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바울의 부르심이 여느 부르심과 다른 이유는(9:10~20)

[일시] 20230716(주일) 오전9, 11

[찬송] 25장 면류관 벗어서, 242장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508장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서

PW: 믿음, MIW: 부르심과 사명

T.S: 믿음이란 자신을 향한 하늘의 각기 다른 부르심을 알고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예수님께서 첫 제자 4명을 부르시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자마자 제자들을 뽑으셨는데, 그렇게 하신 데에는 일종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3:13-15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원하고 있어왔던)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보내사(파송하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권세)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뽑으신 원칙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것은 첫째,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자들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자기가 제자가 되고 싶으면 가서 자시를 받아달라고 부탁하여 제자가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하늘에서 어떻게 쓰실 것인지를 결정해놓은 상태에서 천국에 있는 영혼을 이 땅에 보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사람들을 찾아서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갈릴리 바닷가를 중심으로 이미 7명이 거기에 모여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부르신 것입니다.

둘째, 부르신 목적은 3가지였다는 것입니다. 첫째, 자기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3년이 뒤에 예수께서는 떠나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행하시는 것을 그대로 보고 제자들이 앞으로 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세상으로 파송하여 천국복음을 전파하게 하기 위해서 불렀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이를 위하여 오셨습니다. 셋째,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다 마귀에게 눌려있고 속해 있기 때문에 재자들은 반드시 귀신들을 쫓는 권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권세를 제자들에게 주시기 위해 제자들을 뽑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쫓는 권세가 없거나, 귀신쫓는 것을 등한히 여기는 사람은 사역자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르신 모든 부르심에는 다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르심에는 각기 다른 종류의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위하여, 시대마다 구별하여 선택한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불러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구약시대도 마찬가지고 신약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구약시대에 노아모세 그랬고, 예레미야이사야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부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이어 하나님께서 지구에 홍수를 내려 숨쉬는 모든 생명체를 다 죽일 것인데, 어서 방주를 지어 숨쉬는 동물들으 일부를 보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를 부르셨습니까?

3:9~10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이르렀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목적은 압제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난주에 살펴보았듯이 주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하여 이 세상이라는 바다에 살고 있지만 그들이 곧 죽기 때문에 그들이 죽기 전에 그들을 영혼을 낚아서 천국 창고로 들여보내라고 불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면 베드로와 베드로의 집은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베드로의 집은 황금그물을 걸어놓았으며, 베드로가 나타날 때에는 황금그물을 어깨에 들쳐매고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르심 가운데, 성경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중 맨 마지막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는 누구입니까? 그 사람은 바라 사도 바울입니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그 장면이 바로 사도행전 9장에 나옵니다. 그런데 그의 부르심에는 다른 여느 사람의 부르심과 똑같은 것일까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비근한 예로 베드로의 부르심과 바울의 부르심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베드로와 바울은 나이가 거의 비슷한 사람인데, 왜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말고 또한 바울을 불러서 자신의 사도로 삼으신 것일까요? 그리고 그의 부르심과 관련하여,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그리고 우리가 속한 교회 공동체의 부르심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을 잘 듣는 자는 어마어마한 보석을 캐내어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누릴 영광이 더욱 더 풍성해질 것입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사울 곧 바울이 다메섹의 형제인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을 때에 자신에 대한 부르심을 깨닫고 자신을 향한 복음전파 사역을 시작했다는 말씀입니다.

왜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직접 그에게 사명을 주시지 않고, 굳이 아나니아를 통하여 사명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바울의 부르심이 다른 여타의 다른 사명자의 부르심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요?

