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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UCQtlTls5ho
날짜 2020-08-23
본문말씀 요한계시록 22:1~5(신약 42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하나님과어린양,어린양,주하나님,요한계시록,한분하나님,알파와오메가,보좌위에앉으신이,어린양,두분하나님,삼위일체,천국의성도들의지위와신분,왕노릇하는자

1. 들어가며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구원을 주시는 그분을 알아야 한다. 우리 인류에게 구원을 주시는 그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다(요14:6).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올 여름을 맞이하여 예수님이 누군지를 무려 20차례 이상을 다루어왔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과 그리고 그분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계속해서 살펴보았다. 그중에서도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이유는 그분이 자존하시며 무소부재하시며, 전지전능하시고, 영원불변하시기 때문이라는 것도 살펴보았고 살펴보고 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단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분, 곧 하나님의 아들로만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성도는 그분을 자존하시는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러한 말씀을 들어본 적도 없고 가르침을 받아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천국에 가면 우리가 보게 될 광경 곧 천국의 중심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의 중앙에 위치한 하나님의 보좌와 더불어 거기에 앉아계시는 이가 누군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과연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어린양이신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영국의 리차드 보컴교수는 왜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가?

  영국의 대신학자이신 리차드 보컴(76세) 교수는 신약학자요 역사신학자이다. 그는 이 방면에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자다. 세계신약학회는 그분을 매우 존경한다. 그런데 이분의 전공은 요한신학이며 그중에서도 요한계시록이다. 그럼, 그분은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을까? 그분은 요한계시록이야말로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동일시하는 아주 특별한 책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2가지 근거를 제시하는데, 하나는 예수님의 자기선언에서 그것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요한계시록의 처음과 마지막에 하나님과 예수께서 자기자신이 누군지를 선언하고 있는데, 그 선언들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즉 요한계시록 1장에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계1:8)"라 하셨는데, 이어 예수께서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계1:17)"이라고 선언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동일한 문구에 대한 반복이라는 것이다. 또한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에 가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다(계21:6)"이라고 하셨는데, 예수께서도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22:13)"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에 속한 것이 아니라면 도무지 불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요한계시록 5장에 가면 나오는데, 오직 유일한 분 하나님에게 돌려야할 찬양과 경배를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에게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계5:12~13).  이것은 오직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이외에 다른 신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다른 신을 신으로 인정할 바에야 그들은 기꺼이 죽음을 선택했었기 때문이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그랬고, 다니엘이 그랬으며, 신구약 중간시대의 이야기가 기록된 마카베오상하에도 그러한 내용들이 나온다. 그런데 신약의 성도들이 하나님 이외에 어린양에게 찬양과 경배를 돌리고 있다는 것은 그분을 한 분 하나님 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고로 보컴 교수는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리처드_보컴.jpg

      리차드 보컴 교수(1946~현재)

 

 

3.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주] 하나님과 어린양"은 두 분인가 한 분인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표현 중에 "주 하나님과 어린양"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에도 새 예루살렘 성 중안에 있는 한 개의 보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렇다면 그 한 개의 보좌는 대체 누구의 보좌인가? 하나님의 보좌인가 아니면 어린양의 보좌인가? 성경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나온다(계22:1,3). 그런데 놀랍게도 "보좌"라는 단어는 단수명사다. 만약 하나님과 어린양이 각각 다른 존재였다면 틀림없이 보좌는 "보좌들"로 기록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단수로 나온다. 그리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분을 지칭할 때에 사도요한은 "그들(them)"이라고 하지 않고, 단지 "그(him)"라고 표현한다. 계22:3~4절을 읽어보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이 보좌(단수)가 그[성의]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his) 종들이 그(him)를 섬기며(예배하며), 그의(his)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his) 이름도 그들의 이마[위]에 있으리니(계21:3~4)" 그렇다면, 하나님과 어린양을 왜 사도요한은 한 분처럼 묘사하고 있는가?

