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는 "지혜서"라는 책들이 몇 권 있다. 욥기와 잠언과 전도서가 바로 그러한 책들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는 지혜서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리고 예수께서 공생애기간에 말씀을 전하실 때를 살펴보면, 모세의 율법도 인용하시고, 선지자들의 글도 인용하시고, 시편도 인용하셨지만 단 한 번도 지혜서의 글들을 인용하지 않으셨다. 왜 그랬을까? 구약의 지혜서는 어떤 점에서 한계가 있었는가? 왜 사도바울은 자신이 이전에 가졌던 지식을 다 배설물로 여긴다고 결단해야 했는가? 오늘은 예수님 이후 참된 지혜자가 누군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누가 지혜자인가? 과연 누구를 우리는 지혜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지혜"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자는 "지혜"는 과연 같은 뜻일까 아니면 다른 뜻일까? 왜 구약성경에는 지혜서라는 성경책이 있는데, 왜 신약성경에는 지혜서라는 성경책이 없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지혜"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고, 과연 진정한 지혜자라는 것은 누구를 가리켜 말씀하심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구약성경 중에서 지혜서가 가지고 있는 한계는 무엇인지도 더불어 살펴보고자 한다.
2. 성경책 중에서 "지혜서"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리가 가진 성경책 중에는 그 분류 가운데에 "지혜서"라는 성경책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구약성경에만 들어 있다. 왜 그런가?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분류할 때 처음에는(맛소라 학자들) 3종류로 분류했다. "토라(율법서)", "느비임(선지서)", "케투빔(성문서)"이 그것이다., "토라"는 모세가 쓴 오경으로서 처음 5권의 성경책들 곧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민수기, 신명기를 가리킨다. 그리고 "느비임"이 있다. 느비임은 선지서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스가랴, 말라기 등의 예언자들의 책을 일컫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머지 모든 책들을 그냥 '문서'라는 의미에서 "케투빔(문서들)"이라 부른다. 그런데 B.C.200~180년에 나온 구약성경의 헬라어번역판은 70인역에서는 '케투빔'을 다시 2가지로 더 세분한다. "역사서"와 "시가서"라고 말이다. "역사서"는 모세오경 이후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한 책들을 가리키는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가 바로 그 책들이다. 그리고 시가서가 있는데, 시가서에는 "욥기,시편,잠언,전도서,아가서"가 있다. 이중에서 "욥기와 잠언과 전도서"만을 따로 구별하여 "지혜서'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편 로마카톨릭에서는 개혁교회보다 7권의 성경책이 더 들어가 있는데, 그 중에서 "집회서"와 "지혜서"를 추가하여, 총5권의 성경책을 "지혜서"의 큰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3. 왜 "욥기, 잠언, 전도서"를 지혜서라고 부르는가?
그렇다면, 왜 구약성경 중에서 욥기와 잠언(마샬)과 전도서(코헬렛)를 "지혜서"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이 세 권의 책이 "지혜"가 무엇인지를 집중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혜"라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지혜'라는 말과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지혜'는 사실 개념이 약간 다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지혜'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인 능력"을 가리킨다. 이름하여 "슬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그러한 의미를 뛰어넘는다. 왜냐하면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모체 지혜를 아무리 이야기한다고한들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지혜를 인간이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4.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 중에 상당수는 "지혜 컴플렉스"에 걸려 있다. 왜냐하면, 지혜란 많이 배운 자, 혹은 많은 공부한 자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아우르는 자가 아니라면 자신을 지혜자로 부르기를 꺼린다. 그러나 그렇게 실망할 필요가 전혀 없다. 성경적인 기준에 따르면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사실 모두가 다 지혜자라고 정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성경에서 정의하는 지혜라는 개념이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라는 개념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무엇을 '지혜'라고 부르는 것일까? 성경에서는 지혜를 한 마디로 "하나님(여호와)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욥28:28, 잠9:10, 전12:13). 지혜서들이 공히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이것이 지혜의 근본이자 뿌리요 뼈대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혜서들의 저자는 왜 지혜를 주를 경외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아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누려보았던 솔로몬이 결론적으로 인생은 헛되고 헛되어 다 바람잡은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을 모르는 지혜는 결국 다 물거품과 같이 사라지고 만다. 한 세대를 섭렵했던 자라도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지 못하며, 참된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붙잡지 않는 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지혜는 결국 바람잡는 것과 같이 헛되어 자신의 영혼에 그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기 때문에 솔로몬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경외하는 것이야말로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한 것이다.
