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복은 진정 누가 어떻게 받는가?(마5:1~12) [일시] 2016년 01월 03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71장 예부터 도움 되시고, 550장 시온에 빛나는 아침, 198장 주 예수 해변서 PW: 믿음이란, MIW: 가난한 T.S: 믿음이란 영에 있어서 가난하게 되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2016년 새 해가 밝았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새 해에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하여 동해안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인파만 해도 136만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 때문에 평소보다 2배이상 걸리는 혼합한 고속도로를 달려갔을까요? 이런 때일수록 숙박비가 장난이 아닐텐데 말이죠. 그들은 떠오르는 해가 자기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는 것일까요? 대체 복은 과연 누가 주는 것입니까? 태양나 나무로 깎아만든 부처가 주는 것입니까? 그들은 무생명체인데 그것들이 과연 사람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것일까요? 부처나 태양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귀라고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어떤 기자가 인터뷰를 했습니다. 새 해의 소원을 말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새 해에는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새 해에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올 해는 정말 장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사람에 따라 올 해도 직장에서 안 잘리고 살아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나이든 아들 딸이 시집가고 장가를 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비는 새 해 소원은 건강과 장수의 복, 물질의 복, 직장의 복, 자녀의 복입니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 보십시오. 이러한 것들은 전부 다 복의 결과들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복에는 2가지 면에서 헛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첫째, 세상 사람들은 복을 누가 주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상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주든 그러한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있을 뿐입니다. 둘째, 그 복을 어떻게 받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냥 건강의 복, 직장의 복, 자녀의 복을 받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니 새 해에 떠오르는 해가 그 복을 주지 않겠나 싶어 동해안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인들의 엄연한 우상숭배행위입니다.
겔8:16-18 보라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17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에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18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좀 전에도 살펴보았지만 태양이 복을 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무생명체인 태양에게 소원을 빌어봤자 태양은 귀가 없기 때문에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행위를 통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으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새 해가 되었으니 심기일전을 하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로 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 오늘 이 시간에는 누구든지 바라는 복이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과연 복은 누가 주는 것인지 그리고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산에 오르신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제자들ㅇ르 향해 천국의 복을 말씀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찌질이도 가난하게 사는 것이 진정 복일까요?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정말 배고프고 마실 것이 없이 주리며 사는 것이 복일까요? 또한 비난받고 핍박받고 악한 말을 듣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어찌 그 험한 인생사는 것을 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2)청중적 접근
오늘 우리에게도 이렇게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너도 가난하게 살라. 굶주리며 살라. 입을 옷 하나 없는데도 대충대충 살라. 그리고 핍박받고 악한 말을 들으며 살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 이것이 복이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저 이대로 살아야지 하는 사람이 과연 과연 몇이나 될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28년경 공생애 초기에 예수께서 갈릴리의 어떤 산에 올라 가셨을 때에 그를 향하여 나아오는 제자들을 향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주님은 가난하게 되고 굶주리게 되고 목마르게 되고 비난받으며 핍박받으며 악한 말을 들어야 복있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지금까지 제가 한 말들이 다 저주가 아닙니까? 어찌 이런 것들을 복이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말씀대로 살 수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복이 무엇인지 몰라서 복이 아닌 것을 복으로 알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기가 이미 복을 가지고 있는 데도 그것이 복인 줄을 모른 채, 원망불평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3. 문제해결
1)헌신자의 믿음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우선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참으로 복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복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은 과연 누가 주는 것이며, 그 복을 어떻게 받는가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가. 복이란 무엇인가?
복이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복이라고 하면, 건강하고, 돈 잘 벌고, 자녀가 되고 형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복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요?
사람들이 복이 무엇인지를 모르니까 부자로 살지 못하면 복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남들보다 좀 더 못 먹고 못 입고 못 놀고 못 즐기고 있다면 자신은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기들처럼 살지 못한다고 같이 놀아주지 않으면 자신은 지금 비참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을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복은 그러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을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것은 허상을 붙잡은 것입니다. 그것은 가짜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붙잡고 따라가던 자가 언젠가는 진짜 가슴을 찢고 애통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을 진짜로 여기는 자는 고통받을 날이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이제 우리가 받을 복에 대해 확실히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복이란 어떤 것인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이 땅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전부 하늘에서 받는 것들입니다(3,12절). 다시 말해, 저 천국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받는 것들이 진짜 복입니다.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하늘들의 왕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안)에서 너희의 (보)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둘째, 그래서 그것은 물질적인 복이 아니라 전부 영적인 복입니다. 다시 말해 육신이 받는 복이 아니라 영이 받는 복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이렇게 외쳤습니다.
