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시아에 위치한 골로새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지도자로 섬기고 있는 아킵보도 자신이 세운 목회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 교회와 지도자에게 편지를 보내 권면을 하고 명령을 하고 있다. 바울에게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 권위가 주어져 있었는가? 혹시 월권행위는 아니었을까? 그러면 대체 어떤 주의 종이 전 세계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가?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그에게는 어떤 조건이 있어야 하는가? 그래서 오늘은 바울의 전우주적인 교회관과 그의 특별한 부르심에 주목하면서 오늘날에도 그러한 사역자와 교회가 있는지를 진단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사도바울은 조금 특별한 생애를 살다가 간 사람이다. 그는 A.D.34년경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은 사도였다. 그때 주께서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특별한 지시가 그에게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선교사로서 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가 복음사역을 펼쳤던 지역에 교회들을 세웠다. 그가 사역을 마치고 주님 품에 안기기 전, 그는 이제 마지막으로 편지를 쓸 때에 그 편지에서 바울은 자신을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라고 소개했다(딤후1:11).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이 개척하지 않았던 교회를 향하여서도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는 바로 골로새서라는 편지다. 그는 왜 자신이 개척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직접 세우지도 않았던 교회와 목회자를 향하여 권면을 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었는가? 그래서 오늘은 그의 특별한 부르심에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과연 오늘날에도 사도바울과 같은 특별한 부르심이 있는지를 말이다.
2. 골로새교회는 어떻게 세워졌는가?
골로새교회는 과연 누가 세운 교회인가? 사실 골로새교회는 바울이 갇혀 있는 로마감옥에 동역자로 와 있는 "에바브라"가 세운 것이다(골1:7~8). 그러한 사실은 에바브라가 사도바울에게 말해주었기 때문에 알려진 것이다. 아마도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의 두란노서원에서 3년간 사역하고 있을 때에(행19:10), 바울에게서 복음을 들었던 에바브라가 자기의 고향에 가서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런데 에바브라는 단지 골로새교회만 개척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골로새의 이웃도시였던 라오디게아와 그 위쪽에 위치한 히에라볼리에도 교회를 개척했다(골4:13). 한편 바울이 골로새교회에게 편지를 보낼 당시 골로새교회는 아킵보라는 젊은이가 지도자로 섬기고 있었다. 그럼, 아킵보는 또 어떤 인물인가? 골로새서와 거의 동시에 보냈을 것이라고 알려진 빌레몬서에 의하면, 아킵보는 빌레몬과 압비아 부부의 아들로 추측된다. 또한 그 당시 골로새교회의 예배처소는 빌레몬의 집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몬1:1).
3. 바울은 어떻게 되어서 골로새교회에게 권면하고 명령할 수 있었는가?
골로새교회나 라오디게아교회 그리고 로마교회 등은 사도바울이 가서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교회들에게 편지를 써보냈다. 특히 그는 에바브라가 개척했던 골로새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써서 두기고의 편으로 보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되어서 골로새교회에 편지를 써보냈던 것인가? 세상 말로 치자면 흔히들 그가 오지랖이 넓은 것은 아닌가 하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세우지도 아니한 교회와 지도자에게 월권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자신이 세운 교회도 아니고 자신이 세운 목회자도 아닌데 괜한 참견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보낸 편지를 통해 그가 가진 우주적인 교회관을 살펴볼 수 있다. 비록 그가 교회를 세우지는 않았어도 그는 모든 교회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그럼, 그의 이러한 우주적인 교회관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인가?
4. 주의 종들 중의 사도바울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바울은 한 교회를 개척하거나 어떤 한 교회에 부임하여 시무하는 지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지 않았다. 그는 여러 곳을 순회하면서 그곳에 교회를 세웠고 거기에 교회의 지도자를 세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처음부터 그에게 부여된 사역이 달랐다. 그는 수많은 지역들을 돌아다니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도록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하여 수많은 교회들을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 사람을 보내어, 그들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였고 그들 교회가 문제를 안고 있을 때에는 그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써보냈다. 그것이 오늘날 바울서신들이 된 것이다. 그때는 그는 개교회를 위해 편지를 써 보냈지만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그래서 그의 편지는 회람서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이러한 특별한 교회관은 자신이 직접 개척하지 않았던 교회라도 주님의 몸된 지체로 보게한다. 그래서 골로새교회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 가차없이 그 교회를 위해 편지를 써보낸 것이다. 그리고 라오디게아교회에게도 편지를 써 보냈던 것이다.
