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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8qlWctbOsyc
날짜 2020-09-06
본문말씀 마태복음 12:41(신약 20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기적과표적,신앙과표적,니느웨성사람들의회개,남방여왕의지혜사모,구원얻기위해필요한2가지조건,서기관바리새인들,요나선지자,아슈르단3세, 여로보암3세,예수아타라이호와,얼마나더큰기적과말씀

1. 들어가며

  사람은 과연 언제 회개하게 되는 것일까? 기적이나 표적을 본다면 회개하는 것일까? 아니면 말씀만 들려주어야 회개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러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틀리다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이 기적을 보고 체험했다고 해서 꼭 그가 신앙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처럼 거대한 기적을 체험했지만 그들처럼 하나님을 불신하고 배신한 민족이 없었으며(신4:32~34), 예수님의 당시의 고라신과 벳새다의 사람들과 가버나움 사람들도 그렇게 많은 표적들을 보고 체험했지만 예수님을 불신하고 배척했기 때문이다(마11:20~24). 그렇다. 주님께서는 만약 고라신과 벳새다에서 행한 능력들이 두로와 시돈에서 행해졌더라면 그들은 벌써 굵은 베옷을 재에 앉아 회개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능력들이 만약 소돔에서 행해졌더라면 그 성은 벌써 회개함으로 멸망치 않고 보존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사람은 과연 언제 어떻게 될 때에 회개하는 것일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니느웨성 사람들의 회개를 통하여 누가 과연 회개를 하는지, 그리고 누가 마지막 심판 날에 유죄판결을 받고 지옥에 떨어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예수께서는 왜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는가?

  예수께서는 당시 유대인들 특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그렇게 많은 표적들을 보여주었고, 그렇게 많은 말씀들을 들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말씀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아니하고, 또한 표적을 보고서도 회개하지 않던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아주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장차 심판 때에 일어날 일을 미리 들려주셨다. 그것은 심판 때가 되면, 말씀듣기를 사모하여 땅끝에서 찾아왔던 남방여왕이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들을 유죄판결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심판 때가 되면, 요나선지자의 선포를 듣고 모든 시민과 심지어 짐승까지도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했던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들을 유죄판결할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회개도 하지 않으려는 당대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2가지로 책망을 하셨던 것이다. 하나는 B.C.763년경 당시 앗수르의 수도였던 니느웨성 사람들은 그들이 회개할 만한 큰 기적을 본 것도 아니며, 위대한 선지자의 선포를 들은 것도 아닌데도 철저하게 회개를 했는데,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실로 엄청난 말씀과 표적들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던 것을 책망하셨다. 그리고 또 하나는 솔로몬 시대에 솔로몬의 지혜가 출중하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도 지혜의 여왕이라 불리던 남방여왕(스바여왕)이 무려 예루살렘으로부터 2,400km나 떨어진 예멘 땅에서, 각종 향품과 금과 보석을 수레에 싣고 와서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었는데,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실로 놀라운 말씀들 곧 그 이전까지 그누구에게서 들어 볼 수도 없었고 앞으로도 들을 수 없는 말씀들을 들으면서도 예수님께 말씀듣기를 사모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3. 니느웨성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회개했는가?

  그렇다면, 니느웨성 사람들은 어떻게 회개했으며, 왜 회개한 것인가? 먼저, 그들이 어떻게 회개했는지를 살펴보자. 요나서 3장을 읽어보면, 그들이 당시 어떻게 회개했는지가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니느웨성 사람들은 무려 7가지 방식으로 회개를 하였다.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던 태양신을 버렸고,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의 신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둘째, 모든 사람들이 다 금식을 하였다. 셋째,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모두가 다 회개의 표시로서 굵은 베옷을 입었다. 넷째, 나중에는 왕도 그 소식을 듣고는 왕좌에서 내려와 왕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다. 다섯째, 사람만 금식한 것이 아니라 모든 동물들까지도 금식하게 했으며, 소와 양 등 짐승에게까지 굵은 베옷을 입혔다. 여섯째, 힘써 하나님께 자기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심판을 면케 해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했다. 일곱째,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과 강포를 회개했다. 

