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영생을 얻는 길(요6:32~40) [일시] 2015년 10월 18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30장 전능하고 놀라우신, 390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찬 536장 죄짐에 눌린 사람은 PW: 믿음, MIW: 나아오는 T.S: 믿음이란 생명의 떡을 먹으러 계속 나아오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지난 몇 주에 걸쳐 구원을 위한 아주 중요한 신앙고백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기 위한 기본적인 신앙고백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당신은 그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 우리는 거기에다가 한 가지 더 신앙고백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 가운데 죽지 않고,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속지 않으려면 예수님을 구약성경에 나오는 에흐예 즉 하나님으로 믿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한 번의 신앙고백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이러한 한 번의 신앙고백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그냥 어쩌다가 믿게 된 것이 아니라 만세전에 성부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얻도록 예정해놓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만세전에 하나님의 예정하셨기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기에 그 어느 누구도 스스로 구원을 받기 위해 나아올 수 없다고 여깁니다. 과연 이 주장이 맞는 것일까요? 여기서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부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자만 예수님 앞으로 보내서 구원받게 하시고, 멸망으로 예정된 자는 절대 예수님 앞으로 보내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그들 중에 누가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어버리면 하나님의 작정이 깨지기 때문이랍니다. 과연 이러한 주장이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신 우리 하나님의 계획일까요?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이미 하나님의 예정이 성취된 것이므로 그는 어떤 죄를 짓더라도 상관없이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오늘은 칼빈주의자들이 대표적으로 주장하는 한 번 구원은 예정에 따른 것이어서 절대 무효화될 수 없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구원얻기 위해 예수님 앞으로 굳이 나아갈 필요가 없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에게 나아갈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생명의 떡으로 먹고 마실 때에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의문점 제시
칼빈주의자들에 의하면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대로 때가 되면 하나님께 구원받을 자를 불러낼 것이고 그로 하여금 믿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혹시 그가 예수님을 믿고도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치 않은 죄를 지었다면 한나님께서 그를 회개시켜 마침내는 꼭 그가 구원받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갈 필요도 없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할 필요도 없으며, 회개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일부러 믿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굳이 그렇게 하는 것은 다 행위로 구원받으려 하는 것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이런 것들을 행하면 행위로 구원얻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진짜로 자신이 한 번 신앙고백한 것 때문에 그 구원은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 것일까요? 지금 내가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이는 이미 만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결과일까요? 그래서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구원받게 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에게만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실까요? 정말 인간이 영생을 얻기 위해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을까요? 죄를 짓고 있어도 그분이 회개시키기 전까지는 회개할 필요도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의 열매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데도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요?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스스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비록 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어찌되었든지 그분이 지금 베푸시고 있는 구원의 자리로 나아가려 합니다. 들어보니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에 기록된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늘에서 내린 생명의 양식을 믿고 믿음으로 그분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러자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구원얻기 위해 나아오는 자들을 기꺼이 받아주시며, 그런 자들은 한 사람도 내쫓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마지막 날이 되면 그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다 다시 살려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 영생을 얻는 것은 만세전의 예정대로 되어지는가?
칼빈주의자들은 구원받기 위해서 인간이 노력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작정된 대로 되는 것이지 인간이 구원받겠다고 주님 앞으로 나아간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없다면서, 최소한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해 주실 것만을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잘못하면 행위구원이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도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믿어주시는 것일까요? 회개도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회개해 주시는 것일까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하나님께서 등을 떠밀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칼빈주의자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봤자 소용없을 것이며, 아무리 회개하려고 시도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처우만 바라고 있으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이런 주장이 맞는 것일까요? 정말 영생을 얻을 자는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사람들이 예정하신 때에 구원받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렇게 예정된 사람은 가만히 있다고 해도 저절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그렇게 한 번 예수님을 믿고 신앙고백하면 그 사람의 구원은 변개됨이 없어 지속됨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결국 천국에 들여보내실까요?
그런데 칼빈주의자들은 그렇다고 답합니다. 그러면서 칼빈주의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몇 개의 성경구절을 대는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6:39의 말씀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자, 그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요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이 구절만을 딱 떼어놓고 보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던 아버지께서 이미 예수님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을 하나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릅니다. 우선 2가지 측면에 있어서 다릅니다. 우선, 원문이 왜곡되어 번역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6:39 [직역] 이것은 (과거에) 나를 보내셨던 분의 뜻이다. 그분이 내게 이미 주셨던 모든 자들을 내가 (미래에)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일으키도록 하기 위해.