그리고 그의 부르심이 들려주는 놀라운 영적인 비밀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리고 오늘 평신도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어떤 유익이 있는 것일까요?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34년경 그러니까 예수께서 돌아가신지 약 4년이 지난 어느날, 다메섹도상에서 일어난 신비스러운 한 사건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이때 사울이라는 바리새파 청년인 사울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다메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메섹에서 주님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 자들을 잡아다가 예루살렘에 넘기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오 대낮인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강한 빛이 둘러비쳤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 엎어졌습니다. 그때 하늘로부터 어떤 음성이 들렸습니다. 일행들도 무슨 소리를 들었지만 그 음성이 어떤 내용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사울이라는 총각에게는 그것이 분명하게 들렸습니다. 그것도 히브리말로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9:4)”.

구약시대이든 신약시대이든 하나님께서 당신이 보낸 사람을 직접적으로 부르실 때에는 보통 그의 이름을 부릅니다. 모세야, 모세야”,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말이죠. 그런데 오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가 가신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사울을 부르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그러자 사울은 즉시 그렇게 하늘에서 들려오신 목소리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러므로 즉시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주여,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그러자 빛 가운데서 나타나신 그분이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니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그런데 너무나 강력한 빛을 보아서 그랬는지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끌려 다메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다메섹에 이름으로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었는데,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즉시 그가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나니아야!” 그러자 아나니아가 대답합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서 직가라고 하는 거리로 가라. 거기서 유다의 집에 머무르고 있는 다소 사람 사울을 찾으라. 왜냐하면 그가 지금 기도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도중에 그가 환상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하는 환상이니라. 어서 가서 그에게 안수하라.” 그러자 아나니아에 말합니다. 주님, 제가 그 사람에 대해 여러 사람에게 들어보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습니다. 여기에서도 주의 이름으로 부르는 모든 자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려고 온 것입니다.”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9:15-16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들 앞에]과 임금들[에게]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앞에] 전하기(운반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으로 있는 이]이라 16 [왜냐하면]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시니

그러자 아나니아는 채비를 하여 그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를 찾아서 그에게 안수합니다.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게 오는 길에서 너에게 나타나셨던 예수게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그러자 그의 눈에서 비늘들이 떨어지는 것처럼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보게되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일어나서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강해졌습니다. 그러자 즉시 회당에 가서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직접 나타나셨는지를 잘 모릅니다.

믿음이 없으면, 왜 예수께서 그에게 나타난 목적을 직접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메섹의 제자 아나니아를 통해서 말씀하려고 하셨는지를 잘 모릅니다.

믿음이 없으면, 왜 하나님의 사역자 사울에게 무명의 제자 아나니아가 가서 안수하라고 하셨는지를 잘 모릅니다.

믿음이 없으면, 왜 하나님께서 무명의 사람 아나니아로부터 안수를 받아 사울의 눈을 고침받도록 하셨는지를 잘 모릅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렇게 위대한 사도로 쓰임받을 사울의 사명을 무명의 제자를 통해서 들으라고 하셨는지를 잘 모릅니다.

믿음이 없으면, 왜 사울의 소명에 아나니아가 굳이 들어가서 활동을 하게 하셨는지를 잘 모릅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사울에 나타나신 이유그의 눈을 무명의 사람 아나니아로부터 안수받아 고침받을 받으며, 그의 사명을 굳이 무명의 사람 아나니아로부터 받으라고 하셨는지를 깨달아, 오늘도 복음전파자로서 우리를 부르시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게 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바울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오늘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울이라는 청년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는 사울이라는 총각의 등장을 사도행전 8에서 봅니다. 그는 혈기가 등등하여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일 때에 가편투표를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드디어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기록된 것이 바로 사도행전 9장입니다. 고로 사도행전 9장은 바울의 부르심을 기록하고 있는 장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부르심은 기독교의 역사 뿐만 아니라 세계역사 가운데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하여 복음이 갈릴리와 예루살렘 지역을 떠난 이방지역에까지 전파되었고, 로마를 떠나 전 세계로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로마의 속주였던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A.D.5년경 출생했을 것으로 추측이 되며, 어릴 때에 예루살렘으로 유학와서 가말리엘 문하에서 바리새파 교육을 엄하게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율법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따르는 무리들이 신성모독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도를 따르는 자들을 잡아들여 감옥에 쳐 넣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을 증거하는 스데반죽이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핍박을 피해 다메섹으로 도망친 형제들까지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넘이고자, 다메섹으로 향하던 길에서 갑자기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 바울의 부르심은 어떠했는가?

