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에게 왜 부활신앙이 중요한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부활신앙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야 할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그리고 인류의 죄가 어떻게 용서되었는지를 알려주고, 부활이후에 받을 보상이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지도 알려준다. 그리고 더 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예수께서 언제 부활하셨는지 그리고 성도들이 언제 부활할 것인지를 정확히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부활에 대한 소망과 오해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부활절의 기독교의 최대의 절기다. 기독교에서는 A.D.325년 니케종교회의 결의 이후로 매년 춘분이 지난 만월 후 첫번째 주일을 부활주일로 지켜오고 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의 부활이 이처럼 주요한 것인가? 그것은 기독교의 탄생이자 기독교의 전파가 다 예수님의 부활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의 부흥과 성장과 발전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의 부활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만한 충분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요, 사람을 바꾸는 권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통해 왜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이 그리 중요한가를 살펴보고,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말씀의 의미과 그리고 오해에 관하여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예수께서는 언제 부활하셨는가?
예수께서는 죽은 지 삼일만에 부활하셨다고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청하는 자들에게 예수께서 요나의 표적을 보여줄 것인데, 그것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삼일동안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3일동안을 땅 속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께서 무덤에 묻혀 있었던 기간은 밤낮으로 3일이다. 그런데 보통 알려지기로는 예수께서는 금요일 오후3시에 돌아가셨다가 일요일 오전6시에 부활하셨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시간으로 계산하면 이틀 밤이요 하루 반의 낮의 시간이다. 그러므로 밤과 낮으로 삼일동안 무덤 속에 있을 것이라고 예수님의 말씀과는 들어맞지 아니한다. 그런데 이제 천문학이 발달하여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해의 유월절이 언제였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해에 유월절은 목요일(수요일 오후6시부터 목요일 오후6시까지)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유월절 양을 잡는 시간 곧 수요일 오후3시에 돌아가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금)은 무교절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토)은 주간의 안식일이었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 3시에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다. 그리고 3시간 뒤에 주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주일) 새벽에 예수께서는 막달라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자신을 보이셨다. 그리고 그날(주일) 밤에는 10명의 제자들이 있었던 마가다락방에서 나타나시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평강을 기원하였다. 하지만 그때에 쌍둥이였던 도마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었다. 그러자 예수께서 일부러 그 다음주일 저녁시간에 도마가 있을 때에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나시었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라 되라(요20:27)" 그리고 그때부터 제자들은 예수께서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요, 동시존재와 임마누엘이 되시는 분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성령을 받게 되었으니 그들은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실 수가 있었다. 이처럼 부활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특히 고통의 두려움과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그 사람을 해방시켜버린다.
3. 우리에게 부활은 왜 그리 중요한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왜 부활은 그리 중요한가? 우리는 고전15장에서 부활이 왜 그리 중요한지 3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부활은 인류의 죄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고전15:3,17). 예수께서는 자기의 죄로 죽으시지 않았고 우리(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고전15:3). 그렇다면 그날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는지 아니면 자기의 죄가 하나라도 있어서 그 죄로 죽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속죄의 죽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만약 예수께서 자기에게 죄가 있어 그 죄로 인하여 죽으셨다면 예수께서는 살아나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자기의 죄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예수님은 사망을 이길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살아나시었으니 이는 자기의 죄로 죽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뜻하여, 그것은 인류의 죄를 대속한 죽음이었음을 뜻한다(고전15:7).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없었던 사망권세를 부활생명으로 이길 수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였다는 것이다(고전15:55,20).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된 본성을 가진 채 태어난다. 그러므로 사망권세 아래에 놓여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이 정복할 수 없는 생명이 있음을 알려주신 것이다. 고로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은 예수님의 생명으로 그것은 곧 부활생명을 뜻한다. 고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셋째,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우리도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장 확실한 표적이 된다는 뜻이다(고전15:12~13,15). 