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개를 한다고 하지만 혹시 회개하지 않고 있는 죄는 없을까?"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때 이 말씀은 단비가 될 것이다. 이 말씀은 회개에 있어서 중요한 뼈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죄를 회개해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만큼 회개를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대충 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죄 중에서도 예수님을 잘 모르고 있는 죄도 회개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회개하지 않고 있었는지 이 말씀으로 다시 점검해보자.
1. 들어가며
사람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회개해야 한다(마4:17,막1:15). 그리고 사람이 저주에서 벗어나 형통의 축복을 받으려면 그것도 역시 회개해야 한다(요일3:8,1:9).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회개를 해야 한다면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할 회개가 있는 것이고,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해야 할 회개가 있는 것이다. 믿는 이들 중에 더러는 회개에 대해서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미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았는데, 무슨 회개해야 할 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회개는 구원과 직결되는 문제요 회개는 내 삶의 형통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래서 이제는 왜 회개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과연 내가 아직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그러한 죄를 회개해보자.
2. 사람이 회개해야 할 첫 번째 죄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한다고 하셨다(요16:7~8). 그리고 여기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말씀하셨다(요16:9). 대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는 "그들"이란 대체 누구며, 왜 예수께서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된다고 말씀하셨는가?
성령께서 오실 때에 맨 처음 하시는 일은 죄를 책망하시는 일인데, 그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를 책망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좀 더 풀어보면, 하나님께서 구원자로서 예수님을 보내주셨는데, 왜 그분을 믿지 않았는지를 성령께서 책망하신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 보인다.
3. 제자들이 믿은 것은 무엇이고, 사람들이 믿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때 제자들이 믿은 것은 무엇이고 사람들이 믿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 말씀 직후에는, 가룟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제자들의 반응이 나온다. 그때 제자들은 분명 예수님을 믿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요16:30~31). 그렇다면, 제자들은 무엇을 대체 믿은 것인가? 예수께서 구원자이심을 믿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제자들이 믿었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었다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이 믿었던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요16:30). 그리고 예수께서도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나왔다는) 줄(것)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내가 아버지에게서 [밖으로] 나와(나왔고) 세상에(안으로) [들어]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를 향하여) 가노라(요16:27~28)"고 하셨다. 예수께서 구원자로 오셨다고 하는데 왜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셨다는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인가?
이제는 제자들 말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누군지를 알아보자. 즉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 함이요"에 등장하는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인칭대명사인 만큼 그들은 이미 앞에서 등장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올라가보면, 그들은 2~3절에 나온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만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행]할 것은 그들이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요16:2~3)" 그렇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배척하고 있는 자들은 예수믿는 자들을 회당공동체에서 출교시킬 자들을 가리킨다. 곧 그들은 당시 "유대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안 있어서 예수믿는 자들을 살해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 그런가?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를 짓는 자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들인 것이다.
4. 예수께서 왜 아버지로부터 밖으로 나오셔서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말이 그리도 중요한가?
