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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SstBrepIGQU
날짜 2017-01-29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2:1~3(신약 277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우상숭배의 스타일, 성령의 은사, 신앙고백의 중요성,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특징, 말을 못하는 우상, 말씀하시는 하나님

설명절이 되면 우리는 차례상을 장만하여 그 앞에 가서 식구대로 절하는 풍속을 지켜왔다. 하지만 그러한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해 잘 모른다. 조상 때부터 해 왔으니 그냥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카톨릭에서는 지금도 이러한 제사의식과 동일한 절차를 행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되면 달라지게 된다. 그것은 우상숭배행위이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배우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우리는 부모도 조상도 몰라보는 호로자식이라는 말도 듣게 된다. 기독교인은 진짜 호로자식들인가? 아니면 진짜 생명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1. 들어가며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하나님은 섬기는 것에는 어떤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까? 사도바울은 3차전도여행를 하면서 그가 3년전 2차전도여행(A.D.49~52) 중에 개척했던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은사의 수용과 활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한다(고전12:1~3). 우리 중 어떤 이는 이러한 바울의 권면을 통해서 자신이 그동안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말하지만 실은 우상숭배의 관념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도 있을른지도 모른다. 오늘 이 메시지가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히 있게 되기를 바란다.


2. 고린도교회는 어떻게 해서 세워지게 되었나?

  바울은 어떻게 되어서 고린도지역를 순회하며 전도하다가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일까? A.D.34년경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회심한다. 그리고 즉시 그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인 것을 증거하기 시작한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안디옥에서 사역하던 바나바의 부름을 받은 바울은 함께 안디옥교회의 사역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선교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2차전도여행 중에 그는 고린도에 머물게 되는데, 고린도는 B.C.27년 아가야의 수도가 된 곳이었다. 거대한 항구도시였던 고린도, 그 도시는 어떤 도시였을까? 이 도시는 무역을 통해 매우 부자가 되었고, 항구도시다보니 갖가지 우상숭배와 술 그리고 음행이 가득한 도시로 유명했다. 그러므로 사실 그곳에 사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이 풍성한데 왜 하나님을 찾겠으며,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에 하나인 음행을 충족시켜 주는데 무엇이 아쉬워 예수님을 믿겠다고 할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그곳에 보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된 바울전도팀은 그곳 선교에 용기를 내본다. 특히 얼마후 환상을 통해 주께서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으니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행18:9)"는 명령을 받고 1년 6개월을 그곳에 머무르면서 열심히 전도한 끝에 상당히 많은 숫자의 성도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3차전도여행중 에베소에 머물러 있을 때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런데 들려오는 고린도교회소식은 분쟁과 당파싸움에 한창중이고, 음행과 이혼과 소송문제와 성만찬과 부활의 문제로 시끄러웠고, 성령의 은사문제 등으로 교회사정이 매우 어지럽다는 것을 듣게 된다. 그리하여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신앙을 바로 잡아주고자 편지를 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인 것이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읽었던 고전12:1~3의 말씀은 고린도교회의 문제들 중에서 성령의 은사와 수용과 활용에 관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고전12~14장의 첫시작부분이다. 여기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영적인 것들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한다(고전12:1)" 이 말은 과연 무슨 뜻인가? 고린도교회가 은사에 대해 알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중요한 사항이 있음을 말해준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2가지로 언급하였다. 오늘 이 시간에는 바울의 이 2가지 언급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의 삶에도 과연 우상숭배적인 요소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구원얻을 만한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3. 은사를 수용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1)

  먼저,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성령의 은사를 수용할 때에 그들이 이방인으로 지내고 있었을 때의 우상을 숭배하던 방식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고전12:2). 고린도교회의 이방인성도들이 이방인으로 지냈 때 그들은 어떻게 우상을 섬겼을까? 놀랍게도 그들은 그들이 섬기는 신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도 정확히 알아보지도 않은 채 어른들이 행하던 방식을 그대로 수용하여 그대로 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우상이 무엇인가? 우상은 장인이 만들어놓은 수공품에 불과한 것이다. 그 재료는 금이나 은, 동이나 철, 나무 등이다. 장인이 그것을 사용해서 사람모양을 갖춘 어떤 우상을 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우상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상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듣지도 못하고 알아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고린도지방 사람들은 그냥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 우상이 끄는 그대로 끌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4. 은사를 수용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2)

  이어서 둘째,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를 은사를 추종하는 것보다는 주체적으로 자신의 입술을 사용하여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하는 더 중요하다고 언급한다(고전12:3). 사실 누군가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는 과정에 과연 은사가 중요할까 아니면 신앙고백이 더 중요할까? 사도바울은 단호하게 말한다. 신령한 은사들보다 성령 안에서 주체적으로 말하는 신앙고백이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다시말해, 이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고 눈으로 보지도 못했던 은사를 갖게 된 것을 보고 무조건 그것을 자랑하고 좇아가지 말고, 이제는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당시 고린도교회는 어떠했는가? 고린도교회는 사실 소수의 유대인과 다수의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유대교에서 종교생활을 하다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된 자는 절대 할 수 없는 말이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은 저주받을 존재입니다"라는 것이었고, 그리고 그들의 신앙고백은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통적인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은 저주받을 존재라면서 저주를 퍼부었으며, 오직 여호와만이 주님이라고 고백했다. 한편, 고린도의 이방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의 신인 아프로디테, 아폴로이며, 로마황제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하지만 고린도의 이방인이었다가 예수님을 믿게 된 자들은 달랐다. 예수님을 결코 저주받을 존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예수님만이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랬다. 사도바울은 어디서 온 지로 모르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영적인 은사를 무조건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분별해서 수용하고 그것을 활용할 때에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체적으로 예수님이야말로 자신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5. 오늘날 한국의 설명절의 풍속도와 우상숭배의 상관관계

