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오늘날 예수믿는 사람들 중에는 귀신들려 고생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며, 중한 질병에 걸려 고통받는 이들도 참으로 많다. 왜 그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온갖 질병과 저주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병원에 가보면 예수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자녀 중에 귀신들려 고통받는 이들의 상당수가 교회에서 직분을 가진 분들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그분들은 기도를 안 해 보았겠으며, 그분들은 그 문제를 해결해보기 위해 노력해보지 않았을까? 아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가 되어서 거기에 머물러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오늘은 우리 인생에 어려움을 주는 원인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것이다. 그것은 믿음만 있으면 귀신도 쫓아내고 병도 고칠 수 있다고 한다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믿음만 있으면 죄사함도 받고 구원도 받는다고 하는 신앙에 관한 질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말은 다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중간에 무엇인가 하나가 빠져 있는 것이다. 만약 그것을 되찾아 거기에 끼워넣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획기적인 변화를 맛보게 될 것이다.
2. 예수님을 믿었으면 정말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 그리고 미래의 죄를 다 용서받은 것일까?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그는 자신이 믿는 순간에 이미 자신의 모든 죄들 곧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 그리고 미래의 죄들까지 다 용서받은 것인가? 성도들 중에는 대부분이 그렇게들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적인 상황에서 이러한 믿음은 상당히 견고히 자리잡혀 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것이 과연 성경의 가르침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았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러한 가르침은 누군가의 입에서 입을 통해서 전달되어진 것일 뿐 성경적인 가르침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자기가 익히 들어왔던 말씀이 그러한 말씀이었다고 기억하고 있고, 또한 설교자를 통해서 그렇게 말씀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디서 무슨 말씀을 들은 것일까? 여기 일례를 들어보겠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이미 자범죄들을 다 용서받았다고 하는 근거로서 약간의 실력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골로새서1:14의 말씀을 떠올릴 것이다. 이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골1:13부터 14까지의 말씀을 살펴보자.
골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렇다. 만약 누군가가 한글로 된 성경만을 보았다면,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죄사함을 이미 받은 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번역상의 실수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개역개정성경만이 이처럼 번역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한글성경이 다 그렇게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이 번역문이 잘못 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헬라어원문에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골1:13~14[직역] 그분이 우리를 흑암의 권세로부터 [밖으로] 건져내셨다. 그리고 그분은 그분의 사랑의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기셨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그의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가진다(in whom We have redemption, the forgiveness of sins).
그렇다. 헬라어원문에는 죄가 이미 용서받았다는 본문이 아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며,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미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았다고 믿고 있는 이들에 의해 이 본문이 번역되면서, 이 본문은 왜곡되이 번역되고 말았다. 그리고 개역성경을 보고 또 번역한 다른 본문들은 더욱 더 이 본문을 왜곡시켜 번역하였다. 먼저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을 보자.
골1:14[공동번역] 우리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 났습니다.
골1:14[표준새번역] 우리는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번역본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성경본문에 없는 말을 추가하여 번역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골1:14[한글KJV]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골1:14[현대인의성경] 우리는 이 아들이 “피흘린 댓가로” 자유를 얻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골1:14[쉬운성경]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해 “아들의 피로 대신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용서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헬라어원문을 통해서 골1:14의 말씀이 어떻게 잘못 왜곡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첫째로,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만 [사람들이 지은] [자범]죄들의 용서를 받을 수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로, 이 말씀은 예수 안에서 있는 자들은 이미 구속 곧 죄들의 사함을 받아버렸다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구속 곧 죄들사함을 받는다는 원칙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 문장은 현재완료의 문장이 아니라 현재 직설법 능동태의 문장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들어왔던 말씀 혹은 오해되게금 번역된 말씀을 그냥 진리의 말씀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어떤 교리를 만들거나 성경지식으로 알아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성령으로 감동된 진짜 성경말씀(원문성경)을 그대로 보고 그대로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생각이나 이미 들어왔던 말씀으로 성경을 읽고 이해하고 해석하여 적용해버린다. 그렇다면 성경(원문성경)은 우리의 죄사함이나 구원의 문제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
3. 사람은 구원에서 탈락될 수도 있는가?