예수께서 부활생명으로 부활하셨다면 우리들도 죽은 다음에 예수님의 부활생명으로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4. 우리는 왜 부활을 소망해야 하는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죽은 다음에 부활생명을 얻어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우리가 죽음 다음에 부활이 기다리고 있고 부활이후에는 영생이 있다는 것을 소망해야 하는가? 그것은 첫째, 성도들에게 부활은 소망 중의 소망이기 때문이다(고전15;18~19). 사실 예수님을 믿으면 소망이 생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죄와 죽음과 저주가 떠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소망이 생긴다. 건강해질 것이라는 소망, 지혜로워질 것이라는 소망, 불안에 허덕이지 않게 될 것이라는 소망, 물질적인 욕망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소망, 육체의 소욕도 이겨낼 수 있다는 소망, 질병에서 나을 것이라고 소망이 생긴다. 하지만 소망 중의 소망은 우리가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이다. 왜냐하면 부활은 우리가 가진 모든 소망을 다 잠재우리만큼 크고 위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것들은 좋은 것들이 있을 수 있으나 그러한 것들은 다 일시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부활이후에 받는 것은 영원한 것들이다. 고로 우리는 잠깐 누리는 이 세상의 것들보다 영원히 누릴 수 있는 부활이후를 소망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가 부활을 소망해야 하는 두번째 이유는 부활이후에는 복 곧 보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고전15:30,고후4:17,고전15:58). 부활이후에 성도들에게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누리게 된 보상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위험을 무릎쓰기도 하며(고전15:30), 환난을 받아도 그것 때문에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고후4:17). 그리고 기꺼이 주안에서 주의 일에 열심히 수고한다(고전15:58). 왜냐하면 우리가 부활이후에 받을 엄청난 보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더욱이 그 보상은 영원히 누릴 영광인데 그 영광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고전15:40~41).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그 상을 위해 날마다 달려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받을 영광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은 차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늘에서 받을 영광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해의 영광을 받을 자가 있고, 어떤 사람은 달의 영광을 받을 자가 있으며, 어떤 자는 별의 영광을 받을 자가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빛의 강도가 해와 달과 별들로 내려감에 따라 약해진다. 그런데 한 번 받아서 누리게 될 영광은 영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을 소망하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5.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도바울이 고전15:20에서 그것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성도들이 부활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예수믿는 지구상의 거의 대부분은 성도들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있을 것으로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죽으면 무덤 속에서 쉬고 있다가 낙원에 있는 영혼과 이 땅의 육체가 도킹하여 부활의 몸을 입고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정보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그가 언제 부활하게 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도는 죽은 후에 언제 부활하게 되는가? 첫째, 고전15:20,23에 그 시기가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맨 처음 부활의 첫 열매로 부활하시고, 그 다음에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 속한 자라고 했다(고전15:20,23). 그리고 마지막에 한 번 더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고전15:24). 이것은 예수께서 부활의 첫번째 수확물이고 그때부터 계속해서 부활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별히 레위기 23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절기상 1월 16일은 초실절이다. 그때 제일 먼저 익은 곡식 한 단을 하나님께 요제로 드린다. 그리고 보리 추수를 시작한다. 그리고 약 50일간 보리추수를 하게 되는데, 50일째 되는 날에는 그때까지 거둬들이지 않는 보리 전체를 한꺼번에 추수하고 맥추절을 지키게 된다. 고로,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로 추수가 되고, 이제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 성도들이 한꺼번에 추수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중간에 추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고로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아니다. 예수님의 이후 계속해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실 때에 예수께서는 구약의 모든 성도들보다 먼저 부활체를 입으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부활의 첫열매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창고(낙원)에 있던 구약의 모든 성도들이 한꺼번에 부활체를 입었다. 그리고는 성도들이 개인별로 추수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을 성도의 "첫째 부활"이라고 부른다. 고로 성도의 첫째 부활이란 예수님의 부활이후 예수님의 재림시까지 개인별로 일어나는 부활을 가리킨다. 그러다가 마지막 시기가 되어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그날 나머지 모든 성도들 곧 그날 죽은 성도들과 아직 살아있는 성도들을 한꺼번에 추수하게 된다. 이것을 "둘째 부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광경이 살전4:16~17에 나온다. 고로 예수님의 부활이후 성도들은 개인적인 부활(첫째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예수재림시에는 한꺼번에 우주적인 부활을 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둘째,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후 요한계시록 쓰여질 당시까지(A.D.95~96) 계속해서 성도들이 부활체를 입고 아버지의 보좌 앞으로 추수되어 올라갔다는 말씀이 무려 12번이나 나온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승천하시던 A.D.30년 이후 약 65년동안 많은 성도들의 부활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고로 우리는 성도들의 부활이 죽은 즉시 일어난다는 것을 확증할 수가 있다.