5. 바울의 특별한 부르심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특별한 부르심을 보게 된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교회를 세우라고 지명받은 종으로서 다른 여타의 주의 종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종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이 목회하고 있는 교회를 향해서도 편지를 써보내었던 아주 특별한 인물로서 사역했다. 어찌 보면 월권행위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우리는 사도바울의 편지들을 보는 자들은 그가 월권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의 특별한 부르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교회를 위해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이유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것은 그가 성경말씀을 정확히 해석해 줄 수 있는 남다른 안목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단적인 가르침과 이단들에 대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분명하게 지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는 구원론에 대해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받은 특별한 부르심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어떤 교회의 목회자가 남의 교회를 위해 편지를 써보낸다든지 아니면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고 가정해보자.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취급받을 수도 있다. 남의 교인을 빼앗아가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핀잔을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러한 부르심은 아무에게나 주어진 부르심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 사도바울에게는 그러한 특별한 부르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교회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주님의 몸된 교회가 겪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을 진단해보고 해결책을 찾아갈 수가 있다. 특히 골로새교회의 경우는 예수님 이외에 다른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이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고, 유대교의 헛된 속임수마저 들어와 교회를 흐리고 있었다. 그러자 가차없이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가 얼마나 우월하신가에 대해 편지를 써보내게 된다. 그것이 바로 골로새서다. 그래서 우리가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면, 우리는 골로새서를 통해" 몸된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가 누군가?"를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골로새서는 "그리스도론"에 관한 책인 것이다.
6. 오늘날에도 바울과 같은 부르심이 있는가?
오늘날에도 사도바울과 같은 사역자와 그를 돕는 동역자들이 있을까? 정말 구원에 관한 올바른 진리를 명확히 선포하고, 이단에 대해서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분명히 가르칠 수 있는 주의 종이 있는 것일까? 사도바울처럼 개 교회에서 보낸 편지가 모든 성도들에 필요한 메시지가 되는 사역자와 교회가 있는 것일까? 오늘날에는 사도바울과 같은 수준의 주의 종들은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바울처럼 지교회를 뛰어넘어 지구촌 전체를 아우르는 주의 종들도 더러 있다. 그것은 마지막 시대에 일하는 일꾼들로서, 요한계시록으로 치자면 두 증인과 같은 사역자들이다. 이러한 사역자들은 올바른 구원론을 전파하는 자들로서, 무엇이 사람을 구원에서 탈락시키게 하는지를 알리는 자들이다. 그리고 더이상 짐승을 경배하지 못하도록 경계하면서 바벨론이 주는 포도주에 취하지 않게 경고할 자들이다. 동탄명성교회도 그 일환으로 이 땅 위에 세워졌고 그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하나님께서 더 큰 일을 행하실 것이다.
7. 나오며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다보면 하나님이 누군지가 더 알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을 더 키워나가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으며 그리고 성령과도 동역해야 한다는 것까지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영의 세계를 깨닫고 귀신의 정체를 파악하여 이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사람의 구원은 단순한 믿음으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인정받은 믿음을 통해서라는 것을 깨닫는다. 즉 모든 인간 곧 아담의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달라져도 죽을 때까지는 죄의 유혹에서 완전히 탈피할 수 없으며, 마귀의 유혹에서소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에,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구원은 내가 천국에 들어가야 구원받는 것이지 이신칭의는 구원의 첫발을 내딛 첫여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참된 구원론을 전하며, 교회가 이 땅에 건축된 이유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의 산출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그 일을 감당하기 시작하는데, 그 일을 온전히 다 감당할 만한 주의 종들은 사실 많이 나오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러한 일의 작은 부분이나마 감당하고자 하는 교회가 있다. 그 교회가 바로 동탄명성교회다. 하나님께서 가가장 소망하고 바라시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으로 하여금 신앙생활의 목적이 궁극적으로는 천국에 들어가는데 있음을 외치고, 뭇 사람들 을 천국에 들여보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 일에 동탄명성교회는 끝까지 그 사명을 수행할 것이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말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1월 12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