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믿음과 회개를 통하여 1차적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가? 내 시간이 바쁘고 내가 써야 할 곳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쪼개어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만약 이러한 마음을 가진 성도가 있다면, 그는 주님께 시간을 드리는 것이 아까울 수 있고, 주님께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 아까울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후의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원래 아담의 범죄 가운데 태어나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도록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자들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온 인류의 대속제물로 오셔서 우리의 죄값을 치르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그때 그분은 자신의 핏값으로 우리 성도들을 사신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유월절 양의 핏값으로 사셨던 이스라엘의 장자는 출애굽 이후 어떻게 살아야 했는가? 주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며 찬양하면서 사는 정도였는가 아니면, 더 큰 무엇인가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셨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믿음과 회개로 일차적인 구원을 받은 자들이 그 다음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구약의 출애굽사건과 관련하여, 그때 세워진 레위인과 제사장의 직무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에는 신약성도의 정체성에 관한 놀라운 계시가 들어있다.
1. 들어가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믿는 이들이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왜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불리는 것일까? 과연 어디에 그러한 근거가 있으며, 또한 어떤 절차와 과정을 통해서 성도들이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불리게 되는 것일까? 보통은 벧전2:9에 말씀에 그러한 말씀이 나와 있으니 그냥 그것을 믿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출애굽기에 보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왜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시작과 절차가 소개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에 근거하여 종교개혁자 루터처럼 만인제사장이라는 이론도 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성도들은 왜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불리우는지에 대해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그러한 직책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왕같은 제사장적 직무를 감당하는 성도가 되는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2. 오늘날 성도들이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불리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가. 그리스도인들을 부르는 여러가지 칭호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부르는 신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님의 아들, 하늘나라의 상속자, 그리스도의 신부, 교회... 그런데 그중에서 "왕같은 제사장" 혹은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칭호가 있다. 이러한 칭호는 베드로사도가 사용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선택받은 족속이요 왕의 제사장직무를 가진 자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의 백성이니(벧전2:9/직역)" 그렇다. 그리스도인들은 선택받은 자들이며 왕의 제사자적인 직무를 가진 자들이며,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인 것이다.
나. 성도들이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불리게 된 첫 시작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사도 베드로는 어디에서 이러한 표현을 가져온 것일까? 그것은 출애굽기에서다. 출애굽기에 보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보배로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왕국)이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에는 12지파가 있었고, 12지파 중에서 세번째 지파가 곧 레위지파였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 자체를 제사장 왕국이라고 부르셨을까? 그것은 바로 출애굽의 사건에서부터 기인한다. 왜냐하면 출애굽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와 짐승의 초태생에 관한 주권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인 역사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해내셨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베푸신 특별한 은혜였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잘 나고 능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하나님께서, 출애굽하던 날, 짐을 꾸려 출발하고 있는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출13:12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맏아들)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바치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이게 무슨 뜻인가? 장자와 초태생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에게 응당 바쳐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전능하신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해주신 것은 은혜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이제 와서 첫 것들(맏아들과 초태생)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시는가? 어찌 되었든 하나님께서는 그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때에 출애굽1세대들은 자신의 장자를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쳐야 했고, 이스라엘의 짐승의 모든 초태생도 같이 하나님께 바쳐야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의 핏값을 주고 그들을 사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장자와 초태생은 더 이상 이스라엘 각 가정의 소유가 아니었다.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이다.
하지만 바치라는 명령을 준행함에 있어서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정결한 짐승은 그냥 바치면 되었지만 부정한 짐승이 문제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짐승, 예를 들어 나귀에 대해서는 어린양으로 대속하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대속하지 않는다면 나귀의 목을 꺾어 죽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둘째,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바치되 어떻게 바쳐야 하는가? 그리고 각 가정에서 장자를 바쳐버린다면 각 가정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각 가정에서는 가문의 대들보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바치라고 하는 대신에 대속하여 바치라고 명령하셨다. 그렇지만 이때만해도 무엇으로 대속해야 할지는 말씀해주지 않으셨다.
