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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tf4lukfA-kI
날짜 2019-10-27
본문말씀 레위기 23:39~44(신약 183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초막절,추수감사절,초막,과거반추,현재감사,미래기대,초막절의의미,초막짓는이유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가까이는 미국의 추수감사절에서 멀리는 구약시대의 초막절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초막절은 어떻게 지켰는가? 그것은 안락한 집으로부터 빠져 나와 마당과 지붕에 초막을 짓고는, 그 해에 거둬들인 과일을 가져다놓고, 그것을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초막을 짓되 거기에서 무려 일주일동안 살라고 하였다. 하루쯤이야 괜찮겠지만 일주일간 찬 바람 솔솔 들어오고 비가 오면 비가 새는 공간에서 지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왜 초막에 일주일간 들어가서 살라고 명령하신 것인가? 거기에는 추수감사의 3가지 놀라운 의미가 들어있다.

 

1. 들어가며

  오늘은 교회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날이다. 한국 교회는 보통 11월 셋째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켜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많은 과실이 배출되는 10월 넷째주야말로 추수감사주일을 지키기에 가장 적합한 주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출애굽하여 광야에 나와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차 가나안땅에 들어가거든 1년에 한 번은 꼭 초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신 것인가? 초막은 여러가지 풀을 사용하여 얼기설기 짓는 임시오두막과 같은 것은데, 왜 편안하고 안전한 집을 놔두고 초막을 짓고 거기에 거하라고 명령하셨는가? 비가 오면 비가 새기도 하고, 찬 바람이 불이 찬 바람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초막을 왜 하나님은 지으라고 명령하신 것인가? 그리고 초막을 지은 다음에는 그곳에서 일주일을 보내라고 하셨는데,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곳에서 일주일씩이나 보내라고 명령하신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초막을 지으라고 하신 것인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이유를 온전히 알게 되었다면 우리도 영적으로 초막절을 지키는 복받는 성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개신교회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데 어떤 마음과 자세로 지켜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추수감사주일과 이스라엘의 초막절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추수감사주일은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감사주일로서 가을걷이로 마친 후에 감사하는 절기다. 그런데 추수감사주일의 근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수장절의 절기에서 발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수장절(收藏節)이란 "거둘 수"자에 "곳집 장"자에 절기(명절)이 합쳐진 말로서, 곡식을 다 거두어 창고에 저장한 후에 드리는 감사의 명절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수장절"이라는 명칭은 "초막절"이라고도 불린다. 그렇다면, 추수감사주일의 기원이 되는 "수장절"은 "수장절"인가 아니면 "초막절"인가?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수장절"이라는 명칭은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지키라고 명령하신 절기법에서만 등장하고 있고, 그러한 명칭은 오직 출애굽기에만 나온다는 사실이다(출23:16, 34:22). 나머지는 전부 "초막절"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하고 있고, 신약성경에서는 "초막절'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하고 있다(요7:2). 이는 창조의 은총의 관점에서 이 명절을 보는 "수장절'이라는 의미보다, 구속의 은총에서 이 명절을 보는 "초막절"이라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지 않나 싶다.

 

3. 초막절은 어떤 절기인가?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 가운데 하나다. 유월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3대절기들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절기는 3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총 7개가 있다. 봄철의 절기에 4개가 있고, 가을철의 절기에 3가지가 더 있다. 봄철에는 1월 14일에 있는 유월절, 15일부터 22일까지 있는 무교절, 16일에 있는 초실절이 있다. 그리고 50일을 뛰어넘어, 3월 5일에 칠칠절(오순절, 맥추절)이 있다. 그리고 가을의 절기가 7월달에 3개가 있는데, 7월 1일은 나팔절이요, 7월 10일은 속죄일이요, 7월 15일부터 22일까지는 초막절이다. 추수의 관점에서 절기들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에서는 초실절에 보리추수를 시작하고 칠칠절에 가서 보리추수를 마친다. 그리고 칠칠절부터 밀추수를 시작하고 초막절에 가서 밀추수를 마친다. 이때 동시에 과일나무들로부터 과일들과 기름을 추수한다. 이 때 추수하는 과일종류는 포도, 무화과, 석류, 대추야자(종려나무열매) 등이 있으며, 이어 올리브유를 감람나무로부터 채취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 살펴볼 초막절은 가을의 절기 가운데 하이라이트로서, 가을추수를 마치면서 지키는 최고의 절기인 셈이다. 즉 한 해의 추수를 마치며 감사하는 절기가 바로 '초막절'인 것이다.

