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3(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신론(神論)(05)] 신약시대에 비로소 계시된 하나님의 놀라운 칭호는 무엇인가?(갈4:4~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PQWaNdC6uqY
1. 들어가며
하나님을 칭하는 용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구약성경을 찾아보면, 하나님에 대하여 부르는 칭호들와 이름으로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으로는 "엘로힘(하나님), 엘(하나님), 엘룐(높으신 하나님), 엘리욘(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엘 솨다이), 전능자(솨다이), 주님(아돈), 나의 주님(아도나이), 여호와(야훼), 만군의 여호와(여호와 체바오트)" 등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 보면 이러한 하나님의 칭호들와 이름 외에 매우 특한 칭호가 하나 더 등장한다. 그것은 대체 무엇이며,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2.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증거가 있는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다. 하나님만 홀로 스스로 계시는 것이다. 그렇다. 이 우주 만물의 모든 것들은 다 원인이 있기에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 만큼은 원인이 없이 스스로 계신다. 그럼, 하나님만이 원인이 없이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그분의 유일한 이름에서부터 발견된다. 왜냐하면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인데, 그 이름의 뜻이 '스스로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출3:14). 그런데 스스로 계신 하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딤전6:16). 왜냐하면 하나님은 뼈와 살이 없는 영이시기 때문이다(눅24:39, 요4:24). 그러나 그분은 존재하신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영영 알 수가 없는가? 아니다. 알 수가 있다. 그것은 2가지 증거로 알 수 있다.
첫째, 이는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방식인데,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는 분이지만 그분이 만드신 창조물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기 때문이다(시19:1~6). 그러므로 우리드른 그분이 만드신 창조물들을 통해서 그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없었지만 있게 만드신 절대 창조주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계신지 아니 계신지는 그분이 만드신 창조물들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이다(롬1:20).
둘째, 이는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방식인데,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기 때문이다(사9:6). 하나님은 볼 수 없어도 그분이 보내신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보내심을 받은 분이며,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파송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33년반의 생애를 사셨다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아버지께서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떻게 불렀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사실상 하나님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분명한 뜻은 모세시대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출6:2~3). 그러다가 모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이름과 뜻을 알려주셨으니, 그것은 바로 '여호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발음은 히브리어 성경학자들이 모음을 붙여서 만들어낸 것이다. 원래 하나님의 이름은 자음자 4개만 있었다(신명사문자). '요오드, 헤, 와우, 헤'가 그것이다. 그러다가 히브리성경을 연구하는 맛소라 학자들이 '아도나이'라는 글자의 모음을 신명사문자에 붙여서 만든 발음이 '여호와'이다. 그런데 자음들 중에 '요오드'와 '와우'를 어떻게 발음하느냐에 따라서, 그 이름이 음가는 '여호와'가 되기도 하고, '야훼'가 되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야훼'가 더 맞는 발음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말 개역개정성경이 '여호와'라는 발음을 채택하여 쓰고 있기 때문에 통상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십계명의 제3계명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않으려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명사문자를 부를 때에는 '여호와'라고 부르지 않고, '아도나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나의 주여'라는 뜻을 가졌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은 쓸 때에는 '여호와'라고 쓰고, 읽을 때에는 '아도나이'로 읽고 있다. 그리고 '여호와'라는 그의 이름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혹은 나는 나다)'라는 것이다.
4.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그 호칭은 무엇인가?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지칭하는 새로운 명칭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이 익히 들어보지 못한 엄청난 명칭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이제는 '아버지'라고 알려주셨기 때문이다(마6:6,9).
마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6:9~10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명칭을 '하나님'이라는 명칭에서 이제는 '아버지'라는 명칭으로 불러야 한다고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명칭은 이전까지는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만 그렇게 부를 수 있는 명칭이었다(막14:36).
막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그런데 예수께서 오심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제자들도 그렇게 부르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에게만 아버지였다가,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확실히 말해주었다(롬8:15, 갈4:6).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살이]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아들삼는)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갈4:6 너희가 아들[들]이므로 하나님이 그[의]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들]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5. 하나님의 호칭은 계속해서 어떻게 달라져 왔는가?