  그러면, 니느웨성 사람들은 왜 이토록 간절하고 철저하게 회개한 것일까? 성경의 기록을 보면 오직 한 가지 이유에서다. 그것은 거의 죽었다가 살아난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 성에 가서 삼일 길을 다녀야 할 도시 길을 하룻길을 다니면서 "앞으로 40일이 지나면 뒤엎어질 것이오"라고 외친 것 뿐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두려워하지 않던 니느웨성 사람들은 어떻게 되어서 요나선지자의 말을 듣고 자기들이 믿던 신을 버렸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신으로 바꾼 것일까? 그리고 그토록 간절히 금식하며 회개를 실천한 것인가? 그 이유는 요나서 3:9에 나온다. 

욘3:10 [그러면] 그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이 말은 니느웨성 사람들은 요나선지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는 뜻이다. 정말 하나님께서 40일 뒤에 그 성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믿었기에, 그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회개의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할 수 있는 대로 부르짖어 자기들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태양신을 신봉했던 앗수르인들은 왜 그들의 신을 바꾸면서까지 그렇게 철저히 회개한 것일까? 그와 같은 이유는 성경 외의 앗수르제국의 기록을 통해서 어느정도 확인할 수 있다. 그때 그 도시에 무슨 일이 있었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도시에 B.C.763년 6월 15일 오전 9시반부터 11시반까지 2시간동안 칠흙같이 어두운 어둠이 몰려왔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곳에 "개기일식"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요나선지자가 "앞으로 40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지리라"고 외친 직후로 추정되는 시각에 발생한 일이다.

  그렇다면 개기일식과 요나선지자의 선포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이며, 그것과 니느웨백성의 회개는 무슨 관련이 있는가? 첫째, 최소한 그들에게 개기일식은 그들에게 매우 불길한 징조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특히 태양신을 섬기던 그들에게 태양신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짙은 흑암이 몰려오자 그들은 자신의 신을 누군가가 쳐버린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전날 불길한 예언을 한 요나선지자에게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둘째, 요나선지자는 자기가 그동안 경험했던 것을 고스란히 그들에게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는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는 사람이요.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께서 나에게 "저 큰 성읍 니느웨에 가서 앞으로 얼마 있으면 그 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외치라고 했소. 그러나 만약 니느웨성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회개라도 한다면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기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려고 일부러 고국 땅을 떠나 도망치려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었소. 그런데 배가 지중해의 한 중간쯤 이르자, 풍랑이 일어나더니 배가 뒤집힐 위기에 처해버렸소. 그러자 모든 뱃사공들이 일제히 자기들의 신의 이름을 부르며 풍랑과 바다가 잔잔해지기를 기도했지만 소용이 없었소. 그 와중에서 나는 나몰라라 하고 배밑창에 내려가서 잠을 차고 있었소. 그런데 누군가 나를 깨웠고, 나에게도 나의 신에게 기도하여 풍랑을 잔잔케 해보라고 하였소. 그러자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소.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내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 때문이니, 나를 바다에 던지시오. 그러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오"라고 했소. 그러자 처음에는 그들도 반신반의했지만 바다가 더 흉용하자 결국 그들은 내가 믿는 주 여호와께 기도를 올린 후, 나를 바다에 던져버렸소. 그랬더니 정말 바다가 잔잔해졌소. 하지만 나는 그때 죽은 줄 알았소. 그런데 그때 어떤 큰 물고기가 오더니 나를 삼켜버렸고, 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를 깊이 회개하였소. 그랬더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글쎄 그 물고기가 나를 이 땅에 토해내지 않았겠소. 그래서 내가 와서 이렇게 당신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오."

  그러자 니느웨성 사람들은 그 도시에 일어났던 개기일식과 요나의 간증을 듣더니 금새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곧 자기들의 태양신을 눌러버려 해가 뜨지 못하게 한 신은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무리 잘못한 일이 있을지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살 수 있다는 것을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를 보고 소망이 생긴 것이다. 사실 앗수르제국의 수도였던 니느웨성은 니므롯이 세운 도시(창10:8~12)로서, 그가 죽자 하늘에 올라가 태양신이 되었다고 하여, 태양신 신봉 도시가 되었는데, 요나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파도와 바람과 바다를 주관하며 하늘을 지으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확실하니, 이제는 자기들이 믿던 태양신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왕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었고, 요나의 선포를 들었던 백성들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나중에는 궁궐에까지 그 소식이 들어가더니 왕도 회개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까지라도 회개를 실천하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특히 기록에 의하면, 앗수르는 이 일이 있기 2년전에 북이스라엘의 동편에 위치한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반지파 땅에 쳐들어가 그곳을 쑥대밭을 만들어놓았고 그들을 노예로 삼은 일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여호와께서 더 노여워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기에 더 뜨겁게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하였던 것이다. 