이 말씀을 기존의 개역성경만으로 보면,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은 예수께서 현재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신다고 말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그 사람들을 미래에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의지, 의도)이라는 것을 표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글개역성경은 지금 당장 그들을 잃어버리지 않되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강조하여 잘못 번역했습니다. 또한 원문에는 ‘하나도’라는 말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는 당시에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나아오는 자들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에게 보내어진 사람이라도 미래에 잃게 되는 것을 아버지께서 바라지 않는다는 소원을 말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활시킬 때의 미래에 구원받을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지 지금 구원받은 자를 그때에 잃지 않고 구원하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이미 보낸 자들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대상을 39절만 딱 떼어서 말씀하다보면 만세전에 구원받을 사람을 하나님이 정해놓고 그 사람들만 불러다가 예수믿어 구원받게 하실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주시는 자가 누군지 그 구절에서는 알 수 없지만, 그 앞뒤 구절을 살펴보면, 그들은 자신이 스스로 구원받기 위해 예수님에게 나아오는 자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이 본문 바로 앞의 구절을 보겠습니다.
요6:37 아버지께서 (현재도 계속해서) 내게 (보내)주시는(주시고 있는) 자는 다 내게로(나를 향하여) (미래에) (나아)올 것이요 (그리고) (스스로) 내게 (계속해서)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밖으로) 내쫓지(내던지지) 아니하리라
자,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그때도 계속해서 예수님에게 보내주시고 있는 자는 스스로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찾아오는 자인 것을 그대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바로 35절의 말씀은 더욱 더 확실하게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주는 자’가 누군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요6:3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나를 향하여) (스스로) (계속해서) (나아)오는 자는 (미래에) 결코 (굶)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계속해서) 믿는 자는 영원히(아무 때든지) 결코 (미래에)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아버지께서 영생을 얻도록 예수님에게 보내주시는 자는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에게 스스로 계속해서 나아오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요한복음 5장에도 그대로 나옵니다.
요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지금도 계속해서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만세전에 어떤 개인 누구누구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시거나 작정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다만, 어떤 한 무리의 사람들을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는데, 그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스스로 구원을 얻기 위해 구원을 주실 수 있는 그리스도에게로 계속해서 나아오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 사람이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사람이 누군가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다. 가만히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첫째, 주님을 향해 계속해서 나와야 합니다(35절).
요6:3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나를 향하여) (스스로) (계속해서) (나아)오는 자는 (미래에) 결코 (굶)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계속해서) 믿는 자는 영원히(아무때든지) 결코 (미래에)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구원을 얻기 위해 열망을 가지고 계속해서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결코 밖으로 즉 지옥으로 (미래에) 내쫓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칼빈주의자들은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시도조차 t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그것이 행위구원이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행위구원이 무엇인지나 알고 그런 이야기를 합니까? 행위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음의 2가지 경우를 가리킵니다. 하나는 예수님 없이도 말씀을 지켜 구원을 얻으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으려고 시도하는 당시 유대인들 같은 경우입니다. 또 하나는 내적인 변화없이 외적인 행위만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천주교와 같은 경우입니다. 천주교에는 구원을 교회를 통하여 받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세례를 통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례를 받고 물질적으로 기부하고, 선행을 하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내적인 변화는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잘 모른다 해도 신부에게 세례라는 외적인 수단을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이 없이도 어떤 행위를 통해 구원받으려는 시도, 내적인 변화없이 외적인 행위만으로 구원받으려는 시도, 이런 것들을 일컬어 ‘행위구원’이라고 하는 것이지,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행위구원이라고 말하면 아니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구원을 얻으려면 스스로 결단하여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주님 앞으로 나올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구원얻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우리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구원을 얻기 위해 그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계속해서 주시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구원을 주실 수 있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인간의 책임을 없애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적정하신대로 해 주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만이 있으면 어련이 알아서 하나님께서 구원받게금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넋놓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스스로 구원받기 위해 주님 앞으로 나오지 않으면 그 사람은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님의 택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을 구원하시겠다고 예정하셨다는 성경구절은 없습니다. 다만 구원받을 자들을 공동체적으로 예정해놓으셨을 뿐입니다. 그러니 구원 안으로 누가 들어갈 것인지는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한 모든 준비를 다 마쳐놓은 다음에 모든 사람을 초청하시는데, 그 초청을 기쁘게 받아들여 천국잔치 앞으로 나아가는 자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어서는 아니 됩니다. 혹시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미운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 앞으로 나오는 것을 포기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래서 찬송가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의 찬송을 하십니까? 거기에서도 이러한 가사가 있습니다. “구하고 찾는 자에게 기쁨이 되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인생이 좀 힘들다고 해서, 중간에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을 포기해서는 절대 아니 됩니다. 삶이 어렵다고 주님 앞으로 나오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택함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아들이신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식별하여 보고 그분을 믿기는 믿되, 믿음을 끝까지 포기해서는 아니 됩니다(40절).
