보통 신앙인들은 각 교단의 가르침을 받은 목회자의 견해를 따라간다. 그렇다면 진정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무엇인가? 우선 우리는 충격적인 기사를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교회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언급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나오는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있었고 또한 '교회'라고 칭함을 받고 있으나 예수께서 그들 속에 거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계3:20). 고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성령의 내주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믿고는 있으나 성령께서 내주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반대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성령께서 내주하게 되심으로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게 할 수가 있는가? 여기 그 해답이 있다. 

     

    2.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령께서 내주하는 것은 일치하는 것인가?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께서 곧바로 내주하시는가? 성경은 그럴 수 있다고 말씀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믿은 후 나중에 비로소 성령께서 들어오신다고 말하기도 한다. 전자는 예루살렘 교회의 경우(행2장)와 이방인 고넬가정의 경우(행10장)가 그렇다고 나오고, 후자는 사마리아 교회(행8장) 에베소 교회(행19장)가 그렇다고 나온다. 그렇다. 성령께서는 믿을 때 곧바로 들어오기도 하만 시간차를 두고 들어오시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는 순간에 성령께서 곧바로 들어오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이번 말씀에 나오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7개의 교회들 가운데 라오디게아 교회의 경우가 그랬다. 이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있는 교회였으나 그들 속에 예수께서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 서 계신 채 있었기 때문이다(계3:20).

     

    3.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람의 이름이 언제 생명책에 기록되는가? 그것은 사실 예수님의 생명이 내 영 속에 들어올 때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거듭났다고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받게 되면 그것을 가리켜 거듭났다고 말하는데, 이때 보혜사 성령께서 예수 생명을 가지고 우리 영 속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속에 성령께서 예수님의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신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4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생명책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책은 예수 생명이 들어간 자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무리 거듭났다고 주장하거나 아무리 구원받았다고 주장한다고 하여도, 생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 자는 아직 거듭나지 않은 자이며 아직 완전히 구원받은 자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생명책을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들여다볼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둘째, 수호천사가 있는질 살펴보는 것이다.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수호천사가 2명이 달라붙는다. 어린아기에게는 아기 천사 2명이 있고, 청소년 이상이 되면 청년 천사 2명이 달라붙어 있다. 모두 흰 옷을 입은 천사들이다. 그러므로 수호천사 두 명이 발견되는 사람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수호천사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확인하기가 어렵다. 

      셋째, 이것은 결과론적으로 아는 방식으로서, 예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오게 되면 나타나는 결과들을 통해서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방언을 말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방언이란 내 영 속에 성령께서 예수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말하듯이 영도 태어나면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방언을 말하고 있다고 해서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고 100%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믿어서 거듭나 성령의 은사와 표적을 체험하며 방언도 말하고 예언도 하고 귀신을 쫓아내었던 자라도 타락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이름을 살아 있는 동안에도 생명책에서 얼마든지 지워버리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거듭난 자가 다 방언을 말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고전12:30), 방언만으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넷째, 이것도 일종의 결과론적 방식으로 아는 것인데, 그 사람의 손에서 예수님의 보혈이 나오는지를 보는 것이다. 사람이 갓 구원받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그 손바에 보혈 뭉쳐 있다. 아직 터치지 않고 있을 뿐 손바에 보혈이 들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그 보혈이 손에서 터치고 흘러나온다. 작게는 작은 빨대 크기에서 점차 큰 빨대 크기로 커진다. 그래서 1cm, 2cm...10cm까지 커진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손가락 끝에서도 샤워기의 물줄기처럼 흘러온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 역시 영의 눈이 아니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낙심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보혈이 흘러나오는 자가 안수했을 때 그 결과들을 우리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치유다. 만약 자신이 병든 자에게 안수를 했는데 그 사람이 나았다고 한다면 자신의 손에서 보혈이 흘러나올 확률이 매우 높다. 

     

    4.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느 시대의 교회 모습인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가?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7교회가 아주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의 이름이 거론되는 순서를 보면 그 지명이 시계 방향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즉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는 시계 방향으로 존재하는 교회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특징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이 7개의 교회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교회들의 모습들 곧 초기교회와 핍박받는 교회, 순교하는 교회와 중세 암흑시대의 교회, 죽은 교회와 선교시대의 교회 그리고 마지막 시대의 교회상을 그대로 표현해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은 뜨뜻미지근한 마지막 시대의 교회상을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첫째, 이 교회는 책망만 있는 유일한 교회이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주님께서 이들을 토하여 버리고 싶다고 말씀하셨겠는가? 둘째, 이 교회는 물질적으로나 외적으로 볼 때에는 부자였고 부요했으며 아무 부족함이 없어 보이나, 영적으로 내적으로 볼 때에는 믿음이 가장 가난한 교회였고,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었으며, 그들은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으나 영적으로 볼 때는 벌거벗어서 수치스러운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라오디게아 교회는 순서상 맨 마지막에 언급되고 있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는 있으나 아직 자기들 속에 예수 생명이 자리잡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 중 단 한 가지도 없었던 것이다. 

