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란 무엇인가? 기존의 정의에 의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거나 그 말씀을 어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죄는 사실 하나님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에 하나님이 들어가서는 아니 된다. 그래서 죄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써보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을 죄에 연관지어 생각해 보았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왜 율법을 주셨을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정죄하려고 주신 것일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설교를 듣자마자 율법에 얽매여서 고통받고 있던 이들이 자유와 기쁨을 얻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죄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 새로운 정의는 사실 수많은 신앙상담을 통해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조명해준 영적 비밀을 가지고 쓴 것이다. 이 설교를 듣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를 빈다.
1. 들어가며
죄란 무엇인가? 신학적으로 죄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간 것,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마귀의 말을 들은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만약 누군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기만 한다면 그분은 가차없이 우리를 심판해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말씀으로 우리들을 움쭉딸싹을 못하게 가둬놓으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래 말씀하고자 하셨던 죄라는 개념은 그러한 개념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개념은 나중에 사람들이 그렇게 해석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 죄란 무엇인가? 오늘 이 시간에는 죄란 무엇인가에 대해 원래 하나님께서 말씀하고자 하셨던 정의를 살펴봄으로서, 율법이 얼마나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유익한 말씀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부가적으로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셔야 했는지를 정확히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함께 알 수 있을 것이다.
2.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은 무엇인가?
무엇이 죄인가? 오늘은 죄에 대한 신학적이거나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적으로 현장에서 살면서 느끼는 죄와 그 결과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치고 원인이 없는 결과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늘 결과만을 놓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게 되면, 한 개의 문제 정도는 해결할 수는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아직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으니 또 어디에서 무슨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죄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저주의 원인은 찾아내지 못하면 다음과 같은 일을 당할 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첫째,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의 귀신들린다. 그러면 그에게서 저주가 나타난다. 둘째, 손 대는 일마다 실패하게 되고 수입에 지출보다 적어 늘 재정에 허덕이게 된다. 셋째, 아픈 곳은 왜 그리 많은지 병원신세를 계속 진다. 넷째, 자녀들의 사고치는 소식때문에 전화만 받아도 가슴이 벌렁벌렁한다. 다섯째, 늘 원망과 불평만을 늘어놓는다. 여섯째, 어떻게 되어서 무엇인가를 벌어놓아어도 언제 그것이 날라가 버릴까 늘 불안해한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다 더 죄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았는가? 그렇다. 실재다.
3.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심판하시려고 율법규정을 만드셨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탓한다. 하나님께서 법규나 율법을 제정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정죄당해서 율법의 규정하고 있는 고통을 당하지 않을텐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정해 놓았기에 이렇게 고통을 당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무슨 하라는 것이 그리도 많은지. 주일에는 어디 놀라가지 말고 예배드려야 한다느니,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것을 드리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돈이 새어나간다느니,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를 드리면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긴 것이 되므로 자신이 질병의 침상에 던져지고 동료들은 환난 가운데 처해지며 자식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느니 말한다. 이것 참 무서워서 살겠나?"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하나님과 율법에 대하여 커다랗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전방 최전선에 철책을 지키러 들어간 갖 신병이 있다고 치자. 가다가 더덕 냄새를 맡고 그 신병이 그 더덕을 찾아 길 안쪽으로 잠깐 들어갔는데 그만 지뢰를 밟아 발목이 날아갔다고 치자, 이 병사는 거기에 지뢰가 있는 줄 모르고 갔으니까 지뢰가 터지지 않아야 정상인가? 아니다. 그가 거기에 지뢰가 있는 줄 알고 밟았어도 발목은 날아갔을 것이며, 모르고 밟았어도 발목이 날아가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쥐약은 그것을 쥐약이라고 알고 먹어도 죽고 그것이 쥐약인 줄 모르고 먹어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죄라는 것을 모르고 죄를 지어도 죽을 것이고, 알고 지어도 죽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곳에 가면 지뢰를 밟아 발목이 절단날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다면, 그것에 감사해야 할 것인가? 최전방에서는 지뢰가 묻혀있는 곳이 많다는 규정을 왜 만들어놓았느냐고 불평해야 맞는가? 구약의 율법 특히 십계명은 바로 이와같은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계명법을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4. 죄란 무엇인가? 그리고 율법(십계명)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죄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죄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우리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으면 꼭 하나님께서 벌을 주실 것만 같은 정의다. 그렇지 않다. 죄의 원래적인 정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던 신11:26~28의 말씀을 근거로 죄의 정의를 내려본다면 이렇다. "죄란 만약 그것을 따라가게 된다면 복이 되지 못하고 저주를 낳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만약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것이 복이 되지 못하고 나에게 저주를 가져다 주는 것"이 죄인 것이다.
