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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 앞에 엎드린 어부 베드로(5:1~11)

[일시] 2016124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294장 하나님은 외아들을,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PW:믿음, MIW: 보는

T.S: 믿음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보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하나님께서 끝없는 사랑을 베푸실지라도 하나님의 그 사랑을 끝까지 거부한다면 하나님의 사랑도 그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사랑은 당신의 생명을 포기하시면서까지 주려는 큰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놀라운 사랑도 그것을 받기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려는 사랑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피, 보혈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서 함께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죄를 지었기에 그 죄값으로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히9:22에 보면, 피가 곧 죄를 속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피흘림을 통해서 인간의 죄를 속죄하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죄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속제물로 삼을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대신 피흘려 죽기 위해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릅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피흘림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는 성령을 보내셔서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성육신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피가 필요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깨끗한 피를 통해 자신의 죄가 사함받으며, 죽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오직 이러한 사람입니다.

5:30-32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자신이 건강하다고 하는 사람에게 의사는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병든 것을 안 사람은 의사를 찾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가 예수님을 찾게 됩니까? 그것은 자신은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오직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속으로 자신은 의롭고 깨끗하며 쓸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피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의 중요함은 사람이 죽을 때에 비로소 그 진가가 나타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죽을 때에 예수님의 피가 없는 사람은 죄의 댓가로 죽은 다음에 곧장 음부로 떨어져서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누가 과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받게 되는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나 자신이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살펴보시고 과연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베드로가 탐탁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더니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체험하면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했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평생 고기를 잡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착하고 성실한 어부인데, 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해야 했을까요? 베드로가 남몰래 무슨 악한 짓이라도 해왔다는 것입니까? 베드로는 그간 아무도 모르게 도둑질을 해왔으며, 사람을 죽였는데 숨기고 있었으며, 동네의 다른 여인을 탐하여 간음을 저지르며 살았으니 그것을 숨기다가 발각되기라도 한 것일까요? 아니면, 남에게 거짓말하며 사기치며 살던 파렴치한 사람이었던 것일까요? 왜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는 그냥 어부로서 평생 그 일에 몸담으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살아온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왜 젊은 예수님 앞에 그것도 그분의 무릎 앞에 엎드리어 자신이 죄인인 것을 고백해야만 했던 것일까요?

 

2)청중적 접근

오늘 우리들에게도 어떤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도,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저는 죽을 죄인입니다.”라고 시인하라고 하면 과연 그대로 행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27년경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갈릴리 가버나움 앞의 바닷가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때는 예수께서 아직 제자들 한 명 없이 혼자서 사역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과 고기잡이의 기적을 체험하기 하루 전날, 이미 가버나움회당에서 귀신을 내어쫓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장모의 열병도 치유해주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귀신이 나갈 때에 예수님더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말도 들었지만 그것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안식일이 지나자 그날 밤에 또 다시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고기가 한 마리 잡히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빈털터리로 돌아온 베드로는 그물을 씻으며 다음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갈릴리 바닷가에 서서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두 개의 배들 중에 하나였던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간단한 부탁을 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당신의 배를 육지에서 좀 떼어주지 않겠소?”

베드로는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어제 자신의 장모님 일도 있고 하니 예수님의 청을 들어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배에 앉으셨고 그분은 바닷가에 앉아있는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깊은 곳으로 배를 뒤로 물리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고기잡이를 위하여 여러분의 그물을 내리시오.”

