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롯의 처를 기억하라는 말씀의 2가지 의미는 무엇인가?(눅17:26~35) [일시] 2023년 09월 17일(주일) 오전9시, 11시 [찬송] 찬 23장 만 입이 네게 있으면, 찬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찬 176장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른지 PW: 믿음, MIW: 종말의 때 T.S: 믿음이란 종말의 때는 가족도 구원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지금 바로 가족부터 구원하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를 살고 있을까요? 과연 우리 다음의 세대가 존재할까요?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사탄마귀가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을 정확히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날이 매우 가까이 왔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경영해가시는 시간표를 우리 미숙한 인간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2가지 것들 곧 첫째, 징조를 통해서 그리고 둘째, 천국의 현재 144,000석의 상황을 통해서 그때가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 짐작할 수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인자의 날 곧 우리 주님의 재림의 날을 묻는 제자들에게 2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이것은 노아의 때와 같이 롯의 때가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결론은 바로 이것입니다.
마24:42~44 그러므로 [너희는 계속해서] 깨어 있으라 [왜냐하면] 어느 날에 너희 주가 [그분 자신을 위하여] 임할는지(오시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못한 채 있기 때문이다) 43 너희도 [저것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알아온 채 있다면), 깨어 있어(있었으며)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그 집이 뚫리도록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44 이러므로(이것 때문에) 너희도 [계속해서] 준비하고 있으라 [왜냐하면] 생각하[고 있]지 않은 때(시간)에 인자가 오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종말의 때에 있을 인자의 재림의 날은 갑자기 도둑같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는 말씀은 마태복음 24장에서도 나옵니다(마24:37~39).
그런데 주님께서는 노아이 때에 대해서는 그날이 갑자기 올 것이라는 말씀 이외에 특별한 말씀을 안 하셨습니다. 그런데 롯의 때에 대해서는 그날이 갑자기 올 것이라는 말씀 외에 다른 말씀을 하나 더 하셨습니다.
자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한 번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노아의 때에 대해 살펴봅니다.
눅17:26~27 노아의 때(날들 안)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날들)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있었고] 마시고[있었고] 장가 들고(결혼하고 있었고) 시집 가더니(가고 있었다). 홍수가 나서(왔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그럼 롯의 때는 어떠합니까? 대동소이합니다.
눅17:28~30 또 롯의 때(날들 안에서)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있었고] 마시고[있었으며] 사고[있었고] 팔고[있었으며] 심고[있었고] 집을 짓더니(건축하고 있었다) 29 [그런데]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나갔던) [바 그]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비오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30 인자가 나타나는 [바 그]날에도 이러하리라(그것들을 따라서 그것이 있을 것이다.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건축하고 있을 때에 멸망이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날에 대해 이미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경고를 받았고 롯은 천사의 경고를 받아서 알고서 그날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않았던 세상 사람들은 그날이 오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다가, 그만 당일이 돼서야 그것을 깨달을 때는 너무 늦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롯의 때에서는 이어지는 또 다른 말씀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이렇습니다.
눅17:31~32 그(저) 날[안]에, 만일 [이런] 사람이 지붕 위에 [장차] 있고(있을 것인데),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들)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뒤에 있는 것을 위하여)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2 [너희는] 롯의 처(아내)를 [계속] 기억하[고 있어]라
그것은 롯의 처를 계속해서 회상해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롯의 때에 대한 경고의 말씀 가운데, 덧붙히는 말씀인데, 이 말씀은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분명 불타는 소돔성에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결국 소금기둥이 되어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로 종말의 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역시 불타는 소돔성에서 빠져나왔지만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롯의 아내를 계속해서 회상해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마지막 때가 될수록 롯의 아내를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일까요?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인자의 재림의 때는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이 갑자기 닥쳐올 것인데, 그날에 버림당하지 않고 취함을 얻기 위해서는 롯의 처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꼭 기억해야 한다고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인자의 날은 노아의 날과 같고 롯의 날과 같다고 비유하셨는데, 왜 롯의 처를 깊이 묵상하라고 덧붙여서 말씀하신 것일까요?