오늘 본문말씀을 보니, 다른 시대적인 사명자의 부르심처럼 사도 바울도 개인적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여러 성경의 인물들 중에 바울은 모세와 더불어 아주 극적인 체험을 한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부르심 받을 당시에 사울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주 하나님이자 전능자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그런데 그때 예수께서 사울을 찾아오신 이유를 말씀해주셨는데, 그 이유를 사울에게 직접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성 안으로 들어가면 그가 해야 할 일 곧 그의 사명을 들려줄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 안에 들어가서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환상이 보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들어오더니 자기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들어왔고 자신에게 안수하여 눈에서 비늘들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 바울의 부르심이 다른 사명자의 부르심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바울의 부르심이 다른 사명자의 부르심과 다른 것주님께서 직접 찾아오시기는 했지만 그의 사명을 직접 말씀해주지 아니하시고 아나니아라고 하는 먼저 믿은 형제를 통해 전달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사실 시대적인 사명자들구약시대에는 여호와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았으며, 신약시대에는 베드로와 바울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직접 방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명을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하신 경우는 성경에 사례가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도 거의 무명에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안수를 받고 병을 고침을 받았으며, 또한 사명을 받은 것일까요?

그 이유는 첫째, 그의 부르심이 너무나도 큰 부르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지만 바울처럼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을 수 있는 부르심을 받은 경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천국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사람은 사도 바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구약시대에 모세엘리야보다 더 영광스러우며, ‘베드로요한보다도 더 영광스러운 지위와 신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직접 그에게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직접 사명을 주어버린다면, 그가 자신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교만해질까봐 무명의 한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안수도 받고 사명도 받게 하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가 스스로를 높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서 자신의 해야 할 사명을 간접적으로 전달받은 사람은 오직 바울 뿐입니다.

둘째, 그가 감당해야 할 사명은 혼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 아니라 다른 지체들과 함께 감당해야 할 큰 사명 곧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함께 감당해야 할 큰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들 앞에]과 임금들[에게]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앞에] 전하기(운반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으로 있는 이]이라

그를 통하여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뿐만 아니라 온 세상으로 전파되어야 할 사명이 그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명을 자기 혼자만 담당하므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을 감당하는 데에는 대부분 자기 혼자 내지는 가족들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바울에게 부여된 사명사울의 가족들이 함께 감당할 수 있는 그러한 분량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왕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해주어 전 세계 사람들이 복음을 접할 수 있도록 그 기틀을 마련하기 위하여 부름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일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개인이 나가서 전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처음에는 사도 요한과 다녔지만 예루살렘에 핍박이 일어나자 베드로는 혼자서 유대 각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 이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교회의 파송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파송을 받아 공동체가 함께 나가서 전도한 사례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처음 1차전도여행 때에는 바나바와 그리고 마가요한과 함께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서 전도를 나갔습니다. 그리고 2차 전도여행 때에는 실라와 함께 전도여행을 떠났으며, 중간쯤에 디모데누가동역자로 두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건강을 돌보아야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역의 계승자로서 디모데를 훈련시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3차전도여행 때에 에베소에서는 3년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머물며, 소아시아 전역에서 모여온 사람들을 훈련시켜 각 교회로 파송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선교자금이 매우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2차전도여행 중 고린도에 갔을 때에는 선교자금이 떨어져 직접 텐트 만드는 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서 그에게 도움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단순히 몇몇 개인을 만나 전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거기에 지도자들을 세우는 일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일을 하는 데에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지원과 더불어, 동역자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의 동역자로서 직접 바울 곁에서 보조하는 자들로서 디모데누가가 있었으며, 물질적으로 보조하는 자들로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너는 다른 사람들의 동역으로 인하여 너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는 것을 평생토록 간직하고 있어라는 의미로, 그에게 무명의 아나니아라고 하는 형제를 붙여준 것입니다. 너의 사명을 완수하기까지는 다른 동역자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그에게 아나니아를 붙여준 것입니다. 고로 바울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자로 쓰임받을 수 있도록 아나니아를 돕는 자로서 붙여준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의 초기에는 아나니아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눈에 달아붙어 있었던 큰 뱀을 떼어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당시에는 자신 스스로의 영성으로는 절대 스스로 알아낼 수 없는 자신의 사명을 성령충만하여 예언이 가능한 아나니아로부터 들을 수 있엇던 것입니다.