A.D.95~96년경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교회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라고 하셨는데, 그때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어떤 말씀을 주셨을까? 그것이 바로 소아시아에 있는 7교회에게 주신 편지다. 그런데 놀랍게도 첫번째 교회로 소개된 에베소교회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다.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그렇다. 예수께서는 에베소교회의 사자(메시지 전달자)에게 편지하기를 에베소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계2:4). 그것은 에베소교회가 자기 교회를 방문하는 사도들을 주의 종으로서 귀히 여기고 아주 많은 사랑을 베풀었던 것에서 이제는 그들이 가짜가 아닌가 늘 판단하고 분석하다보니 그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말씀이 그들에게 말씀으로 다가가겠으며 설교가 설교가 되겠는가? 그러니 빨리 주의 종들에게 대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만약 그리하지 않으면 그들의 교회를 일곱촛대들 가운데 제거해 버리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럼, 이때 주님께서 촛대를 그 자리 곧 일곱교회의 자리에서 옮겨버리겠다는 의미는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다음에 나오는 성경말씀에 따르면 지는(이기지 못하는) 자에 대한 처벌과 같은 것이다. 이때 예수께서는 지는 자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곧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게 하겠다는 뜻이다. 즉 그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버림당한다는 뜻이다. 고로,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들을 빨리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고 있다가 주님이 오시게 되면(재림하시면) 우리는 구원에서 탈락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고는 에베소교회만이 아니었다. 버가모교회에게는 만약 그들이 니골라당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칼로 그들을 치시겠다고 말씀하셨다(계2:16). 이것은 계19장에 나오는 심판자의 모습으로서, 그들을 죽이겠다는 뜻이다. 그들을 파멸시켜버리겠다는 뜻이다. 또한 사데교회에게 주신 말씀에 의하면, 지는 자는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버리겠다고 말씀하고 있다(계3:5). 만약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아니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고 말 것이다. 고로, 우리는 회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멸망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회개다. 회개는 믿음과 더불어 구원의 요소라는 것을 빨리 감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회개와 믿음, 믿음과 회개는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4. 한 번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는 반드시 구원받게 되는가?
어떤 사람은 말한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면 우리는 반드시 의롭다함을 입게 될 것이고 거룩하게 될 것이며 결국에는 영화롭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롬8:30). 그러니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면 우리의 구원은 안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볼 때, 그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롬8:30과 같은 말씀은 사람이 부르심을 받아 구원얻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 뿐이지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당위성이 들어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던 사울왕과 2대왕이었던 다윗왕의 경우를 보자. 둘 다 죄를 지었다. 죄만 치자면 다윗이 더 큰 죄를 지은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사울왕은 버림받아 멸망당했고, 다윗은 죄용서를 받아 위대한 성군으로 쓰임받고 천국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두 사람에게는 대체 어떤 차이가 있었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다. 그것은 사울왕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았지만, 다윗왕은 죄를 짓고 난 뒤 회개했다는 것이다. 회개의 유무가 이들의 멸망과 구원을 갈라놓았던 것이다. 부르심을 받은 자체가 구원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것은 구원을 받도록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 것일 뿐이다. 사실 누구에게나 회개할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멸망당할 수밖에 없다. 사실 회개의 중요성은 신약시대에도 나온다. 예수님의 12사도들의 경우를 잠시 살펴보자. 12사도들 중에서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지 않은 사도가 있었는가? 없었다(요6:70). 하지만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판 후에 자살하여 죽음으로 멸망으로 치달았고,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되 한 번은 저주하면서 부인했느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나중에 위대한 사도로 쓰임받게 된다. 그런데 이 사례의 경우도 또한 죄를 범한 후에 그가 회개를 했으나 하지 않았느냐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어찌 개인에 국한된 것이라고만 말할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과 이방인교회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제사장 나라로 선택받았고 제사장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랬던 이스라엘이었지만 결국에는 버림을 받았고 멸망을 받았다. 그런데 이방인교회 가운데 에베소교회의 경우를 보자. 그들은 경고를 들었다.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들의 촛대를 옮겨버리겠다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에 정막 그들이 이러한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아마도 소아시아를 주도했던 교회였지만 한순간에 뽑혀서 없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5. 만약 우리가 자신이 지은 죄들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만약 우리가 지은 죄들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신약성경에는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주는 경고가 여럿 나오는데, 그중에서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이라는 문구로서 경고한 것들이 다섯 차례나 나온다. 그중에는 현재에 받을 징계가 한 번 나오고, 장차 심판 때에 맞이한 멸망에 관한 경고가 네 번 나온다. 그럼,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을 때에 그들이 맞이할 징계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계2:22~23에 나오는데, 첫째로, 본인은 질병의 침상에 던져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둘째로, 같은 동조하는 자들에게는 큰 환난 가운데 던져질 것이라고 했다. 셋째로, 그의 자녀들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심판 때에 받을 멸망에 대한 경고를 4번 하셨다. 곧 눅13장에서 두 번, 계23장에서 두 번, 도합 4번이 나온다. 특히 눅13장에서는 반드시 회개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눅13:2~3,4~!5). 그리고 계2장에서도 멸망을 예고하셨는데, 특히 에베소교회에서는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겨버리실 것이라고 했고(계2:5), 버가모교회에서는 가서 당신의 입의 칼로 그들과 싸울 것이라고 했다(계2:16). 이는 결국 그들을 멸하시겠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오직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6. 어찌하든지 자신이 지은 죄들을 회개한다면 그는 어떤 결과를 얻게 되는가?