  여기서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어린양"은 아들 예수님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우선 3~4절의 기록만 보아서는 "하나님과 어린양"은 두 분이 아니라 한 분이라는 것고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의 얼굴을 뵈온다고 할 때에 그분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볼 수 있는 예수님인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천국에 올라가서 한 분 하나님을 뵈올 때에는 한 때 육신을 입고 나타나셨던 예수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 때문이다(계22:4). 즉 천국에서 보게 되는 한 분 하나님의 모습은 예수님이요, 보좌에 앉아계시는 하나님을 볼 때에 도 여전히 우리는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요1:18).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총 99회에 걸쳐 나오며, "어린양"이란 용어는 총 30회에 걸쳐 나오는데, 한 문장 안에 "하나님과 어린양"이라는 표현도 있다. 그 표현은 총 총 5회에 나온다(계7:10, 14:4, 21:22, 22:1, 3).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과 어린양"이라는 표현을 받을 때에는 항상 단수로 받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4. 요한계시록에서 "어린양"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요한계시록을 보면, 1~3장에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신 예수께서 등장한다. 그러다가 4장에는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나오고, 5장에 가면, 보좌 위에 앉으신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는 어린양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어서 어린양은 22장 전반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총 30회나 나온다. 그리고 22장 후반부에 가면, 다시 예수님이 등장하고 요한계시록의 편지는 끝난다.

  그럼, 대체 어린양은 누구신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어린양의 용례를 근거로 살펴보면, 어린양이 누군지를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첫째, "어린양"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하여 "아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계14:1). 왜냐하면 하늘의 시온산에 구원받은 성도들 144,000명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그들을 보니 그들의 이마 위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둘째, 어린양은 일찍 죽임을 당한 채 있는 존재로서 나온다(계5:6,9,12). 그는 일찍 죽임을 당한 존재로서 자기의 피로 사람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신 분, 그래서 모든 피조물로부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분으로 등장한다. 또한 예수께서도 요한계시록의 서두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계1:17b~18a)" 그렇다.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세마포옷을 입으시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고 있던 분, 곧 소아시아에 일곱 교회에 편지를 써보내라고 하셨던 바로 그분, 예수님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5. 천상에 있는 "어린양"은 실제 어린양의 모습으로 있는가?

  오늘날에 와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요한계시록 5장부터 22장에 걸쳐서 나오는 "어린양"을 실제로 양같이 생긴 분이라고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천국에서 아버지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계시며, 아들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그분의 오른편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비유와 상징에 대해서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어린양"은 "일곱 눈들과 일곱 뿔들을 가진 양"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계5:6). 만약 이것이 실제를 가리키는 표현이라면, 어린양은 괴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일곱 개의 눈들과 일곱 개의 뿔들을 가진 어린양을 한 번 상상해보라. 아니다. 여기에 나오는 "일곱"은 이 땅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키며, 어린양의 "눈들"은 이 땅에 보내어져 이 세상 모든 사람과 사물을 감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영(성령)을 가리키고(계5:6), "일곱 뿔들"은 예수님의 완전한 권세를 상징하는 것이다. 둘째, 만약 어린양이 실제하는 것이라고 하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어린양은 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천국에 올라오는 성도들을 위해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계7:17). 어린양들을 과연 어린양이 인도한다는 표현이 맞는 말인가? 아니다. 고로 우리는 어린양은 예수님의 어떤 모습을 비유하기 위한 상징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예수께서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그 다음날 세례요한 앞에 나왔을 때에, 세례요한은 그를 보고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때 예수님의 모양이 어린양이었는가? 아니다. 그것은 이제 인류의 모든 죄를 전가받고 그 죄를 없애기 위해, 죄없고 흠없는 순결한 예수님께서 속죄제물이 되신 것을 비유적이고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결코 실제 예수님의 모습이 어린양이었다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에서 예수님도 그분이 한 때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천국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항상 기억하도록, 그래서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하도록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로 어린양은 죄없으시고 순결하신 예수님, 그렇지만 일찍 죽임을 당해 인류의 속죄제물이 되셨던 예수님의 모습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그러니까 어린양은 예수님의 전체적인 사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때 인간의 모습을 취하셔서 낮아지시고 죽음을 맛보셨던 예수님의 한 면을 지칭하는 것이다. 

 

6. 예수께서는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시기 전 어디에 어떻게 계시다가 오셨는가?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만세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후 아들로 있다가 그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에서 하신 말씀은 거짓말이 되고 말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들] 가운데서 [장차] 죽으리라 하였노라 [왜냐하면] [만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나는 스스로 있는 자=하나님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너희[의] 죄[들] 가운데서 [장차] 죽으리라(죽을 것이기 때문이다)(요8:24)" 그렇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자존하셨던 분이 이제 인류의 속죄를 위해 어린양으로 오셨던 것이다. 그러므모 만약 그러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유대인들은 여전히 죄가운데서 죽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럼, 예수께서는 어디에 있다가 오셨는가? 그분은 사실 한 분 하나님으로 자존하신 분으로 있다가 오셨다. 굳이 그 위치를 말하라고 한다면, 아버지의 품 속에 있다고 오셨다고 해야 한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아버지의 품 속에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요1:18). 그때 예수께서는 당신이 어디에 있다가 오셨는지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만일]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안에서 밖으로]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나 자신에게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요8:42)",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안으로) [들어]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요16:28)"라고 하셨다. 그렇다. 예수께서 이 땅에 들어오실 때에,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안에서 밖으로 나오셔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스스로 계신 한 분 하나님께서 보내심을 받아 오신 것이다.

