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리에게 잘못 알려져 있는 토기장이 비유의 오해와 진실(렘18:1~10) [일시] 2023년 02월 26일(주일) 오전9시, 11시 [찬송] 찬 25장 면류관 벗어서, 찬 89장 샤론의 꽃 예수, 찬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PW: 믿음, MIW: 그릇 T.S: 믿음이란 내가 과연 어떤 그릇으로 빚어졌거나 쓰임을 받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이 아니라 복을 받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교리’가 갖고 있는 위험성을 조금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리는 한 번 정해지면 고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 번 어떤 교회를 배웠던 사람은 그것만을 진리라고 믿고 따라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교리들 중에 어떤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으며, 어떤 것은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선택된 교리도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교리적인 설교를 들을 때에는 과연 성경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야 합니다. 그리고 교리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말씀들을 한 번 쯤을 찾아서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교리의 근거로 만약 괄호 안에 성경구절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 교리는 다 성경적인 교리야 하고 생각하는 것을 우선 접어두셔야 합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17장 성도들의 궁극적인 구원에 관하여
1.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용납하시고 실제로 부르시고, 또한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자리에서 전적으로 또는 최종적으로 타락할 수는 없다. 그들은 마지막 날까지 그 상태에 있을 것이며, 또한 영원히 구원을 받을 것이다(빌1:6, 벧후1:10, 요10:28~29, 요일3:9, 벧전1:5,9).
이 교리는 우리 장로교들의 교리 가운데 하나로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등장하고 있는 것인데,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교리입니다. 그렇다면 이 교리의 근거가 되는 말씀을 과연 합당한 성경구절일까요? 이것은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것이니만큼 한 번 쯤은 직접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빌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벧후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요10:28~29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10:27~29[직역] 나에게 속한 양들은 내 음성을 듣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도 그것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들은 나를 따르고 있는 중이다. 28 내가 그것들에게 시대의 생명을 준다. 그러면 그것들은 그시대까지 스스로 결코 멸망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들을 내 손으로부터 장차 낚아채가지 못할 것이다. 나의 아버지께서 [이미] 나에게 주신 채 있는 그것은 모든 것들(만물)보다 더 크다. 그러므로 아무도 내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낚아채는 것을 할 수 없다.
요일3: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계속]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벧전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벧전1:9 [여러분들의] 믿음의 결국(끝)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받고 있으면서 있다)
그렇지만 어느 말씀도, 하나님께서 한 번 구원받은 자들은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것은 ‘바라는 사항’일 뿐이며, ‘조건을 갖고’ 있고, 성경을 대문자 사본이 아니라 변형된 ‘소문자 사본’의 말씀에 따른 것이며, ‘본문 내용’도 번역을 잘못한 것이고, ‘보호하심’을 받으려면 믿음이 있어야 하고, 혼의 구원이 곧 영의 구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진정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른 구원관에 관한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히10:26-2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고의로)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마7:20-21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계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었던 렘 18장에 등장하는 토기장이의 비유의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관한 교리를 뒷받침해주는 아주 중요한 말씀으로 사용되는 말씀입니다.