그러나 우리가 회개의 경고를 받고난 뒤 즉시 회개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그러한 축복은 총 4가지다. 즉 회개하는 자는 4가지 은혜와 자비와 축복을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첫째로, 죄사함을 받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눅3:3,24,24:27,행5:31). 둘째, 온갖 저주로부터 빠져나오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계2:22~23). 셋째,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행11:18). 넷째,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고후7:10).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지은 죄들을 빨리 자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를 하지 않거나 회개를 계속해서 미룬다면, 이것들로 인하여, 환난이나 사건사고가 집안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게 될 것이다. 또한 자식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며, 본인도 죽어서 영원한 불의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죽는 그 순간까지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집피우며 회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위와 같이 여러가지 경고의 말씀에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으며,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는 자에게는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심판날에 임할 진노를 더욱 더 쌓아나갈 뿐이다(롬2:4~5). 둘째, 지은 자범죄들의 용서를 끝내 받지 못할 것이다(행3:19). 셋째,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할 것이다(고전6:9~10). 넷째, 천국에 못들어가며 그곳에 있는 생명나무의 실과도 따먹지 못할 것이다(계22:14). 넷째, 필연코 멸망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벧후3:9). 그러므로 우리는 지은 죄들을 숨김없이 낱낱이 꺼내어 회개해야 한다. 그것이 나의 구원의 발목을 잡도록 놔두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8. 죄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믿는 것과 직접 회개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이미 예수님을 믿은 상태에 있으니, 혹 자범죄를 회개하지 않아도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미 예수님의 피가 자신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었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가진 자들에게 한 번 묻고 있다. 이들은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자신의 죄가 사함받게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자신의 죄를 없애주는 것인지를 묻고 싶다. 아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분의 피로 인하여 자기의 죄가 용서받는다는 것은 믿음의 차원에 속한 것일 뿐 회개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과 입술을 사용하여 직접적으로 회개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내 죄를 씻어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것을 믿고 있는 것을 두고서 회개했다고 착각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소득분위가 낮은 계층의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게 될 때,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대학에서 공부하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려고, 국가장학금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돈이 없어 대학등록금을 낼 수 없는 자녀라면, 국가를 상대로 국가장학금을 신청하게 되면 국가에서 장학금을 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청기간에 한국장학재단 사이트에 들어가 국가장학금을 신청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자도 장학금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 이러한 좋은 장학금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장학금을 내게서 가져다 주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도 예수님의 피로 내 죄를 씻음받게 된다는 것을 믿는 것으로서 죄용서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직접 회개할 때 죄용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의 피의 효능은 사실 무한대다. 그분의 피공로로 인하여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의 피의 효력은 온 인류를 사실 구원하고도 남음이 있기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죄를 지었지만 자신의 죄를 자백하거나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은 직접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에 대한 믿음 자체가 우리의 죄를 자동적으로 용서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한 것일 뿐 그것이 자동적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는 것이 아닌 것이다. 벧후3:9의 말씀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멸망을 당하지 않도록 모두가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회개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우리 당사자가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없앨애려고 그의 유일한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죄를 용서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이 땅에서는 자신이 징계를 받다가 심판날에 멸망을 당하는 것을 두고 결코 하나님을 원망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예수께서 회개하면 반드시 용서해주신다고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와같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결국 버림을 받고 말 것이다. 그것은 본인의 책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9. 나오며
왜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의 자녀가 귀신에게 시달리도록 허락하실까? 왜 권사,목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암병에 걸리고 불치병에 시달리는가? 그것은 계2:22~23에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지었던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죽었다가는 멸망에 이를까봐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금 징계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이 아주 많다. 그러다가 지옥 떨어지게 되는 것도 모른 채 병원을 찾아가 병을 치료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아니다. 당장 무릎꿇고 회개부터 시작해야지, 무슨 병원행이라는 말인가? 회개하고 병원엘 가야지 병원부터 찾는 것은 어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니다. 회개해야 한다. 아니 즉시 회개해야 한다. 그러다가 죽을 때에 가서 다시 회개하고 죽어서 천국들어가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7월 7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