‘종말의 때’와 ‘롯의 아내’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으며,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30년경 그러니까 예수께서 공생애를 3년이상 보내신 어느 시점에, 인자의 날이 언제 오는지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답변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주님은 그때에 그날은 깨어있지 않고 준비하고 있지 않은 자에게는 갑자기 들이닥칠 것임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아까 말씀드린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가 같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롯의 때에 이어서, 또 한 가지 교훈을 덧붙히셨습니다. 그것은 롯의 처를 깊이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그날에 롯의 처와 같은 사람이 분명히 나올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자신은 예수님을 믿어서 이미 지옥의 권세에서 벗어났으니 그날이 언제 올지라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그날에 가서야 자신도 롯의 처의 운명과 똑같은 처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통곡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그날에 가서 자신이 마지막에 버림받은 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통곡을 하게 될 것입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롯의 아내를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시어, 그날에 울고 통곡하는 성도가 되지 말고,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가. 지금의 시대는 어느 때인가?
우리는 대체 인류의 역사의 어느 시점에 살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우리가 살아서 주님의 재림을 눈으로 보고 공중으로 올라가 주님을 만나게 될 확률이 매우 높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재림 전의 징조들 중에서 자연에 대한 징조를 그대로 눈으로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작년 2월 24일에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벌써 570일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간에는 아프리카의 북부의 두 인접한 국가에 큰 재난이 있었습니다. 먼저 지난주 토요일(9/9)에 진도 6.8의 강진이 모로코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모로코의 주민 2,000명이 건물더미에 파묻혀 죽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주일(10일)에는 알제리를 사이에 둔 리비아에서도 갑자기 불어닥친 열대성 폭풍 때문에 폭우가 내렸는데, 동부 데르나라는 도시 위쪽에 있는 2개의 댐이 차례로 붕괴되면서, 수 천 만 톤의 물이 마을로 흘러내려왔습니다. 왜냐하면 2년치의 비가 하루 아침에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댐이 터지는 바람에, 큰 물이 주택을 덮쳤는데, 주민 2만 3천명이 물에 쓸려가서 죽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1만 명 정도는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리고 2025년이 되면 백두산이 폭발한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백두산이 물이 펄펄 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27년에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것이라는 소문 역시 자자합니다(마24:6~7). 그런데 곧이어 적그리스도인 짐승과 거짓선지자에 의한 성도들의 핍박이 찾아오면 그때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때가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재림의 때는 순교자들의 숫자가 차야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는 네 마리의 말 혹 흰 말과 붉은 말과 검은 말과 청황색 말이 달리다가, 순교자들의 호소가 있을 때에 주님이 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4마리의 말은 복음전파 내지는 적그리스도에 의한 핍박, 전쟁, 기근, 전염병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진짜 놀랄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하늘의 상황입니다. 이제는 영안이 열린 자들이 많아서 하늘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안 열린 자들의 간증에 따르면, 재림의 때는 코 앞에 다가와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의 3층천에 예배드리는 스타디움 같은 장소가 있는데, 거기에는 이미 24장로들이 채워진 지가 2천년이나 되었고, 그리고 144,000석에는 이기는 자들의 좌석이 배치되어 있으며, 그 뒤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선 채 예배드리도록 되어 있는데, 144,000석의 의자에 대부분의 성도들의 앉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천사도 매우 바삐 움직이고 있으며, 귀신도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귀신들이 훨씬 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주어진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즘에는 신내림도 청년 시절에 내리는 것이 아니라, 10살만 되면 신내림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시기는 적그리스도에 의한 핍박만을 앞둔 폭풍전야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고로 지금의 때는 주님의 때를 준비할 수 있는 마지막 절호의 시기입니다. 이 때를 넘기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재림의 때에 롯의 아내와 같은 상황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 주님은 왜 마지막 종말의 상황을 노아의 때와 롯의 때로서 비유하셨는가?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주님의 재림의 때를 노아의 때와 롯의 때로 비유하셨을까요? 그것은 3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둘 다 심판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이다. 심판은 모든 것을 끝내버리는 것인데, 노아의 홍수는 홍수로 전 인류를 끝내버리는 심판이었기 때문이며, 또 하나로서 롯의 유황불은 불과 유황으로 소돔과 고모라성을 비롯한 주변 2개 도시를 완전히 태워서 재로 없애버리는 심판이었기 때문입니다.
유1:7 소돔과 고모라와 그[것들의] 이웃(주위에 있는)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양식)으로 음란하며 다른(딴)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본보기)이 되었느니라
둘째, 둘 다 시대적 상황이 비슷해서 그때 당시의 사람들이 다 세상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질 뿐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전혀 관심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 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미완료). 이는 사람의 육체에 관한 일에만 집중할 뿐, 자신의 영혼의 미래와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육체의 만족과 쾌락을 위해 살았다는 것입니다.
