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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OzM42hIgmdA
날짜 2018-02-11
본문말씀 이사야 55:6~7(신약 1046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회개, 메타노에오, 슈브,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차이점, 죄로부터 돌아섬, 하나님께로 돌아감, 믿음과 회개의 상관관계, 사울왕과 가룟유다, 다윗과 베드로

누구든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할까? 대부분 회개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회개를 해야 용서받는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인가? 오늘의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회개기도를 들으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음성으로 들려주시는 시대는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회개했을 때 정말 내 죄가 용서되었는지를 과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성경으로 돌아가 그 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도 히브리어가 말하는 회개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헬라어는 논리적인 언어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의도를 드러내주는 데에는 미흡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어에서 회개를 과연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회개인지를 알고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회개를 할 수 있으며, 그래야 죄를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회개를 하고 있는가? 오늘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회개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자.

 

1. 들어가며

  사람은 과연 어떻게 회개를 해야 회개가 온전히 이루어진 것인가? 또한 회개가 온전히 이뤄질 때에는 어떤 결과가 따라오는가?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구약의 사울왕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시인했다. 자신의 죄를 지적한 사무엘에게 "내가 범죄하였나이다"고 했기 때문이다(삼상15:24). 그는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분명히 자신의 입술로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지 못했고 버림받아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고 말았다. 또한 신약의 12사도들 가운데 가룟유다의 경우를 보자. 그도 분명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알았다. 더욱이 그는 스스로 뉘우치기까지 했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행동까지 했다(마27:3~4). 하지만 그도 끝내 버림을 당했고 결국 영원한 멸망에 처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구약의 사울왕이나 신약의 가룟유다가 어찌 보면 회개한 것 같은데, 이들은 왜 그들이 했던 회개가 받아들여지지 아니했던 것일까? 다시 말해 왜 그들은 자기가 지은 죄를 용서받지 못했던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회개를 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없는 회개를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회개를 할 수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는 회개를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2. 회개하려면 어떤 회개를 해야 하는가?

  사울도 왕이었고 다윗도 왕이었다. 사울왕도 범죄했고 다윗왕도 범죄했다. 그후 둘 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하지만 사울왕은 용서받지 못했고, 다윗은 용서를 받았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하나님께서 다윗은 사랑하고 사울왕은 미워했던 것일까? 신약의 경우를 보자. 베드로도 12사도들 중의 하나이며, 가룟유다도 12사도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리고 둘 다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베드로는 용서를 받았고, 가룟유다는 용서를 받지 못했다. 왜 그러한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 그러므로 회개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다. 열심히 회개를 했는데도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는 회개를 했다면 자신의 죄는 여전히 남아있게 된다. 그러므로 회개를 하되 용서받는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이 말씀을 듣는 우리들도 과연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회개를 하고 있는가? 정말 회개를 통해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고 있는가?

 

3.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회개의 본 뜻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에 쓰인 원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사실 성경은 크게 2가지 언어로 기록되었다. 구약은 히브리어(아람어도 조금 있음)로 기록되었고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이 두 언어에는 약간의 다른 특징들이 있다. 신약의 헬라어는 히브리어에 대한 매우 논리적인 언어에 속한다. 그래서 동사 하나만 보더라도 엄청난 많은 정보를 담아내고 있다. 어떤 일을 해도 누가 그 일을 했는지가 분명하다. 혼자 그 일을 했는지 아니면 여러 사람이 했는지 알 수 있으며, 언제 그 일을 했는지 즉 과거에 했는지 지금하고 있는지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지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 번만 했는지 계속해야 하는 것까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히브리어는 그러한 기능이 훨씬 떨어진다. 히브리어는 논리적인 언어가 아니라 감성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대신 히브리어는 어떤 단어에 대한 기원을 알려준다. 즉 하나님의 의도가 들어있는 것이 히브리어인 것이다. 회개도 마찬가지다. 신약의 언어인 헬라어만 보아서는 우리가 어떻게 회개해야 하나님께서 인정해주는 회개를 하는 알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성경의 용례들을 통해서 회개에 대한 어원적인 뜻을 간파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어원적으로 볼 때 "회개"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 것일까?

