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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0-12-12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5:20~26(신약 28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부활신앙,부활의의미,부활의시기,마지막날,죽은즉시부활,재림때부활,사망권세와마귀,카타르게오(쓸모없게하다),부활의성경상의증거,부활의구약절기상의예표,부활의실제증거,

잘못된 부활신앙은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성도들을 나태하게 만들고 죽음을 두려워하게 하며 슬퍼하게 할 것이다. 또한 지금 죽으면 곧바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모른채, 죽으면 잠자는 상태에 있다가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심판받고 그때에 가서 보상을 받는다고 한다면, 어찌 지금 회개하고 지금 충성하려고 하겠는가? 그러므로 바른 부활신앙이 절실히 필요하다. 과연 성도는 언제 부활하는가? 그리고 상급은 언제 받는가? 왜곡되어 있는 개인의 종말신앙관을 이제 성경의 진리로 살펴보자.

1. 들어가며

  우리가 개혁해야 할 신앙 중에는 종말론이 그중에 가장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교단의 교리가 종말론에 있어서 성경과 빗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도들의 개인 종말에 있어서는 거의 대부분 성경과 어긋나 있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부활의 시기를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하는 시기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때인가? 어떤 교단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중간상태에서 곧 잠자는 상태로 있다가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무덤에서 쉬고 있다가 부활한다고까지 말한다. 과연 어떤 견해가 성경이 말하는 견해인가? 성도들의 개인적인 부활에 관하여 주님께서 그리고 사도들이 말했던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과 많이 빗나가 있는 성도들의 부활의 시기와 아울러 성도들의 부활과 사망권세가 무너진 것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올바른 개인적인 종말관을 찾아보고자 한다.

 

2. 우리가 개인 종말론에 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교회의 종말론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이러한 종말론이 잘못 되었을 때에 과연 어떤 결과들이 도출되는가? 적어도 3가지가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첫째,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렇기에 환난과 핍박을 받지 않고 훌쩍 휴거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환난후에 오신다(마24:29~30). 둘째,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것이다. 이는 성도들이 죽은 이후에 어떤 상태로 들어가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셋째, 태만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죽으면 곧바로 자신의 영혼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려면 올바른 종말신앙을 세워야 한다.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종말론으로서, 예수께서 말씀하셨고 사도들이 언급한 바로 바로 그 종말관이요 종말신앙이다. 

 

3.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에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우리는 매주 교회에 나와 예배할 때에 신앙고백을 한다. 보통은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한다. 거기에는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지가 요약되어 있다. 거기의 두번째 항목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항목이다. 그리고 그것의 첫번째 항목은 그분의 성육신에 관한 항목이다. 그분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에서 나셨다는 것이다. 그분이 사람되심은 사실 그분이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한 흠없는 속죄제물로 죽으시기 위함이다. 두번째 항목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다. 그분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과 또한 죽으셨지만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이 그 항목이다. 그리고 세번째와 네번째 항목은 그분의 승천과 재림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항목이다. 성도들은 자기들의 죄가 사함받고 자기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왜 필요한가? 이 질문에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통해 나도 장차 부활할 것이라는 신앙을 갖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대답은 틀린 대답은 아니나, 분한 대답은 아니다. 왜냐화면 그분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을 가르쳐주기 위함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 핵심을 비켜나간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또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4. 그리스도께서는 왜 부활하셨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왜 부활하셨는가?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 인류를 대신하는 죽음이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그분의 부활을 통해 우리의 부활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인가? 이런 이유도 사실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전체를 말하지 않은 진술이자 핵심을 놓치고 있는 진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이유는 대체 무엇이 그 핵심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께서 무소불휘의 힘을 가진, 아담 안에서 왕노릇하고 있던, 사망의 권세를 처리하시어 쓸모없게 하셨다는 증표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자신의 구원에 필요한 요소일 뿐, 굳이 부활하지 않으셔도 별 상관이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의 문제를 처리했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망의 문제를 처리해주기 때문이다.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고 한다면, 아담이후 인류 위에 왕노릇하고 있는 사망이 무너지고 박살났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 최초로 사람이셨던 예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던 것이다. 사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사망 권세다. 모든 것의 끝은 사망으로 끝나고, 그러면 모든 사람은 다 사망권세 아래에 놓이기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신 예수께서 사망을 당한지 3일만에 약속대로 살아나셨다. 이는 사망권세를 이기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음부에서 걸어 나오셨다. 이것은 음부가 그분을 붙잡아두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음부에서 걸어나오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일을 예수께서 이루신 것이다. 고로 그분이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그분이 사망을 이기셨다는 것이고 그분이 사망권세를 무너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일로 인해 예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최초의 열매 곧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 

