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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1aXwWGb2c
날짜 2019-03-17
본문말씀 사도행전 6:1~6(신약 196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부르심9소명), 구약적인 부르심, 신약적인 부르심, 예루살렘교회 임직식, 일곱명의 안수집사(중간지도자), 직분자, 직분자의 경륜, 직분자의 충성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참으로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왜냐하면 성령의 혜택을 모든 사람들이 누리도록 하나님께서 대전환을 시켜주셨기 때문이다. 구약시대만해도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쓰임받으려면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 사람 위에 내려오심으로 성령이 동행하심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오순절 이후에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오시고 그 사람 속에 하나님께서 임마누엘하시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에는 하나님의 부르심도 교회공동체의 부르심으로 대체되었다. 왜냐하면 교회가 곧 성령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합당한 일꾼을 뽑아 그에게 안수하여 직임을 맡기게 되면 그 사람은 그때부터 하나님의 종으로서 교회의 직분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다. 자신의 부르심을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충성하는 자는 자신의 인생을 마치는 날,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을 받겠지만, 자신의 부르심을 단지 교회의 부르심 정도로 알고 소홀히 여긴 자는 그때 주님으로부터 책망과 징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를 충성되어 여겨 직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충성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구약의 부르심과 신약의 부르심을 차이를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직분이 이제는 어떻게 달라졌으며 어떻게 그 직분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1. 들어가며

  부르심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구약적인 부르심이요 또 하나는 신약적인 부르심이다. 구약적인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부르신 부르심이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지명하여 불러내어 당신의 일꾼(종)으로 삼으시는 부르심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약적인 부르심은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삼으실 때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은 완전히 달라졌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명하여 불러낸 부르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순절 이후의 신약적인 부르심이란 대체 어떤 것이며, 이러한 부르심은 대체 누가 받게 되는 것이며 어떻게 받게 되는 것인가? 그리고 신약적인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은 신약적인 부르심에 관한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2.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최초의 임직식은 왜 하게 되었는가?

  사도행전 6장은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교회에서 진행되었던 최초의 임직식 장면을 고스란히 소개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들도 새로운 직분자를 세우는 임직식을 거행하려면 행6장에 나오는 최초의 교회임직식을 유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것이 원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대교회는 어떻게 교회의 일꾼들을 세우게 되었을까?
  오순절 성령강림사건과 3천명을 변화시킨 베드로의 놀라운 설교 그리고 이어지는 사도들의 기적으로 인하여 예루살렘교회는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또다른 아픔이 있었으니, 아나니바와 삽비라의 급작스러운 죽음과 아울러 또 다른 갈등이 계속 존속하였다. 특히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파유대인들간에 접대(음식공궤) 문제로 인하여 갈등이 빚어진 가운데, 12사도들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동분서주해야 했다. 그러자 12제자들은 다른 모든 제자들을 불러모아놓고, 행정과 봉사의 직무를 위해서 교회에 중간지도자를 세우자고 제안한다. 이에 교회는 기뻐했고 교회는 교회공동체로부터 인정을 받은 남자들 일곱을 선택했으며, 사도들이 그들에게 기도하고 안수함으로 말미암아 교회에 최초로 직분맡은 자가 탄생하게 된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일에만 전무할 수 있게 된다.

3.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명의 최초 중간지도자(안수받은 일꾼들)은 어떤 기준으로 택함받게 되었는가?

  예루살렘교회는 사도들을 도와 일할 새로운 일꾼들을 선출해야 했다. 교회가 너무나 커졌을 뿐만 아니라 해야 할 일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떤 사람들을 중간지도자(일꾼)으로 선출했던 것인가? 그것은 딱 3가지 조건이었다. 첫째, 성령이 충만한 자라야 했다(행6:3,5). 성령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잘 모르는 자가 지도자가 된다면 교회는 귀신의 장난에 속아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안에 들어오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도자는 결국 다른 사람들을 시험들게 할 수 있으며, 외적으로 성령충만하지 못한 지도자는 성령의 은사를 멸시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는 반드시 성령이 충만한 자라야 했던 것이다. 둘째, 믿음이 충만한 자라야 했다(행6:5). 사람에게 요구되는 믿음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구원얻기 위한 믿음이요 또 하나는 삶 속에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기 위한 믿음이다. 구원얻기 위한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며, 삶 속에 역사하는 믿음은 은사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교회의 지도자는 이 둘 다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추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거나 신뢰하지 않는 자는 결코 직분자로 세워져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셋째,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야 했다(행6:3). 이것은 조금은 세상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성령충만과 믿음충만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면 지혜는 대체로 세상에 속한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고전12장에서 사도바울은 성령의 9가지 은사 가운데 가장 먼저 언급한 은사가 바로 "지혜의 말씀"의 은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신약시대에는 주님의 부르심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교회공동체가 선별한 뒤에,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주의 일꾼이 정말 되는 것인가? 그렇다고 하는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돌아가보자. 구약시대에는 과연 어떤 자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의 종들(일꾼들)이 될 수 있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불러내어 부르신 자였다. 하나님게서는 그러한 사람 위에 성령을 부어주시어 직분을 감당하게 하였다. 그런데 직분이라고 부름은 공동체를 염두해 둔 표현의 하나다. 공동체가 없거나 공동체가 은 경우에는 직분자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공동체가 커지게 되면 중간지도자가 요청된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는 자기가 수 만 명이 운집하는 교회로 발돋움하게 되자 중간지도자를 뽑아야 했던 것이다. 이때 교회의 성도들은 그것에 합당한 자를 찾아주었고, 사도들은 그들에게 기도하고 안수식을 거행하여 직분자를 세웠다.