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장자 대신에 누구를 대속물로 바치라고 하셨는가?
그러다가 출애굽후 1년쯤 지나 시내산 아래에 성막을 짓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파별로 진칠 위치를 정해주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은 각 지파별로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진을 치게 된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성막과 이스라엘 각 지파의 진영 사이에 레위지파를 배열하신다. 그래서 동서남북에 레위의 아들들이었던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배치되었다. 그러면서 그때에 레위지파에 관해 말씀을 주시었다. 1년전에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속하라고 했는데, 그러한 대속물로서 레위지파를 사용하시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장자 대신에 레위지파를 대속물로 바치라는 것이었다(민3:41). 그 목적은 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돕기 위한 것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드리러 나올 때 그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민3:7,8:19).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장자 대신에 레위지파가 하나님께 나아가 헌신하게 된 것이다. 물론 레위지파 안에는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장자 대신에 대속물로 바치라고 한 것은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인 것을 알 수 있다.
라. 제사제도가 종료된 이후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누가 선택되었는가?
그런데 구약의 제사제도는 약 1,500년이 지난 어느날, 예수께서 유월절양으로 오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끝나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단번의 마지막 제물이 되시어 인류의 죄를 속죄하셨기 때문이다(히9:11~12). 그러므로 그때이후로는 레위인과 제사장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다. 구약시대만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레위인과 제사장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제도가 사라진 이후 누가 과연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을 가진 자가 되었을까? 사도바울은 이렇게 언급한다.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렇다. 예수께서 이 땅에 유월절양 곧 온 인류의 대속물로 오셔서 대신 죽으신 이후에는 레위인과 제사장은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다(마20:28, 요1:29). 예수께서 구약시대로 치자면,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일하시고 당신이 직접 제물이 되시어 제사를 끝내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분은 온 인류의 대속물로 자신을 주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마20:28).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주셨다. 그러므로 그때 모든 인류는 주님께서 그분의 핏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이때 주님께서 핏값을 주고 산 대상을 "교회"라고 부르게 된다. 오늘날로 표현하자면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이며 "성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레위인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구약의 레위인과 제사장의 직분을 이어받아서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신약의 교회 곧 성도들을 일컬어 "왕같은 제사장직무를 수행하는 자들이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언급했다.
3. 신약의 성도들은 어떤 직무를 감당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님을 믿어 일차적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구약의 유월절과 관련하여 부른다면 다음과 같은 자들이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들이다(벧전2:9). 둘째, 그들은 신약의 레위인들이자 제사장들이 된 자들이다(벧전2:9). 다시 말해 신약에 들어와서 성도들은 구약의 레위인의 직무와 제사장의 직무를 이행할 자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대속물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당신의 핏값으로 온 인류를 사셨기 때문이다(고전6:19~20). 그렇다면, 구약시대의 레위인이자 제사장의 직무를 이어받은 신약의 성도들은 어떤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인가? 우선은 레위인의 직무를 알아보고, 이어서 제사장의 직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가. 구약의 레위인의 직무는 무엇이었는가?
구약시대 레위인들은 어떤 직무를 수행했을까? 크게 2가지다. 첫째,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회막과 관련된 일을 하였고,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봉사하는 일을 하였다(민8:19a). 그러한 일의 첫째로는 회막을 거둬 이동하고 다시 칠 때에 그것을 개고 치는 일(게르손자손들), 그 안에 있는 성물을 운반하는 일(고핫자손들), 텐트의 기둥과 널판지 등을 운반하고 다시 박는 일(므라리자손들)을 레위인들이 했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제사장들의 제반업무를 보조하는 일들을 감당했다. 나중에 다윗시대에 이르자 아삽, 헤만, 여두둔과 같은 레위인들은 목소리 및 악기로 하나님 찬양하는 일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성막은 오늘날 교회를 상징하고, 제사장은 오늘날 목회자를 상징하는 것이니, 오늘날 성도들인 구약의 레위인들으로서 교회를 세우고 찬양하며, 목회자를 돕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자손과 회막 사이에 텐트를 쳐서, 일반인들이 회개함없이 함부로 성소에 가까이 하여 재앙을 받지 않게 하는 일도 하였다(민8:19b). 이를 위해 레위인들은 회막과 일반백성 사이에 진을 치고 살아야 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죄인들로 하여금 회개함없이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없이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게 해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함을 의미한다.
