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바울이 드린 기도가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그가 드린 기도는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그가 쓴 편지들 뿐이다. 그런데 바울은 총 13개의 편지를 남겼다. 그중에서 바울이 드린 기도가 간접적인 형태로 남아 있는 편지들이 있는데,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가 바로 그러한 편지들에 속한다. 그런데 바울이 드린 기도의 내용이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에베소서다. 에베소서에는 그의 기도가 2번 나온다. 그중에서 에베소서 1장에는 에베소교회의 구성원 개개인을 위한 바램의 기도(엡1:15~23)가 나오고, 3장에는 에베소교회의 전체 공동체를 위한 바램의 기도(엡3:14~19)가 나온다. 그중에서 오늘 우리는 에베소서 1장에 나오는 바울의 기도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그가 이제 교회가 세워진지 13년이 된 에베소교회를 위하여 무슨 기도를 올렸을까? 그리고 그가 드린 기도는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드리는 기도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는 오늘 바울이 드린 기도를 통해서 교회의 각 구성원들이 과연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교회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2. 에베소교회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처음부터 개척한 교회는 아니었다. 아볼로가 먼저 가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행18:24~28). 그는 예수께서 구약에 약속된 그리스도이심을 전했고 세례요한의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 그러자 바울이 와서는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또한 그들 12명에게 안수했다. 그러자 그들에게 성령세례가 임하였고 그들은 이내 방언을 말하게 되었고 예언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면서 안식일에는 회당에 나가 하나님의 나라를 강론하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반대하자 그는 두란노서원을 빌려서 거기에서 제자양육을 시작했다(행19:8~10). 왜냐하면 당시 소아시아에서 에베소 도시는 교육과 문화 그리고 무역의 중심도시였기 때문이다. 거기가 선교거점이 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을 양육하고 파송하여 교회를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를 2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에베소 도시는 제우스의 딸이자 여신이었던 아데미(아르테미스)를 숭배하는 도시였는데, 은장색 조합의 우두머리가 자기들의 수입이 줄어든 것을 알고 바울을 없애기 위해 시도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바울이 현장에 없어서 붙잡히지는 않았지만 위험한 상황에 빠질 뻔했다. 그러자 제자들은 바울을 떠나보내기로 결정한다. 결국 바울은 그곳을 피해 마케도냐로 이동하였고 얼마 후에 다시 돌아왔지만 에베소에 머무르지는 못했고, 에베소 가까이에 있는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마지막으로 당부말씀을 전하고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바울은 이어 3차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거기서 유대인들의 선동에 의해 붙잡히게 된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시민권자였으므로 로마황제에 재판을 호소함으로 말미암아 로마로 압송되었으며, 거기에 있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결국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그가 그토록 사랑했고 애지중지했던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한 통의 편지를 써서 보내는데, 그것이 바로 "에베소서"인 것이다.
3.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무슨 기도를 드렸는가?
A.D.62~63년경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서 에베소교회에게 이 편지를 써보낸다. 그가 A.D.54년경 3차전도여행중에 에베소교회를 개척한 후였으니 약 12~13년 정도가 경과된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그순간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무슨 편지를 써 보낸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구원경륜의 비밀"에 관한 것이었고 이어서 교회가 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구원론과 교회론에 관한 깊은 영적 통찰력을 에베소에 써 보낸 것이다. 거기에서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 개개인을 위한 기도를 같이 써서 보냈는데, 그것이 바로 엡1:15~23의 말씀이다. 그중에서 엡1:15~19의 말씀은 그의 직접적인 기도이며, 엡1:20~23의 말씀은 교회에 관한 그의 신앙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바울은 이때 무슨 기도를 드린 것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크게 보면 그것은 에베소교회 성도들 개개인에게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었다. 특히 하나님의 완전한 지식 안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도록 기도한 것이다. 혹시 여러분은 하나님의 완전한 지식을 알게 해주는 "지혜와 계시의 영"에 관하여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바울은 하나님의 완전한 경륜을 알게해주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에베소교회 성도들 각자에게 부어지도록 기도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에베소서의 전반부(1~3장)에 등장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경륜"이다. 사실 하나님의 구원경륜은 아무나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바울을 통해서 지금 에베소 교회에게 알려주시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교회에게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구원경륜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교회가 되도록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4. 바울이 드린 기도의 구체적인 3가지 제목은 무엇이었는가?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지혜와 계시의 영이 부어지도록 기도했다. 그래야 그들의 깊은 내면의 마음의 눈이 열려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혜와 계시의 영이 부어져서 마음의 눈이 열리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것이 바로 바울이 에베소교회 개개인 성도들을 위한 기도제목이다. 그것은 총3가지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이 3가지를 기도한 것이다.