5. 지혜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지혜서 중에는 욥기가 있고 잠언, 전도서가 있다. 욥기는 특별한 지혜서라 말할 수 있고, 잠언과 전도서는 일반적인 지혜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잠언과 전도서는 이미 자기가 지혜자로 살고 있는 상태에서 남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지혜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쓰여진 것이라면, 욥기는 지혜를 모르는 저자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 지혜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를 찾는 욥기서는 이러한 질문을 한다. "그런즉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이 머무는 곳은 어디인고?(욥28:20)" 욥은 그것이 모든 생물들의 눈에 감추어져 있으며 공중의 새들에게도 감추어져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멸망과 사망도 이르기를 "우리도 귀로서 그 소문만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욥은 하나님만이 그 길을 알고 계시며 하나님만이 그것이 있는 곳을 아신다고 했다(욥28:23). 그렇다. 하나님이 지혜의 길을 알고 있으며, 지혜가 있는곳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결론적으로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가진 속성 가운데는 지혜가 들어 있다. 하나님은 지혜로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혜를 인간에게 조금 나눠주신 것이다(잠2:6,전2:26). 그래서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어 인간에게 전달되어졌으로, 이 세상에 모든 지혜는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말이다.
6. 지혜를 얻게 되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
그렇다면 사람이 지혜를 얻게 된다면 어떤 유익이 있는 것일까? 그것은 크게 2가지 유익이 있다고 하겠다. 지혜는 사리를 분별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에, 이것을 얻게 된 자는 첫째, 재물과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잠8:12,17~18). 그리고 둘째, 사람들로부터 지혜로운 자라는 평을 들을 수 있다. 즉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흠숭을 받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그랬다. 그는 통일이스라엘 왕국의 2대왕이 되었는데, 그가 젊은 나이(약 20세로 추정)에 왕위를 계승함에 따라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게 되고, 그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줄꼬라고 말씀하시자, 듣는 마음 곧 지혜를 달라고 간구한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게 된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곳에서 솔로몬을 지혜를 들으려고 방문한다. 물론 그때 솔로몬왕은 바벨론에서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당시 세상에 있는 지혜서들을 함께 만나게 된다. 그러니 잠언 같은 경우는 당시 세계에 있는 지혜서와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첫째,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게 되며, 둘째, 세상사람들로부터 존경과 흠숭을 받게 된다. 그때 솔로몬이 지었던 잠언이 무려 3천개라고 하니 그의 지혜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때 솔로몬은 놀라운 것을 깨닫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혜서를 다 섭렵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고 사람들로부터 존중을 받게 되니, 결국에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될 수 있다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지혜를 다 깨달아도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자 지혜의 근본이라고 언급하게 된 것이다.
7. 구약의 지혜서의 한계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도 솔로몬처럼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이니 하나님만 경외하는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수많은 고통과 질병, 그리고 죽음의 문제 앞에 직면하게 되지만, 이 세상의 지혜로서는 그것을 다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죽은 이후의 세계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사는 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한다. 솔로몬의 지혜서의 말씀으로는 이 세상에 사는 자들에게 다만 부귀영화와 존중이 있다는 것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사실 신약의 관점에서 보면, 구약의 지혜서의 말씀이 좋고 훌륭하기는 해도 구약의 지혜서는 절대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것들이다. 첫째,사람이 영적으로 어떠한 상태에 놓여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이미 죄로 얼룩져 있어 치명상을 입은 상태에 있다. 치료받지 아니하면 죽게 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이다. 둘째, 사람이 어떻게 해야 근본적으로 저주와 가난과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 모든 배후에는 사탄마귀가 도사리고 있어서, 이들을 처리해야만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데도 말이다. 셋째, 사람이 어떻게 죄의 문제를 해결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방법인 속죄의 방법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인간 스스로 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 속죄제물로 오셔서 그 일을 해결해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8. 예수님의 설교에는 왜 단 한 번도 지혜서에 있는 말씀이 언급되지 아니하는가?