 

4. 하나님께서는 왜 초막절을 일주일씩이나 지키라고 하신 것인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초막절을 지킬 때에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일주일동안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셨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께서는 왜 일주일간동이나 이 절기를 지키라고 한 것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7개의 절기 가운데, 초막절이 갖는 비중을 살펴보아야 한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7개의 절기들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절기이자 모든 추수의 완결판이다. 그런데 초막절 말고도 일주일동안 지키는 절기가 있다. 그것은 유월절부터 시작된 무교절과 초실절의 기간이 그렇다. 1월 14일은 유월절, 1월 15일은 무교절, 1월 16일은 초실절인데, 이것들 중에서 무교절은 1월 15일부터 22일까지 지킨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어지는 1월의 절기를 통틀이 보통 "유월절"이라고도 부른다. 그렇다면 왜 유월절과 초막절은 일주일씩 지켜야 하는가? 그것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유월절은 인류의 어린양이자 유월절양으로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무교절은 무덤에 묻히심을 상지하고, 초실절은 그분은 부활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실절은 무엇인가? 그것은 초실절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늘의 장막인 천국에 들어가 잔치를 여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지키는 초실절은 하늘에 들어가 하늘의 영원한 잔치에 참여하는 주의 백성들의 거룩한 잔치인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과연 천국에 안착할 수 있는지를 알려면 반드시 초실절의 의미를 상고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하늘의 장막집이 있는 천국에 들어가는 비밀이 숨겨겨 있기 때문이다.

 

5. 해마다 초막을 짓고 거기에 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초막을 지으라고 한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왜 수장절이나 초막절의 절기에 일주일간 초막을 짓고 거기에 들어가서 살라고 하신 것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과거 출애굽했던 이스라엘의 백성들도 초막이 살지 않고 장막에 살았는데 말이다. 그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대체 무슨 이유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대로 일년에 한 번에 일주일동안 집을 떠나 밖에 초막을 짓고 거기에서 살라고 하신 것인가? 그 이유는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1)과거의 고통스러운 지난 날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첫째, 그것은 과거의 고통스러운 지난 날을 잊지 말고 그것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에 살고 있지만 과거에 자기의 선조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에 광야에 살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왜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들이지 않고 광야로 데리고 가신 것인가? 그것은 광야를 통해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을 걸러내기 위함이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대제국인 애굽(이집트)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였던 것이지 이스라엘이 힘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후에 그들을 데리고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은혜로 애굽에서 빠져나와 홍해를 건너 광야로 왔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할 윤리와 법도가 필요했으며, 무엇보다더 과거 우상숭배했던 애굽의 잔재를 버리고 오직 전능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붙들어야 했다. 그 훈련기간이 바로 광야 40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광야는 과거의 애굽과 비교해 보았을 때에 애굽보다 못한 지역이었다. 애굽에 있을 때에는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광야에 나오니 물도 구하기 어렵고 먹을 식량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따라 빨리빨리 이동해야 했기에 집을 짓고 살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 중에는 애굽이 더 좋다고 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이도 있었고, 하나님이 주실 땅은 절대 못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다 걸러내셨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이실 것을 믿는 이들만을 광야에서 이끌어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하셨다. 그러므로 광야는 하나님을 모르고 불신하는 자에게는 가장 최악의 장소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는 장소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물을 공급받을 수 있고, 먹을 식량(만나와 메추라기)도 공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켜주셨다. 그것을 기억하라고 주신 것이 바로 초막절이다.

