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유투브 주소 https://youtu.be/yAvUhNzfp7U
날짜 2019-10-20
본문말씀 누가복음 17:11~19(신약 125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감사의정의,감사할3가지이유,감사하는4가지방법,하나님께영광,복을인침,축복의씨앗,영원한상급,영원한영광

1. 들어가며

  오늘 본문(눅17:11~19)에 보면, 예수께서 열 명의 나병환(문둥병자)를 치료해주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들 모두가 기적적으로 나병에서 순간 고침받게 된다. 그런데 나았단 열 명의 나병환자들 중에서 오직 한 명만이 예수께 돌아와 엎드려 절하고 감사를 드린다. 그렇다면 왜 나머지 9명은 감사하기 위해 예수께 나가아지 않은 것일까? 예수께 나아가서 절하거나 감사를 표현하게 되면, 안 되는 어떤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그들은 자신의 믿음으로 나은 것이니 굳이 주께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가? 아니면 가서 제사장들에게 자기의 몸을 보여주고 나병에서 깨끗히 치료받았다고 확증을 받은 후에 돌아와서 예수께 감사하려고 했던 것인가? 그런데 예수께서 들려주신 말씀에 의하면, 나병환자들이 병에서 고침받은 후 예수께로 돌아와서 감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예수님의 아쉬움이 짙게 묻어 있다. 대체 감사란 무엇이며, 왜 사람들은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가? 이제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진짜 감사의 의미와 감사의 의의 그리고 감사의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2. 오늘날 왜 개신교인들은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는가?

  우리는 구약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특히 예수믿는 대한민국 성도들은 율법을 규정대로 지켜야 하는 유대인들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인들은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는가? 오늘날 한국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사실 미국의 "추수감사절"에서 유래한 것이며, 그것의 원조는 유대인들의 "수장절"이다. 수장절은 유대인들의 3대 절기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다면 왜 유대인들은 수장절을 지켜야 했던 것인가?

  유대인들에게는 크게 2가지 종류의 절기가 있었다. 하나는 창조의 은총에 감사하는 절기가 있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 농사한 것을 가지고 감사하는 절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절기에는 "초실절", "맥추절(칠칠절)", "수장절"이 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절기 있었으니 그것은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는 절기다. 그러한 절기에는 "유월절, 무교절, 오순절, 나팔절, 초막절, 속죄일" 등이 있다. 이것은 곡식을 심고 그것을 거둬들이는 시기에 맞추어진 절기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창조의 절기와 구속의 절기 가운데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똑같은 절기를 창조의 은총에서 그리고 구속의 은총의 절기에서 다르게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 "오순절"이라는 절기는 구속의 은총의 절기이지만 동시에 창조의 은총의 절기에서는 "칠칠절" 혹은 "맥추절"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초막절"도 구속의 은총의 절기에서 부르는 명칭이라면, 똑같은 날을 창조의 은총의 절기에서는 "수장절"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초막절"이면서 "수장절"인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오늘날 개신교에서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은 밭농사나 논농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수장절"인 것이요, 농사를 짓지 않고 도시의 생활에 익숙한 자는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는 "초막절"로 지키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은 감사의 절기로서 그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3. 사람은 왜 감사하지 않을까?

  만약 우리의 가족 중 한 사람이 뇌출혈로 쓰러졌다고 해보자. 반신불수가 되어, 일평생 누가 간호해야 할 사람이 되었다고 치자. 얼마나 괴롭겠는가? 과연 누가그의 모든 뒷바라지를 할 수 있겠는가?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오래 살기도 하는데, 그가 살아야 할 30~40년을 누가 과연 병수발해주겠는가? 그런데 어느날 감쪽같이 뇌기능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어, 혼자서 숟가락질도 할 수 있게 되고, 걸어서 화장실도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치자.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이 또 얼마나 감사하겠는가? 내가 오늘 기계의 도움이 그냥 혼자 살아서 숨쉬고 있다는 것만해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인간은 참으로 간사한 것 같다. 눅18장에서 주께서 어떤 부자청년에게 영생을 얻으려면 자신의 전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했는데, 사실 우리들 중 누가 자신의 전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주님을 따르고 있는가? 또한 눅17장에서 삭개오는 자신의 집에 방문해준 주님이 감사해서 그분을 위해 잔치를 배설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있었며,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다면 4배를 갚겠노라고 말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중 누가 우리가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알고 감사해서 자신의 전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는가? 사실 우리들은 지옥에 떨어졌어야 마땅할 영혼들이지 아니한가? 그리고 사실 우리가 영생 얻기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구원얻은 것에 대해 감사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 사람이 뇌출혈로 쓰러져서 몸의 기능이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면 감사하는데, 자신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받았는데도 우리는 또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자신에게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감사의 조건들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지는 아니한지 돌아보아야 한다.