사실 자신이 받은 사명을 완성하려고 할 때에, 믿는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 함께 자신의 사역을 감당했던 이는 바울 뿐입니다.

셋째,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자로서 바울만 제한하지 아니하시고, 그와 함께 복음을 전파하는 모든 자에게도 많은 상을 안겨주시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만 상을 얻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일에 충성하여 상을 받기를 바라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도사역에 바울을 도와서 일해줄 사람이 붙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렇게 해서 바울사역을 도와 바울이 전도사역의 상을 함께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자신을 향한 하늘의 각기 다른 부르심을 알고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그렇다면, 바울과 함께 복음전파 사역에 동참했던 사람들은 대체 어떤 복을 받았을까요?

첫째,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쓰여지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4:2~3).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들의] 이름들이 생명책[] 있느니라

둘째, 죽은 다음에는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딤후4:18).

딤후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끝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맡아 그 길을 걸어간 사람에게는 바울처럼 하늘에서 받을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딤후4:8).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그래서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가 지금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님 오실 날이 너무나 가까이 있기에 주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것도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사람을 만들도록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를 설립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회개와천국복음 연구소를 위해서는 첫째, 인력이 필요합니다. 의사 누가와 같은 전문가, 청년 디모데와 같은 젊은 인력이 필요합니다. 각 방면의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책을 출판해야 하고, 인터넷과 방송을 해야 하고, 세미나를 통해 사역자를 길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물질이 필요합니다. 새 예배처소를 매입할 수 있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새 예배처소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와서 기숙하면서 훈련받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 영권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지금 잘 준비되고 있습니다.

. 결단의 축복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향하여 오늘도 나의 삶을 주님께 드립시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1. 주여, 바울의 부르심이 다른 여느 부르심과는 조금 다른 측면의 부르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주여, 다른 부르심들은 각기 개인적으로 주어진 사명을 완성하는 부르심이었지만, 바울의 부르심은 동역자들과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부르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3. 주여, 바울의 부르심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여러 왕들과 특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아주 거대한 사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4. 주여, 바울의 건강과 선교자금을 바울 스스로에게 맡기지 아니하신 것은 함께 연합하게 하려 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5. 주여, 다른 사람들이 바울과 동역하게 된 데에는 다른 사람들도 주의 일에 같이 참여하여, 함께 상받고 함께 면류관 얻는 성도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6. 주여, 이 마지막 시대의 부르심은 바울과 같은 부르심이었는데도, 미처 그것을 깨닫지 못했나이다. 용서해 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1. 주여, 이제는 다른 지체들과 함께 동역하겠습니다.

2. 주여, 이제는 각기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3. 주여, 이제는 주님의 부르심에 나도 협력하겠습니다.

4. 주여, 이제는 내가 바울을 돕는 아나니아가 되겠습니다.

5. 주여, 이제는 나도 함께 면류관 쓰는 성도가 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1.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이 시대에 주어진 사명에 눈을 뜨지 못하게 막고 있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2.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동역과 협력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게 막고 있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3.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4. 여러 지체들과 협력하여 시대적인 사명에 충성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똑같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부르심이었지만 사도 베드로의 부르심과 사도 바울의 부르심은 서로 다른 측면이 있구나.