 

2)현재에 하나님께서 베푸시고 있는 복에 감사하기 위함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막에 거하라고 하신 것은 현재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감사하라고 주신 것이다. 과거에 그렇게 힘들게 광야를 통과했지만 이제는 가나안 땅의 풍성을 누리고 있는 그들을 향하여, 가나안 땅의 풍성한 곡식과 과일을 먹고 마실 수 있음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초막절의 첫날에 그 땅에서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나무의 실과를 따서 그 초막에 두라고 하셨다. 그리고 종려나무와 잎이 무성한 나무(도금양, 화석류)과 시내 버들을 꺾어서 흔들며 즐거워하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주신 과일의 풍성함에 감사하라는 것이며, 나무들을 통해서 교훈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라고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종려나무는 40년동안은 열매를 맺지 않으나 40년이 지나면 수백년을 열매(대추야자)를 맺는 식물이며, 잎이 무성한 도금양나무는 잎사귀가 도톰해서 꺽어놓아도 며칠을 죽지 않고 살아있는 식물이며, 시내 버드나무는 꺽자마자 말라 비틀어지는 나무다. 주님은 의지하는 자는 좀 늦더라도 한 번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수백년을 맺는 종려나무처럼 될 것이요, 주님을 의지하면 꺽어져도 쉽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는 꺽어진 즉시 말라 비틀어져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3)장차 들어갈 천국에 영원한 안식처가 있음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초막에 들어가서 살면 현재는 초막이 비가 새고 찬 바람이 들어오지만 장차 들어가게 될 하늘나라에 자기들의 완전한 집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라는 것이다. 초막은 사실 여러가지 나무들고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집이다. 그러나 찬 바람을 술술 들어오는 공간이며, 천정도 최소한 별이 3개 이상 보이도록 지으라는 세부규정에 따라 집을 짓기에 비가 오면 그냥 비가 새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기는 평안하고 안락한 공간이 아니다. 그러므로 불편하지만 거기에 일주일동안 살면서 자신이 장차 들어갈 곳은 저 하늘에 있고 그것이 진정한 안식처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소망하며 살라는 것이다.

 

4.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어떠한가?

  그렇다. 초막절은 과거를 반추하면서 현재에 감사하고 미래에 주신 축복을 바라보며 오늘을 열심이 살라고 주신 절기인 셈이다. 우리가 추수감사주일의 절기를 맞이하면서도 감사치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하고 못 살던 나라였는가? 하루 새끼 밥만 먹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선교한국 130년이 지난 오늘,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가 되었다. 세계10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IT분야와 기술면에서는 세계최고의 국가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는 과거의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들려주어야 한다. 어떻게 되어서 지금 이 순간까지 왔는지 그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도 자기의 후손들에게 부끄럼없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떠한가? 지금은 말세 중의 말세다. 마지막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는 시기에 들어온 것이다. 우리는 지금 놀아서는 아니 된다. 동분서주하면서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뛰어다녀야 하며, 세계를 위한 복음전파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질을 모아서 환난의 시대에 가난한 자들을 도와야 한다. 그리고 같은 한자권에 있는 북한과 동북삼성과 몽골과 중국을 선교해야 한다. 그래야 하늘 우리집이 멋있게 준비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5. 나오며

  왜 우리에게 감사가 사라졌는가? 왜 우리에게 희망이 사라졌는가? 그것은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질 미래의 축복이 무엇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다. 우리는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주어진 축복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주어질 수 없으며,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현재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형편을 가지고 있다고 불평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미래에 진짜 우리가 받아야 할 축복은 저 하늘에 있는 것이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잠잘 곳이 있다면 이제는 하늘의 집을 준비하는 일에 더 열심을 내야 한다. 기도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선교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래야 이 땅의 초막이 아니라 장차 저 하늘에 있는 대궐같은 집에서 살게 될 것이니 말이다.

 

2019년 10월 27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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