성경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하나님의 칭호는 계속해서 추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엘로힘으로부터 시작하지만 맨 나중에는 만군의 여호와까지 그 칭호가 추가되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 마지막으로 사용된 칭호는 무엇인가?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이다. 이는 히브리어로 '여호와 체바오트'라는 것인데, 그 뜻은 '모든 군대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적으로는 '모든 천사들의 하나님'을 뜻한다(왕상22:19).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천사들로부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신다는 뜻이요, 천사들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창조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천사들 중의 일부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거역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지혜롭게 창조하셨고 능력있게 창조한 루시엘(나중에는 '루시퍼'가 됨)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마음을 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탄마귀가 된 루시엘은 점차적으로 자신의 세력을 규합하여 천사들의 /13을 자기의 부하로 만들어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다. 그런데 천사들은 원래 자기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처소인 천국을 떠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사시대부터 '만군의 여호와'라는 칭호를 허용하셨다. 그래서 다윗도 이러한 칭호를 즐겨 사용한 바 있다(삼상17:45, 삼하7:27).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천사들이 반역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돌이키기를 원하셨음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언제까지나 '만군의 여호와'라 불리기를 원한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천사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러한 타락한 천사들을 하늘에서 내쫓으신다. 그리고 그들을 가두는 감옥이자 형벌의 장소로서 불못을 준비하신다(마25:41). 왜냐하면 천사들은 종으로 창조했기에 종이 주인의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어떤 결과가 있는지를 분명하게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5.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칭호를 '아버지'라고 새롭게 제시하셨는가?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장차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부르는 칭호로서 새로운 호칭을 제시하신다. 그것은 '아버지'라는 명칭이다. 하나님을 이제는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한 것이다(마6:9).
그런데 이것은 사실 하나님의 호칭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하나님의 호칭은 초월해 계시는 신적 존재이자 전능하신 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새롭게 알려준 하나님에 대한 호칭은 '아버지'였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라는 관계에서,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로 달라질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멀리 떨어져 계신 하나님이 이제는 가장 가까이 다가오시는 분으로 그 명칭이 바뀌는 것이다.
6.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인간들의 아버지가 되시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되어서 인간들의 아버지가 되시었는가? 그것은 아들의 영을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의 마음 속에 넣어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아들이 영이 우리 마음 속에 아들삼는 영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것이다(롬8:15, 갈4:6). 그리고 그것은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시어 생명주는 영이 되심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일이었다(고전15:45). 예수께서 보혜사 성령으로 다시 오시어 사람들 속에 내주하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은 단순한 선언에 의한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결코 변할 수 없는 장치를 우리 마음 가운데 장착하시어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놓으셨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영이다. 사람의 영은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창조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의 영이 그 사람의 영 속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7. 왜 하나님께서는 그냥 인간들을 당신의 아들들이라고 명하지 않고 아들의 영을 보내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그냥 당신의 아들들이라고 명하심으로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이 아니라 굳이 당신의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 가운데 보내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가? 그것은 천사들의 타락 때문이었다. 천사들도 우리 인간처럼 영으로 창조된 피조물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영 속에는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없었다. 그러므로 천사들 속에는 하나님께서 내주하시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처음부터 다르게 창조하셨다. 인간의 영 속에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자기의 영 속에 담을 수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영 속에 들어오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거치셨다. 보이지 않는 영이 보이는 육체를 입으신 것이다. 그리고 그 육체를 부활체로 만드셨으며, 동시에 존재하는 하나님으로 되돌아가셨다. 그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다. 그러므로 오늘날 모든 믿는 자들은 어디에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굳이 인간 속에 들어오시되 아들의 영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가? 그것은 천사들의 일부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여 떨어져나갔기 때문에, 인간만큼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신 분이라 아버지를 거역할 수도 없고 떠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없고 떠나갈 수도 없는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드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 인간들이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도었다면, 우리는 사실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떠나갈 수도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어주셨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렇게 바라고 소망했던 것은 천사들이 절대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고 떠나가지도 말기를 바라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없고 떠나갈 수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새롭게 창조하신 것이다.
8. 하나님께서 이제 믿는 사람들의 아버지가 되셨다는 것은 그에게 어떤 혜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신약시대의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와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였다면, 신약시대에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들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보다 확연히 달라진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더 많은 혜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첫째,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이제는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응답해주시겠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해주시겠다는 것을 뜻한다(마7:7~9). 이는 하나님께서 이제는 우리 인간과 멀리 떨어진 초월자가 아니라 친밀한 아버지로서 우리의 사정을 세세히 살펴보시면서 더 좋고 유익한 것으로 응답해주신다는 뜻이다.