렘18: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롬9:20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예레미야의 말씀이나 로마서의 말씀을 보면, 둘은 결정적으로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에 관하여 어떤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 말씀을 그냥 인용하여 하나님에게는 인간의 모든 것 곧 구원까지 다 주관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렇게 해서 결정된 것은 결코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이러한 주장은 합당한 것일까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토기장이의 비유가 어떻게 잘못 알려져 있는지를 정확히 짚어보고, 이 비유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토기장이의 비유를 통하여 남유다에게 다가오고 있는 엄청난 심판의 불가피성을 확고하게 말씀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의 심판의 불가피성을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못쓰게 된 진흙을 가지고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심판의 불가피성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만세전부터 그렇게 하려고 결정해 놓으셨던 것인가요 아니면, 이스라엘 민족이 살면서 스스로 하나님을 배반하여 그렇게 된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B.C.609~587년에 남유다를 통치하였던 남유다 제17대 여호야김 왕 때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바로 토기장이이시며, 남유다는 그분의 손에 붙들려있는 진흙이었나 끝내 그들안 자신의 잘못을 돌이키지 않아 재앙을 받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렘18:1-10[표준새번역]
<토기장이의 비유> 1 이것은 주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이다. 2 "너는 어서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거라. 거기에서 내가 너에게 나의 말을 선포하겠다." 3 그래서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갔더니, 토기장이가 마침 물레를 돌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4 그런데 그 토기장이는 진흙으로 그릇을 빚다가 잘되지 않으면, 그 흙으로 다른 그릇을 빚었다. 5 그 때에 주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6 "이스라엘 백성아, 내가 이 토기장이와 같이 너희를 다룰 수가 없겠느냐 ? 나 주의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 안에 있듯이, 너희도 내 손 안에 있다.
7 내가 어떤 민족이나 나라의 뿌리를 뽑아내거나, 그들을 부수거나 멸망시키겠다고 말을 하였더라도, 8 그 민족이 내가 경고한 죄악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나는 그들에게 내리려고 생각한 재앙을 거둔다. 9 그러나 내가 어떤 민족이나 나라를 세우고 심겠다고 말을 하였더라도, 10 그 백성이 나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내가 보기에 악한 일을 하기만 하면, 나는 그들에게 내리기로 약속한 복을 거둔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모르면, 우주와 만물 그리고 인간에 관한 모든 권한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다는 절대주권사상을 과다하게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모르면,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우리 인간의 구원과 멸망을 이미 정해놓으셨으며, 그것은 결코 바꿀 수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모르면,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관한 말씀을 주실 때에는 그것이 우리 개인과 민족의 ‘쓰임’에 관한 말씀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원’에 관한 말씀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잘못 해석해버립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관한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여,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삶을 살아서, 꼭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가. 토기장이의 비유란 어떤 비유인가?
성경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는 딱 3~4군데에 나옵니다. 대부분 이사야서 그리고 가장 많이는 예레미야애가를 포함한 예레미야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약성경에서는 로마서에만 나옵니다. 물론 디모데후서에도 토기장이라는 말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그와 비슷한 개념으로 말씀하고 있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서에 등장하고 있는 토기장이의 비유의 핵심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토기장이처럼 당신이 사용하고자 작정한 그릇을 당신의 선하신 계획을 따라 빚어내신다는 말씀입니다.
렘18:3-4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물레)로 일을 하는데 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잘 되지 않아서)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눈)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이는 토기장이가 물레를 사용해서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고 있는데, 그 손에서 잘 되지 않아서 다시 그것을 짓이겨 그것으로 자기의 의견(눈)의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토기장이의 비유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하는 아주 중요한 근거의 말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사64:8, 45:9).
렘18: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먼저, 이 말씀의 의미를 보면, 이 비유는 하나님을 ‘토기장이’에 비유하고 있으며, ‘잘 되지 않아서 짓이겨버린 진흙’은 남유다의 미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남유다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고 선한 그릇으로 만들었는데 그들이 그만 잘못된 길로 계속 나아감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시고 다른 민족으로 이들을 대신하겠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나. 토기장이의 비유는 훗날 어떻게 잘못 사용되고 말았는가?
