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의인들이 여럿 나온다. 우리가 잘 아는 노아나 욥과 다니엘 등은 의인이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는 의인이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종교개혁자들은 의인의 반댓말을 악인이라고 해석해 버렸다. 즉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선을 행하지도 못하는 전적 부패와 전적 무능에 휩싸여 있는 자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려고도 하지 않고, 믿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지도 아니하고 있다. 큰 일이다. 어디서부터 이러한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오늘 그 실마리를 찾아서 떠나보자.
1. 들어가며
사도바울은 롬3:10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는 것일까? 아니다. 성경에 보면, 의인이라고 기록된 자들이 나온다. 구약성경에는 적어도 4사람이 나오고, 신약성경에는 3사람이 나온다. 족장시대에는 노아과 욥과 롯이 의인이었고(창6:9,겔14:14, 창18:23), 선지자들로서는 다니엘이 의인이었다(겔14:14).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세례요한의 부모였던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의인이었고(눅1:6), 이방인으로서는 고넬료가 의인이었다(행10:22).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말한 것이 틀린 것인가 아니면 성경의 다른 부분들이 틀린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적은 통전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이 쓰인 배경과 문맥을 잘 살펴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인이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의인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시간에는 정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것인지, 의인이 있다면 어떤 자를 의인이라고 하는 것인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믿는 이들도 주님 앞에 어떤 각오와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정말 이 세상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는가?
사도바울은 롬3장 10~18절을 통해서, 유대인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으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더욱이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는데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게 정말일까? 정말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찾는 자가 아무도 없으며, 선을 행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는가? 우리는 사도바울이 롬3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꿰뚫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도바울이 이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관하여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면, 우리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한 바울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전적 부패에 빠져 있으며, 전적으로 무능한 상태에 있다고 하는 종교개혁자들의 전적 타락의 교리를 무작정 받아들이고 말 것이다. 정말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하여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인가? 그리고 하나님이 구원해주시기까지 우리가 해야 할 도리나 책임은 아주 없는 것일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으려고 나와야 한다고 하셨고, 죄를 용서받으려면 회개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것도 다 하나님이 해 주셔야 하는 것인가?
3.인용성경구절에 대해서, 관주가 잘못 연결되는 바람에 빚어진 놀라운 진실
먼저, 우리는 롬3:10에서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의도와 이 본문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에 있어서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이 본문을 이렇게 이해한다. 롬3:10에 나오는 의인과 반대되는 자는 11~12절에 나오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전혀 찾지도 아니하며 선을 전혀 행하지도 않는 자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롬3:10~12의 말씀은 시편14:1~3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놀랍게도 성경에 자그맣게 기록된 관주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거기에 그렇게 쓰여있기 때문이다. 우선 롬3:10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렇다. 그런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에 대한 관주를 보면, 이 말씀이 구약에 있는 시편14:1이하를 인용한 것이라고 쓰여있다. 그러니 모든 독자들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 구약성경 시편 14:1이하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시편14편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 없다. 다만, 그 다음구절인 롬3:11~12의 말씀이 시편14:2~3에서 인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은 어디에 있는 말씀일까? 구약성경을 전부 뒤져보면, 이 말씀에 가장 가까운 말씀은 전도서 7장 20절인 것을 알 수 있다. 전7:20은 이렇다.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롬3:10의 말씀과 롬3:11~12의 말씀은 한 본문에서 따온 말씀이 아니다. 또한 롬3:13~18의 말씀도, 시편14편에 나오는 말씀들이 아니다. 이 말씀들은 여러 군데의 구약성경에서 인용한 복합인용성경구절들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롬3:10~18의 말씀이 시편14편 1절이하에서 인용한 말씀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롬3:10의 관주에 이 본문이 시14:1이하를 인용한 것이라고 쓰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의 각주는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누군가가 달아놓은 것일 뿐 정확무오한 해석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적어도 롬3:10~12의 말씀은 만큼은 시14:1~3에서 왔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아니다.