과연 예수께서는 "영생"을 무엇이라고 정의하셨는가? 예수께서는 영생을 이렇게 정의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17:3)"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지혜를 다 깨닫고 섭렵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누구시며 예수께서 왜 이 땅에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모른다면 말짱 헛 것이 되는 것이다. 그 어떤 인생의 문제가 해결받지 못하고 죽음 이후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혹시 이러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 설교하시면서 구약성경들을 인용하셨는데, 욥기서나 잠언과 전도서의 말씀을 단 한 번도 인용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을 말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인용하셨던 말씀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들"과 "시편의 말씀들"이 전부였다(눅24:44~45). 예수께서는 공생애 중에 지혜서의 말씀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지혜서에는 하나님께서 구원자로서 이 땅에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이라는 말씀이 단 한 마디도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어느날 자신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구약성경들) 안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들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들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라(요5:39)"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혜서에는 메시야에 관한 약속이나 예표들이 전혀 등장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구약의 지혜서들은 인용하실 수가 없으셨던 것이다.
9. 예수께서는 왜 제자들을 선택하되 성경에 기록된 그 제자들만을 뽑으셨는가?
육신을 입으셨던 하나님 곧 예수께서는 왜 당신의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랍비를 뽑으시지 않으셨을까? 왜 제사장 중에서 뽑지 않으셨으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중에서도 단 한 명의 제자를 뽑지 않으신 것일까? 그 이유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온다. 예수께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거나 스스로 슬기롭다고 하는 자들에게는 자신을과 하나님을 계시해주지 않으셨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마11:25~27). 하나님은 하나님이 없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구원자로 오셨음도 계시해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은 어부처럼 배운 것이 없고, 무식한데 다만 예수님께서 나를 불러주였으니 들려준 말씀을 그대로 진리로 믿고 따라가겠다는 자들만을 뽑아 당신의 제자로 삼으신 것이다. 바로 어린아기들과 같은 자들을 당신의 제자로 선택하신 것이다.
여러분은 사도바울을 생각해보았는가? 그도 자신이 지혜롭다고 하고 슬기롭다고 할 때에는 구약성경을 그렇게 많이 공부하고 읽었지만 그곳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구약의 말씀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출세할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면서 그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된다. 구약성경의 기록들이 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 책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모세의 오경은 그리스도의 모형들로 가득차 있고, 선지서와 시편에는 예수님의 출생과 공생애 그리고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이르는 놀라운 예언들도 가득차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전까지 자신이 추구했던 모든 것들을 다 배설물로 버려버린다. 그리고 오직 성경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분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일에 모든 것을 걸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 깨달아야 할 참 지혜요 하늘의 지혜였기 때문이다.
10. 나오며
신약시대에도 성경의 지혜를 이용하여 부귀영화와 재물을 누린 자들이 나온다. 하나는 성전에서 재물을 팔고 환전을 하여 재물의 축복을 누렸던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이 그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함으로써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흠숭을 받았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책망했는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했다. 이는 그들이 구약성경을 사용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고 존경을 받고 있지만 거기에서 그리스도를 전혀 캐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부귀영화와 존경받는 일에만 사용했을 뿐이다. 그러면 결국 이 세상에서 불신자 가운데 이 세상의 지혜를 터특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들과 그들은 과연 무엇이 다른가? 그것들은 종교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 결코 아니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분이 누군지를 알아내며, 그분이 이미 성취해놓은 일들을 통해서 가난과 저주와 질병으로부터 벗어나며, 귀신을 쫓아내다가, 결국에는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가아 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전해 말해주지 않는 지혜서는 우리 삶의 도움서는 될 수 있을 망정 우리의 영혼의 구원의 문제에 도움을 주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려주는 참 지혜서 곧 신약성경을 더 아끼고 사랑하며, 거기에 기록된 대로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그것을 전파하여 다른 영혼을 살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19년 9월 22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