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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GQxhrV1wSK4
날짜 2019-09-01
본문말씀 마태복음 6:9(신약 8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주기도문강해,기도의대상,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아버지하나님,하나님아버지,초월자,절대자,전능자,친밀성과관계성,기도하는민족

1. 들어가며

  모든 성도는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성도들치고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처럼 기도를 많이 하는 민족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불교가 전래되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조상신 숭배가 시작되면서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기도하는 민족이 되었다. 다만 기도하는 대상이 이리저리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구한말, 우리나라에 서양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들어왔다. 그들은 우리들이 기도해야 대상은 삼신도 아니고, 산신령도 아니며, 천지신명도 아니고, 석가도 아니라고 했다. 참신이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우리 하나님이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해방전후만해도 기독교인구가 4%에 불과했지만 뜨거운 기도의 열기는 교회마다 가득 채웠고, 1950년 6.25전쟁이후 새벽기도로 인해 교회는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결국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잘 하나님을 믿는 나라가 되었으며, 개발도상국 중에 가장 빨리 성장하고 부강한 국가가 되었다. 문제는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 대상이다. 우리가 기도를 드는 대상은 대체 누구인가? 그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는 누구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2. 예수께서는 어떻게 되어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가?

  누가복음 11장에 의하면, 제자들 중 하나가 예수께 여쭙는다. "주여, 요한이 자기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준 것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그러자 주님께서는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고 하시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기도문"이라고 알려진 그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산상수훈의 말씀 중에 잘못된 기도의 2가지 형태를 말씀하신 후에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올바른 기도를 가르쳐주셨다고 나온다. 과연 어떤 것이 먼저였을까?

  그리고 누가복음에 나오는 주기도문(눅11:2~4)은 마태복음의 주기도문(마6:9~13)에 비해 좀 짧은 것인데 어떤 것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였을까? 그것은 우리가 그 때로 돌아가봐야 알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 알 수 있는 것은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은 마태가 편집했던 복음서의 산상수훈에 나온다는 사실이다.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는 주제별로 묶어서 성경을 냈다. 다시 말해, 산상수훈은 천국백성의 윤리에 관한 말씀을 묶어서 5장, 6장, 7장으로 편집한 것이고, 마8~9장은 예수께서 일으키신 기적만을 따로 묶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마13장은 천국에 관한 비유만을 묶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것을 가정해볼 수 있다. 주기도는 누가복음에 나와있는 것처럼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청원에 따라, 그리고 마태복음에 나와있는 것처럼 잘못된 2가지 유형의 기도를 말씀하신 뒤에 올바른 기도를 가르쳐주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3. 주님께서 지적해주신 잘못된 기도란 대체 어떤 것인가?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른 기도를 가르쳐주기 전에 2가지 잘못된 기도를 먼저 가르쳐주셨다. 그것은 첫째, 유대인들의 외식하는 기도였고, 둘째, 이방인들의 중언부언하는 기도였다. 먼저,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대 종교지도자들처럼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외식하면서 자신의 경건성을 과시하기 위해서 드리는 기도, 그것도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게 기도하는 그러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오히려 은밀한 중에 보시고 은밀한 중에 드리는 골방기도를 더 기뻐하신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번째로 이방인들의 기도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기도하는 대상이 누군지를 잘 모르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지 이방인들은 자기들의 섬기는 신의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해 기도하는데, 그중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하면, 자기들의 신이 응답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구하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 아시고 있기 때문에, 중언부언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하는가?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드려야 할 바른 기도를 가르쳐주셨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주기도문"이라는 기도다.

 

4. 우리 성도들은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는가?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크게 세 분으로 되어있다. 첫째는 기도의 대상을 부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6가지의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그것은 하늘의 필요 3가지와 땅의 필요 3가지다. 그리고 셋째, 송영으로 끝맺는다. 그중에서 오늘은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 대상에 관한 말씀을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과연 누구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딱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이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을 들여다보면, 이 문장은 3개의 구성된 문장이다. "파테르 헤몬 호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로서, 하나하나 직역한다면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 "하늘들 안에 계시는 우리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쳐준 바로 그분에게 기도해야 한다.

  첫째,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기도할 때에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파격적인 말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성도들 가운데 단 한 명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했던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늘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지, 결코 친근하고 가까운 "아버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통틀어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버지라고 소개하신 경우도 있고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진짜 아들이 있었고 그 아들이 기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은 창조주라는 의미로 쓰이거나(사64:8), 둘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신 분이라는 의미에서 쓰였다(신32:6). 그리고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주요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쓰인 것이다(말1:6). 고로, 하나님께서 정식으로 당신의 자녀를 낳았기에 그 자녀더러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라는 가르침은 없었다.

