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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hiKQW3YP6JQ
날짜 2017-12-31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5:1~4(신약 28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바울이전한복음, 참된신앙, 성경대로, 말씀에근거한신앙,중세교회의잘못된구원론,개혁교회의치우친구원론,참된구원론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전해주었던 복음은 대체 어떤 것이었는가? 바울만이 새롭게 깨달은 내용이었는가? 아니면 조상들의 전통의 가르침이었는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똑같이 이러한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가 받아야 했고 전해주어야 할 참된 복음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기분은 따른 신앙도 아닐 것이며, 은사와 체험을 따라가는 것도 아닐 것이다. 또한 훌륭한 신학자나 목회자의 교리나 말씀을 따라가는 것도 사실상 아니다. 그것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고 붙들고 따라가야 할 신앙은 성경66권에 나온 신앙이다. 그 신앙만이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해준 신앙으로서 믿음과 회개를 통한 구원이다. 그런데 중세교회도 이것을 따르지 않았고, 심지어 종교개혁자들마저 이것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구원이 요원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개신교회는 온갖 타락의 양상으로 가득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후손들에게 과연 어떤 신앙을 물려주어야 하는가?

 

1. 들어가며

  바울은 A.D.55년경 3차전도여행중에 에베소에서 고린도교회에서 편지를 써 보낸다. 그는 그 편지에서 자신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전해주었던 복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언급한다. 그리고 자신은 자신이 깨달은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바로 그 복음을 전했는데, 그것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살아나셨다는 것이었다. 그는 왜 자신이 깨달은 복음을 전하지 않고 예수께서 가르쳐준 복음, 다시 말해 성경대로 메시야가 오셔서 죽으셨고 성경대로 메시야가 살아났다는 것을 전한 것일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전달받았고 전해주어야 할 복음은 대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참된 신앙이란 무엇이며, 바울은 그 신앙의 조건을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참된 신앙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주는 신앙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죽어서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졌다면 그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야 한다. 그렇다면, 참된 신앙 곧 자신의 영혼을 구원얻게 해주는 신앙은 어떤 것인가?

  사도바울은 고전15장 2절에서 참된 신앙의 2가지 요건을 말한다. 하나는 예수께서 전해준 복음 곧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는 신앙이라야 한다는 것이다(고전15:2). 여기서 "견고히붙잡다"는 헬라어동사는 "카타에코"라는 동사로서, "굳게 붙잡다. 꽉 붙들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신앙을 통해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께서 전해준 신앙 곧 하나님의 말씀을에 의한 신앙을 꼭 붙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한다면 우리는 결국에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신앙이란 말씀에 근거한 신앙이어야 하는 것이지, 기분을 따라 믿는 신앙도 아니며, 은사와 체험을 따라가는 신앙도 아니며, 어느 유명하고 잘 알려진 목회자나 신학자를 따라가는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오직 성경이 기록된 말씀을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오로지 주님께서 전해준 말씀만을 그들에게 전해주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자신의 영혼을 구원얻게 해주는 참된 신앙은 말씀을 따라가는 신앙, 말씀을 굳게 붙잡는 신앙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참된 신앙의 요소에 한 가지를 더 언급한다. 그것은 헛되이 믿지 않고, 근거와 이유를 알고 믿는 신앙이라야 한다는 것이다(고전15;2). 바울은 어찌하든지 헛되이 믿지 않았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럼, 헛된 믿는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무 이유나 근거가 없이 무턱대고 믿는 신앙이다. 여기서 이유나 근거는 물론 성경말씀이다. 성경말씀에 근거한 신앙이 참된 신앙이요 구원으로 이끌어주는 신앙이라는 것이다.