 

7. 천상의 세계에서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러므로 천상에서 그분을 "어린양"이라고 하는 것은 그분이 원래는 스스로 계시는 한 분 하나님으로 계셨으나, 인류의 속죄를 위해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사람이 되시어 인류의 속죄제물을 되신 상태를 일컫는 표현인 것이다. 고로 어린양은 한 때 죽기 위해 사람되신 하나님에 대한 표현인 것이지, 그것이 예수님의 전체적인 면을 다 표현하는 말은 아닌 것이다. 고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주 하나님과 어린양"이라는 표현은 두 분 하나님 곧 아버지와 아들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다만 그분을 "어린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분이 지상에 내려가셔서 하셨던 일을 천국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결코 잊어버리지 말라고 알려주시는 상징적인 표현인 것이다. 고로 어린양은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한 때 사람되신 것을 부각시킨 표현하는 말인 것이지, 아버지와 아들 곧 두 분 하나님을 각각 따로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주 하나님이자 어린양"이신 것이다. 천상의 세계에서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이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인류의 속죄를 위해 어린양이 되셨지만, 그분께서 곧 재림하시어 마귀를 진멸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기까지는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지금도 동시에 아들로서도 사역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로서 동시에 존재하실 수 있으신 분이기 때문이요, 아버지와 아들과 영으로서도 동시에 존재가 가능하시고 동시에 일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8. 하나님과 어린양을 예배하는 "그의 종들"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계22:3~5에 나오는 "그의 종들"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들은 하나님과 어린양 곧 한 분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들이다(계22:3). 천국에 가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존재는 천사들과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다. 물론 거기에서는 피조물 전체가 하나님을 예배한다(계5장). 그렇지만 인격적인 존재로서 예배하는 존재는 딱 천사들과 성도들 뿐이다. 그렇다면, 한 개의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과 어린양은 누가 예배하고 있는가? 그것은 5절에 답이 들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세세토록 왕노릇할 자"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한 마디로 "성도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결코 왕노릇하는 존재(왕으로 다스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원히 종으로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 살게 될 구원받은 성도들을 섬기라고 창조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히1:14), 어떤 이들은 천국에는 종으로 들어가서 살 사람도 있고 왕으로 들어가서 살 사람도 있어서 어떤 사람들 위에 왕노릇하며 살 사람도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천국에서 성도들은 다른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다. 다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상속자로서 제사장과 왕들도 참여하는 자들이다. 다만 천국에서 성도들의 신분이 때로는 "종들"로도 불리기도 하는데(계22:9), 이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수행하는 존재라는 의미인 것이지, 천국에서 다른 누군가를 섬긴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성도들은 그 위치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들(계21:7)이나 하나님의 백성들(계계21:3)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계22:3)이나 하나님의 상속자들(계21:7)로도 불리며, 대로는 어린양의 신부와 아내(계21:9)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9. 나오며

  구약의 성도들 중에 사실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보았던 성도들이 없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홀로 한 분으로 존재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국의 하나님 보좌에 홀로 한 분이신 그분이 좌정해계시다는 것을 몇몇의 소수의 성도들만 보았다. 모세도, 이사야도, 에스겔도, 다니엘도, 미가야도 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좌정하시고 있는 한 개의 보좌만을 본 것이다. 하지만 인류 구속을 위해 한 분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내려오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는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소개하셨지만, 신약시대에는 그분을 "예수"라고 소개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이제 아버지와 아들이 되셨다. 그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그분은 "아들"이라고 불리셨고, 그분이 부활승천하신 후에는 "어린양"으로 계시되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되신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류를 위해 희생을 치르셨는지, 그 은혜를 영원히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고난받으시고 죽으셨다. 우리는 그분을 천국에서 영원히 찬양하며 경배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 우리가 그분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모른 체하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도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그것이 그분의 은혜를 받은 우리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사도베드로가, 사도바울이 그렇게 살다가 갔다. 그러나 육체를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녹록하지마는 않다. 그래도 예수님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런 자가 천국에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게 될 것이고 하늘나라의 상속받게 될 것이며, 더 많은 천사들 위에 왕노릇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영원히 말이다. 그날이 우리에게 머지 않은 것 같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020년 08월 23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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