다시 정리하면, 토기장이의 비유는 어떤 비유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와 인류역사에 관하여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의 선하신 뜻대로 행하실 수 있는 절대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가 우리 개혁교회에서 현재 잘못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와 멸망받을 자로 예정하셨다는 개인구원예정론에 관한 근거의 말씀으로 쓰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세전 개인 구원 예정론을 믿는 자는 모든 사람의 구원과 멸망이 이미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의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것을 절대 바꿀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도록 예정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게 될 것이며, 그것은 절대 바꿀 수도 없기 때문에, 그 예정에 따라 개인의 구원은 마지막 날까지 구원받은 상태로 있게 될 것이며 그 구원은 영원히 보존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리켜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성경이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지은 이에게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대들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결정에 우리는 무조선 순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29:16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매우 중대한 오해를 밑바탕에 깔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놓치게 되면 잘못된 구원론에 빠져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기에 자신의 구원은 안전하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3가지입니다
첫째, 토기장이의 비유는 토기장이가 자신의 뜻에 알맞은 토기(질그릇)를 빚어가신다는 비유에 해당하는 것이지 이 비유가 결코 선택자와 유기자에 대한 구원 예정 비유로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4절).
렘18:3-4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물레)로 일을 하는데 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잘 되지 않아서)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눈)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그러나 종교개혁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 가운데에 어떤 이는 멸하기로 이미 준비된 그릇이기에 그들은 반드시 멸망당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운명은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결정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틀렸다는 것은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토기장이가 처음부터 어떤 그릇을 깨뜨려버리기 위해 그릇을 만들지는 않듯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멸망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창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는 그릇을 빚을 때에는 어떤 용도에 맞게 그릇을 빚는 것이지, 아예 깨뜨리기 위해 그릇을 만들지는 않는 것입니다.
둘째,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 선한 그릇 용도로 빚어진 그릇이라 할지라도 그 그릇이 계속해서 주인의 뜻에 부합하지 않게 살면, 그 그릇에 대해 영예를 주시려고 작정했던 모든 복을 철회할 수 있다는 비유인 것이지, 이 비유는 하나님이 구원받을 자와 멸망받을 자가 처음부터 정해놓고 그대로 되게 만들어버리신다는 비유가 아닌 것입니다(9~10절). 왜냐하면 토기장이의 비유는 쓰임에 관한 비유인 것이지, 구원에 관한 예정의 비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도구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비유입니다. 그러나 합당하지 않게 살아간다면 그들을 복주기로 계획하고 빚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그렇게 살지 않으면 그들에게 줄 복을 주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렘18:9-10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세우거나) 심으려 할 때에 10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하나님께서 어떤 민족이나 국가를 세우거나 새로 심어서 그 민족이나 국가를 영광스럽게 하기로 작정하고 세웠을 지라도 그 민족이나 국가가 하나님 보시기에 계속해서 악을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그 민족과 국가에 대한 영예를 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철회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에 부합하게 그릇을 만들어 가시는데, 그 그릇이 계속해서 주인의 뜻과 맞지 않는 방향으로 계속 빚어진다면, 그 그릇을 쓰심으로 그들에게 주시고자 했던 복을 철회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선민으로 선택한 이유와 목적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복은 무엇입니까?
출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보배로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는 이스라엘을 주님의 보배로운 소유이자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려고 처음부터 계획하여 그들을 불러내었고 그들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계약조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주님께서 주신 언약을 잘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살만하게 되니,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겼습니다. 계약을 어긴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처음 그 민족을 빚을 때에 생각했던 방향으로 돌아오도록 선지자를 보내 계속해서 회개하고 돌아올 것과 이방신들을 버릴 것을 촉구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점차 보배가 아니라 싸꾸려가 되었고, 제사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도 못했으며, 더럽혀졌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더 이상 빚어갈 것을 포기하시고, 다른 이방민족 곧 교회를 선택하여 그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좋은 포도를 생산하게 하려고 포도즙틀을 파고 거름을 주고 김을 매주었지만 그들은 끝내 들포도 송이를 맺었던 것입니다.
