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들은 왜 목숨을 내 건 경배를 하려 했을까?(마2:1~12) [일시] 2015년 12월 20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찬 67장 영광의 왕께, 찬125장 천사들의 노래가, 찬122장 참 반가운 성도여 PW: 믿음, MIW: 가는 T.S: 믿음은 죽을 각오로 메시야를 경배하러 가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에 관해서 구약성경은 총 300가지 이상의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메시야의 출현에 관한 예언은 아주 분명하고 많습니다. 그것은 메시야를 소개해줄 선구자가 먼저 나타나서 활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사40:3~5). 왜냐하면 메시야가 나타나기 전에 메시야를 소개해줄 선구자가 먼저 나타난다고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보다 먼저 세례요한이 나타났고, 그가 예수님의 오실 길을 미리 예비해주었습니다. 그가 바로 구약성경에 예언된 오리라 한 엘리야였습니다(마12:14). 그런데 그때는 이미 예수께서 30세쯤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예언들 중에서 그의 탄생의 시기에 관해서는 사실상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다만, 메시야의 탄생에 관해 분명히 알려져 있던 예언은 메시야께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실 것이며(사7:14),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미5:2).
그런데 어느날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메시야의 탄생소식을 알고서 유대땅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대체 그들은 어떻게 메시야의 탄생소식을 알게 되었던 것일까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이들은 구약의 예언에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리라고 추정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구요? 자, 그들의 질문을 들어보십시오.
마2:2 유대인의 왕으로 이미 (태어)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왜냐하면)우리가 동방(안)에서 그의 별을 보고(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그들의 증언에서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3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찾아온 대상이 “유대인의 왕”이었다는 것이며, 둘째, 그의 출생을 알려준 것은 “그의 별”이었다는 것이며, 셋째, 그들이 이 먼 곳까지 위험을 무릎쓰고 찾아온 것은 그를 경배하게 위함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그들은 왜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축하하러 먼 길을 달려왔을까요? 그리로 그 일을 위해 고생과 수고와 위험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오늘은 메시야의 출현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이야기인 동방박사들의 방문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경배 즉 예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갈까 합니다.
믿음이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되신 예수님을 기꺼이 찾아가 그에게 경배드리는 것입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동방에 살던 박사들이 유대땅에 탄생하신 유대인의 왕을 경배하러 그곳까지 찾아왔다는 말씀입니다.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살던 동방박사들은 어떻게 되어서 유대땅까지 왔던 것일까요?
자기 나라의 왕이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동방박사들은 새로 탄생한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하러 왔을까요? 거기까지 오기에는 하루 이틀도 아닌, 몇 달이 걸리는 먼 거리인데, 어떻게 동방박사들은 그곳까지 경배하러 왔을까요? 그들이 이러한 방문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직무도 잠시 내려놓아야 하는데, 어떻게 되어서 동방박사들은 유대땅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일까요? 오면서 강도 등 위험요소들을 만나 큰 어려움당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되어서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왔던 것일까요? 자기나라에 있으면서 대신 사람을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하러 왔을까요? 그냥 자신이 살던 곳에서 별이 지나가는 서쪽을 향하여 경배해도 되었을 텐데, 그들은 왜 굳이 그 먼 거리를 일부러 경배하러 왔던 것일까요? 그들은 이방인이기에 새로 탄생한 유대인의 왕에게는 잘 보일 필요도 없었을 터인데, 왜 동방박사들은 귀중한 예물까지 챙겨 가지고 경배하러 왔던 것일까요? 그렇게 경배하러 오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 돈이 되는 일도 아니었을 텐데, 왜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온 것일까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방박사들처럼 그 먼 거리를 찾아가서, 그것도 죽음의 위험성을 무릎쓰고 경배하라고 한다면, 과연 누가 가서 경배할 수 있을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B.C.6년경 아기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자, 동방에서부터 박사들이 유대땅까지 찾아와 탄생하신 아기 예수께 경배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박사들’ 곧 헬라어로 ‘마고스’들은 누구였을까요? 예수님 탄생 당시 동방에는 조로아스터교를 믿고 있는 파르티아제국(B.C.247~A.D.224)이 있었고, 그들은 아마도 제사장들로서, 왕궁자문위원이었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4)문제발생원인
동방박사들은 당시 동방나라의 왕의 제사장이자 자문위원들인데, 그들은 왕의 직무를 제쳐두고 먼 나라에 왕의 허락도 없이 갈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잘못 말씀드렸다가는 그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책망을 듣거나, 그들의 관직도 박탈당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자기가 가족들에게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축하하러 갔다온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과연 허락해 줄까요? 대체 동방박사들은 왜 무모한 짓을 하게 된 것일까요?