엡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복주시되
셋째, 또한 성경이 말하는 복은 지금 받는 복이 아니라 미래에 받을 복입니다. 복이 주어지는 시점이 전부다 미래시제입니다. 거의가 다 직설법 미래 수동태나 능동태 중간태동사가 쓰이고 있습니다. 지금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나. 그렇다면 복은 어떻게 그리고 언제 받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하늘에서 우리의 영이 받을 복은 어떻게 받는 것일까요? 그것은 총8가지입니다.
그것은 첫째, 이 세상에서 우리의 영이 가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애통해하는 것입니다. 셋째, 복음을 거역하는 자들이라도 온유하게 대해야 합니다. 넷째,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의에 굶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다섯째, 다른 이들에 대해서는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여섯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일곱째, 모든 이들과 불화하지 말고 화평하게 해야 합니다. 여덟째, 복음과 예수님 때문에 비난받고 박해받고 악담을 듣는다해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지금 형통한 상태에 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지금 형통을 즐기고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정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장차 다가올 형통의 복을 향해 지금 가난하고 지금 애통해하고 지금 굶주리고 지금 목말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평행구절을 읽어보면 이 말씀은 더욱 확실해집니다.
눅6:20-26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착각합니까? 지금 만족하게 누리며 사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안개같은 것에 불과합니다.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받을 복은 지금 받는 복이 아닙니다. 장차 도래할 천국에서 받는 복입니다. 지금이 아닙니다. 지금 받고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만족한 상태가 복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복있는 자가 되려면 지금도 갈급한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갈급하여 주일까지 기다리기가 너무나 힘든 자가 복있는 자입니다.
그렇다며느,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늘도 우리의 심령이 가난해져서 천국의 말씀을 들으러 예수님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에게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마5: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그의) 제자들이 (가까이)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사실 성경에서 복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율로기아”라는 단어입니다. “율로기아”는 “유”에다가 “로기아”를 합쳐진 단어입니다. “유”라는 말은 ‘선한, 좋은’이라는 뜻이며, ‘로기오’라는 것은 말해진 것,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선하게 말해진 것”이 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하게 말해진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1차적으로는, 선하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2차적으로는 그분을 따라 자신의 입으로 선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자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까? 진짜 복있는 자는 선하신 하나님 앞으로 말씀을 들으러 나아가는 자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자신의 상태를 보고 애통해하는 자입니다. 영에 있어서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바로 복있는 자입니다. 부모로부터 유산을 많이 물려받아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가지고 있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우리는 현재의 자신의 영적 상태를 날마다 진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고 미래에 천국에서 우리의 영이 받을 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천국말씀은 과연 누구에게 하셨습니까? 다시 본문을 봅시다.
마5: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그의) 제자들이 (가까이)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여기를 보십시오.그들은 무리들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나아왔습니다. 어떻게 나아왔습니까? 가까이 나아왔습니다(프로셀코마이).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3절에 나옵니다.
마5:3 복이 있도다! 영에 있어서 가난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직역].
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영이 가난해지고 비워진 자들입니다. 유대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의 종교로 그들의 영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헬라인들은 그들의 지식으로 그들의 영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비어 있었습니다.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눅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그의) 말씀을 들으러 (그에게) 가까이 나아오니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그분 앞으로 나아가서 그분으로부터 영적인 말씀을 듣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가 복있는 자입니까? 영에 있어서 주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기를 원하여 주님께로 나아가는 자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물질을 많이 소유할수록 그의 영은 가난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것을 누릴수록 그의 영은 비워지지 않습니다. 세상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당신이 진정 복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그것은 매주 자신의 영이 굶주려 있으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달라는 간절함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의 영이 가득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받을 상에 대해서 소망이 생길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오늘의 자신의 삶을 계획해 나갈 것입니다.
다. 그렇다면 복은 누가 주는 것입니까?
그것은 “율로기아”를 하시는 분입니다. 선한 말씀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시대에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고, 신약시대에는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입니다.