그러면, 율법(십계명)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것도 알파와 오메가되시고, 처음과 마지막이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비록 그렇게 살아보지 않았아도 우리가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면 저주와 파멸을 맛보게 될 것을 아시기에, 그렇게 해서는 안 돼, 아니 이것은 이렇게 해"라고 가르쳐준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는 십계명을 지키라고 하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예를 들어, 주일성수하나만 보자. 어떤 이는 "왜 하나님께서는 일요일에 어디 놀러도 못가게 하고, 주일에는 늦잠도 자지 못하게 하려고 예배라는 것을 만들어놓았지? 정말 미쳐버리고 말겠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지금 잘못 생각해도 보통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니다. 그는 지금 "너, 그렇게 살지 못하면 네 발목이 날아가는 거야"라고 가르쳐준 것을 두고 마구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저주를 받지 않고 복을 받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율법말씀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만약 그것을 미리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우리의 발목이 날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을 미리 알려주어서 그것을 피하도록 하였으니 감사해야 할 일인 것이다.
5. 십계명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영적 비밀은 무엇인가?
십계명은 우리가 비록 그렇게 살아보지 않았아도 장차 어떻게 될 것을 아시는 전능자께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복받는 비결이자, 저주를 받지 않도록 인도해주는 놀라운 말씀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을 일러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된통 당한 후에 비로소 깨달았을 일을 먼저 가르쳐준 것이 십계명인 것이다.
오늘 여기서 십계명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고 그중에서 몇 가지만 생각해 보자. 첫째, 둘째계명을 보자. 제2계명이란 "너를 위하여 우상과 형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려 섬기지 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네가 그렇게 한다면 네 자손 3~4대까지 그 벌을 받게 될 것이다"는 말씀이다. 이 계명에서 "우상"이란 보이지 않는 어떤 대상을 보이도록 만든 것이고(바알신, 아세라신...), "형상"이라는 이미 있는 것들 곧 해와 달과 별들을 섬기기 위해 작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 하듯 절하고 그것에게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을 우상숭배행위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제2계명의 말씀을 모르는 불신자라고 치자. 그리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면 장차 어떻게 될까? 그건 간단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두고 자꾸 거기에 가서 절을 하거나 거기에다가 음식을 차려놓고 거기에게다 향을 피운다면, 지나가는 귀신들이 그것을 볼 것이다. 귀신들은 타락한 천사들로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겨야 할 종들이었는데, 그만 자신이 경배받고자 하다가 쫓겨난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쫓겨날 때 저주를 받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저주받은 영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이러한 저주받은 영이 그곳에 가서 경배를 받게되면, 그 사람이 그 귀신에게 절을 하였기에 그 순간, 그 사람은 그 귀신의 종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서 저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는 결국 질병의 침상에 던져지게 될 것고, 주변사람들이 큰 환난을 당하게 되며, 자기의 자식들이 죽어나가는 불상사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전능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미리 아시기에 우리더러 제2계명을 미리 주어서 우리더러 결코 우상숭배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도 율법을 우리를 얽아매는 멍에와 같은 것인가? 아니면 우리를 저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해방의 도구인가?
이제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제7계명은 간음(음행)을 금지하는 명령이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미 결혼한 사람이 다른 여자와 남자와 성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결국 가정을 깨뜨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간음의 관계를 지속한다면 이 부부는 분명 이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자녀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말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불행한 환경에서 자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땅히 부모 밑에서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어린이들이 그만 내버려지는 것이다. 부부란 하나님께서 행복이 무엇인지 체험하도록 만들어준 최초의 공동체의 하나다. 부부가 한 마음이 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나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런데 그것을 일부러 깨뜨리는 데에 벌이 없겠는가? 사도바울은 말한다. 음행의 죄는 다른 죄하고는 달라서 그 죄는 자기의 몸 안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고전6:18).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께서 우리의 몸을 성전삼고 거하신다. 그런데 그러한 몸에 음행의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성령께서 그 사람의 죄를 책망할 것이다. 그래도 음행의 죄를 저지르면 양심이 마비가 오고 성령의 음성을 거역해버리고 만다. 결국 그는 음행의 죄를 짓다가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음행의 죄를 지은 것에 대한 합당한 벌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계21:8). 그런데 이 일은 이와같다. 즉 하늘에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겨야 할 천사들이 그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사탄마귀의 말을 따른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늘에서 쫓아버렸고 그들을 형벌하기 위해 지옥을 만드셨다. 고로, 간음의 죄를 저지른 자들은 반드시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곳에서 육체를 불법적으로 이용한 형벌을 영원히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을 어겼을 때에 어떠어떠한 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각기 사례마다 다른 측면이 있지만 2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반드시 고통과 저주가 뒤따른다는 것이며, 둘째, 반드시 파멸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으로 죄를 지었을 때도 그랬다. 남자에게는 땀흘려 수고해야 밭의 소산을 먹는 노동의 고통이 더해졌고, 여자는 임신하고 해산하는 고통이 더해졌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고 말았다. 그것이 육체와 영혼만을 갈라놓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도 영원히 갈라놓을 수 있다.