어제 일도 있고 해서 예수님의 청을 들어드렸는데, 이제 예수께서 자기더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베드로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 분이 세상 사람하고는 좀 다른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 해가 중천에 떠올라 고기들이 다 바다 밑으로 들어가는 시간인데, 그물이 내리라고 하면 과연 고기를 한 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까? 그런데 왜 이분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지?”하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때만 해도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예수님을 부른 호칭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5절 말씀입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하신 말씀에 따라 내가 그물을 한 번 내려보겠습니다.” 이 말 속에는 무슨 뜻이 담겨있습니까? 당신은 내가 보기에 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구석이 있기하는 한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주문을 나에게 하다니...당신의 말대로 그물을 내린다 할지라도 고기를 잡지 못할 것이 너무나 뻔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한 번 당신의 말에 따라서 그물을 내려보겠습니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당신의 말에 듣는 것은 당신이 어제 내 장모를 치료해주었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에서 한 번 해보는 것입니다. 알겠죠?”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기는 소리가 우두둑 우두둑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고기가 많이 잡혔으면 그물이 딸려올라오지를 못하고는 찢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저만치서 함께 그물을 치러 온 요한과 야고보를 불렀습니다. 와서 도와달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만치 떨어져 있던 그들이 와서 함께 그물을 당겨보았습니다. 고기를 한쪽에서 담고 또 그물을 올려 담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고기가 너무 많아 베드로의 배만으로는 다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배까지 고기를 채웠는데 그만 두 배가 가득 차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일은 그들의 일생 가운데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보고는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로부터 떠나십시오. 왜냐하면 나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주여!”

 

4)문제발생원인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고기 하나 잡지 못했던 베드로가 다음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내렸는데, 고기를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이 잡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말했을까요? 아마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어떻게 용케도 고기가 있는 장소를 잘 아시는 분 같군요. 어쨌든 고맙습니다. 당신 때문에 고기를 많이 잡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감사하고 말고요.”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그날 예수님에게 감사의 말을 드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감사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자신은 죄인이니 자기를 떠나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왜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감사의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고백했던 것일까요?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베드로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고기잡이의 기적을 보고도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3. 문제해결

우리는 오늘 베드로가 왜 예수님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왜 자신을 죄인이라고 했는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그날 사고쳤습니까? 뭔가를 잘못했습니까? 아니면, 그동안 숨겨놓았던 죄가 발각이라도 된 것입니까? 이것저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자신의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자신을 떠나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 사람이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는 3가지 경우

먼저 우리가 살펴볼 것은 사람이 자신이 죄인이라고 시인하는 경우는 대체 어떤 경우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대개 다음과 같은 3가지 경우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첫째, 아담의 범죄가 곧 자신의 범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아담이 지은 죄의 벌을 왜 우리가 받아야 하느냐고 말입니다. 아담이 범죄했으니 아담이 받으면 되었지 왜 우리에게까지 지옥형벌을 받게 하느냐고 말합니다. 저도 한 때는 그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왜 아담이 범죄한 것 때문에 우리까지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너무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히브리서를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7:9-10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10 이는(왜냐하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있었기 때문이라)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출하여 돌아올 때에 하나님과 아들과 방불한 평강의 왕인 멜기세덱이 나와서 그에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아브라함을 축복해주었습니다(14:17~20). 그러자 아브라함이 자기가 전쟁에서 얻은 것의 1/10을 멜기세덱에게 바쳤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대제사장이자 하나님의 아들을 상징하는 멜기세덱에게 추후에 대제사장직을 맡았던 아브라함의 증손자 레위도 멜기세덱에게 1/10을 바친 것이라고 히브리서 기자가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무엇을 말해줍니까? 비록 아담이 범죄했을 때에 내가 그 자리에 없었지만 내가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는 아담의 허리에 있었으므로 우리도 아담과 함께 범죄에 참여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아담처럼 범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우리는 아담의 범죄에 같이 동참한 자이므로 죄에 대한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아담이 범죄하여 그가 범한 죄의 댓가를 치르게 된 것은 곧 우리가 치러야 할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왜 죄인입니까? 그것은 아담이 범죄할 때 우리도 아담의 허리에 있어서 같이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의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5:12 그러므로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5:19 (아담)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모든)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마지막 아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그날 아담의 불순종은 곧 나의 불순종이었던 것입니다. 그날 아담의 죄가 곧 나의 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입니다. 이미 아담이 범죄할 때 같이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면 그때부터는 죄를 짓지 아니할 줄 알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여전히 죄의 본성에게 이끌려가서 죄를 짓는 자신을 볼 때입니다.