나. 구약의 제사장의 직무는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구약의 제사장은 어떤 직무를 수행했을까? 그것은 크게 5가지다. 첫째, 제사장들은 번제단에서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와 같은 제사드리는 일을 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 중에서 목회자들이 예배드리는 일을 관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회막 안에서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한 일은 3가지 정도였으니, 첫 번째는 성소 안에 들어가 일곱금촛대에 불을 밝히고 기름을 보충하는 일을 했다. 이것은 목회자가 교회의 어둠과 거짓(비진리)을 몰아내고 성도들로 하여금 성령충만하게 하는 일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향단에 향을 사르는 일을 했다. 이것은 목회자가 성도들을 향하여 중보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는 매 안식일마다 떡상에 12덩이의 떡을 진설하는 일을 했다. 이것은 목회자가 매주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여 선포하는 일 곧 설교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그리고. 넷째, 백성들을 축복하는 일을 했으며, 다섯째, 백성들을 재판하는 일도 하였다. 우림과 둠밈을 사용해서 말이다. 특히 백성을 축복하고 백성들을 재판하는 일은 제사장 중에서도 대제사장만이 행했다. 고로 오늘날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하며, 성도들을 축복하고, 성도들의 잘못에 대해 치리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4. 루터가 말한 만인제사장설은 과연 합당한 해석이었는가?
여기서 우리는 루터가 말한 성도의 만인제사장설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잘못하면, 평신도가 목회자의 일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만인제사장설인 줄 아는 이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루터가 말한 것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루터는 구약시대에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온 백성을 대신하여 섬겼듯이,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는 사제들도 섬기는 자로 사역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느새부턴가 특권계급이 되어 그것을 남용하고 있었고, 심지어 그러한 권리를 이용하여 면죄부까지 판매하는 파렴치한 일을 행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반대한 것이다. 루터는 이제는 모든 성도가 구약의 레위인과 제사장들처럼 되었으니, 누구든지 중간의 매개자(중보자)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외친 것이다. 거반 맞는 말이다. 다만, 일반 성도들로 하여금 스스로 제사장인 것처럼 오해를 가져오게 할 만한 표현의 실수가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만약 오늘날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더라면, 아마도 그는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오늘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얻은 자는 모두가 다 레위인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일반 성도들은 구약의 레위인처럼 교회를 위하여 일하고, 목회자의 예배 집례를 도와주며, 불신자들로 하여금 회개를 통해 죄사함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레위인들 중에 제사장들이 구별되어 다르게 쓰임받았듯이, 일반 성도들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서 공적인 승인을 얻은 후에 목회자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5. 나오며
오늘날 성도들은 온 인류의 대속제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을 주고 사신 바 된 존재들로서, 구약시대로 치자면 레위인과 같은 존재들이다. 특히 그중에 목회자는 레위인들을 중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들이다. 문제는 레위인이나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특히 레위인의 직무를 이어받은 일반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전존재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들 중에서 레위인과 같은 일반 성도들은 자기의 영광과 행복을 위해 살아가서는 아니 된다. 성도들은 레위인으로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고, 주의 종들을 섬기며, 불신자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제사장적인 직무를 이어받은 목회자는 예배를 관장하고, 성도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며, 그들로 하여금 성령충만케 만들고, 끊임없이 중보기도하고, 매주일에 설교메시지를 잘 준비해 선포하는 종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며, 성도들을 심방하고 그들을 축복하며, 성도들이 잘못했을 때에는 치리까지 행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레위인과 제사장의 직무를 이어받은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해야 할 일들이다. 건투를 빈다.
2018년 11월 11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