6.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쥐약을 알고 먹어도 죽고 모르고 먹어도 죽는 것처럼, 우리도 자신이 행하는 것이 죄인지 알고 지어도 죽을 것이고 모르고 지어도 죽을 것이다. 그런데 타락한 아담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가 어찌 죄된 본성과 마귀의 유혹을 다 이기고 승리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것을 따라가게 되면 복이 되지 못하고 저주과 파멸이 뒤따르는 것을 미리 아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와 파멸을 대신 받으시려고 이 땅에 오셨으니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그분이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셨다. 우리가 받아야할 멸시와 천대를 그분이 대신 침뱉음받음으로 받으셨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야 할 가난의 저주를 그분이 대신 십자가에서 옷하나 입지 않은 채 받으셨으며(고후8:9), 우리가 받아야할 질병의 저주를 그분이 대신 채찍에 맞으심으로 받으셨다(벧전2:24). 그리고 죄값으로 우리가 죽어야 할 사망의 고통을 그분이 대신 받으셨다(롬6:23). 그러므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이러한 저주와 파멸에서 건짐을 받게 되는 것이며, 사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7. 회개란 무엇인가?
그런데 회개란 무엇인가? 회개는 예수께서 대신 받으신 형벌로 내게 적용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회개할 때에 그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내고 깨끗하게 하기 때문이다(요일1:9,7,눅24:47,계7:14). 어떤 이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믿을 때에 같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회개했기 때문인 것이지, 믿었다고 죄사함을 받은 것이 아니다. 성경66권의 단 한 구절도 믿으면 죄들사함을 받는다는 말씀이 없다. 회개할 때에 죄사함이 일어나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분을 믿는다면 그때부터 우리도 회개할 때에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회개하면 저주받은 영이 우리에게 역사할 수 없다. 죄가 없는데 어찌 귀신이 우리 안에 들어올 수 있겠으며 우리를 건드릴 수 있겠는가? 그러면 자동적으로 저주가 사라진다. 우리의 자녀가 저주에서 풀려난다. 내가 건강해지며, 내 가정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하늘의 기쁨과 감격이 찾아오고, 감사가 저절로 나오게 된다. 그리고 파멸에서 벗어나 저 천국에 이르게 될 것이다. 참된 진리의 빛이 비치면 어둠이 떠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8. 나오며
율법은 우리를 괴롭히려고 주어진 법이 아니다. 그것은 큰 오해다. "죄"라는 것을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데서 나온 오해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힘들게 하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사실 우리가 그렇게 살면 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기 때문에, 미리 복을 받게 하려고 주신 말씀이다. 즉 이렇게 살면 이렇게 되고 저렇게 살면 저렇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고마운 예비장치인 것이다. 그러므로 죄란 다른 것이 아니다. "죄"란 우리가 만약 그렇게 산다면 복이 되지 못하고 저주가 되게 하는 것들을 가리킨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저주를 받지 않게 하려고 십계명의 말씀을 먼저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지키는 자는 율법에 기록된 온갖 저주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복을 받을 것이다. 행여 율법에 기록된 대로 다 지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대속으로 인하여 저주를 받지 아니하고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율법말씀을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이미 다 아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으시려고 오신 것이다. 예수님을 찬양하자. 그리고 죄를 지었다면 즉시 회개하자. 그러면 우리는 더이상 병원신세를 안 지어도 되고, 내 자녀들 때문에 밤을 지새울 날도 없을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7월 14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