4. 사도바울은 무슨 뜻으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했는가?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전7:20의 말씀처럼, 이 세상에는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롬3:9의 말씀을 인용하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그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다 죄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롬3장10절이하에서 말하는 의인의 반대는 죄인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는 좀 다르다. 구약성경에는 의인의 반대어구로 대부분 쓰인 것은 악인이다. 다시 말해, 구약성경에서는 의인의 반대는 악인이다. 여기서 의인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복을 받을 사람을 지칭하고, 악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아 저주를 받을 사람을 가리킨다. 특히 시편과 잠언에 보면, 의인과 비교되는 사람이 거의가 다 악인으로 나온다. 시편에서는 13번을, 잠언에서는 무려47번이나 나온다. 그리고 성경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약 78번이나 나온다. 그렇다면 왜 구약성경의 기록자들은 의인의 반대개념으로 악인을 언급할 것일까? 그것은 한 사람은 복을 받지만 한 사람은 저주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롬3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성경구절은 전부 다 구약에 나오는 성경구절로서, 의인이 아닌 악인들의 경우를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사도바울이 롬3장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악인이라는 것을 언급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죄아래 놓여있는 죄인인 것을 말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을 알려주려하다보니 구약성경에 기록된 자들 중에서 악인의 경우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5. 바울의 의도와는 잘못 나가버린 종교개혁자들의 해석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어떻게 이 본문을 이용하고 있는가? 이 본문을 전적 타락 내지는 전적인 무능력의 증거구절로 인용한다. 모든 사람은 의인이 아니며, 전적으로 타락해 있고 전적으로 부패해 있으며, 전적인 무능력의 상태에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롬3:10에서 말하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의 말씀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죄 아래 놓여 있으므로 죄를 범하는 죄인이라는 뜻일 뿐, 모든 사람들이 다 전적인 부패와 전적인 무능력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6. 롬3:11~12에 나오는 악인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렇다면, 롬3:11~12에 나오는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하고, 다 치우쳐 무익한 일만을 일삼으며, 선을 전혀 행하지 않는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것은 시편14:1에 나온다. 시편14:1에 나오는 바로 그 사람이 이와같은 자라는 것이다. 그럼, 시14:1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어리석은 자'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행실이 가증하고, 선을 행하지도 아니한다. 한 마디로 그는 악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롬3:11~12에 말하고 있는 자는 시편14:1에 나오는 악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끝까지 하나님이 없다고 믿고 자기마음대로 악을 저지르고 있는 자는 대체 누구일까? 시편14편은 다윗의 시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는 다윗이 익히 알고 있는 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대부분의 성경주석가들은 그가 누군지 모른다고 한다. 어떤 이는 압살롬이 아닌가 말하기도 하는데 압살롬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시편14편에서 그자는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할 뿐더러 아주 부패한 자요 선을 전혀 행하지도 않으며, 악을 행하는 자이며,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시14:1~6). 하지만 그가 누군지를 히브리어 본문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나발'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 아비가일도 다윗에게 자신의 남편에 대해 말할 때 이렇게 말했다. "원하옵나니 내 주(다윗)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은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어리석은) 자니이다(삼상25:26)" 그렇다. 미련하다는 히브리어 단어가 바로 '나발'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14편에서 다윗이 말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는 나발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가 행하였던 모든 일들이 시편14편에 나오는 말씀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나발은 유다지파의 갈렙족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마땅히 베풀어야 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했으며, 자신이 받은 은혜마저도 갚을 줄을 몰랐으며, 소외되고 연약한 자들을 괴롭혔고, 자기에게 주어진 물질을 자신의 육체만을 위해 썼다. 그러므로 롬3:11~12에서 말하고 있는 자는 나발과 같은 자인 것이다. 결국 롬3:11~12에 나오는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악행만을 일삼는 나발과 같은 자를 가리킨다.
하지만 성경주석가들은 의인이 아닌 자들은 모두 나발과 같은 자라고 해석해버렸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해있으며, 선을 행하기에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라고 말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만을 살펴보아도, 예수믿지 않는 자들 중에도 많지는 않지만 선을 행하는 자가 있다. 그리고 불치병이나 위급한 일이 발생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죄인은 될지언정 악인이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지, 악인을 회개시키러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마9:13). 악인이란 누군가? 하나님이 없다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고의적으로 지키지 않으며, 자기 맘대로 행하는 자다. 이런 자는 결국 구원받을 수가 없다. 나중에 주님께서 심판하실 때에도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불못에 던진다고 하셨다(마13:49~50). 의인 중에서 죄인을 갈라내어 불못에 던진다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부인하며 악행을 일삼는 자 곧 악인은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7. 나오며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우리는 나발과 같은 악인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성령께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면 즉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잠28:13에서도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고 하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은 죄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받을 수 없고, 다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속죄의 방법을 통해서만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렇다. 이 세상에는 선만을 행하고, 아주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나발과 같은 악인은 아니다. 여기서 '악인'이란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지도 않고, 선을 행하지도 아니하며, 부패하여 온갖 악행만을 일삼는 자를 가리킨다. 그럼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첫째,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둘째, 오직 하나님께서 마련해준 속죄를 붙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속죄를 받아 죄용서를 받을 수 있다. 그래야 용서받은 죄인이 되어서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겸손한 시인과 회개 그리고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용서받는 죄인이 되고 칭의인이 되어, 천국에까지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