 

3. 천주교(로마카톨릭)의 신앙과 구원관은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

  그런데 오늘날 천주교(로마카톨릭)나 개혁교회는 과연 말씀의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인가? 우선 천주교를 보자. 천주교의 구원관은 이렇다. 천주교에서는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천주교회가 주는 의식에 참여해야 하고, 공로를 쌓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적어도 1년에 3번은 고해성사를 하고,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죄가 용서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중세시대에는 교회가 없으면 죄사함을 받을 수도 없다. 오로지 신부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하고 공로를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벌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라고 가르친다. 사람이 고해성사와 세례를 통해 죄는 용서받을지는 몰라도, 형벌은 면치 못한다고 하면서 그것을 면하기 위해서는 고행을 하든지, 공로를 쌓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만약 고행이나 공로가 양에 미치지 못하면 사람은 믿는 자라도 곧바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연옥에 들어간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거기서 형벌을 다 받은 후에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더욱 더 기가 막힌 것은 연옥에 있는 사람을 위해 지금 이 지상에서 헌금을 내면, 자기를 구원하고도 남은 성인들의 잉여공로가 그들에게 적용되어, 그들이 곧장 연옥에서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교황이 파는 면죄부를 비싼 돈을 주고 사게 되면, 자기가 죽고 난 다음에 연옥에 들어가지 않고 곧장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 때문에 신부가 교황을 대항하여 나섰으니 그가 바로 루터라는 신부다. 루터신부는 천주교가 돈을 걷기 위해 면죄부를 남발한다고 지적하면서, 면죄부와 같은 종이 따위가 어떻게 형벌을 면케 할 수 있느냐면서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렇다. 천주교회는 성경에도 없는 교황제도를 만들어내었고, 성경에도 없는 연옥교리와 면죄부교리를 만들어내었으니 천주교야 말로 가짜 신앙을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4. 개혁교회의 신앙과 구원관은 어떤 것이며, 어디에서부터 빗나가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개혁교회가 과연 성경말씀에 근거한 참된 구원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모두가 다 그렇다고 대답할른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만 중세교회로부터 믿음의 중요성을 회복시킨 것만큼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너무 나아갔다. 루터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데에는 오직 믿음으로 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다르다. 예수께서는 회개와 믿음으로서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눅17:13~14). 하지만 루터는 중세교회의 공로주의 구원관에서 탈피하고자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너무 지나쳤다. 결국에는 "오직 믿음만으로" 칭의를 얻고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루터는 믿음만으로 의롭다함을 받지 못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는 야고보서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야고보서는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하면서 그 책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기 못하겠다고 했다. 자신은 야고보서를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자신의 신학적교리가 맞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신약성경의 한 권을 성경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말하다니! 그것은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을 완성했다고 알려진 칼빈은 또 어떠했는가? 그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다 하나님의 작정과 선택을 받아서 그리고 만세전의 예정을 따라 된다고 했다. 그는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려다보니,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믿음을 갖게 되는 것도, 죄사함을 받기 위해 드리는 회개도 다 하나님께서 주셔야 믿을 수 있고 회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니 하나님이 아니면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인간은 아담의 범죄이후 전적으로 타락해버려서 스스로는 절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사람은 타락하기는 했어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총에 반응할 수 있을 정도는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꺼져가는 등불이요 상한 갈대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고, 완전히 상하지는 않았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총을 붙잡고 회개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루터나 칼빈은 신앙적으로도 많이 잘못되어 있었다. 성경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신앙적인 잘못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인격적, 도덕적으로도 많은 흠을 가지고 있었다. 루터는 자신의 종교개혁 논문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독일의 수상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청소하기 위해 2차세계대전 중에 무려 600만명을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칼빈은 또 어떤가?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중예정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서슴치 않고 자행했다. 그가 제네바시를 국가교회로 만든다고 하면서, 자신의 주장과 예정론교회를 따르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았다. 