마7:7~11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둘째, 우리를 징계하여도 아예 저주하여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잠시 징계하시는 수준으로 징계하신다는 뜻이다(히12:8~11).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이제 종의 신분이 아니라 아들의 신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종은 주인의 말을 순종하지 않으면 해고를 당하든지 엄청난 형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도 아니며, 아버지가 아들을 죽기까지 형벌을 주는 것도 아니다. 징계를 한다고 할지라도 잠시 징계하는 것이요, 우리로 돌이키게 하는 징계를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12:8~11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셋째, 아버지의 말씀에 자발적으로 충성하는 자는 아들의 신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상속자의 신분으로 바꾸어주신다는 것이다(갈4:7, 롬8:17). 천국에 들어간 모든 성도들의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어떤 이는 아들의 신분에서 더 올아가 상속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아버지의 말씀에 충성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을 자가 되기를 바라신다. 그들은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될 것이고, 주인노릇을 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참고로 천사들은 종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절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없고, 아무리 충성한다고 할지라도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을 상속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9.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한 사람도 없었는가?
그렇다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한 사람도 없었는가? 그렇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아들의 영 혹은 아들삼는 영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경륜상 그렇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아직 아들이 나타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공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천국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니라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낙원에 있다가 예수께서 부활후 승천하실 때에 한꺼번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천국의 영토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상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한 사람에게도 아들의 영이 들어간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성도들에게도 역시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 그들은 아들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첫째로는 장차 그렇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으며, 둘째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한 분이시기 때문에 지음을 받은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언급하신 것이다(신32:6, 사64:8, 말1:6).
신32:6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사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말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0. 나오며
우리는 하나님의 명칭을 통하여 만군의 여호와의 슬픔과 아버지의 하나님의 기대를 살펴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는 만군의 여호와라 불리기를 기뻐하셨다. 하지만 천사들 중의 일부가 자유의지로 그렇게 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아들의 영을 집어넣어서 절대 하나님을 거역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드셨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부터 인간은 자기 속에 아들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하나님의 아들들은 본질상 하나님을 거역할 수 없고 떠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나가는 일이 종종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이것을 선택할 것인지 저것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자유의지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 속에는 조상 적부터 내려온 수많은 악한 영들이 가득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르기로 날마다 결정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 속에 들어 있어서 신앙을 방해하는 악한 영들을 추방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충성'과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들로 굳어져 가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2024년 11월 03일(주일)
정보배목사
1. 들어가며
하나님을 칭하는 용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구약성경을 찾아보면, 하나님에 대하여 부르는 칭호들과 이름으로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으로는 "엘로힘(하나님), 엘(하나님), 엘룐(높으신 하나님), 엘리욘(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엘 솨다이), 전능자(솨다이), 주님(아돈), 나의 주님(아도나이), 여호와(야훼), 만군의 여호와(여호와 체바오트)" 등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 보면 이러한 하나님의 칭호들과 이름 외에 매우 특이한 칭호가 하나 더 등장한다. 그것은 대체 무엇이며,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2.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증거가 있는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다. 하나님만 홀로 스스로 계시는 것이다. 그렇다. 이 우주 만물의 모든 것들은 다 원인이 있기에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만큼은 원인이 없이 스스로 계신다. 그럼, 하나님만이 원인이 없이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그분의 유일한 이름에서부터 발견된다. 왜냐하면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인데, 그 이름의 뜻이 '스스로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출3:14). 그런데 스스로 계신 하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딤전6:16). 왜냐하면 하나님은 뼈와 살이 없는 영이시기 때문이다(눅24:39, 요4:24). 그러나 그분은 존재하신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영영 알 수가 없는가? 아니다. 알 수가 있다. 그것은 2가지 증거로 알 수 있다.
첫째, 이는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방식인데,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는 분이지만 그분이 만드신 창조물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기 때문이다(시19:1~6).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분이 만드신 창조물들을 통해서 그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없었지만 있게 만드신 절대 창조주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계신지 아니 계신지는 그분이 만드신 창조물들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이다(롬1:20).