  이것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자기 조상에게 음식을 잘 차려놓고 절하라고 하면 무조건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적어도 진짜 죽은 조상이 신이 되어 와서 복을 주는 것인지 알아봐야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오늘날 한국사람들의 3/4은 그것을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자기의 조상을 섬기는 예라고 하면서 따라행하고 있다. 큰 일이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모습은 영락없이 고린도인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대표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말 못하는 우상에게 그대로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일을 당할 때에는 이렇게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겠는가? "죽은 조상들이 와서 절을 받고 음식을 먹는 것이 사실인가요?", "그렇다면, 죽은 조상들은 일년내내 굶다가 명절이나 제삿날에만 와서 음식을 드시나요?", "죽은 조상은 죽어서 이미 육체가 없는 영적 존재인데 진짜 우리가 만든 물질적인 음식을 잡수실 수 있나요?", "죽은 조상에게 음식을 잘 차려드리면 복을 받는다는데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드려야지 이 정도로 괜찮나요?", "죽은 조상들 가운데 3대조상부터는 제사하지 않는데 그러면 그분들은 굶어도 괜찮은 사람들인가요?"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불경건스러운 말이라고 차단해버리고 무조건 머리숙여 절하라고 가르칠 뿐이다. 아니다. 그날 죽은 조상들은 결코 다시 오지 못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은 이 세상을 떠나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버리고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명절이나 젯삿날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날 애꿎은 귀신들이 들어와서 그 절을 대신 받아버린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죽은 조상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전10:20). 그렇다. 사람이 만든 수공품은 절을 받을 수 있는 인격적인 대상이 결코 아니다. 단지 수공품일 뿐이다. 그런데도 거기에다가 계속해서 음식을 차려놓고 향을 피워놓고 절을 하니 귀신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드리는 제사는 귀신들을 경배하는 행위가 될 뿐이다. 더욱이 이 세상에는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신도 없다.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며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고전8:4~6). 나머지는 다 피조물에 불과하다. 다만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천사들 중에 타락하여 이 세상으로 쫓겨나 가짜 세상신으로 활동하고 있는 귀신이 있을 뿐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6. 기독교에 안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 우상숭배 행위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삿날이나 명절에, 죽은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지 않거나 절하지 않으면 무슨 큰 일 날 것처럼 생각하고는 절을 강제한다. 아무것도 모르며 힘도 없는 어린얘들은 부모에 말에 무조건 따라서 행할 뿐이다. 그런데 그러한 우상숭배가 얼마나 가문에 저주를 가져오게 하고, 그것이 3~4대까지 내려간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출20:5) 하지만 그것을 말씀하시고 가르쳐주신 하나님을 모르니, 지금도 지극 정성으로 차례상을 차려놓고 절하는 사람들이수두룩하다. 그 일이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며, 얼마나 저주받을 행동이란 말인가? 그래서 사도바울은 경고했다. 말못하는 우상에게 끄는 대로 끌려가는 자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그냥 따라가게 되어있다고 말이다(고전12:2).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부터라도 이러한 허망한 우상숭배, 어리석은 우상숭배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한다. 어떤 이는 현대 기독교에 무슨 우상숭배행위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많은데 아니다. 있다. 왜냐하면 제사드리는 것의 변형이 바로 추도예배, 장례예배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에는 이런 것들을 예배라고 안 불렀다. 그냥 예식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느날부턴가 예배의 자리에 턱 들어와 앉아 있다. 사실 장로교는 1970년이전까지만해도 예식서에 추도예배와 장례예배가 들어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언젠부터가 그것이 예식서에 들어와 버젓이 터줏대감 행세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신앙의 선배들이 행하고 있고, 목회자가 하는 것이니 그냥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그것이 우상숭배임을 알라.


7. 나오며

  성도들이여, 이제는 말못하는 우상이 끄는 그대로 끌려가지 말라.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언제부터 행했는지, 그리고 무슨 이유와 어떤 절차로 행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아보고 행하라. 그리고 성경에 그러한 예가 나와 있는지를 살펴보라. 2천년전 골고다언덕의 제사로 인류의 제사는 끝났다. 더이상 제사드릴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제사의식을 해서는 아니 된다. 거짓된 우상숭배의식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과감히 떨쳐버려야 한다. 그래야 우상숭배로부터 우리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더불어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 알 수도 없는 영적인 은사들을 무조건 수용하지 말라. 그리고 따라가지도 말라. 분별해보고 수용하라. 그리고 그것을 사용할 때에는 오직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라.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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