 

4. 회개에 대한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헬라어에서 "회개"라는 단어는 어떤 것이며, 어떤 뜻을 지니고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헬라어로 "회개"라는 명사는 "메타노이아"라는 단어이고, 동사는 "메타노에오"이라는 단어다. 이 두 단어는 접두사인 "메타(뒤에, 후에)"에다가 "누스(이성, 생각)"라는 단어가 합해진 말에서 왔다. 그러므로 회개라는 뜻은 한 마디로 "뒤에 먹은 생각"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뒤에 가서 생각해보니 잘못되었다는 깨닫는 것이 회개인 것이다. 그렇다면, 깨닫고 마음만 고쳐먹으면 그것이 회개인가? 그렇게 하면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가 있는가? 결론적으로 그것은 아닌 것이다. 회개를 하려면 하나님께 인정받은 회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회개를 해야 한다. 그것은 어떤 단어에 대한 어원적인 뜻을 알려주는 히브리어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B.C.280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교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큰 일이 있었다. 그것은 히브리어로 되어있는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70명의 유대인 랍비들이 모여 히브리어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그것을 일컬더 "70인역(LXX)":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히브리어에 있어서 회개라는 단어가 실재하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70인역을 보면, 구약의 어떤 단어를 "메타노에오"로 번역해놓았던 것이다. 70명의 유대랍비 학자들이 "메타노에오"라는 단어를 어떤 히브리어에 적용하여 번역한 것이다. 그 단어는 바로 "슈브"라는 단어다. 이 단어의 뜻은 "돌아서다. 돌아가다. 돌아오다(return)"이라는 단어다.

  그렇다면, "슈브"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어떤 뜻을 지녔으며, 어떤 용례로 쓰인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 수년간 연구해온 히브리어학자들은 "슈브"라는 단어의 특징을 다음과 같은 4가지로 요약해 놓았다. 첫째, 슈브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총 1,000번 이상 나오는데, 그것이 오직 칼형(단순능동태)과 히필형(사역능동태)형태로만 나온다는 것이다. 즉 칼형이 약 75%가 나오고, 히필형이 25%가 나오더라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회개란 인간의 책임이 훨씬 더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회개하도록 시키시는 분이기는 하지만, 결국 회개를 결정하는 데에는 인간 스스로의 결정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둘째, 슈브는 생각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동작과 운동을 포홈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즉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고치지 않은 자를 일컬어 회개한 자라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셋째, 슈브는 일종의 조동사처럼도 쓰이는데, 그것은 반복하고 되풀이하는 기능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한 번 회개했다고 해서 더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회개해야 함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넷째로,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회개는 누구에게 돌아가야 끝이 나는데 그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슈브라는 개념은 이 마지막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죄를 뉘우친다고 해도 자신의 죄로부터 돌아서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회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55:7의 말씀은 회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그림같은 말씀이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악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들]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보라. [그리하면]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55:7)" 그렇다. 사람이 진정 자신의 회개를 인정받으려면 2가지가 필요한 것이다. 하나는 자신의 죄된 삶이나과 행위 그리고 말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다. 또 하나는 죄로부터 돌아선 후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서 죄용서를 구하고, 그런 후에는 그분이 주시는 처분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의 본질이요 속뜻이요 중요한 뜻이라는 것이다.

 

5. 나의 회개 진정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죄용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진정 회개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죄악된 행위로부터 돌아서야 하며,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먼저, 첫째로, 진정 회개한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죄로부터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  예레미야 25장 5절에서는 "너희는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나서 돌아오라고 하였다. 둘째, "너희는 악한 길과 악한 행위를 떠나라"고 했다(슥1:4). 또한 삼상7:3에서는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로 돌아오려거든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중에서 제거하라(삼상7:3)"고 명령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께서 인정해주는 회개를 하려면, 죄로부터, 죄된 행위로부터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소극적인 측면에서 보는 회개의 의미다. 그럼, 적극적인 의미로서 회개는 무엇인가? 그것은 둘째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 죄를 없애주시려고 친히 사람이 되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나아와 죄를 고백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실 수 있는 전능자 앞에 나아가야 한다. 이미 우리들이 지은 죄값을 다 지불해놓고 우리를 용서해주시려고 기다리시는 분에게 나아가야 한다.

 

6. 나오며

  왜 사울왕은 용서받지 못했고 다윗은 용서받았는가? 왜 사도베드로는 용서를 받았으나 사도가룟유다는 버림을 받았는가? 그것은 사울왕과 가룟유다는 범죄후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과 베드로는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렇다.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으려면, 온전한 회개를 해야 한다. 그것은 머리로만 인식하는 지적인 동의로서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뉘우치는 후회만으로 죄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회개를 해야 죄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죄용서를 베풀어주실 수 있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돌아온 탕자가 왜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는가? 그가 하나님과 아버지에게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죄를 짓고난 후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하나님께로 가야 한다.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는 것은 결코 죄용서받는 길이 아니다. 어떤 이는 죄를 지이 양심의 참소가 있을 때에 즉시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망설인다. 그러지 말라. 그러면 안된다. 그러다가는 가룟유다처럼 사탄의 표적이 될 수 있다. 그러다가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떨어질 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아무리 잘못을 범했어도 우리는 우의 죄를 용서해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로 가야 한다. 그래야 죄용서를 받을 수가 있다. 죄를 범했어도 주님을 피해 달아나면 아니 된다. 그분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려고 사람이 되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가서 그분이 베풀어주시는 용서를 받아야 진정한 회개를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이사야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건투를 빈다.

 

2018년 2월 11일(일)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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