 

5. 예수님의 죽으심의 두번째 의미는 무엇인가?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좀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그분이 죄가 있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사망을 통하여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시기(없이하기) 위함이었다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히2:24). 그렇다. 그분은 죄가 있어서 죽으신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어서 혹은 사망을 이길 수 없어서 죽으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사망을 쓸모없게 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멸하시기 위하여"라는 단어를 보면, 헬라어로 "카타르게오"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쓸모없게 하다. 무효화시키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사탄마귀가 멸망당한 것은 아니었다. 사탄은 지금 현재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는 지구의 땅 속 음부에서 자신의 부하들인 귀신을 올려보내어 자신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께서 마귀가 가진 사망권세를 쓸모없게 만드신 것이다. 

  사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카타르게오"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나온다. 24절에 한 번, 26절에 한 번 더 나온다. 그런데 26절에 나오는 "카타르게오"는 잘못 번역되어 있다. 먼저 우리말 번역을 보자.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15:26)" 이 말은 사망은 맨 마지막 날까지 살아남아 있어서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가서야 비로소 멸망받게 될 것이라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말을 거부하는 번역이다. 헬라어 원문에는 그렇게 쓰여있지 않다. 그럼, 헬라어원문에서는 26절이 어떻게 쓰여있는가? "맨 나중의 원수로서 사망은 [현재] 쓸모없게 되고 있다." 그렇다. 이는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쓸 당시의 사망의 상태를 그대로 묘사해주고 있는데, 사망은 그때도 "쓸모없게 되고 있었다". 왜 그런가? 예수께서 사망권세를 무너뜨리고 3일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망권세는 이제 더이상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도 예수님 이후부터는 죽은 즉시 사망권세에서 놓임받게 된다.  

 

6. 성도들은 과연 언제 부활체를 입고 부활하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자기들도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교단의 교리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부활하시는 시기는 죽은 즉시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신 이후의 세대들 가운데, 성도들은 죽은 즉시 부활하여 부활체를 입고 곧바로 천국에 있는 아버지의 보좌 앞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증거로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성경상에 나타난 증거가 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께서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가 "지금"이라고 말씀하셨다(요5:25). 그렇다면, 이때 "죽은 자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진짜 죽어서 무덤 속에 있는 자를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영이 죽어있는 자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 영이 죽어있는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요5:28)"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곧 예수께서 사람의 육체을 가리켜 "무덤"이라고 표현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자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영이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러한 자는 자신의 육체가 죽은 다음에 곧바로 생명의 부활로 직행한다는 뜻이다. 즉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이다(요5:29). 그리고 사도바울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써보낸 전편의 편지에서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에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신다고 알려주었다(살전3:13). 왜냐하면 이미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있기에 주께서 그 성도들을 데리고 오시기 때문이다(계19:14).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부활의 순서를 언급하고 있는데, 첫 열매는 그리스도이며, 두번째는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했다(고전154:23). 주께서 그날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던 성도들을 데리고 오시기 때문이다. 

  둘째, 구약시대에 절기상의 증거가 있다. 그것은 레위기 23장에 들어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을 시작하여,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맥추절,오순절), 나팔절, 초막절(장막절,수장절), 속죄일 등의 총 7가지 절기를 지킨다. 그중에 세번째 절기가 "초실절"이다. 이 초실절은 유월절을 기점으로 안식일이 지난 그 다음 날을 가리킨다. 그리고 초실절에는 맨 처음 익은 곡식 이삭 한 단을 요제로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였다(레23:10~11). 이는 보리 중에 제일 처음으로 익은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 드리는 것은 보리 이삭의 한 단이다. 그리고 나서 보리추수를 계속한다. 그 기간이 50일 정도 된다. 그리고 50일째 되는 날은 한꺼번에 추수를 한다. 이것이 바로 칠칠절(맥추절, 오순절)이다. 그러니까 칠칠절은 한 마디로 보리추수를 끝내는 날이다. 그렇다면, 왜 초실절에 한 묶음으로 이삭 한 단을 드리라고 했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의 시작이 되셨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시어 부활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때까지 죽어서 낙원에 들어가 있던 구약의 성도들도 이 날에 예수님을 따라 한꺼번에 부활체를 입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날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가 자신을 만지려하자 말리면서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요20:17)"고 하셨던 것이다. 아직 요제로 자신이 드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날 주께서는 구약의 성도들과 함께 요제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부활하여 지금도 천국에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외 오면, 한꺼번에 부활이 일어날 것이다. 이날 우주적인 영혼의 추수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절기가 보여주는 예수님의 첫 열매되심은 예수께서 그날에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고 이어서 계속해서 성도들의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일러준다. 