둘째, 이는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방식인데,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기 때문이다(사9:6). 하나님은 볼 수 없어도 그분이 보내신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보내심을 받은 분이며,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파송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33년 반의 생애를 사셨다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아버지께서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떻게 불렀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사실상 하나님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분명한 뜻은 모세시대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출6:2~3). 그러다가 모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이름과 뜻을 알려 주셨으니, 그것은 바로 '여호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발음은 히브리어 성경학자들이 모음을 붙여서 만들어 낸 것이다. 원래 하나님의 이름은 자음자 4개만 있었다(신명사문자). '요오드, 헤, 와우, 헤'가 그것이다. 그러다가 히브리 성경을 연구하는 맛소라 학자들이 '아도나이'라는 글자의 모음을 신명사문자에 붙여서 만든 발음이 '여호와'이다. 그런데 자음들 중에 '요오드'와 '와우'를 어떻게 발음하느냐에 따라서, 그 이름이 음가는 '여호와'가 되기도 하고, '야훼'가 되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야훼'가 더 맞는 발음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말 개역개정성경이 '여호와'라는 발음을 채택하여 쓰고 있기 때문에 통상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십계명의 제3계명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않으려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명사문자를 부를 때에는 '여호와'라고 부르지 않고, '아도나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나의 주여'라는 뜻을 가졌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쓸 때에는 '여호와'라고 쓰고, 읽을 때에는 '아도나이'로 읽고 있다. 그리고 '여호와'라는 그의 이름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혹은 나는 나다)'라는 것이다.
4.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그 호칭은 무엇인가?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지칭하는 새로운 명칭을 알려 주셨는데, 그것이 익히 들어보지 못한 엄청난 명칭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이제는 '아버지'라고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마6:6,9).
마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6:9~10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명칭을 '하나님'이라는 명칭에서 이제는 '아버지'라는 명칭으로 불러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명칭은 이전까지는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만 그렇게 부를 수 있는 명칭이었다(막14:36).
막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그런데 예수께서 오심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제자들도 그렇게 부르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에게만 아버지였다가,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확실히 말해 주었다(롬8:15, 갈4:6).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살이]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아들삼는)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갈4:6 너희가 아들[들]이므로 하나님이 그[의]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들]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5. 하나님의 호칭은 계속해서 어떻게 달라져 왔는가?
성경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하나님의 칭호는 계속해서 추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엘로힘으로부터 시작하지만 맨 나중에는 만군의 여호와까지 그 칭호가 추가되어 온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 마지막으로 사용된 칭호는 무엇인가?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이다. 이는 히브리어로 '여호와 체바오트'라는 것인데, 그 뜻은 '모든 군대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적으로는 '모든 천사들의 하나님'을 뜻한다(왕상22:19).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천사들로부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신다는 뜻이요, 천사들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창조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천사들 중의 일부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거역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지혜롭게 창조하셨고 능력 있게 창조한 루시엘(나중에는 '루시퍼'가 됨)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마음을 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탄 마귀가 된 루시엘은 점차적으로 자신의 세력을 규합하여 천사들의 1/3을 자기의 부하로 만들어 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다. 그런데 천사들은 원래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처소인 천국을 떠나면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사시대부터 '만군의 여호와'라는 칭호를 허용하셨다. 그래서 다윗도 이러한 칭호를 즐겨 사용한 바 있다(삼상17:45, 삼하7:27).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천사들이 반역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돌이키기를 원하셨음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언제까지나 '만군의 여호와'라 불리기를 원한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천사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러한 타락한 천사들을 하늘에서 내쫓으신다. 그리고 그들을 가두는 감옥이자 형벌의 장소로서 불못을 준비하신다(마25:41). 왜냐하면 천사들은 종으로 창조했기에 종이 주인의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어떤 결과가 있는지를 분명하게 그들에게 알려 주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5.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칭호를 '아버지'라고 새롭게 제시하셨는가?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장차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부르는 칭호로서 새로운 호칭을 제시하신다. 그것은 '아버지'라는 명칭이다. 하나님을 이제는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한 것이다(마6:9).
그런데 이것은 사실 하나님의 호칭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하나님의 호칭은 초월해 계시는 신적 존재이자 전능하신 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새롭게 알려 준 하나님에 대한 호칭은 '아버지'였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라는 관계에서,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로 달라질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멀리 떨어져 계신 하나님이 이제는 가장 가까이 다가오시는 분으로 그 명칭이 바뀌는 것이다.