  그렇다면, 과연 일반백성들이 자신의 손으로 뽑은 자들을 사도들이 안수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직분자가 되는 것인가? 누가 그러한 권한을 그에게 주었는가?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최초의 임직식(행6:1~6)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교회공동체가 선택하고 사도들이 안수하여 기름부은 자는 하나님께서도 그를 인정해주신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교회공동체는 개인공동체가 아니라 성령공동체이기 때문이다.

 

5. 구약시대에는 누가 직분자가 될 수 있었으며, 직분을 잘못 감당할 때에는 어떤 처우를 받았는가?

  그렇다면 구약시대에는 누가 과연 직분자가 될 수 있었을까? 구약시대에 직분자는 아무나 될 수 없었다.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하게 부르심을 받은 자들만 될 수 있었다. 사실 직분자라는 것은 반드시 공동체의 공간 안에서 필요한 존재였기에, 구약시대의 직분자로서의 부르심은 모세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시작을 출애굽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때 모세는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되었고 그의 형 아론은 대제사장이 되었다. 그런데 신약의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히 말한다. 구약시대 직분자로서 갖게 되는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할 수 없었으며, 이것은 아론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한다고 말이다(히5:4). 그리고 이어지는 사사시대에는 성령이 임한 자가 사사로서 부름받아 사역할 수 있었고, 사사시대를 끝으로 왕국시대가 시대되는데, 왕국의 시작을 이끈 사울도 성령께 그이 위에 내러오심으로 왕직을 수행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2대왕이었던 다윗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 사역했던 자들이었다. 이처럼 구약시대는 아무나 직분자가 될 수 없었으며,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아 부르심을 받은 자만 직분자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직분을 맡은 자가 직임을 잘 감당하지 못했을 때에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책임을 물으셨는데, 엄청난 징계가 뒤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아론이 받았던 대제사장직은 그의 아들들로 이어지는데, 맨 처음으로 대제사장직을 맡은 자는 그의 장자와 차남이었던 나답과 아비후였다. 하지만 그들은 성소에 향을 사르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불에 타서 죽고 말았다. 번제단의 불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후손들로 이어진 대제사장직은 사사시대가 끝날 무렵에는 이다말계열의 엘리제사장이 맡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두 아들들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매우 불량자였다.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고 있었고 늘 음행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전쟁터에 보내 블레셋에게 유린당하도록 허락하셨고, 자신의 아들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던 엘리제사장도 그만 목이 부러져 죽게 된다. 한 마디로 패가망신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잘못했지만 회개하여 용서받은 직분자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12번째 사사 삼손이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서원을 지켜야 했다. 하지만 여자 때문에 그만 그 서원을 지키지 못했고 그에게 주어진 놀라운 힘은 없어지고 말았다. 두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 묶여 블레셋에 끌려가 연자멧돌을 돌리던 삼손은 마침 블레셋의 다곤신당에 초대되었는데, 거기에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그러자 그에게 다시 힘이 솟구쳤고, 다곤신당이 무너짐으로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의 회개로 천구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남유다의 14번째 왕이었던 므낫세는 또 어떠한가? 그는 남유다의 20명의 왕들 중에서 가장 악한 왕이었고 우상을 숭배하는 왕이었다. 하지만 그가 앗수르에 끌려가서 감옥에 있을 때 회개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고국으로 돌려보내주는데, 그때부터 그는 회개의 삶을 산다. 온갖 우상을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가서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간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 직분은 당사자 본인의 구원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구약시대의 직분자들의 공통점이었다. 구약시대에 직분자는 함부로 될 수없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한 번 직분자가 된 자가 자신의 직분을 충성되이 감당하지 못했을 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징계가 임하였던 것이다. 만약 그때 회개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는 버림받아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6.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교회의 직분자는 누가 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직분을 잘못 감당하게 될 때에는 또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가?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오순절 성령강림이후에 몰라보게 달라진 것이 2가지가 있었으니, 하나는 구원의 문이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구약시대만해도 구원의 문은 오직 율법을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만 열려져 있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오셔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승천하신 후 오순절날에 당신 대신 성령을 보내주신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신분이나 인종이나 성별과 민족의 차이를 아예 없애버리셨다. 누구든지 믿음과 회개로 구원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직분의 문도 활짝 열어주었다는 사실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불러낸 특별한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어 직분을 감당하게 했지만, 오순절 이후에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자기 속에 모실 수 있게 하셨고, 누구든지 성령을 받은 자는 직분자가 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공동체가서 직분자를 선출하게 허락하셨으며, 먼저 세워진 직분자들이 새로 뽑혀진 자들에게 안수함으로 직분을 맡기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곧 성령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약시대에는 누구든지 맡을 수 있는 신약의 직분이기는 하지만,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아무에게나 그러한 직분을 맡기지 않았다. 그들은 적어도 3가지 기준을 가지고 직분자를 구별하였고 그들에게 사도들이 기도하고 안수함으로 직분을 수여했다. 그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령충만한 사람이어야 했다(행6:3,5). 왜냐하면 성령을 모르는 자는 귀신에게 속아넘어가기 쉬울 것이고, 성령이 충만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성품과 능력대로 직분을 감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야 했다(행6:3). 왜냐하면 아무리 교회공동체에 속해있다고 할지라도 사람은 여전히 사람이므로, 그중에서도 지혜가 충많나 사람을 골라서 그에게 직임을 위임한 것이다. 사실 성령의 9가지 은사들 중에 제일 첫번째 은사가 무엇인가? 그것은 "지혜의 말씀"이다. 예루살렘교회가 세웠던 직분자들에게 요구되는 첫번째 은사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였던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공동체의 중간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지혜로워야 함을 실감하게 한다. 셋째,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했다(행6:5). 하나님께 쓰임받을 직분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직분자가 되면 안 된다. 사실 믿음에도 두 종류가 있다. 구원얻는 믿음이 있고, 삶을 변화시키는 믿음이 있다. 직분자에게는 둘 다 필요하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지금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해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바로 성령과 지혜 그리고 믿음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중간지도자로 선출했다.