 

4. 왜 9명의 나병환자는 병고침을 받았는데도 예수님께 감사하러 가지 않았는가?

  이제 오늘 본문 말씀(눅17:11~19)을 보자. 여기에는 나병환자 10명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이 어느날 자기의 동네를 지나가자, 이내 멀리서 소리쳐 부른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그것도 연거푸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들은 상당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그들은 지나가는 예수님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죽은 자를 살리며 나면서 못 걷는 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서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선생님이여"라고 불렀는데, 그 의미는 우리말성경처럼 "교사"가 아니라 "만물의 주관자"라는 뜻이었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어떤 존재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장 아름다운 속성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인자가 풍부하고 은혜와 긍휼이 많은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들의 외침을 주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고, 주님은 그들에게 한 가지를 명했다. 그것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시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순종했고 길을 가다가 병고침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한 명의 나병환자는 즉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렸고 뒤돌더니 예수님께 도로 가서는 그분 앞에 엎드리면서 절하면서 그분에게 감사하기를 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은 바로 사마리아 나병환자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9명의 나병환자는 유대인이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나머지 유대인 나병환자는 예수께로 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후 예수께서 들려주신 말씀에 의하면 그들은 다시 돌아와 예수께 감사를 했어야 했던 자들이다. 한 마디로 그들은 중대한 것을 놓치고 만 것이다. 감사하지 않는다면 문제될 것이야 없겠지만 그 뒤에 있을 축복을 그들은 전혀 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5. 감사를 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9명의 나병환자는 무엇을 놓쳐버리고 말았는가?

  그렇다. 9명의 나병환자들은 그만 돌아와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는 4가지 축복을 다 잃어버린 것이다. 그 축복이란 어떤 것인가?

  첫째,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돌릴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사실 사람이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돌리게 될 일이 많지는 않다. 사마리아 나병환자는 즉시 병이 낫게 되자 즉시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우리는 하나님께 일하셨다는 깨달을 때에 즉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감사는 하나님의 영광돌리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을 인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만약 9명의 나병환자들이 자신이 받았던 복을 알고 감사했더라면 그들이 받은 병고침은 한 없이 그들의 것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놓침으로 기적은 한 번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감사는 받은 은혜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인치는 작업인 것이다.

  셋째, 그들은 이미 받은 은혜 외에 또 계속해서 받을 수 있는 복의 은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사마리아 나병환자가 주님께 돌아가 감사했을 때 주님께서는 그에게 "네 믿음을 너를 구원하였으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가 병고침 이외에 다른 더 큰 축복을 받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 감사는 더 큰 축복을 가져오게 하는 통로인 셈이다.

 넷째, 만약 그들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곳에서 받을 상급을 놓치고 말았다. 천국에 가면 공짜는 없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 한 마디, 기도 한 조각도 천국에 가면 우리에게 상급이 되어 내게 돌아온다. 그들은 천국에서 받을 상급받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6. 우리는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감사할 기회가 주어지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는가?

  첫째, 감사하고는 싶으나 드릴 것이 없는 경우가 있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나병환자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다. 사마리아 나병환자는 나병환자가 되어 동네에서 떨어져서 거지처럼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주님께 드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감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돌아가 엎드려 경배하며 감사했을 것이다. 그렇다. 이러한 경우에는 온 마음과 정성을 주님께 드리면 된다. 마음을 다해 주님께 찬양을 드리고 그분께 엎드려 경배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신다.

  둘째, 무엇인가를 드릴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만약 농부가 되어 추수한 곡식이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하면 된다. 도시에 있어 셀러리맨이라고 하면 자신의 수입으로 감사하면 될 것이다. 마26장에 보면, 값비싼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드린 여인이 나온다. 제자들은 그것을 낭비라고 말했다. 그것을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더 나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 여인이 잘한 일이라고 칭찬해주셨다. 주님께 드리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큰 것이라 할지라도 결코 낭비가 아니며, 값지고 귀한 것이다.

  셋째, 드릴 것이 없지만 자신의 몸이나 혹은 은사와 달란트가 있는 경우다. 드릴 것이 없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에 몸으로 봉사하는 것도 감사를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된다. 그리고 은사와 달란트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드리는 것오 일종의 감사의 표현방법이다. 다만 드리는 것이 물질이 아닐 뿐이다.

  넷째, 이것은 드릴 것은 없으나 드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여 자기자신의 생애 자체를 주께 드리는 경우다. 받은 은혜가 너무나 커서 드리고는 싶으나 현재의 형편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가진 물질도 없고 은사와 달란트도 없다. 그렇다고 주님께 드리고픈 마음은 간절할 때 어떤 이는 자신의 전 생애를 주께 바쳐버린다. 주님이 쓰시려할 때에 나귀가 되어드리겠다고 서원하는 것이다. 나와 같은 경우는 25살 청년의 시절에 그랬다.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가진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은사와 달란트도 없었다. 하지만 내 몸은 드릴 수 있지 아니할까 생각했다. 그래서 주님께 헌금봉투에 내 몸을 드린다고 바쳐버렸다.