2. 시대적으로 쓰시는 사명자는 항상 개인적으로 부르시되,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독특한 부르심으로 부르시는구나.

3. 바울의 부르심은 너무나도 크나큰 부르심이었기에, 그가 교만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여러 지체들의 도움을 받게 하셨구나.

4. 바울이 감당해야 할 사명은 다른 지체들과 공동체와 함께 감당해야 할 아주 독특한 부르심이로구나.

5. 이 시대의 부르심은 개인의 부르심이 아니라 동역자와 협력하여 함께 완성해야 할 부르심이로구나.

6. 사명자라도 다른 동역자와 함께 일하게 하심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로구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1 A.D.30년 오순절날 왜 성령께서 오셨을까?(요14:16~19)_2023-05-28(주일) 갈렙 2023.05.28 142
80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자가 받게 될 축복(마6:31~33)_2023-06-049주일) 갈렙 2023.06.04 158
79 우리의 주 예수께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인 증거는 무엇인가?(계3:12)_2023-06-11(주일) 갈렙 2023.06.11 130
78 원하는 자는 지금 어떻게 하늘의 생명수를 마실 수 있는가?(계22:17)_2023-06-18(주일) 갈렙 2023.06.18 137
77 엘리야와 엘리사의 놀라운 만남의 축복(왕하19:19~21)_2023-06-25(주일) 갈렙 2023.06.25 144
76 한 해의 절반을 마감하며 우리가 주께 드려야 할 감사는?(시편136:1~26)_2023-07-02(주일) 갈렙 2023.07.02 137
75 주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마4:18~22)_2023-07-09(주일) 갈렙 2023.07.09 140
» 바울의 부르심이 여느 부르심과 다른 이유는(행9:10~20)_2023-07-16(주일) 갈렙 2023.07.16 193
73 지금 우리는 종말의 어느 시점에 와 있는 것일까?(계7:1~4)_2023-07-309주일) 갈렙 2023.07.30 149
72 꿈과 환상과 예언이라도 귀신이 주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고린도후서 11:14~15)_2023-08-06(주일) 갈렙 2023.08.06 137
71 나의 사명을 알게 해 주는 놀라운 비밀 열쇠,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딤후1:6)_2023-08-13(주일) 갈렙 2023.08.13 150
70 은사로 사명을 감당할 때 정말 놓쳐버리기 쉬운 것은 무엇인가?(고전12:31~13:3)_2023-08-20(주일) 갈렙 2023.08.20 125
69 성령의 불세례는 성령세례와 어떻게 다르며 어떤 놀라운 능력이 있는가?(마3:11)_2023-08-27(주일) file 갈렙 2023.08.27 253
68 바울, 그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아는 자였다(고전15:9~10)_2023-09-03(주일) 갈렙 2023.09.03 129
67 우리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 영의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롬10:11~13)_2023-09-10(주일) 갈렙 2023.09.10 139
66 롯의 처를 기억하라는 말씀의 2가지 의미는 무엇인가?(눅17:26~35)_2023-09-17(주일) 갈렙 2023.09.17 167
65 왜 치유축사할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것일까?(행3:6, 16:18)_2023-09-24(주일) 갈렙 2023.09.24 184
64 그리스도인으로서 추석날 드리는 감사예배, 과연 괜찮은가?(신16:13~15)_2023-10-01(주일) 갈렙 2023.10.01 127
63 귀신을 내쫓는 축사 속에 담긴 말과 사람의 비밀(행19:10~20)_2023-10-08(주일) 갈렙 2023.10.08 125
62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미칠 영향은?(계9:13~21)_2023-10-15(주일) 갈렙 2023.10.15 227
Board Pagination Prev 1 ...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Next
/ 27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