  신약시대에는 직분을 받는 것이 구약시대보다는 훨씬 더 쉬워졌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강도는 훨씬 더 강해졌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직임을 잘못 감당할 때에 중간중간에 징계가 있었다. 하지만 오순절 이후에는 징계가 없을 수 있다. 아니 거의 대부분 없다. 하지만 죽을 때에 즉 심판의 날에 징계가 임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종료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소자 중 한 명이라고 실족케 하는 자는 차라리 목에 연자멧돌을 매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셨다(마18:6). 뿐만 아니라 마지막 심판의 날에 주님의 종들이라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니 내 곁에서 떠나가라"고 하신다고 경고하셨기 때문이다(마7:22~23). 그날 한 방에 모든 것이 날라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 오순절 이후 직분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만큼 더 어려운 것이다.

 

7. 사람이 직분을 만드는가 아니면 직분이 사람을 만들어가는가?

  오순절 이후 예수께서는 직분의 문을 확짝 열어놓으셨다. 신분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리고 민족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직분자가 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교회공동체로부터 신임을 받고 선출되고, 뿐만 아니라 지도자들로부터 안수를 통해 직임을 받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정녕 직분자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확신하지 못한 자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하지말라. 교회의 부르심이 곧 하나님의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성령공동체인 교회의 부르심을 당신의 부르심으로 인정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알게 하신다. 그것이 바로 바로 안수를 통한 위임예식이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직분자는 자신이 직분자로서 세움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구약시대라면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사역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셨음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과 교회 앞에 충성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만약 자신이 직분을 잘못 감당하게 된다면 구약시대처럼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죽임당할 각오로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에 충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하나님께서도 그를 당신의 종이라고 인정해주실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사람이 직분을 받는 것인가 아니면 직분이 사람을 만들어가는 것인가? 둘 다인 것 간다. 사람이 직분을 맡기는 하지만 직분을 맡게 되면 대부분의 직분자는 자신이 맡은 그 직분에 합당하게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직분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직분을 맡게 된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감당할 만한 자격이 없는 자인데도 직분을 감당하는 자로 자신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8. 나오며

  교회의 직분은 모두 다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은 땅의 직분이 아니라 하늘의 직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서도 이 땅에서 받은 직분을 천국에서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구약에는 아무나 받을 수 없었던 직분이었는데 오순절 이후에는 누구나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제한을 풀어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직분맡은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구약시대보다 더 적극적으로 직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실 처음 임직받을 때부터 자신의 부르심을 완전히 확신한 채 임직받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교회의 성령공동체가 주신 직분을 이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알고 성실히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당신의 종이라 부르시고 더 크게 그를 쓰신다. 우리도 내게 맡겨진 직분에 최선을 다해 천국에서 잘했다는 칭찬받는 자가 되어보자. 건투를 빈다.

 

2019년 3월 17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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