요6:40 (왜냐하면)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식별하여)보고 (그분을) (계속해서)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이기 때문이다).(그리고)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그를) 다시 살리리라(일으킬 것이다) 하시니라
우리는 함부로 믿어서는 아니 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먼저는 이분이 정말 메시야인지 아닌지를 식별하여 보라(헬, 테오레오)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라’는 단어(헬, 테오레오)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식별하여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말 예수님이 구약성경에 300가지 이상 약속된 메시야이신가를 식별해보라는 것입니다. 아무나 믿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니 이만희나 안상홍이가 “내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재림예수요 보혜사 성령이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를 믿어서는 아니 됩니다. 먼저 그를 식별하여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대충 알고 믿다가 어려움이 찾아오면 언제 내가 예수님을 믿었지 하면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어버린다면 이 사람의 구원은 취소될 것입니다.
또한 식별한 다음, “아, 이분이 성경에 기록된 바로 그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했다면, 그때부터 그분을 믿어야 하는데, 한 번만 믿고 마음 저 쪽 한 켠에 처박아 놓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믿기로 결정했으면 내 목숨이 끝나는 그날까지 그분을 계속해서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에 대해 신의를 지키는 마음으로 그분을 계속해서 나의 구주이자 나의 하나님으로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한 번 그분을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에게 구원을 보장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믿다가도 그분에 대한 신앙고백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영생을 취소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자 나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야 죽은 다음에 그에게 영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구원을 받고 영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칼빈을 신봉하는 자는 “나는 구원받기로 작정되었으니 믿다가 혹시 어려움이 닥쳐온다면 잠깐 믿음을 중단한다 할지라도 어차피 나는 구원받기로 예정되었으니 반드시 구원받을거야”하고 믿음생활을 잠시 중단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만약 그런 자가 교통사고라도 나서그 순간 머리가 깨진다면 그는 곧바로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 순간만큼은 주님을 믿고 있지 않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구원을 받기 위해 주님 앞으로 나올 수는 있지만 끝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믿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좁은 길이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구원받을 수 있는 대상은 누구든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믿을 수는 있지만 끝까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변개치 아니하고 믿음의 지조를 지키느냐 하는 것이 곧 구원의 관건이 되는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요3:16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그가)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계속해서 끝까지) 믿는 자마다(자들은 누구든지) (미래에) (스스로) 멸망하지 않고(않을 것이고) (다만) 영생을 얻게(가지도록) 하려 하심이라
오늘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다가도 믿지 않는 자가 많습니까?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하나님으로 믿는 것은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믿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이 말씀에도 하나님이 만세전에 예정해놓은 사람만 믿는다고 되어 있습니까? 아닙니다. 누구든지입니다. 누구든지 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을 끝까지 소유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가지고 있도록 하나님이 대신 그 믿어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 믿음은 그 사람이 붙들어야 합니다.
셋째,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되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어렵도 힘든 일이 생긴다고 해서 주님을 버려버리면 아니 됩니다.
사실 오늘 본문 말씀의 앞 뒤에는 심오한 말씀들이 놓여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주신 말씀들인데, 당시 군중들은 떡을 먹고 배부르게 되자,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배고프지는 않겠구나”하고서 그분을 따라가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자기는 군중들의 세속적인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기에 그들을 피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배에 태워 가버나움으로 보내버렸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이 예수님을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가버나움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주님,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그러자 예수께서는 군중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인 것을 말씀하시고, 이제부터는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머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주시려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십시오.” 그러자 그것은 당신자신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영적인 만나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여호와께서 모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생명이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생명을 얻게 됨을 알게 하기 위한 표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이게 도무지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하면서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인생의 먹는 양식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주어 영생얻게 하시려 오신 분이라고 말했지만 군중들이 잘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중에서도 많은 수가 주님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12제자를 따로 불러놓고 다시 질문하셨습니다.