  셋째, 이미 천국에 들어간 자들의 실제의 증거가 있다. 지금 성도들은 죽으면 구약의 성도들처럼 영혼의 상태로 낙원에 가는 것이 아니다. 곧바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있는 아버지의 보좌 앞으로 가는 것이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이미 천국에 성도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무려 12번 이상을 언급하고 있다. 최초의 언급은 요한계시록 6:9~11에 나온다. 이들은 천국에 있는 제단(분향단제단)에서 자신의 피를 신원해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한다. 이들은 아마도 순교자들일 것이다. 이미 순교자들이 천국에 있어서 아버지의 보좌 앞으로 가서 하나님께 청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천국에는 지금 거기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 성도들이 있다. 이러한 실제적인 증거는 요한계시록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천국과 지옥을 갔다왔다고 하는 간증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천국에 가보면, 이미 면류관을  쓰고 있는 성도들도 있고, 자기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상급심판까지 다 받고 천국에서 그 영광을 누리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중간상태로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재림하신 후에 상급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이미 천국에서 그 상급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죽어보면 금방 알게 될 것이다. 

 

7. 그리스도인들이 제대로 된 부활신앙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죽은 후에 다들 잠자고 있는 상태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잠잔다"는 뜻은 신자의 죽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죽은 이가 계속해서 사망 아래에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성도가 죽으면, 그는 주님의 재림하시는 날까지 사망 아래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성도가 죽으면 잠자고 있다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살아나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아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께서 이미 사망권세를 이기고 쓸모없게 하셨기에 모든 성도들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성도들에게 이러한 제대로 된 부활신앙 곧 개인적 종말신앙이 필요한 것인가? 그것은 3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성도들 자신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다(계2:8~10).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만약 우리 성도들이 죽게 되었을 때에 자신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는 죽음 앞에서 담대해질 것이다. 특히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상황에서, 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흔들리지 않고 죽음 앞에 의연히 맞설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죽음을 슬퍼하지 않기 위해서다(살전4:13). 죽음은 껍데기인 육신을 벗는 작업일 뿐 우리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 사망권세가 더 이상 우리를 주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는 것은 새로운 생명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불과하기에 죽음을 보고 슬퍼하지 않는 것이다. 성도가 죽었는데 그것을 두고 애도하고 슬퍼하는 것은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장례예배 그리고 추도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기뻐할 일을 왜 슬퍼해야 하는가? 셋째, 회개나 충성을 뒤로 미루지 않고 지금 회개하고 지금 충성하기 위해서다(고전15:57~58). 지금 죽으면 곧바로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기 때문에 지금 회개하는 것이다. 지금 죽으면 바로 하늘에서 상급을 받기 때문에 좋은 상급을 얻기 위해 지금 충성하는 것이다. 주님 앞에 충성하고 수고한 만큼 우리가 상급을 받는데, 어찌 시간을 지체할 수 있겠는가? 어찌 뒤로 미루겠는가?

 

8. 나오며

  그리스도가 머리로서 부활하셨는데 어찌 교회인 몸이 따라서 부활하지 않겠는가? 만약 그리스도만 2천년전에 부활하고 모든 성도들은 다 사망 권세 아래서 2천년동안 잠자는 상태로 있다면 그것은 더이상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몸은 지금도 하나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처럼 사망을 정복하고 부활의 생명을 얻어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머리로서 첫 열매가 드려졌으니 그 다음에 죽은 성도들도 차근차근 익은대로 곧바로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4장에 보면, 시온산에 14만 4천명이 서 있는데, 그들은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0:6에 보면, 그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첫 열매로 드려지신 후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죽은 성도들은 지금도 개인별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고전15:23). 이들을 가리켜 첫째 부활에 참여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세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우주적인 추수가 일어난다(고전15:24). 그때는 성도 전체가 부활할 것이다. 이것을 "둘째 부활"이라고 한다. 고로 성도들은 개인적인 부활을 의미하는 첫째 부활에 참여하거나 아니면, 우주적인 부활을 의미하는 둘째부활에 참여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죽는다고 죽음을 무서워할 것도 아니며, 다른 이가 죽었다고 슬퍼할 것도 아니다. 다만 내 생명이 붙어있는 한 회개를 더 많이 하고 충성하여 장차 들어갈 나라에서 상얻는 자로 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12월 13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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