셋째, 둘 다 그 때에는 영혼구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가 전혀 안 되는 시기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먼저 당시 노아가 홍수가 있기 120년전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120년 후에 없애버릴 것을 미리 경고를 받았습니다(창6:3). 그리고 어느날 오셔서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창6:13~14). 그가 그의 나이가 500세 된 이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고, 자식들이 장성하여 장가를 든 상태에서,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니(창6:18), 노아가 아무리 방주를 오랫동안 지었다고 할지라도 그 시기는 70~80년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방주를 지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왜 산에다가 방주를 짓느냐는 질문을 한 사람들에게 말을 했던 것입니다.
벧후2:5 옛[적] 세상을 용서하지(아끼지) 아니하시고 오직(오히려)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그렇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면서 방주를 보고 찾아왔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홍수심판을 경고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강포함과 육체 쾌락을 좇아가고 있음을 회개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노아는 자신의 가족들 곧 자신과 아내, 세 명의 아들들과 자부들, 그래서 여덟 식구들 외에 단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벧전3:19~20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감]옥[안]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들 안에서]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안]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구조)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들]이라
그렇다면 롯은 과연 몇 명을 구원했을까요? 안타깝게도 롯은 8명의 가족들 중에서 5명은 구원하지 못했고 오직 자신을 포함하여 두 딸만 구원할 수가 있었습니다. 창세기 기록에 의하면, 롯은 아내와 이미 결혼시킨 두 딸들과 사위들이 있었습니다(창19:14). 그리고 그에게는 아직 출가시키지 않은 장성한 두 딸도 있었습니다(창19:8).
창19: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취한)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창19:8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들]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혼한 두 딸들과 사위들을 성에 두고 나와야 했습니다. 아무리 설득을 해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천사와 와서 소식을 전해주었다고 하니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긴 것입니다. 장인의 말을 비웃었던 것입니다. 롯은 그때 간절히 말했습니다.
"아님세, 사위들. 내 말을 잘 듣게나, 이것은 사실이야. 정말 천사가 내게 찾아왔어. 하나님이 계시다니까.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가 내게 왔다니까, 제발 내 말을 듣게나. 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하루만 지나면 알 수 있을 터이니, 제발 내 말을 듣고 나를 따라 나서게. 제발."
아무리 성이 불타 없어질 것이니, 나가자고 해도 사위들은 곧이 듣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롯은 두 딸들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위들에게 시집보내서, 두 딸도 역시 불신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편의 말을 듣고 멸망하는 성에 그대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말세에는 과연 자신의 딸을 누구에게 시집보내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말세에는 '천사'가 어떻고, '귀신'이 어떻고, '조상죄'로 내려온 귀신이 어떻고 하면 전부다 농담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몰랐고 영적인 것에 문외한이었던 사위들과 딸들은 그만 소돔성에 남아서 불과 유황불에 타 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불과 유황이 타는 지옥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때 하나님께서 롯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롯의 말을 들은 두 딸과 아내를 데리고 성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이 네 사람들을 그들의 손으로 잡아서 성밖으로 끌어냈기 때문입니다(창19:15).
왜 그렇습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그때 롯에서 자비를 베푼 것입니까? 그것은 그의 삼촌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19: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기억하시어) 롯을 그 엎으시는 중(가운데)에서 내보내셨더라
그때 그나마 아직 시집가지 아니한 두 딸들과 그의 아내가 롯의 말을 들었기에, 그들은 멸망당하는 소돔성을 빠져나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그이 아내입니다. 롯의 아내가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만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때 천사는 분명히 고지했습니다. 나갈 때에 뒤를 돌아보거나 평지에 머무르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롯의 아내는 천사의 경고의 말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까닭에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불과 유황의 형벌은 면했지만 그녀의 생명을 보존하지는 못했습니다(창19:26). 그녀도 역시 불에 타서 죽지 않았을 뿐,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 채 멸망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부부라고 할지라도, 피를 나눈 자식이라고 해도 평소 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그날을 대비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그것은 2가지의 영적 비밀을 알려줍니다. 하나는 마지막 시기가 되면 전도가 정말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구원받는 일이 거의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올라와서 활동할 것이고 귀신들이 들끓기 때문에 믿음이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환난의 때에는 이미 믿음을 가진 자만 그날에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때에는 수십억의 인구 가운데 자신의 식구 8명만이 구원을 받은 것이며, 롯의 때에는 롯의 식구 3명만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롯의 처를 기억하라’는 일차적인 의미입니다.