누가 복을 줍니까? 새 해 첫날 아침에 떠오는 태양이 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복은 하나님 곧 창조와 구속의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우리가 예수님께로 나갈 때에, 복을 주실 수 있는 전능자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2)청중의 문제와 해결
오늘날 우리들은 정말 영 안에서 가난합니까? 굶주려 있습니까? 목말라 합니까? 복음과 예수님 때문에 비난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악한 말을 듣고, 울고 있습니까?
복 있는 자란 영 안에서 가난한 자입니다. 지금 우는 자입니다. 지금 핍박을 받고 있는 자입니다.
4.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예수께 나아가서 말씀을 들었던, 심령이 가난했던 제자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현세에도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비참하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전부 저 천국에 들어가서 쉬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위로받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대단히 만족함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보상 때문에 너무나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만약 매주 영에 있어서 가난하게 되어 주님의 말씀듣기를 갈급해한다면 장차 천국이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땅을 기업을 받게 될 것입니다.
2)결단
그렇습니다. 복은 지금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의 육신이 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이란 이런 것들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에서 받을 영적인 복이 있기에 지금 힘든 것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자입니다. 내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자입니다. 과거의 높았던 자신의 신분도 기꺼이 내려놓는 자입니다. 그래도 그것을 기쁘게 감당합니다. 진짜 복은 여기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누리는 복은 안개와 같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육신을 아껴서 무엇하겠습니까? 우리의 육신은 영혼의 때를 준비하라고 주신 기회이자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신이 편히 쉬기를 원하고 즐기기를 원한다고 거기에 나 자신을 주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것은 없어질 것이 진짜인 줄 알고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핍박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까? 왜 자신의 신분을 내려놓고 섬기겠습니까? 그것은 이 땅에서 누리는 복이 진짜 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또다시 육신이 편하게 지내기를 원하고 즐기며 먹고 마시는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기에 또 다시 주일에 말씀을 듣고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영혼을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복을 받을 자들입니다.
나. 결단의 축복
세상사람들은 복의 결과만을 사모할 뿐 그 복을 받는 과정을 잘 모릅니다. 복을 누가 주는지도 모릅니다. 복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복을 어떻게 받는지도 모릅니다. 복을 언제 받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를 전혀 모릅니다. 그것을 알려면 말씀 앞에 나아와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듣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현재 자신의 누리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 이상 가짜에 놀아나지 마십시오. 그러한 가짜에 자신의 영혼을 맡겨서는 아니 됩니다.
2016년이 밝았습니다. 과연 올 해 누가 복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지금 복받고 있는 자가 아닙니다. 지금 쉬고 있는 자가 아닙니다. 지금 놀고 있는 자가 아닙니다. 지금 즐기고 있는 자가 아닙니다. 지금 위로받고 있는 자가 아닙니다. 지금 기뻐하는 자가 아닙니다. 지금 평안한 자가 아닙니다. 지금 칭만듣는 자가 아닙니다.
장차 하늘에서 그것을 받는 자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자신의 영에 있어서 가난한 심령을 갖는 자입니다. 그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려는 자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 따라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애통해 하는 자입니다. 자신의 의롭지 못한 삶을 보고 우는 자입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 자입니다.
올 해도 장차 받을 복을 향하여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참된 복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이 말씀하신 복이란 하늘에서 받는 복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이 말씀하신 복이란 육신이 받는 복이 아니라 영이 받는 복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이 말씀하신 복이란 지금 받는 복이 아니라 미래에 받는 복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영에 있어서 항상 가난한 자가 복있는 자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복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선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지금 영 안에서 가난한 자가 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지금 울고 슬퍼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지금 주리고 갈망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시는 주님께 힘써 나아가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참된 복을 향해 내 몸을 쳐복종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참된 복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눈에 보이는 육신의 복만을 추구하도록 유혹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참된 복을 갈망할지어다. 가짜 복에게 속지 말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참된 복은 이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받는 것이었구나.
2. 참된 복은 육신이 받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받는 것이었구나.
3. 참된 복은 지금 받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받는 것이었구나.
4. 영에 있어서 가난한 자가 비로소 참된 복을 받는구나.
5. 복음과 예수님 때문에 이미 핍박을 받아온 자는 그들의 보상이 천국이로구나.
6.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어찌하든지 말씀하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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