 

7. 나오며

  감사란 무엇인가? 감사란 받은 은혜에 보은하는 것이다. 감사는 받은 은혜를 완전히 내 것으로 인치는 거룩한 행위이다. 감사란 은혜 위에 또한 은혜가 이어지도록 축복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아홉명의 나병환자는 그날 이러한 중대한 축복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받은 은혜가 없는데도 바치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바칠 없이 없는데 빚을 내서라도 바치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칠 것이 없을 때에는 우리의 소중한 마음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성껏 물질을 준비하면 그 물질을 기쁘게 받으신다. 혹 바칠 것이 없이 자기자신을 바칠 때에는 그 사람을 당신의 가슴 속에 심어놓으신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자는 복된 자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자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자에게 영적인 인침과 놀라운 기적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감사하자. 감사는 놀라운 축복의 통로이니까.

 

2019년 10월 20일(주일)

정병진목사


  1. 바울의 기도와 내가 드려야 할 기도(엡1:1~19)_2019-08-25(주일)

    1. 들어가며 바울이 드린 기도가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그가 드린 기도는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그가 쓴 편지들 뿐이다. 그런데 바울은 총 13개의 편지를 남겼다. 그중에서 바울이 드린 기도가...
    Date2019.08.25 By갈렙 Views452
    Read More
  2. 받은 은혜에 내 한 목숨 주님께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눅17:11~19)_2019-10-20(주일)

    1. 들어가며 오늘 본문(눅17:11~19)에 보면, 예수께서 열 명의 나병환(문둥병자)를 치료해주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들 모두가 기적적으로 나병에서 순간 고침받게 된다. 그런데 나았단 열 명의 나병환자들 중에서 ...
    Date2019.10.20 By갈렙 Views419
    Read More
  3. 받은 은혜와 받을 은혜(눅1:26~38)_2018-12-02

    갸녀린 여자의 모습을 지녔던 15세쯤의 마리아, 그녀는 일생일대에 위대한 결단을 하게 된다. 자신의 몸을 통해 메시야가 잉태되는 것을 천사에게 동의해 준 것이다. 그러자 천사가 떠나간다. 하지만 그녀의 동의가 그녀에게 가져올 엄청난 위험과 역경을 과연...
    Date2018.12.02 By갈렙 Views251
    Read More
  4.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말라(고전14:14~18)_방언기도의 유익

    방언의 기본은 무엇일까?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인가 아니면 외국어방언인가? 그리고 방언기도는 꼭 해야 하는 기도인가 아니면 안 해도 되는 기도인가? 이것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오늘은 방언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방언으로 기도하...
    Date2015.02.01 By갈렙 Views2035
    Read More
  5. 방언으로 대신할 수 없는 것(고전14:14~25)

    방언은 정말 개인에게는 매우 유익한 은사이자 초자연적인 은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방언이 모든 방면을 다 덮고도 남을만한 만능의 은사인가? 어떤 교단에서는 방언이 성령세례의 유일한 표적이라는 주장을 넘어서 구원받은 증거로까지 말하기도 한다. 또...
    Date2015.08.02 By갈렙 Views1002
    Read More
  6. 방언통역을 통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고전14:13~15)_2019-03-24(주일)

    1. 들어가며 오늘날에 대한민국에 있는 교인들을 가운데 약 250만명 정도가 방언을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전만해도 무슨 신령한 사람이나 기도 많이 하는 사람만 방언을 하는 줄 알았는데, 사도행전에 보니 예수님을 믿고 그 영이 살아난 자에게...
    Date2019.03.24 By갈렙 Views427
    Read More
  7.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피(출12;21-28)_2014-03-16

    예수께서는 원래 하나님이셨다. 그런데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제물이 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들어오시었다. 그리고 사53장의 고난받는 종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승천하셨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육체적으로 우리에게 남기고...
    Date2014.10.05 By관리자 Views1497
    Read More
  8. 보혜사 성령은 왜 아들을 증언하시는가?(요15:18~27)_2019-03-03(주일)

    보혜사 성령은 경륜적인 영이시다. 다시 말해, 믿는 사람들 속에 들어오실 수 있는 영이신 것이다. 구약시대까지만해도 성령께서는 단 한 사람에게도 그사람 안에 들어가신 일이 없었다. 그것은 아직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Date2019.03.03 By갈렙 Views338
    Read More
  9. 복(福)은 진정 누가 어떻게 받는가?(마5:1~12)