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는 궁극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와같은 사실이 알려주는 궁극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롯의 처를 계속해서 상기해보고 상기해보라는 말의 2차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롯의 처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불과 유황으로 불타는 소돔성(마귀의 성, 지옥을 상징하는 것임)으로부터는 빠져나왔지만 결국 그들의 안전한 장소인 소알성 곧 천국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구원을 받은 상태에 놓여있는 자라 할지라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 세상을 바라보는 자는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왜냐하면 그날 그들의 구원성인 소알성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황량한 들판에 소금기둥으로 버려졌기 때문입니다.
눅17:31~32[직역] 저 날 안에, 이런 그이는 지붕 위에 [장차] 있을 것인데, 그는 자기의 집안에 있는 세간들을 역시 가지려고 내려가지 말라. 들 안에 있는 이도 이와같이 뒤에 있는 것을 위하여 돌이키지 말라. 32 너희는 롯의 처를 기억하고(상기하고) 있어라.
그러므로 이와같은 사실을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예수께서는 비유로서 한 가지를 더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이미 자신이 구원받은 자로 생각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날이 되면 버려둠을 당할 자가 있다는 비유입니다.
눅17:34~35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이 의미를 정확히 알려면 헬라어로 직역해보아야 합니다.
눅17:34~35[직역]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밤에 두 명이 한 침대 위에서 [장차] 있을 것이다. 하나는('헤이스', 남성) [장차] 취해질 것이다. 그리고 딴('헤테로스', 남성) 이는 내버려질 것이다. 35 두 여자들이 그것에 대하여 [장차] 멧돌을 갈고 있는 이들로 있을 것이다. 하나는('미아', 여성) 취해질 것이다. 그런데 딴('헤테라', 여성) 이는 내버려질 것이다.
생각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명예, 돈, 욕심, 쾌락, 락, 즐거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있으면, 똑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자라도, 한 사람은 데려감을 받겠지만,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종말의 때는 가족도 구원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지금부터라도 바로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중보기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나.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지금의 시기는 어떤 시기입니까? 가족 구원을 위해 울어야 하는 시기입니다.(눅23:28)
눅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그렇습니다. 지금이 바로 울어야 할 바로 그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그 시기가 되면 롯의 결혼한 두 딸들처럼 절대 롯의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는 자는 그날 울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가족 구원의 마지막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놓치지 마십시오, 그리고 경험해 보니까 가족구원의 핵심은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큰 영들이 내 자식에게 들어가서 지금 귀를 틀어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회개를 더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세우기를 날마다 해야 합니다. 주의 종에게 와서 안수받아서 큰 영들을 불로 태워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날에 농담으로 비웃는 자식들의 모습을 지켜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나. 결단의 축복
지금은 씨를 뿌릴 때가 아니라 이미 뿌린 열매를 거두기 위해 회개를 실천해야 할 마지막 시기입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1. 주여, 지금의 시기가 어느 때인지 정확히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주여, 지금의 시기는 롯의 처를 또 기억하고 또 기억할 때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3. 주여, 지금의 시기야말로 깨어서 주님의 날을 준비하는 절호의 때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4. 주여, 주님의 재림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5. 주여, 이미 구원을 받은 자라도 세상 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자는 결국 구원에서 탈락되어 성밖으로 내버려진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6. 주여, 내가 바로 롯의 아내와 같은 자입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1. 주여, 이제는 깨어 있겠습니다.
2. 주여, 이제는 준비하겠습니다.
3. 주여, 이제는 가족을 전도하겠습니다.
4. 주여, 이제는 지금 울겠습니다.
5. 주여, 이제는 지금 회개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1.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깨어 있지 못하게 하고 그날을 준비치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을 결박을 받으라.
2.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세상에 대한 미련에 대해 계속 집착하게 만드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3.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4. 세상에 대한 즐거움과 집착을 버리고 이제라도 회개하고 기도하여 가족 구원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지금의 시대야말로 대환난 바로 직전의 마지막 시기로구나.
2. 지금이야말로 주님의 재림의 때를 준비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로구나.
3. 노아의 때와 롯의 때는 심판 직전의 시기임과 동시에 전도가 안 되는 강퍅한 시기로구나.
4. 불신자들과 결혼한 롯의 두 딸들은 천사와 하나님, 심판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농담으로 여기는 남편의 뒤를 따라가고 말았구나.
5. 비록 일차적인 구원을 받았어도 롯의 아내처럼 성밖에 버림받아서 구원에서 탈락하는 사람도 있구나.
6.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이 세상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자는 롯의 아내처럼 그날에 멸망을 받고야 마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