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도 기다리실까? 사실 하나님은 기다리실 필요가 없는 분이시다. 그분이 모든 만물을 창조한 주인이기 때문에, 모든 만물에 대한 주권이 그분에게 있으며, 그러기에 그분은 당신이 결정한대로 그냥 시행하시면 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에 대해서도 왈가불가할 존재도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기다리는 대상이 하나 있다. 그 대상은 능력이 뛰어난 천사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동의와 결단을 기다리신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동의와 결단을 기다리신다. 왜 그러실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다리시는가? 만약 우리가 그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정말 잘 이해하게 될 것이며,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이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장차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성도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주님께서도 기다리시는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분은 대체 무엇을 기다리시며 왜 기다리는 것인가? 오늘은 그것에 대해 살펴보자.
1. 들어가며
파숫꾼은 동터오는 새벽을 기다린다. 산통이 주기적으로 오는 여인은 어서 속히 아이를 출산하기를 기다린다. 하루 종일 포도원에 나가 뜨거운 뙤약 빛에 일했던 품꾼들은 해질녁이 되기를 기다린다. 왜냐하면 그때가 되면 품삯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씨를 뿌려놓은 농부들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린다. 아무리 힘써서 농사를 지어놓아도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아니하면 농사를 망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혼식날짜를 정해놓은 예비신랑신부는 어서 속히 결혼식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너무나 핍박에 시달려온 성도들은 마음껏 교회 나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이처럼 사람은 기다리는 존재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도 기다리는 분이실까? 하나님께서 기다리신다면 대체 무엇을 기다리시며 또한 무엇 때문에 기다리시는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2.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실 기다리실 필요가 없다. 그냥 마음에 품은 뜻을 시행하시면 된다. 물어볼 것도 없다. 하나님의 생각은 완전하시기 때문이요, 틀린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못하실 것이 없는 전능자이시며, 모든 만물의 기원자가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자기의 뜻대로 움직여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다리신다고 말씀하신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이유를 2가지로 말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기다리신다고 했고, 긍휼히 여겨주시기 위해 기다리신다고 했다(사30:18). 다시 말해, 그분의 기다림은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자비로 다가오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부활승천하신 예수님께서도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에게 문밖에서 기다리고 계심을 말씀해주셨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그분이 우리에게 들어오심으로 우리에게 분명 유익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 못지 않게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그렇다면 전능자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왜 기다리시는 것일까? 그것을 우리의 무엇을 기다리시는 것일까?
메시야의 탄생배경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1장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낳을 적임자였던 마리아가 자신의 몸 속에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되는 것에 동의해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즉 마리아가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며, 그렇게 행동해줄 것을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고 자신에게 피조물에게 얼마든지 당신이 뜻대로 시행할 권리를 가지고 계시는데도 왜 동의를 구하는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뜻이 이런 것이다고 말한 뒤에 그냥 강제로 시행하시면 안 되는 것인가? 왜 하나님은 한탄 피조물이 인간에게 동의를 구해야만 하셨는가? 그래서 승낙을 얻으려고 하시려는 것인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실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의 결단을 기다리신다.
3.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기다리시는가?
누가복음 1장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동의와 결단을 기다리시는 3가지 것이 나온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인간의 기도와 인간의 순종과 인간의 헌신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왜 이런 것을 기다리시는지를 조목조목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일하실 근거를 우리가 마련해주기를 기다리신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시는 것이다(눅1:8~14).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주인이시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실 만한 능력을 갖추고 계신다. 그러므로 생각을 품었으면 시행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마귀의 참소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것은 위반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긍휼을 베풀려면 그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요청"인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들어간 후에 그만 종노릇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무도 자기들을 종노릇하는데서 구해주기를 요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3~400면을 했을 때, 애굽왕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의 더이상 번성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남자아기를 살해하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종노릇한데서 구출해주기를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그 일을 시행하신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려면 기도의 요청이 필요한 것이다. 눅1장에 나오는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윗의 자손 중에서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것은 B.C.995년경이다. 하지만 1,000년이 지나도록 메시야는 태어나지 않았다. 그동안 메시야를 보내달라고 하는 기도가 없었던 것이다. 있어도 유명무실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태어나기 400년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깊은 흑암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자 선지자도 사라졌다. 남아있는 것은 구약성경 뿐이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대제국으로 구해주기를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다윗과 같은 메시야를 말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 무렵은 그러한 기도가 정말 컸었다. 모든 백성들이 안식일과 명절에 성전에 나와 메시야를 구하는 기도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제사장의 사가랴와 백성들의 기도였던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다리시는 것인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우리 인생들의 기도의 요청을 기다리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누군가가 받아주기를 기다리신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해주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눅1:30~37). 