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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wcA-yRw7E8k
날짜 2020-01-05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3:6~9(신약 265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동역자, 하나님의 동역자, 복음전파를 위한 힘쓰는 자, 인간창조의 목적, 손과 발, 그리스도와 교회, 아담과 하와

누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는가? 점도 없고 티도 없는 자라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사도바울은 동역자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썼다. 그것은 성품상, 기질상 온전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오늘도 분투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대체 어떤 사람을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할 수 있는가? 또한 그러한 자들에게 어떠한 복이 기다리고 있는가?

 

1. 들어가며

   사도바울은 자기를 포함하여 아볼로를 가리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말했다(고전3:9).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대체 어떤 사람을 일컬어 동역자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일까? 특별히 우리 성도들끼리는 서로를 향하여 "동역자"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그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조금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자기를 포함하여 아볼로를 가리켜 분명히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했다. 대체 "동역자'라는 말이 무슨 단어이길래, 사도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표현한 것인가? 하나님의 동역자는 대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동역자로 쓰임받게 된 사람은 어떤 복을 누리게 되는가?

 

2. "동역자"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는가?

  "동역자"라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동역자"라는 말은 한 가지(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어떤 사람을 동역자라고 말하고 있을까? 그것은 "쉰에르고스"를 가리킨다. "쉰에르고스"란 "쉰"(함께,같이)에다가 "에르고스"(일하는 자)가 합쳐진 단어다. 결국 "쉰에르고스"는 함께 일하는 짝 혹은 파트너"를 가리킨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동역자라는 단어를 3가지 수식어를 붙여서 사용하였다. 하나는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수식어에서 붙혀 사용했고(고전3:9), 다른 두 개는 "나의 동역자"(롬16:3) 그리고 "우리의 동역자"(롬16:9)라는 수식어에 붙혀서 사용하였다.

  그런데 바울이 함께 일하는 동료를 가리켜 "나의 동역자" 그리고 "우리의 동역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말을 했다는 데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어떻게 감히 자신을 거룩한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인간들은 이미 타락한 상태에 빠져 있기에, 거룩한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말ㅇ르 듣기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인데, 어떻게 해서 사도바울은 자기와 아볼로 등을 가리켜,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했는지 의아하기만 하는 것이다.

 

3. 누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누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라면 오직 점도 없고 티도 없는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흠도 있고 티도 많은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동역자 내지는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도 동역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정말 점도 없고 티도 없는 훌륭한 사람들이었을까? 그러나 아니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는 순간에도 두 사람은 서로 싸우면서 분쟁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두 사람 모두에게 권면하기를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했을까?(빌4:2). 두 사람은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서로 다투고 분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복음에 사도바울과 함께 분투하던 여인들"이었다(골4:3).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채 있다고 했다. 그렇다. 비록 사람이 온전하지는 못해도 거룩한 복음전파사역에 힘쓰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바울 자신도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고 말했는데,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사실 바울은 자신의 키워준 동역자였던 바나바와 심히 다투어 싸우던 자였다. 둘이 얼마나 피차 타투어 싸웠든지 둘이 갈라설만큼 싸웠다고 성경은 언급하고 있다(행15:39). 두 사람은 복음사역을 하면서 왜 싸웠는가? 그 이유를 살펴보면, 둘 다 이해는 간다. 그가 선교여행에 마가요한을 데리고 가는 문제가 충돌했기 때문이다. 바나바는 2차전도여행을 하면서 마가 요한을 또 데려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바울은 반대했다. 1차전도여행 때에 데려갔는데 힘들다고 중간에 되돌아가버렸던 젊은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정신상태를 가진 마가요한을 데려갈 수 없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바나바는 달랐다. 그때는 그랬지만 이제는 각오가 달라졌으니 데려가서 훈련을 시켜보자고 한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바나나와 바울은 서로 다투더니 갈라서고 말았다. 그런데도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년에 쓴 편지(빌레몬서)에 의하면, 마가요한을 "나의 동역자(몬1:24)"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역자란 어떤 성품을 가지고 일컫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온전함을 가지고  쓰는 용어가 아니었던 것이다. 동역자란 하나의 뜻을 위해 한 가지로 마음을 먹고 그 일을 추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비록 내게 흠이 있고 점이 있어 온전하지는 못해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의 성취를 위해 힘쓰고 있는 자라면 누구든지 그를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4. 어떤 뜻을 품고 일하는 자를 가리켜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하는가?

  그렇다면, 어떤 뜻을 품고 일할 때에 그를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하는가? 우리는 앞에서 우리가 흠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에 힘쓰고 있다면 그를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동역자는 어떤 일에 힘쓰는 자인가? 그것은 바울이 하고 있던 선교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인간의 존재목적이자 교회의 존재목적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림은 인간창조시에 이미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왜 하와를 만드셨던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사실 아담과 하와를 동시에 만드시지는 않으셨다. 아담을 먼저 만드시고 난 다음 이어서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던 아담을 위하여 하와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하와를 만든 목적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아담이 혼자인 것이 좋지 못하니,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고 하신 것이다. 그러니 아담의 짝이 될만한 자로서 하와를 만드신 것이다. 그래야 아담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와가 해야 할 역할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돕는 배필"의 역할이다. 이것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짝할만한 돕는 자"다. 사도바울은 롬5:14에서 아담을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했다. 그리고 엡5:32에서 아담(남자)과 하와(여자)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므로 아담(남자)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한다면, 하와(여자)는 교회의 모형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로서 남자를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가지 자식을 낳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천국에서 낳으려고 하지 않으셨는 것을 여기서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천국은 물질 세계로 지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직 천국에 들어갈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이 지구에서만 가능하다. 그것도 육체를 가진 인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전지전능하시지만 지금도 우리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은 천국에 들어가서 살게 될 천국백성을 낳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당신의 동역자라고 말씀하시는가? 그것은 "지금도 하나님의 자녀를 산출하는 자"를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육체를 지닌 인간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산출하고 있는 자를 매우 기쁘게 여기신다.