그렇다. 그때 제자들이 믿었던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다는 것도 아니었고, 예수님을 구주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그때 믿었던 것은 예수께서 드린 대제사장적 기도에도 나온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들이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 나는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레마의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았]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나왔다는) 줄(것)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보내셨다는) 줄(것)도 믿었사옵나이다(요17:7~8)". 그렇다. 제자들이 믿은 것은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이 세상에 들어오셨으며, 아버지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보내셔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제자들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예수께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로 오셨음을 알았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내용은 요한복음에서 계속해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을 우리도 회개해야 한다. 우리도 현재 잘못 알고 있는 그것을 성령께서도 책망하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누구신가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밖으로 나와서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것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또 한 번의 유대인들과의 논쟁이 나오는데, 그때에도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만일] 하나님이 너희의 아버지였으면 너희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저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요8:42)" 결국 이 말은 예수께서 이 땅에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려 오셨는데, 예수께서 스스로 이미 아들로 존재하고 있다가 오신 것인가 아니라, 그때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셔서 오셨다는 것이다. 만약 이미 스스로 아들로 존재하고 있던 분이 오셨다면 아들이 성육신하신 것이겠지만, 그때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신 분이 오셨다면,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몇 번이고 동일한 말씀을 하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안에서 밖으로](에크) 나오셔서 이 세상 안으로(에이스) 들어오셨으며, 스스로(자기자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저분(하나님)이 나를 보내셨기 때문에 온 것이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당시 애써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보내심을 받아서 오셨으며, 그분은 이미 있던 분이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밖으로 나와서 그분이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것을 알았다고 하셨다. 만약 이미 천국에서 활동하고 계시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면, 그것은 이미 구약시대에 있던 아들이 오신 것이 되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이 아니라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온 것이 된다. 그러나 만일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실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으로부터 아들을 보내셨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는데 그분이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뜻하므로 상당히 다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과연 어떻게 이 세상에 오셨다고 믿고 있는가? 아마도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이미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분들이 회의를 해서 성부가 성자에게 말하기를 "아들아, 네가 인간을 구원하러 내려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니까, 아들이 "아버지, 어떻게 감히 아버지께서 내려가라고 할 수 있겠나이까? 소자가 내려가겠나이다"하고서 성자가 육신을 입고 내려왔다고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무도 그렇게 믿지 않았다. 또한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다. 그런데 성령께서 죄에 대해서 책망하실 때에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하신다 하셨다. 유대인들은 진즉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보았어야 했던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이미 창세기 18~19장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아들로 오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두 명의 천사들을 데리고 아브라함 앞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러한 일은 처음 있는 일이자 마지막으로 있는 일이었다. 조금 후에 두 명의 천사는 소돔과 고모라성을 파괴하도록 보내셨다. 여호와와 두 명의 천사의 등장은 사실 창1:26~27에 나오는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에 나오는 "우리"에 대한 실체다. 그런데 세 명의 사람으로 나타난 이들을 본 아브라함은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그러자 그것을 잡수시고 난후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년 이맘 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0)" 그래서 그 이듬해에 정말 아들을 낳았다. 그렇다면, 사래가 이삭을 낳았을 때, 아브라함은 자신이 아들을 낳게 되어서 기뻐했던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다시 오셨다는 사실에 기뻐했던 것일까? 예수께서는 그때 아브라함의 행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 이것은 2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첫째, 예수께서는 그때 아브라함에 나타나셨던 분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다시 그에게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아들의 출생을 통해서 알고 기뻐 뛰놀았다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구약시대에는 자신을 "여호와"라고 하셨던 그분)께서 직접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성령께서 책망하시는 것이 곧 성령의 첫 번째 회개사역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을 보라. 과연 아버지와 아들이 한 분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렇게 일하셨다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 요8:24,28,58에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나는 스스로 있는 자, 나는 ~이라고 하는 자)(출3:14)"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밖으로 나오셔서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지만, 그분은 아버지에게 종속된 분이 아니라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그것을 공부하지도 않고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성령께서 얼마나 탄식하실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탄식하지 않게 하려면, 예수님은 스스로 오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더 공부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5. 