그렇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믿는 우리 성도들의 부활은 머나먼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지금 죽으면 지금 경험하게 되는 것이 부활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주의 일에 힘써야 한다. 만약 지금 술친구과 더불어 즐기다가 오늘 죽게 된다면 오늘 우리는 심판대 앞에 설 것이고, 그때에 천국과 지옥에 갈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마치 오늘이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인 것처럼 소중하게 귀하게 써야 한다. 그리고 핍박을 받아 오늘 죽는다면 죽는 즉시 아버지의 보좌 앞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곧 있으면 뵙게 주님 생각에 기뻐해야 하는 것이다.
6. 우리가 부활하기 전에 부활이 진짜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다른 표적들은 없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부활을 경험하기 전에 부활이 진짜 있고, 예수께서 진짜 계시고, 천국이 있고, 보상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그냥 믿음의 문제이니, 참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가?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믿음으로만 믿으라고 내버려 두시겠는가? 우선은 우리가 일평생 외롭지 않도록 우리 마음 속에 보혜사를 보내주시어 위로하시고 격려하신다고 하셨다(요14:16~17).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표적으로 우리가 믿는 부활과 천국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려주신다고하셨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막16:17~18에 나오는 말씀이다. 이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들을 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첫째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것이라고 했다. 둘째, 새 방언을 말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방언,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뱀들과 같은 귀신들을 처리할 수 있고, 어떤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는 보호의 은총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넷째,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을 때에 낫게 된다고 하셨다. 이 말씀처럼 예수님을 믿고 부활신앙을 소유한 자는 누구든지 자신이 가진 질병에서 고침받을 수가 있다. 그것은 병의 깊고 오래된 것과 무관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 우리의 질병도 같이 짊어지셨으며, 채찍에 맞으실 때에 우리의 질병도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이다(벧전2:24). 또한 예수 믿는 자는 세상이 절대 줄 수 없는 평안을 경험할 수 있다(요16:33). 그렇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부활이후에 진짜의 복이 기다리고 있지만, 더불어 이 세상에서 살 때에 잠깐이더라도 맛보기로 누리게 될 복들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7. 나오며
이제 그날이 멀지 않았음을 피부로 느낀다.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기는 과거로 지나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의하여 전세계의 사람들을 3달동안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마지막 시기가 되면, 칼(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이 휩쓸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 이상이 생기면 주님이 오신다고 말씀하고 있다(마24장). 그날이 너무나 가까이 와 있는 것이다. 사랑이 식어진지는 이미 오래다. 이미 거짓선지자와 거짓그리스도(이단세력)가 나타나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까지 미혹한다고 했는데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때가 다 되었다는 뜻이다.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볼 때가 우리에게 매우 가까이 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중에는 개인적인 부활(첫째 부활)보다는 우주적인 부활(둘째 부활)을 경험하게 될른지 모른다. 그때 주님 앞에 부끄럽게 되지 않도록 우리는 오늘도 믿음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고 주의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런 자가 그날에 진짜로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 주님 품에 안겨서 "이 모든 것이 진짜로 사실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 04월 12일(부활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