첫째,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성도들 각자가 하나님의 부르신 "부르심의 소망"을 갖기를 기도했다(엡1:18b).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방인들 중에서 불러내어 복음을 듣게 하신 목적을 알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이방인일지라도 모두가 다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고 결국 하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었다(엡1:5,3:6).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내는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좋은 직장을 얻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세상의 권력를 누리도록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불러내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계속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 우리를 불러내신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구원받아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의 상속자가 되도록 우리를 불러내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르심의 소망 곧 하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혈통이 좋아야 하는가? 아니다. 하늘의 상속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 아니어도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자여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여를 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그것은 놀랍게도 너무나 쉽고 간단하다. 그것은 이러한 소식을 "듣고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엡1:13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분 안에서 너희도 역시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 그분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든지 진리의 말씀인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서 반응하면 되는데, 그 기쁜 소식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 이외에 다른 조건이 없다. 주님은 여기에 어떤 혈통적인 조건이나 성별적인 조건 혹은 사회적인 조건을 전혀 개입시키지 않고 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얻는 것이 하늘의 상속자인 것이다.
둘째,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 각자가 하나님이 장차 하늘에서 주실 기업(상속)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했다(엡1:18b). 오늘날에도 성도들은 이 부분에 대해 잘 모른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 곧 구원에만 관심이 있지, 천국에서 들어가서 받게 될 상속분이 있다는 것일 잘 모른다. 심지어 어떤 이는 "천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 것이지, 거기서 받을 상은 무슨 상이야, 난 안 받아도 상관없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우리가 받아누리게 될 기업(상속분)은 어마어마하게 큰 것이며, 그것은 영원히 누리게 될 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상을 받는 것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안 된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우리는 이 땅에서 땀흘려 수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하늘에서 주실 기업(상속분)은 결코 거져주시지 않는다. 충성과 헌신의 분량에 따라 천국에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별로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조차 원하지 않는 사람인지 아닌지부터 한 번 조사해 보아야 한다. 아니다. 천국에서 노릴 상의 크기는 모두가 다 다르다. 그것의 영광스러움을 천국에서 영원한 부러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엄청나게 큰 것이어서, 천국에서 각기 자신의 집의 크기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오늘도 자신의 신앙을 경주라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경주는 단지 코스를 통과하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주는 반드시 경기장에서 승리해야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주자는 자신을 절제할 줄을 알아야 한다. 만약 그것이 실패한다면 그는 혹 트랙에 나설 수는 있을른지는 몰라도, 그 경주에서 패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경주에서 상얻는 자는 단 하나뿐인데, 우리가 그 경주에서 이기려면 열심히 경주하는 길밖에 없다고 독려했다(고전9:24~25). 그리고 그는 열심히 달리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은 아직 얻은 것도 아니며 온전히 성취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빌3:12~14). 그는 하나님께서 위에서 불러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써보낸 그의 마지막 편지은 디모데후서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에게도니라(딤후4:7~8)" 그랬다. 이것들 2가지가 성도가 꼭 깨닫고 있어야 할 중대한 기도제목들인 것이다.
셋째, 바울은 마지막으로 에베소 성도들 각자가 믿는 자들에게 베풀어주는 그분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바랬다. 그렇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자신이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을 알고 또한 어디로 가야하는 지를 잘 알고 있다면, 당장 자신에게 불어닥치고 있는 현상들 앞에서 그리고 귀신들 앞에서 떠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자신의 능력과 권세로부터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를 도와주실 하나님의 능력을 끝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엄청나다. 귀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환경이 넘어뜨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부르심의 소망과 그분이 주실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아는 자에게는 실로 엄청난 능력을 부어주시려고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알기를 사도바울은 간절히 기도했던 것이다.
5. 바울이 드린 기도와 우리의 기도제목은 어떠한가?
문제는 우리의 기도다. 지금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는 대체로 어떤 기도인가? 대부분은 교회의 부흥과 성장일 것이다. 하지만 교회가 부흥하고 양적으로 성장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할지라도 진정 천국에 들어갈 자를 산출해내지 못하는 교회라면 그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그들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만 더 먹칠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기도제목은 가정의 평화과 자녀의 성공이다. 가정의 평화도 필요한 것이요 자녀가 잘 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잘 된다고 해서 우리의 가정과 자녀들이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도 기도해야 할 일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먼저 나부터 하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고 상속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하며, 이어서 다른 이들도 그러한 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6. 나오며
사도바울의 기도는 상당히 영적이다. 에베소서가 영적인 복을 말씀하고 있어서인지 우리는 바울의 기도제목 속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진정한 복은 하늘에 속한 영적인 복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바울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다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국에서 받을 기업(상속분)이 얼마나 크고 풍성하며 귀한 것인지를 그들이 알기를 바랬다. 그것은 그것을 아는 것을 뛰어넘어 그 일을 위해 교회의 구성원이 힘껏 달려가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힘껏 달려가는 자들을 위해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지극히 큰 능력을 그들에게 나타내보이실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바울의 기도"인 것이다다. 우리는 바울의 기도를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육신에 속한, 땅에 속한, 일시적인 축복에 매여사는 어리석은 인생으로 전락할 수 있으을 명심해야 한다. 건투를 빈다.
2019년 8월 25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