요6:67-68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떠나가기를 원하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당신은 영원한 생명들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생 얻기 위해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식별한 다음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뒤따라가야 합니다. 내 육체의 소원을 이루지 않는다고 주님을 내평개쳐 버릴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을 공급해주시는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뒤 따라가다가도 어려움이 생기면 주님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영생을 얻습니까? 주님을 계속해서 따라가는 자입니다. 요한복음의 10장의 목자의 비유에서도 똑같이 나옵니다.
요10:27-28 내 양은 내 음성을 (계속해서) 들으며(듣고 있고)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계속해서)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영생을 가지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분이 가는 곳이라면 나도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가라고 하는 곳에 나도 가는 것입니다.
4. 영적 법칙
영생을 얻는 데에도 이처럼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준비해놓은 만큼, 우리 인간이 최소한 해야 할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식별해보고는 그분을 믿되 그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그분을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님을 향하여 나오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한 번 가진 믿음을 저버리 않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주님을 계속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결국 끝까지 주님에게 나아오고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라갔던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첫째, 예수님으로부터 쫓겨나지 않았습니다. 둘째, 영생을 얻었습니다. 할렐루야!
나. 청중의 더 큰 복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육적인 필요를 채워주지 않는다고 팽하고 돌아가버리는 자는 결코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때로는 일시적으로 우리의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실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그때 사람들을 먹이신 것은 예수님 자신을 생명의 양식으로 취해야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2)결단
이제는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러 올 때에 세속적인 필요가 아니라 영적인 생명을 채워주시는 주님 앞에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누군지를 분명하게 식별해보았으면 그분에 대한 믿음에 신의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칼빈주의자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 도리마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잘못 되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대신 피흘려 죽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나의 구주요 나의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음성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죽는 날 영생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나. 결단의 축복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구원에 관한 인간의 책임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다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만 있고 인간의 책임이 빠져버렸습니다. 그들은 주님 앞으로 나가는 것까지 하나님이 대신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회개도 대신 해 달라고 합니다. 나중에는 믿은 것까지 대신 해 달라고 떼를 씁니다. 아닙니다. 구원을 위한 모든 준비는 다 하나님이 해놓으셨니 우리는 그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생에 관심을 가지고 나아오는 자를 결코 내쫓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에 골인할 때까지 무조건 견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잘못된 칼빈주의적 성경해석으로 인하여 스스로 사망으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결국, 어떤 자가 영생을 얻습니까? “주님께 스스로 나아오는 자”입니다. “주님을 믿되 끝까지 믿는 자”입니다.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끝까지 주님만 따라가는 자”입니다. 당신도 그럴 수 있습니까? 건투를 빕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어떤 자가 영생을 얻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영생을 얻으려면 주님에게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영생을 얻으려면 주님을 식별하여 보고 그분을 믿되 끝까지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영생을 얻으려면 육체의 필요보다는 영적인 생명을 공급하시는 주님을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이랬다 저랬다 했던 것을 용서해주소서.
주여, 구원을 위한 인간의 최소한의 책임마저 내팽개쳐 버리려 했음을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영생을 위한 우리의 책임을 감당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주님께 나아가기를 힘쓰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주님을 믿되 어떤 순간에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육적인 필요가 채워지지 않는다 해도 주님따르는 것을 포기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끝까지 구원을 주시는 주님만 따라가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행위구원이라 하여 주님께 나아가는 것조차 가로막았던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가 이제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잘못된 교리로 구원을 흔들려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끝까지 주님만 붙들지어다. 주님만 따라갈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영생을 얻으려면 인간의 책임도 수반되어야 하는구나.
2. 영생을 얻으려면 영생을 주시는 주님 앞으로 나가야 하는구나.
3. 영생을 얻으려면 주님이 누군지를 식별하고 보고, 그분을 믿되 언제든지 그분을 부인하지 말아야 하는구나.
4. 영생을 얻으려면 육체적인 필요만을 중요하게 여긴 채 주님을 따르는 것을 포기해서는 아니 되는구나.
5. 주님 앞으로 나가며 주님을 따르는 것은 행위구원이 아니었구나.
6. 주님없이 어떤 선행을 행함으로 구원받으려 하고, 내면의 변화없이 외적인 변화로 구원얻으려 하는 것이 행위구원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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