 

5. 하나님의 진정한 동역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성도가 하나님의 진정한 동역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한 명의 천국백성을 낳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자녀를 산출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그를 하나님의 진정한 동역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녀를 산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 두 명으로 끝나는 것이다. 왜 그러는가? 그 이유는 창세기 2장에 나오는 하와의 창조의 비밀 속에 담겨 있다. 하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와의 재료는 땅의 흙이 아니었다. 하와의 재료는 아담의 뼈와 살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셨는데, 나중에 아담 앞에 하와를 데려오니 아담이 말하기를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줄의 살"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담의 뼈와 살을 가지고 하와를 만드셨음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머리를 가지고 그것을 빼내어 하와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아담의 살과 뼈 곧 아담의 몸을 가지고서 하와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은 머리요, 하와는 그의 몸이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한 번 자식을 낳은 이후에는 자신이 머리가 되고자 한다.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만 하려고 할 뿐 자신이 직접 몸이 되어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다. 하와는 결코 머리가 될 수 없다. 머리가 되려고 하고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드리지 아니하는 성도가 되다보니, 하나님의 자녀를 계속해서 산출하는 성도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교회로서 오늘날 성도는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고 희생할 때에 다른 자녀를 산출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를 보라. 교회가 어느새 머리만 있고 몸이 없다. 손과 발이 되어 움직이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교회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그에게 달라붙어 그를 섬기는 자가 될 때 교회는 계속해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데, 어느새 자신이 머리가 되어 지시만 하려고 하고 바라만 볼 뿐 움직이지를 않으니,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지 못하는 것이다.

 

6. 어떻게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드릴 수 있는가?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첫번째 편지(고린도전서)를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고전3:6)" 그렇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을 씨를 뿌려서 비로소 탄생했던 교회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양육시킨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는 아볼로였다. 고린도교회의 성도가 천국백성이 되는 데에 바울만의 도움으로 된 것이 아니라 아볼의 도움도 필요했던 것이다. 이제 식물의 예를 들어보자. 하나의 식물이 움터서 열매를 맺기까지는 여러 가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첫째는 누군가는 씨를 뿌려야 한다. 둘째, 누군가는 가서 물을 주어야 한다. 셋째, 웃거름을 주어야 할 때도 있다. 넷째, 잡초를 제거해 주어야 한다. 다섯째, 병충해를 막기 위해 농약도 뿌려주어야 한다. 여섯째, 다 익었으면 가서 수확도 해야 한다. 이렇듯 하나의 식물이 움터서 열매를 맺고 그것을 거둬들이기까지는 몇 가지의 단계와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어떤 사람은 씨를 잘 뿌리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물주는 일을 잘 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수확하는 일에 매우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은사와 달란트에 따라 자신의 교회의 손이 되거나 발이 되어드릴 때 열매가 산출된는 것이다. 모든 성도가 모든 방면에 다 잘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그마한 것이라고 내게 주어진 방면에 내가 손과 발이 되어드리고, 또 다른 사람도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을 다할 때에, 한 생명은 교회를 통해 태어나서 자라게 되고 결국 천국에 들어가는 백성으로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회에 들어온 지체들을 자신의 손과 발을 사용하여 섬겨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정착하고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이다.

 

7. 천국백성을 산출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받을 축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오늘도 자신의 분야에서 천국백성을 산출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받을 축복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그분의 영원한 짝이 되는 것이다. 사실 하와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아담의 잠듦으로 인하여 가능했다. 여기서 "아담의 잠"은 곧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한다. 그후로 하와가 탄생해서 나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남자인 그리스도는 언젠가는 우리 인간을 당신의 아내로 취하실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때 그분이 우리 인간을 당신의 아내로 취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과 영원히 함께 산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천국에서 쫓아내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천국에서 그분의 짝으로서 우리를 취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산출하는 일을 잘 감당하면 우리는 그분의 영원한 짝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분의 짝이 될 뿐만 아니라, 수고한 대로 우리는 천국에서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그분의 사역을 돕는 자로 살았기 때문이다.

 

8. 나오며

  오늘날 교회가 천국백성을 산출하지 못하게 되는 데에는 그동안 어떤 것이 작동하고 있었는가? 첫째는 자신이 점도 없고 티도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서다. 아니다. 우리가 비록 부족하고 허물이 있고 실수를 한다고 해도, 우리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데 열심을 낸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다. 둘째, 한 두 명의 천국백성을 산출하고는 그만 자신이 교회의 머리가 되어 시키려고만 할 뿐, 자신의 직접 몸이 되어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드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아담(그리스도)의 머리가 아닌 뼈와 살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것은 머리가 아니라 손과 발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손과 발을 주님께 내어드릴 때에 우리는 계속해서 천국백성을 산출할 수가 있다. 올 한 해는 어떻게 보낼 참인가? 이제부터라도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드리는 한 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하와의 창조목적이요, 인간창조의 목적이요, 교회가 존재목적이기 때문이다.

 

2020년 1월 5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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