낫으로 목을 베어 죽였고, 화형시켜 죽였고, 목매달아 죽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종교국을 통해서 중세의 마녀사냥식으로 사람을 정죄하고 추방하여 죽이는 일을 계속했으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감히 누가 칼빈주의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칼빈이 죽고 난 후에도(A.D.1564년), 서양은 급속도로 칼빈주의화 되어갔다. 칼빈주의에 대항했다가는 그냥 정죄받고 죽임당하는 비극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종교개혁후 채 100년이 지나기도 전에, 서양의 모든 개신교는 칼빈주의화 되어버렸고, A.D.1648년에도 영국마저도 칼빈주의의 교리를 바탕으로 하는 신앙고백을 만들어내었으니 그것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다. 거기에는 만세전예정론과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교리화되어 있다. 그리고 다시 150년이 흘러, 청도교들이 칼빈주의 개혁신앙을 가지고 신대륙으로 건너가 미국을 세웠다. 그렇지만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개종을 강요하다가, 개종하지 않는 인디언들을 무차별로 죽였으니, 무려 250년간 약 6천만명을 학살했던 것이다. 이것이 개신교회의 역사다. 그렇다. 종교개혁자들의 인격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언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다가 개종하지 않으면 죽여버리라고 했는가? 개신교회는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대놓고 어긴 일들을 자행했을 뿐만 아니라, 개종하지 않는 자들을 즉결 처형함으로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 종교개혁자들은 자신의 교리와 신앙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용서해주지 못했다. 그런 자들을 죽여없애는 것이 마치 종교개혁 신앙이듯이 사람들을 잘못 인도했다. 그러니 지금도 칼빈주의 노선을 고집하는 자는 자기들만이 정통이고 나머지는 다 이단이라고 정죄하면서, 성경을 그대로 믿고 따르려는 사람들마저 가만 두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하는가? 루터가 칼빈처럼 자신의 신앙과 교리를 따르지 않으면 가차없이 죽여없애버리는 것이 참된 신앙인가? 오직 믿음과 만세전예정교리만이 정통신앙이고 나머지는 다 잘못된 신아이라는 말인가? 아니다. 우리는 바울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바울은 말했다. 자신이 전한 복음을 오직 예수께서 전해준 복음이었고, 그 복음을 예수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것을 믿는 신앙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우리도 성경대로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성경을 굳게 붙들어야 하고, 성경에 근거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5. 우리가 믿고 전해주어야 할 참된 신앙이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것이 참된 신앙이며, 어떤 것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신앙인가? 그것은 성경66권을 믿는 신앙이요, 성경66권을 따라가는 신앙이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교회의 의식을 통한 구원과 공로를 통한 구원으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믿음과 만세전예정으로 바꾸어놓았다. 아니다.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믿음만이 아니다.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한다. 만약 예수님을 믿고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결국 구원에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구원의 노정 안에는 들어왔으나 구원의 완성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성경66권에 나오는 구원관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것보다 더 나은 신앙고백이 나올른지는 모르겠으나 구원론에 관하여 지금까지 성경이 알려주고 있는 그것을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믿는 자 그리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를 구원해주신다(막1:15, 마4:17, 10:22, 24:13, 딤후4:7, 히3:14, 계2:5).
  둘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모든 인류의 죄를 속하고도 남지만, 그것을 믿지 못하는 자는 죄사함을 받지 못한다(요일2:2, 딤전2:6, 롬3:25~26, 요3:16).
  셋째, 비록 아담이 범죄하여 죄가 그의 후손에게 유전되었지만(롬5:12),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거나 타락하지는 않았으며 구원으로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롬2:9, 마12;20).
  넷째,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큰 것은 사실이지만(롬8:38~39),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총을 끝까지 거부하는 자는 결국 구원받을 수 없다(마22;1~8).
  다섯째, 이미 믿음과 회개를 통해 구원의 노정 안에 들어온 자라 할지라도(빌3:12~14, 고전7:27, 히12:1~2), 죄를 짓고도 회개치 않는 자는 구원에서 제외된다(계3:3,5, 계22:14~15). 그러므로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인내하고 회개하여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빌2:12)는 것이 바른 신앙이다.

 

6. 나오며

  그렇다. 그동안 우리가 들어왔던 개혁주의신앙은 사실상 많이 참된 구원론에서 많이 빗나가 있었다. 이제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으며, 사도들이 믿고 따랐던 바로 그 신앙을 회복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그것을 후손들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죽을 때에 우리도 구원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어떤 기분인가? 은사와 표적인가? 아니면 정통교리인가? 그래도 아니면 수만명을 목회하고 있는 목회자의 가르침인가? 아니다. 이것들은 매우 위험스러운 것들이다. 우리는 성경을 붙들어야 한다. 성경66권에 나오는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영혼을 천국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7년 12월 31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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