셋째, 설령 하나님께서 어떤 그릇을 악한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빚어서 그렇게 사용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돌이킨다면 그들에게도 얼마든지 긍휼을 베푸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7~8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악한 도구로 쓰임을 받는 자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꾸 잘못된 길로 가니까 회초리를 대시기 위해 사용하는 나라와 민족이 있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애굽이나 앗수르 바벨론과 같은 나라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처음부터 구원에서 제외시켜 지옥을 보내기 위해 그렇게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그들 워낙 악한 영들을 따라 행하므로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당신의 백성을 후려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그들을 처음부터 지옥보내기 위해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조상 적부터 지은 죄에 인하여 악한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해서 악한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징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알고 자신의 행위를 회개하기만 한다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생각하였던 재앙에 때해서 뜻을 돌이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도구로 사용된 사람이나 민족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회개하기만 하면 그들을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어떤 자를 지옥에 보낼 것을 작정해놓고 이 땅에 내려보내시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요나서에 등장하는 니느웨백성들의 회개입니다. 앗수르는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위한 징계 도구로 허락하신 국가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느날 요나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기에 이릅니다.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하고 큰 자부터 낮은 자가 다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서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왕이 조서를 내려 짐승까지도 먹지도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하나님께서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백성과 짐승까지도 순종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욘3: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다. 하나님의 만민처우원칙은 무엇인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구원받을 자와 멸망받을 자를 정해놓았다는 교리는 성경에 맞지 않는 교리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멸망의 자식으로 예정하여 지옥 보내려고 만들어 내려보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둘째, 어떤 사람이라도 다 어떤 쓰임과 용도에 합당하도록 안배된 것이다. 그것인 선한 용도이든 악한 용도이든 말이다.
셋째, 비록 죄을 많이 짓고 악한 영에 속하여 자신이 악한 종으로 쓰임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한다면, 그런 자라도 얼마든지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대해서는 만세전에 어떤 사람을 구원으로 예정해놓으시고,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거나 잘못된 길에서 회개한다면, 그도 역시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빚어져서 사용되었던 존재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거나 죄를 회개하면 그것으로 인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내가 과연 어떤 그릇으로 빚어졌거나 쓰임을 받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이 아니라 복을 받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선하고 복된 그릇으로 지음을 받았음에도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함으로 멸망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미래는 순종과 회개를 통해 자신의 구원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은사’와 ‘달란트’의 분량이 다릅니다. ‘사명’의 분량도 다릅니다. 하지만 회개함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면, 우리가 누구든지 작은 자라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쓰임에 있어서, 우리는 기왕이면 선한 도구로 쓰임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기를 바랍니다.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나. 결단의 축복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토기장이의 비유가 어떤 비유인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토기장이의 비유는 사람이나 민족이 어떤 용도로 쓰임받는 것인가에 관한 비유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람은 선한 용도나 악한 용도로 쓰임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아무리 선한 용도로 쓰임받도록 처음부터 예정되었다고 할지도 본인이 스스로 하나님을 버린 채 죄를 짓게 되면 그에게 약속된 복이 철회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이 세상에서 악한 용도로 쓰임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주님을 믿고 따른다면 그에게 내리기로 되어진 재앙 역시 철회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동안 토기장이의 비유를 구원에 관한 절대주권 교리로 오해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주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님께서 우주와 인류에 관하여 절대주권을 갖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주여, 이제는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어떤 용도로 쓰실 것인지에 관하여 절대주권을 갖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주여, 이제는 아무리 잘못 했어도 회개하면 주님께서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이제는 비록 나 자신이 선한 도구로 선택받았다고 할지라도 죄를 계속 지으면 예비된 복이라도 상실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믿게 하여 나태한 신앙생활을 하게 만든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과도하게 해석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고 믿게 만든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믿고 순종하며, 회개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교리를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구나.
2.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는 많이 왜곡된 교리였구나.
3. 토기장이의 비유는 인간의 창조로부터 그리고 선택과 쓰임에 관하여 하나님께 절대주권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구나.
4. 토기장이의 비유는 만세전에 한 인간과 민족의 구원과 멸망을 미리 다 정해 놓으셨다는 비유는 아니었구나.
5. 선한 용도로 지음 받았더라도 주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화를 면키 어려운 것이로구나.
6. 악한 용도로 쓰임받았어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가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