6.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인간들의 아버지가 되시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되어서 인간들의 아버지가 되시었는가? 그것은 아들의 영을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의 마음 속에 넣어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아들의 영이 우리 마음 속에 아들삼는 영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것이다(롬8:15, 갈4:6). 그리고 그것은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시어 생명주는 영이 되심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일이었다(고전15:45). 예수께서 보혜사 성령으로 다시 오시어 사람들 속에 내주하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은 단순한 선언에 의한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결코 변할 수 없는 장치를 우리 마음 가운데 장착하시어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 놓으셨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영이다. 사람의 영은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창조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의 영이 그 사람의 영 속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7. 왜 하나님께서는 그냥 인간들을 당신의 아들들이라고 명하지 않고 아들의 영을 보내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그냥 당신의 아들들이라고 명하심으로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이 아니라 굳이 당신의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 가운데 보내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가? 그것은 천사들의 타락 때문이었다. 천사들도 우리 인간처럼 영으로 창조된 피조물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영 속에는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없었다. 그러므로 천사들 속에는 하나님께서 내주하시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처음부터 다르게 창조하셨다. 인간의 영 속에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자기의 영 속에 담을 수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영 속에 들어오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거치셨다. 보이지 않는 영이 보이는 육체를 입으신 것이다. 그리고 그 육체를 부활체로 만드셨으며, 동시에 존재하는 하나님으로 되돌아가셨다. 그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다. 그러므로 오늘날 모든 믿는 자들은 어디에서나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굳이 인간 속에 들어오시되 아들의 영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가? 그것은 천사들의 일부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여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인간만큼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신 분이라 아버지를 거역할 수도 없고 떠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없고 떠나갈 수도 없는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드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 인간들이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면, 우리는 사실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떠나갈 수도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어 주셨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렇게 바라고 소망했던 것은 천사들이 절대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고 떠나가지도 말기를 바라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없고 떠나갈 수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새롭게 창조하신 것이다.
8. 하나님께서 이제 믿는 사람들의 아버지가 되셨다는 것은 그에게 어떤 혜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신약시대의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와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였다면, 신약시대에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들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보다 확연히 달라진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더 많은 혜택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첫째,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이제는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응답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겠다는 것을 뜻한다(마7:7~9). 이는 하나님께서 이제는 우리 인간과 멀리 떨어진 초월자가 아니라 친밀한 아버지로서 우리의 사정을 세세히 살펴보시면서 더 좋고 유익한 것으로 응답해 주신다는 뜻이다.
마7:7~11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둘째, 우리를 징계하여도 아예 저주하여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잠시 징계하시는 수준으로 징계하신다는 뜻이다(히12:8~11).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이제 종의 신분이 아니라 아들의 신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종은 주인의 말을 순종하지 않으면 해고를 당하든지 엄청난 형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도 아니며, 아버지가 아들을 죽기까지 형벌을 주는 것도 아니다. 징계를 한다고 할지라도 잠시 징계하는 것이요, 우리로 돌이키게 하는 징계를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12:8~11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셋째, 아버지의 말씀에 자발적으로 충성하는 자는 아들의 신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상속자의 신분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것이다(갈4:7, 롬8:17). 천국에 들어간 모든 성도들의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어떤 이는 아들의 신분에서 더 올라가 상속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아버지의 말씀에 충성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을 자가 되기를 바라신다. 그들은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될 것이고, 주인 노릇을 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참고로 천사들은 종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절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없고, 아무리 충성한다고 할지라도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을 상속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9.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한 사람도 없었는가?
그렇다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한 사람도 없었는가? 그렇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아들의 영 혹은 아들삼는 영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경륜상 그렇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아직 아들이 나타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공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천국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니라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낙원에 있다가 예수께서 부활 후 승천하실 때에 한꺼번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천국의 영토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상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한 사람에게도 아들의 영이 들어간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성도들에게도 역시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 그들은 아들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첫째로는 장차 그렇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으며, 둘째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한 분이시기 때문에 지음을 받은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언급하신 것이다(신32:6, 사64:8, 말1:6).
신32:6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사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말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0. 나오며
우리는 하나님의 명칭을 통하여 만군의 여호와의 슬픔과 아버지 하나님의 기대를 살펴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는 만군의 여호와라 불리기를 기뻐하셨다. 하지만 천사들 중의 일부가 자유의지로 그렇게 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아들의 영을 집어넣어서 절대 하나님을 거역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드셨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부터 인간은 자기 속에 아들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하나님의 아들들은 본질상 하나님을 거역할 수 없고 떠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나가는 일이 종종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이것을 선택할 것인지 저것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자유의지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 속에는 조상 적부터 내려온 수많은 악한 영들이 가득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르기로 날마다 결정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 속에 들어 있어서 신앙을 방해하는 악한 영들을 추방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충성'과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들로 굳어져 가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가는 것이다.
2024년 11월 03일(주일)
정보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