믿음이 없으면 갈 수 없습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자기 왕께 말씀드릴 수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핍박이 두려워 말씀드릴 수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죽음을 무릎쓴 여행을 계획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관직박탈이 무서워 경배하러 갈 수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값비싼 경배예물을 준비할 수도 없습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새로 탄생하신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갈 수가 없습니다.
3. 문제해결
1)헌신자의 믿음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방의 박사들은 믿음으로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그 위험하고 먼 곳까지 다녀오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동방박사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이 경배하러 다녀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들의 섬기고 있던 나라의 왕의 마음도 바꾸어주려 하십니다. 가는 도중에 그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주시려 합니다. 그들이 중간에 병이 나지 않도록 건강도 챙겨주시려 하십니다. 그들이 가다가 중간에 강도를 만나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왜냐하면 그처럼 예언되어온 메시야가 “유대인들의 땅에 왔지만” 유대나라에서는 아무도 탄생하신 메시야를 영접하거나 축하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동방박사들이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은 어떤 별이었을까요? 대체 왜 그들은 자신의 관직과 목숨을 내 건 여행을 감행하려 했던 것일까요?
첫째, 그들이 보았던 별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의 탄생을 알려주는 징조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단순히 한 지역이나 나라의 왕의 탄생을 알려주는 것이었다면, 그들은 수 천리 떨어진 곳까지 찾아가지는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본 것은 온 인류에게 영향을 미칠 인물의 탄생인 것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은 ‘마고스’라 불리우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 일평생동안 별만을 연구하는 전문직종의 종사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들이 관찰했던 아주 밝게 빛나는 별은 그들이 일평생 한 번 볼 수 있을까 말까 하는 놀라운 별이었습니다. 사실 오늘날에는 과학이 발달하여 그때 하늘에 떠 있던 별이 어떤 별이었는지 측량이 가능한데, 그 별은 854년마다 한 번씩 나타나는 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밤마다 그 별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체 이 별이 이 세상에 어떤 중요한 일을 알려주는 것인가를 연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지식을 동원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바벨론에서부터 페르시아제국 그리고 헬라제국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모든 문헌들을 조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유대인들의 경전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온 인류에게 영향을 미칠 하늘의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메시야의 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별”을 유심히 살펴보아왔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유대교의 경전에 수천년동안 예언되어졌던 바로 그 메시야가 탄생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별은 곧 메시야의 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어려움과 위험을 무릎쓰고 유대땅까지 찾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온 인류에게 영향을 끼칠 인물이자 왕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분을 알현할 때에 합당한 예물도 준비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발견하여 알고 있었을 메시야의 탄생에 관한 예언은 어떤 예언이었을까요? 정확히는 그 예언이 어떤 예언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말했던 내용과 그들이 준비한 예물을 비추어 보아서 우리는 이들이 찾아낸 말씀을 어느 정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그들이 찾아 발견했던 예언을 한 번 우리도 찾아볼까요?
사9:2,6~7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의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왕국)에 군림하여 그 나라(왕국)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 예언을 보면, 첫째, 그들은 ‘다윗의 왕좌와 왕국, 평강의 왕’이라는 문구를 통해서 태어날 ‘아기’이면서 ‘아들’은 유대인들의 왕일 것이라고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왕에 합당한 예물을 준비했으니 그것은 곧 “황금”이었습니다.