    2016년 새 해가 시작되었다. 올 해도 변함없이 수많은 인파들이 동해안을 찾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보러 간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정월 초하루에 떠오르고 있는 태양이었을 것이다. 태양을 바라보며 한 해의 소원을 빌어보기 위해서 그리 갔을 것이...
    Date2016.01.03 By갈렙 Views1090
    Read More
  10. 복음을 전파할 때에 주의해야 할 일(막16:15~18)_축사의 필요성

    요즘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가득찰 정도로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고 있음을 본다. 한 나라의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특히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 중에서도 어떤 것이 진짜인가 구분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한쪽에서는 기록된 말씀을 중요...
    Date2015.01.25 By갈렙 Views1298
    Read More
  11. 부자가 모르고 있던 것(눅16:19~31)

    우리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눅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눅16:19~31)를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부자는 과연 무엇 때문에 음부(지옥)에 떨어졌으며, 거지 나사로는 무엇 때문에 아브라함의 품(낙원 곧 천국)에 안기게 되었는지 그 이...
    Date2015.10.25 By갈렙 Views1135
    Read More
  12. 부활에 대한 소망과 오해(고전15:19~20)_2020-04-12(주일)

    성도들에게 왜 부활신앙이 중요한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부활신앙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야 할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그리고 인류의 죄가 어떻게 용서되었는지를 알려주고, 부활이후에 받...
    Date2020.04.12 By갈렙 Views306
    Read More
  13. 부활의 날의 아침을 여는 중보기도(눅24:1~10)_2018-04-01(부활주일)(설교영상)

    우리는 빚진 자다. 복음에 빚진 자다. 우리 남한 사람들은 특히 평양대부흥성회를 통해 구원의 은총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는 빚을 갚아야 할 때가 되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두 명의 선교사가 이 땅을 밟을 즈음 이 땅은 칠흙같은...
    Date2018.04.01 By갈렙 Views380
    Read More
  14. 빈익빈 부익부는 달란트 뿐인가?(마13:10~13)_2019-01-06

    1. 들어가며 성경을 읽다보면 영적인 세계에 통용되고 있는 놀라운 진리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대부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이다. 물론 이것들 중에는 어떤 것은 이 세상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진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어 ...
    Date2019.01.06 By갈렙 Views252
    Read More
  15. 빛을 찾아간 니고데모(요3:1-21)_2013-11-10

    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 자기에게 도움을 주고 해답을 줄 자를 찾는 경향이 있다. 자기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의 가르침이나 교훈을 배우고 싶은 것이다. 예수님 당시 니고데모는 유대인으로서 산헤드린공회원이면서 랍비였지만 그래도 배우고 싶은 열망이 대단...
    Date2014.10.05 By갈렙 Views1440
    Read More
  16. 빛의 3가지 효능(요1:4-9)_2013-12-01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리고 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는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라도 있었다는 말인가? 정답은 "그렇다"이다.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 있고, 얻을 수 없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세상...
    Date2014.10.05 By갈렙 Views1790
    Read More
  17. 사도 바울의 진정한 감사(살전2:13)_2022-07-03(주일)

    2022-07-03(주일) 주일낮예배 [맥추감사주일예배] 제목: 사도 바울의 진정한 감사(살전2:13)_2022-07-03(주일) https://youtu.be/6O1CHAvSJJE [혹은 https://tv.naver.com/v/28024376 ] 1. 들어가며 2.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3. 믿음과 삶이 본 ...
    Date2022.07.03 By갈렙 Views224
    Read More
  18.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과연 누구라고 기록해 두었을까?(딤전6:11~16)_2017-09-17(설교영상)

    우리에게는 현재 27권의 성경책들이 신약성경으로 들려져 있다. 그런데 이 책들중에는 2/3가 편지들이다. 그중에서도 사도바울이 보낸 편지가 13권이나 된다. 어떻게 사도바울이 개교회나 개인에게 보낸 것이 신약성경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또 한 가...
    Date2017.09.17 By갈렙 Views511
    Read More
  19. 사도행전 강해(06)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2)(행1:12~14)_2022-06-12(주일)

    오늘 메시지는 지난 메시지에 이어지는 두 번째 메시지다. 그것은 성령세례를 받기 전에 우리가 점검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성령받기를 기도해야 한다 할지라도 우선순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지키지 않는 한 우리도 역시 악한 영들에...
    Date2022.06.12 By갈렙 Views236
    Read More
  20. 사람들은 첫 회개를 언제 하는가?(행2:36~40)_2018-02-25(설교영상)

    사람들은 언제 회개하는 것일까? 사실 모든 종교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만 회개한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회개하면 용서를 해주실 능력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이미 그 죄값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진...
    Date2018.02.25 By갈렙 Views39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 29 Next
/ 29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