  다만,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아들로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사실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최초의 아들이자 독생자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이라고 기도하지 않으시고, "아버지" 혹은 "내 아버지"라고 기도하시기를 기뻐하셨다(마26:39, 요11:41). 왜냐하면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는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의 아버지이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에는 놀라운 선언을 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기도하라. 하늘들 안에 있는 우리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장차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아버지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아버지도 되실 것이라는 의미이면서, 그때가 되면 이전에 기도하던 방식과는 달리 하나님을 부를 때에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임을 말해준다. 그 전에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있는 위엄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가까이 계시는 친밀한 대상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앞으로 제자들이 기도할 때면 하나님께서는 이제 더이상 위엄과 두려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친밀하고 가까운 분으로서, 나의 가장 가까이서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 즉시즉시 반응해주시는 분에게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둘째, 예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나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라는 공동체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 전에 드린 기도가 개인의 이기적인 욕심을 따라 기도한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렇게 기도하지 말고, 공동체 모두의 유익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을 말해준다. 특별히 그들이 유대인인만큼 유대민족만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민족을 다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내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기도하기보다는 공동체의 유익 곧 내 주변과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 모두가 다 복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기도의 대상 앞에 수식어를 하나 붙일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하늘들 안에 계시는"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기도하라r고 하셨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이 수식어를 통해 알려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것은 "하늘들 안에 계신는 분"이라고 것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하늘들"을 단수를 사용하지 않고 복수로 사용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주신 하늘은 세 개로서,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sky)과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우주의 하들(space)와 하나님과 천사들이 있는 셋째하늘(heaven)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셋째하늘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와 우주와 셋째하늘 모든 장소에 거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그분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어디서 기도하든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장소가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우리들이 비는 기도를 들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늘들에 계시는"말을 붙혀서 기도하라는 것은 그분이야말로 전능자이요 절대자이며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심을 인식하면서 기도하라는 것이다. 우리 이방인에게는 한 마디로 "하나님(신적 존재)"으로 알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입이 있으나 말도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는 우상과 다르며, 아무리 해주고 싶어도 능력이 없어 해 줄 수 없는 우리 육신의 부모와는 차원이 다른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들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시115:3)" 그분은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 그분의 눈이 우리를 살펴보고 계시기 때문이다(시139:1~4).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응답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이인 것이다.

 

5.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정의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올바른 기도에 따르면, 기도란 어떤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렇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기도란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라는 것을 확인하고 경험하는 절차의 한 가지라는 사실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사실 거듭남의 과정을 우리의 눈으로 직접 들여다볼 수는 없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명하신 것이다. 그분이 진정 내 아버지인가 하는 것은 기도를 드려서 기도응답을 통해 확인해보라는 것이다. 사실 모든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과연 나의 아버지이신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기도도 하나님께 나의 아버지인 것을 확인하는 방법의 하나요, 구원도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신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오늘은 우리가 늘 기도하는 대상인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예수께서는 놀랍게도 우리가 기도드릴 대상을 일컬어 "하나님"이나 "주님"이나 "만군의 여호와"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여"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이것은 놀라운 계시의 발전이요, 기도응답의 확실성을 더욱 보장해주는 선언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인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분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어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만 아직도 하나님을 "아저씨" 정도로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오늘부터 하나님을 부를 때, "아버지"라고 불러 보라. 특별히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을 우리말로 바꾼 "하나님"이라 말과 함께 사용해보라. "하나님 아버지, 저 누구누가 지금 기도하러 왔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 아들을 굽어보시옵소서. 다른 모든 사람은 다 나를 몰라준다 해도 저는 하나님 아버지만 있으면 됩니다. 이 시간 내가 드리는 이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시옵소서. 저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기에 너무나 좋습니다. 하늘 아버지시여, 다시 한 번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라고 기도를 시작해보라. 기도가 확연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

 

2019년 9월 1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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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2019.09.02 22:33
    샬롬~♡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지구는 둥글지 않고 평평하다고 하는데 목사님의 생각은 어떤지요
    창세기 여호수아등에 태양아 멈춰라등 궁창에 하늘에 태양과 별 달이 있고 우주는 없다고 합니다. 궁창위 물이 있다고 창세기를 자세히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창조과학 담당자도 제 아들도 저보고 미쳤다고 합니다. 500년전에는 평평햏다고 주장했는데 목사님 헬라어로 정확히 풀어주세요.너무 힘듭니다. 지구가 돌지않고 태양과 달이 돌고 있습니다. 확인부탁드립니다.
    수고하세요. 부산에서 김미숙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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