     

    5.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없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렇다면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아직 없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주님께서 그들을 자신의 입에서 토해버리고 싶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3:16). 그들의 존재는 예수님의 입 속에 있었다. 아직 주님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않고 입가에 돌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런가? 그들이 역겨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열정이 그만 다 식어 있었고, 죄에 대해서는 거부하지도 않는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그들을 뱉어버리고 싶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둘째, 주님께서 이제까지 계속해서 그들의 마음문 밖서 계신 채 있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3:20). 언제부터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 밖에 서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 오래 된 일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때도 끊임없이 그들의 마음의 문을 노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 속에는 예수 생명이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셋째, 주님께서 이 교회를 책망하시면서 자신을 소개하실 때에 아멘(참으로)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라고 소개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니었으며, 증인된 삶을 전혀 살고 있지도 않았으며, 영적으로 볼 때에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영적으로 새로운 창조를 시작해야 한다고 언급하신 것이다. 

     

    6. 생명책에 자기의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반대로 자기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의 특징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조그마한 것이라도 칭찬을 들었던 나머지 6교회의 사례를 통하여 과연 자기 안에 예수 생명을 가진 자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첫째, 에베소 교회의 이기고 있는 자와 같이 주님과 첫사랑을 해 적이 있다면 그 사람 안에는 예수 생명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서머나 교회의 이기고 있는 자와 같이 핍박과 환란 가운데서도 죽기까지 충성하고 있다면 그 사람 안에도 역시 예수 생명이 있는 것이다. 셋째, 버가모 교회의 이기고 있는 자와 같이 대적자들에 의해 죽임당하는 순간에서도 결코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면 그 사람 안에 예수 생명이 있는 것이다. 넷째, 두아디라 교회의 이기고 있는 자와 같이 거짓된 선지자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고 그들에게 결코 좌지우지 되지 않고 있다면 그도 역시 예수 생명을 가진 자이다. 다섯째, 사데 교회의 이기고 있는 자와 같이 죄를 짓지 않거나 회개하여서 자신의 옷을 더럽히지 않고 있을 뿐더러, 또한 주님께서 원하시는 합당한 삶을 살아냄으로 흰 옷을 입고 있다면 그 사람 안에도 예수 생명이 있는 것이다. 마지막 여섯째로, 빌라델비아 교회의 이기는 자와 같이,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있다면 그도 역시 자기 안에 예수 생명이 있어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7.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데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입 속에 있는 라오디게아 성도의 처지일 수 있다. 믿고는 있지만 완전한 주님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경계선상에 있어서는 아니 된다. 아직도 외부에 있다면 이제는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하늘의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처방책에 순종하면 되는 것이다. 

      첫째, 뜨뜻미지근한 신앙을 버리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되 회개를 잘 하는 것이다(계3:19).

      둘째,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이자 하나님으로 인격적으로 모셔들이는 것이다(계3:20). 이 때에는 다음과 같이 진실된 마음으로 고백하여, 주님을 자기의 마음 속에 모셔들이기를 바란다. 

    "주여, 이 시간 저는 새로운 각오와 결단을 주 예수님께 올려드립니다. 지금까지 저는 뜨뜻미지근하게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내 속에 예수님을 진정한 왕으로 모셔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롭게 출발하기를 원합니다. 2천 년 전 나를 위해 사람이 되시기를 자처하시고,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우리 주 예수님을 이 시간 내 마음 속에 영접합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심은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함이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나의 죄값을 처리하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또한 나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신 나의 주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의 죽음은 나의 죄를 씻어 주기 위한 죽음이었고, 나를 살려 주기 위한 죽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정작 죄가 없으셨기에, 죽으신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천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 이 시간 그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원히 맞아들입니다. 주님, 주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영원히 모셔들입니다. 내 마음 속에 들어오셔서 영원히 나와 함께 계시고, 세상 끝날까지 나를 떠나가지 마시고 나와 동행하옵소서. 주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시요, 나를 천국까지 인도해 주실 영원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셋째, 이제까지 육적인 것을 추구하던 삶을 벗어나서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계3:17~18). 물질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기를 힘쓰는 것이다. 세상의 비싼 옷을 입었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세상 것을 추구하는 육적인 눈은 닫아버리고, 영적인 눈을 떠서 저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장차 하늘에서 받고 누릴 지위와 신분을 위해 부지런히 달려가는 것이다. 

     

    8. 나오며

      예수님이 자기의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그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분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나도 좋아하고, 그분이 싫어하는 것이라면 나도 싫어하며, 그분이 추구하는 것이라면 나도 추구하는 것이다. 내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예수님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 있는 자다. 이런 자의 이름이 바로 하늘에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의 것이나 물질적인 것이나 찰나적인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하늘의 것이요 영적인 것이며 그리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뜨뜻미지근하게 살아온 성도가 있다면 이제부터는 자신의 삶을 가던 길에서 유턴해야 한다. 날마다 더욱더 순결한 믿음을 얻기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죄짓지 말고 죄를 지었으면 빨리 회개하여 날마다 자신의 더러워진 옷을 희고 깨끗한 옷이 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에서 지위와 신분을 얻는 데에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달란트를 아낌없이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그렇게 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삶이 바로 자기 안에 예수 생명이 있는 자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2024년 05월 26일(주일)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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