메시야의 출생과 관련지어서, 하나님께서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수용해줄 것을 기다리셨다. 사실 우리 인생을 향한 가장 좋은 길은 누가 알고 있을까? 그것은 우리보다도 우리 창조하신 우리 하나님이실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위한 가장 좋은 길은 하나님이 아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금 천사를 보내 그 길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가 그러한 소식을 듣고도 거부해버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메시야의 출생은 또 얼마 뒤에 일어날 수 있을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마리아는 메시야를 낳을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다. 첫째 그는 지금 처녀이며, 둘째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자 아브라함과 다윗의 직계 자손인 요셉과 정혼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메시야를 잉태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여자가 그때 나사렛에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때를 놓치실 리가 없다. 이미 유대인들의 기도가 하늘에 도달했고,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해 줄 사람 세례요한도 이미 6개월 전에 잉태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세례요한의 임신은 마리아로 하여금 처녀잉태의 가능성을 더 잘 믿게 해 줄 요인이 되고 있었다. 그때 마리아는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는 자기의 태를 통해 메시야가 잉태되어지도록 허락한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셋째, 하나님께서는 이제 최종적으로 우리의 수고와 헌신을 기다리신다(신22:23~24). 그렇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 일을 이루기까지는 엄청난 위험과 험난한 길이 예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길을 알면서도 우리가 굿굿이 걸어가 줄을 것을 바라고 기다리시는 것이다. 마리아가 아기를 낳아 메시야로서 사역하도록 키워내기까지는 사실 수많은 난관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이라고 이겨내야하겠다고 견단하게 된다. 처녀로 임신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발각되었을 때 그녀가 받아야 할 아픔은 최소한 파혼당하는 것이며, 잘못되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그녀가 걸어가야 할 길을 걸어가기로 결단한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왜 인생들의 결단을 기다리시는가?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실 우리 인생들에게 당신의 뜻의 준행에 대해서 물으실 필요가 없다. 그냥 집행하시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의 문을 노크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결정을 기다리시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첫째로, 인간의 창조의 목적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로서 천사가 있기는 하지만, 천사들은 처음부터 종으로 지음을 받았고,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우가 다르다. 천사는 자신의 뜻이나 소원이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종으로 지음받았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단지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혹시 천사들이 자신의 의지나 뜻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된다면, 그들은 그 즉시 하늘에서 쫓겨나고 말 것이다.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과거에 그랬다가 하늘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천사들 누구에게도 그들이 순종하기까지 기다리지 아니한다. 순종하지만 않으면 언제라도 즉시 심판해버리실 뿐이다. 하지만 인생들은 다르다. 비록 이 세상에 창조되기는 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서 하늘나라를 상속할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이다(엡1:3~5,롬8:17,엡3:6). 그러므로 종처럼 강제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의사를 존중하신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놓으시고 우리의 결단을 기다리시는 것이다.
둘째, 천국에서 우리에게 주실 보상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은 일하지도 아니한 자에게 천국에서 상급을 주실 수가 없다. 그것은 공의의 원칙에 위배된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이 혹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순종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하지만 상을 주실 분은 우리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비록 짧은 인생여정이지만 여기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헌신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천국에서 우리에게 많은 상으로 보상해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천국에서 우리에게 주실 상급을 우리가 마련할 수 있도록 우리의 결단과 수고와 헌신을 기다리시는 것이다.
또한 보조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단을 기다리시는 것은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받을 사람으로 변화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변하기 때문에 종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을 판단하려면 그가 하는 행동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하듯이 하나님도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의 성취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줄 안다면, 그는 구원받을 수 사람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가 어떤 선택을 할 때까지 그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5. 나오며
천사는 위대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결코 스스로 결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또한 자기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기도로 간구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한 말씀대로 다만 순종할 뿐이다. 그래야만 그는 하늘에서 쫓겨나지 않고 천국에서 계속해서 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비록 이 땅에서 태어나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인간인 것이다. 그때부터 드디어 인간은 기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얻을 상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통과 아픔과 맞딱뜨린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인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존재목적이자 이유이다. 그러므로 만약 자기가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했지만,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헌신하지 않고 수고하는 것이 없다면 그는 결국 이 땅에 남고 말 것이다. 그런데 이 땅은 장차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이땅은 주님 재림 이후에는 하늘에서 쫓겨난 천사들(귀신들)을 가두고 형벌주는 장소로 변할것이다. 불못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을 탈출하는데 전혀 관심을 갖지 아니한 자는 결국 이 땅에 남아 영원한 불못에서 영원토록 살게 될 것이다. 생각하라. 그리고 힘이 부족하고 지혜가 부족하다면, 기도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이 자기에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라.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희생과 헌신이 요구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붙들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18년 12월 16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