둘째, 그들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문구를 통해서 태어나신 아기는 신성을 가진 분 곧 신적 존재인 하나님이라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성에 합당한 예물도 준비했습니다. 그것은 “유향”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그들은 “큰 빛”이라는 단어와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라는 문구를 통해서, 예수께서 이 세상을 비추는 아주 큰 빛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고, 유대백성들이 로마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받는 백성과 함께 하는 메시야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으니 그것은 바로 쓰디쓴 “몰약”이라는 선물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이 세상의 징조와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왕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을 뵈러 갈 때에는 거기에 합당한 예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이 목숨을 내건 여행을 감행하려했던 것은 자신의 평생에 과업이자 가장 큰 소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왕 앞에 나아가 그분을 알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죽음하고도 맞바꿀만한 일이었습니다. 설령 그 일을 실행하려 하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 앞에 나아가 엎드려 경배하고 그분을 향하여 입을 맞추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단지 어떤 왕이 탄생했다는 사실만 알았다면,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별이 움직이는 방향을 향해 엎드려 절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자신은 가지 않아도 대신 다른 사람을 보내어 축하해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국가의 녹을 먹고 있는 공무원들입니다. 왕의 자문위위원으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건사고와 전쟁에서 왕에게 어떤 자문을 해주어야 하는 위치에 있던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 자신의 자리를 비워서는 아니 될 인물들입니다. 만약 허락없이 그 자리를 비우게 된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자리를 내놓아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약 그 자리를 박차고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축하하러 간다고 왕에게 말씀드린다면, 아니 그날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직감했습니다. 그들의 영으로 뭔가를 직감했던 것입니다. “이 분이야말로 온 인류를 구원할 진짜 메시야로구나”라고 직감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징조를 보고 유대인들의 경전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들여다본 순간 그들의 영이 반응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은 한 번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것이요, 한 번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목숨이 살아있기만 한다면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강한 열망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시므온과 안나같은 사람들의 열망과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살아생전에 그리스도를 자신의 눈으로 꼭 한 번만 이라도 보고 죽기를 원했던 자들입니다. 특히 ‘안나’라는 여인은 과부가 된 이후 84년이 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메시야보기를 갈망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정말 헌신례를 위해 아기예수를 안고 온 마리아의 품에서 고이 잠들어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대망의 메시야의 얼굴을 직접 보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때 아기예수를 본 ‘시므온’은 분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눅2:29-32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들이 어느날 유난히도 밝게 빛나는 별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 별이 무엇을 뜻하는지 여러 나라의 경전을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결국에 그 별이 메시야의 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의 가슴은 뛰었을 것입니다. 일평생 80년을 산다 하더라도 결단코 만날 수 없는 놀라운 기회를 그들은 만난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순례길을 떠나서 도중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꼭 한 번만 이라도 메시야를 만나서 그분 앞에 경배를 드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분 앞에 가장 귀한 예물을 바치고 그분의 손에 입을 맞추기를 소원했던 것입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경배’ 곧 ‘예배’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일을 한 번만이라도 행할 수만 있다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여한이 없는 것입니다. 일생일대에 내게 주어지는 가장 설레이는 시간이기에 그것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내 목숨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호기 그 일을 수행하는 것으로 인하여 내가 직장에서 물러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기쁨으로 감당하려는 것입니다. 혹 죽는 일이 발생한다 하더라고 기꺼이 행하는 것입니다.
2)청중의 문제와 해결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에 대해 어떤 마음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까?
이 한 번의 예배를 드릴 수만 있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마음입니까? 아니면 또 예배시간이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드려야 하는 예배입니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걸더라도 전혀 아깝지 않은 예배입니까? 아니면 예배시간 1시간을 내기가 아까워 예배시간이 지체되면 화를 치밀어오르는 예배입니까?
우리를 구원하러오신 하나님께 대한 합당한 예물을 준비하여 드리는 예배입니까? 아니면 대충 준비한대로 그냥 호주머니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드리는 예물입니까?
805km나 되는 먼 거리라 할지라도 메시야를 직접 뵈옵고 입맞출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드리는 예배입니까? 왜 내가 다니는 교회는 이렇게 멀리 있는 거야 하면서 투털거리는 예배입니까?
믿음이란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4.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그렇다면, 동방박사들은 과연 어떤 복을 받게 되었던 것일까요? 첫째, 그들은 왕과 가족의 허락을 받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둘째, 그들이 베들레헴까지 왕복하는 길에서 어떤 위험한 요소도 만나지 아니했습니다. 셋째, 돌아올 때에는 더 안전하게 되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꿈을 통해 계시를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넷째, 아기 예수가 태어난 장소까지 잘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도움으로 그들은 정확히 왕이 탄생할 베들레헴까지 갈 수 있었고, 또한 별이 나타나 그들을 인도해줌으로써,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신 바로 그 집까지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9절말씀을 원문에 따라 직역해보겠습니다.