 

4. 니느웨성의 회개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그 일은 정말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말았다. 니느웨백성들은 원래 여호와를 섬기는 민족이 아니었다. 대대자자손손 이방신 곧 태양신을 섬기던 민족이었는데, 그들이 믿던 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자기의 신으로 맞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이 강포하였고 악행을 저질렀던 것들을 뉘우치면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간절히 부르짖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사람으로부터 동물에 이르기까지 다 금식하면서 굵은 베옷을 입고서 말이다. 당시 니느웨성에는 싸움에 나갈 장정만 12만명이었다고 하니, 실제 그 도시의 인구는 약 60만명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도시 전체가 하나님께 간구하고 부르짖었으니, 그런 일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감동하실만 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이내 뜻을 돌이키셨고 내리리라고 작정하신 진노를 거두어들이셔서, 그 성에 내리겠다던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던 것이다. 

 

5. 니느웨성 사람들의 회개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들려주는가?

  사실 당시 니느웨성 사람들에게 개기일식은 그들이 뭔가를 잘못한 것에 대한 신의 노여움이 아닌가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절묘하게 요나선지자의 선포가 들려지자, 그들은 자기들에게 임한 표적이 무슨 의미인지를 즉각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제 당시 예수님의 말씀과 표적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도 않는 그 세대들을 보시고 계셨다. 그런데 사실 니느웨성 사람들은 요나선지자의 선포를 자기들에게 임한 개기일식과 연관짓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요나선지자의 말을 그들에게 주신 신의 말로 경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나보다 더 큰 이,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개역성경에 나오는 "요나보다 더 큰 이"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사실은 사람(남성명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나 일(중성명사)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더 큰 이'가 남성명사가 아니라 중성명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개역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요나보다 더 큰 이라고 함으로서 예수님을 요나보다 더 큰 선지자처럼 번역해놓았고, 예수님을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운 자인 것처럼 번역해 놓았다. 하지만 아니다. 그게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요나의 시대에 있던 사건보다 더 위대한 사건이라는 뜻이요, 솔로몬시대에 있었던 일보다 더 위대한 사건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가지 표적과 기적을 통해서 그와같은 사실을 증거하고 있으며, 그분이 들려주신 말씀으로 그것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다고 말할 수 있는가?

 

6. 나오며

  그렇다.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죽으셨고 부활하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다 지불하셨음에 불구하고, 그와같은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아직까지 예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모르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구약시대의 회개의 사례를 언급할 때 유일하게 왜 요나의 표적을 언급하셨는지를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요나의 표적이 예수께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삼일삼야를 땅 속에 있을 것임을 알려주는 표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때에 니느웨성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이야말로 신들 중의 신이요 왕이라는 것을 믿었고, 무슨 죄를 지었더라도 그분께 회개하기만 하면 죄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들이 죄사함을 받고 멸망을 면할 수 있었듯이, 오늘날에도 우리가 예수님의 사건 을 보고 즉 "요나보다 더 큰 것(일)"을 이루신 예수님의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이야말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우리의 죄용서를 구하기만 하면 다 용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예수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을 아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사실 요나서를 보면, "예슈아(히브리어)는 여호와에게서(욘2:9)"라는 말씀이 나온다. 예수님 당시 그들 앞에 서 있는 "예슈아(헬라어는 '예수')"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리고 무슨 죄를 지었더라도 죄를 회개한다면 어떤 죄든지 다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회개를 실천하고 있는 이가 또 얼마나 되는가? 만약 주님께서 지금 이 시대에 살아계시다고 한다면, 아마도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더 많은 말들을 들려주어야 너희가 과연 나를 그로 믿겠으며, 내가 얼마나 더 큰 기적을 보여주어야 너희가 너희 죄를 애통해하며 회개하겠느냐?" 사실 사람이 누군가로부터 어떤 놀라운 말을 들었다고 해서 다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며, 엄청난 기적을 보았다고 해서 다 회개하는 것이 아니다. 남방여왕이나 니느웨성 사람들처럼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의미를 찾는 자가 바로 그것을 발견하고 그 혜택을 입게 되는 것이다. 

 

2020년 09월 06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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