사람이 회개해야 할 두 번째 죄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제 사람이 회개해야 할 두 번째 죄는 무엇인가? 그것은 십계명을 어긴 죄들을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상숭배의 죄와 자범죄들을 가리킨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과거에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 대부분은 이 부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과거의 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받았다고 어디선가 누구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러한 말씀이 없다. 속죄가 영원하는 말은 있어도 우리의 죄가 영원히 속죄되었으니, 우리가 더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즉 "영원한 속죄"는 있어도 "영원히 속죄되었다"는 말은 없는 것이다(히9:12).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치르신 영원한 속죄를 자신이 영원히 속죄받은 것으로 착각한다(영원한 속죄의 속성을 시간적인 것으로 바꾸어버렸다). 아니다. 그분이 흘리는 속죄의 피는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인류의 죄를 속죄할 만한 충분한 효능을 갖추었다는 뜻인 것이지, 한 번 믿었다고 이제는 두 번 다시 속죄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늘날에 성도들 중에는 왜 예수님을 믿고도 온갖 질병과 가난과 사건사고에 시달리며, 자식들이 힘들어하고 자살해서 죽는 일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과거의 자기와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로 인하여 귀신들이 자기와 자기의 자손들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도 자기와 자기의 선조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용서된 줄로 알고 무심코 넘겨버린 것이다. 아니다. 자기와 자기의 조상들이 우상을 숭배했던 죄를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 죄값을 자손 3~4대까지 묻겠다고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 영향을 후손이 지금 받고 있는 것이다(출20:5). 그러므로 예수믿고도 저주가 떠나지 않고 가난이 대물림되고 각종 질병과 불치병에 시달리고 자살해서 죽고 자녀와 손자들이 하는 일마다 말아먹고 있다면 지금 즉시 엎드려 자기와 자기 자손들이 우상숭배한 죄를 회개하기를 바란다. 첫째로는 조상을 신으로 섬겨 제사드린 죄를 회개하고, 둘째는 부처와 석가를 신으로 섬긴 죄를 회개하며, 셋째는 무당과 점쟁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한 죄를 회개하고, 넷째는 미신과 잡신을 섬긴 죄를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구체적으로 회개기도제목은 "회개기도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렇게 될 때 저주의 늪에서 벗어나 형통의 축복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6. 우리가 우상숭배죄의 죄를 보다 더 철저히 회개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상숭배의 죄를 과연 언제까지 회개해야 하는가? 그것은 한 두 번 회개했다고 해서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와 내 조상들이 섬겼던 우상숭배로 인하여 나와 내 자손들 속에 들어있는 귀신들이 다 떠나갈 때까지 회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죄가 좀 작고 철저히 회개했다고 하면 경험상 두 달 정도는 회개해야 하는 것 같고, 좀 더 많이 우상숭배를 했다면 1년에서 10년도 걸릴 수가 있다. 그래도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상숭배의 죄에 대한 회개가 단지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고 또한 형통케 하는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면 귀신들의 세력이 약화되어서 나중에는 내 몸에서 떠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몸은 귀신의 집이라고 말씀하셨다(마12:43~45).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할 때 뱀에게 종신토록 흙(아파르)를 먹고 살라 하셨는데, 그 흙(아파르)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체를 빚으셨기 때문이다(창2:7). 고로 우리가 우상숭배의 죄를 보다 더 철저히 회개할 이유는 우선은 우리 속에 기생하고 있는 귀신들을 다 내어쫓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쫓겨나가지 않고 우리 몸에 들어있으면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우리가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어있어야 그 공간만큼 하나님께서도 축복하실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속사람(거듭난 영혼)이 강건해지려면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은지 오래 되었으나 그들의 믿음이 성장하지 않고 늘 어린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속사람이 성장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속사람이 성장하려면 귀신들이 떠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사도요한은 우리의 속사람의 상태를 아이들과 청년들과 아비들로서 비유한 바가 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2:12-13)" 여기에 등장하는 "자녀들(아이들)은 영적으로 속사람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용서받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청년들은 악한 자인 사탄마귀와 귀신들과 싸워서 이기고 있는 자들을 가리키며, 어른들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고 있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요일1:1에 보면, 그분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자존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의 속사람이 성장하기 위해 첫 걸음마는 죄를 회개하는 일이다. 그러면 우리도 언젠가는 귀신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할렐루야!
7. 나오며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한 죄를 회개하지 않았는가? 한 분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시며 아들이신데, 그분이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행하신 놀라운 일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가? 그러면 그것을 알지 못했던 죄를 회개해야 한다. 아니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온전한 믿음이 있어야 아들의 피로 자신이 지은 죄들을 회개할 때 용서를 받게 되며, 한 분 하나님께서 나같이 못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아들의 신분으로 직접 오셔서 고난받으시고 피흘리셨음을 알고 진정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이라고 내놓을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를 보다 더 철저히 회개하고 자백해야 한다. 그래서 저주의 늪에서 속히 벗어나 형통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내 속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서 그리고 귀신들과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우상숭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여 우리 안에 들어온 귀신들을 내쫓아야 한다. 그러면 그동안에 꿈쩍하지 않던 자신의 믿음도 성장할 것이고, 인격도 성숙해지며, 영적으로 강건해져서 병도 이기게 되고, 귀신도 물리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제 이를 알고 실천하는 자는 복이 될 것이고 들었지만 실천하지 않는 자는 그저 그러한 삶이 지속될 뿐일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08월 16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