마2:9 그리고 그들은 왕의 말을 듣고서 갔다. 그런데 보라. 그들이 동방에서 알았던 그 별이 그 아기가 있는 곳 위로 가다가 멈추어 설 때까지 그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다섯째, 하나님께서는 동방박사들이 그곳까지 와서 허탕치지 않도록 상당히 시일이 지난 시기였지만 아기예수를 베들레헴 붙들어두셨습니다. 아무리 별의 인도를 따라서 간다고 하더라도 아기 예수님을 못 만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마리아를 그곳에 붙들어두셨습니다. 분명히 호적도 잘 마쳤고, 아기 예수가 태어난지 8일만에 아기에게 할례도 행했고, 마리아는 남자 아이를 낳았으니 마리아의 산혈이 깨끗할 때까지 33일을 거기서 더 지내야 했습니다(레12:1~4). 그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정결례도 잘 마쳤습니다(눅2:22~24). 그러면 그들은 그들이 원래 살고 있었던 마을 곧 갈릴리 나사렛으로 되돌아가야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다시 베들레헴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11절에 보니, 그들이 그곳 베들레헴에 있는 어떤 집에 머물러 있을 때에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동방박사들이 경배할 수 있도록 요셉과 마리아를 붙들어두신 것입니다. 여섯째, 그리고 이방인으로서는 최초로 정말 하늘의 왕이자 인류의 구세주를 직접 만나 뵙고 경배드리는 영광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가서 아기 예수 앞에 엎드렸고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 때문에, 아마도 이방인이 먼저 경배했던 것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도 이방인들이 더 잘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곱째, 아기 예수님 즉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에게 최초로 합당한 예물을 드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복 주십니다. 하늘의 기쁨을 주십니다. 마음에서부터 미워하는 마음은 녹여주시고, 아픈 질병이 있다면 말씀을 듣는 중에 치료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해주십니다. 마음의 평강을 주십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것은 동방박사들이 경험했던 그 무엇인가를 우리도 예배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환난풍파가 닥쳐온다 할지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예배를 통해 일주일을 살아갈 힘을 공급받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우리의 순례길이 안전하게 지켜집니다. 주님께 예물을 드려도 예물이 아깝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더 많이 드리지 못한 것을 애석해 합니다. 왜나하면 말씀을 통해 영으로써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2)결단
우리도 동방박사들처럼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올해 2015년 한 해 예배를 어떻게 드렸습니까? 이제 다가오는 2016년에는 예배시간을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 동방박사들은 무려 한 달 이상을 미리 준비했습니다. 우리도 한 주간을 살아가면서 예배드리는 주일을 소중이 여기며 그날 예배드리기 위해 준비하십시오. 예배당까지 나오기도 힘들고 고달프다고 해도 꼭 나오십시오. 그러면, 비록 우리가 실수를 해도 동방박사들이 중간에 약간 실수를 했으나 봐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아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배에 성공하면 우리도 고비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2016년도에는 주일예배 52주를 결석하지 마십시오. 주일낮예배만 참석했다면 주일찬양예배도 참석해보십시오. 주일찬양예배까지만 참석하신 분들은 수요기도회와 2016년도부터 새롭게 시작할 금요일밤 8시 기도회에도 참석해보십시오.
나. 결단의 축복
아무리 결단을 해도 그 방법을 모르면 예배를 잘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일년 52주 주일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때로는 윗사람에게도 꾸중 들을 각오를 하십시오. 한 번만 통과되면 그 다음부터는 자동으로 주일성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배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교회까지 나와 예배드리는 것이 번거롭고 힘들다고 해도 기대감과 설레임을 가지고 예배당으로 나오십시오. 그러면 동방박사들에게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길도 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메꾸어주실 것입니다.
셋째, 주일에 대소사를 잡지 마시고, 있다면 앞당겨 행하십시오. 행사 전에 토요일이나 공휴일로 옮기십시오. 앞당겨하는 것은 흠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 올 해 달력이 나갑니다. 달력을 가져가시면 대소사의 일을 미리 동그라미 해두시기 바랍니다.
넷째, 주일이나 토요일이나 내가 교회에서 봉사할 직무를 자발적으로 맡으십시오. 그러면 주일에 빠지기가 더 어렵기 때문에 주일을 잘 지킬 수가 있습니다.
다섯째, 2016년도의 가장 큰 기도제목 1순위를 주일예배로 정하십시오. 2016년도에는 내 평생에 단 한 주도 결석하지 않으리라 다짐해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믿음이란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예배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모하는 자에게 예배는 가장 큰 감격이요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어떤 것을 통해서라도 주님을 만나뵙기를 원하는 자에게 주님은 길을 열어주시고 보호해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가장 큰 축복이요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은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을 찾아 예배하기를 기뻐하는 자는 실수도 덮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배를 소홀히 할 때가 있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예배를 소중히 여기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예배시간에 빠지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예배시간을 사모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예배에 가장 큰 우선순위를 두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일년열두달 52주를 결석하지 않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예배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가로막은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예배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은 제거될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예배를 소중히 여길지어다. 예배에 최우선순위를 둘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동방박사들의 유대 땅 방문은 자신의 목숨을 내 건 비장한 여행이었구나.
2. 동방박사들이 동방에서 보았던 별은 단순한 별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을 바꿀만한 대단한 별이었구나.
3. 동방박사들이 찾아낸 그 별은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의 별이자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었구나.
4. 동방박사들은 단 한 번의 예배에 그들의 모든 것을 걸었구나.
5.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뵈옵기를 갈망하는 자에게 길을 열어주시고 보호해주시는구나.
6. 주님을 사모하고 갈망할 자의 실수는 덮어질 뿐만 아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바꾸어지는구나.
[다운로드하기] 2015-12-20 그들은 왜 목숨을 내 건 경배를 하려 했을까(마2;1~12).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