사람은 사실 태어날 때부터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이미 죄된 본성을 자신의 육체 안에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죄지을 환경이 아직 자신에게 없어서 죄를 짓지 아니할 뿐 그러한 환경이 찾아오면 누구나 죄를 짓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짓게 만드는 죄된 본성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든 아니 믿든지 어떤 환경이 되면 어느때든지 나에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죄된 본성을 지니지 않고 있는 하나님죄된 본성을 지닌 인간의 차이를 확실하게 드러내줍니다. 예수님은 죄지을 환경이 되었어도 죄를 짓지 아니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이미 죄로 오염된 가운데 태어나기 때문에 어떤 환경만 주어지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윗을 보겠습니다. 다윗이 전쟁을 통해 나라를 세울 때에는 죄를 짓지 아니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땅도 차지하고 왕궁도 차지하게 되자 그는 낮에 잠을 자다가 밤에 어슬렁 어슬렁 옥상을 거닐다가 외간여자가 밤에 목욕하는 것을 보았을 때 음행의 욕구가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그만 그 여자를 불러다가 간음행각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칭함을 받았던 자라도 어떤 환경에 딱 들어가니 그의 죄된 본성이 즉시 활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나서 나중에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듣게 되자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51:5 (보소서)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나의)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그는 이미 자신의 어머니의 태로부터 조성될 때부터 죄중에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평소 때에는 죄된 본성이 문에 엎드려 있다가 그런 환경이 딱 조성되면 즉시 그것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있는 성도라 할지라도 죄된 본성을 전부 이길 수는 없습니다. 직접 예수님을 만나보았고, 날마다 자신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성령으로 살려고 애썼던 사도바울도 어느날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7:18-20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렇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게 되는 것은 아무리 예수님을 믿어도 죄된 본성은 자기에게서 없어지지 아니하고 어떤 환경에 되면 또 올라와 자신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죄로 오염된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뵈었을 때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깨닫지 못합니다. 하지만 거룩하신 하나님, 즉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을 만나는 순간 자신이 정말 더러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예수님을 믿었는데,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선하게 살았습니다. 도둑질도 안 했고, 거짓말도 하기는 했지만 정말 나쁜 거짓말을 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의 전도로 교회엘 나가게 되었는데, 왜 그리 눈물이 많이 나오던지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그때에 저는 왜 하나님, 당신은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러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으셨습니까?”하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실 분인데, 왜 죄많은 나같은 사람을 위해 그리 험한 꼴을 다 받으셨는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 나와 같은 경우가 더러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구약시대의 경우에는 이사야선지자와 같은 경우입니다. 남유다의 10대왕이었던 웃시야(B.C.790~740)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던 해(B.C.740)에 이사야 선지자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계셨고 스랍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서 있었는데, 그들이 이렇게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6:3)” 그러자 그 광경을 보았던 이사야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6:5 그때에 내가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의 한가운데 거하므로 망하게 되었나니 내 눈이 왕 곧 만군의 여호와를 보았도다 하였더라.

하나님을 직접 만나뵙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추한 사람이요 더러운 사람인지를 즉각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보기 전까지는 얼마나 자신을 의롭고 자랑스럽게 여겼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딤전1:15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렇습니다. 더럽고 추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올 때에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 베드로의 경우는 세 번째의 경우에 해당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단지 율법의 선생님이나 병든 자를 치유하는 능력있는 의사선생님 정도로 생각했을 때에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가 두 배가 잠길 정도로 고기를 잡게 되었을 때, 그는 그만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뵙기가 두려워서 몸을 떨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요? 9~10절 말씀입니다.

5: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5:9[직역] 왜냐하면 두려움이 그를 그리고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자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잡은 물고기의 어획고로 인하여.사람들이 그들이 잡은 물고기들의 어획고로 말미암아

그들은 그날 고기잡은 것 때문에 탄성을 질렀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손이 떨렸고 몸이 떨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그 순간 깨달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5:8[직역]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보더니 예수의 무릎들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말하기를 당신은 나로부터 떠나십시오. 왜냐하면 나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고기를 두 배에 잠기도록 채운 후에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그분의 얼굴을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 있다가는 자신의 더러움 때문에 어떤 진노가 임할른지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인간이 뵈올 때에 자신의 영이 느끼는 어떤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경험은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기적적인 현장에서 체험되어지는 어떤 것입니다.

 

. 왜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가? 첫째는 성경말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말씀을 읽어보면, 로마서와 히브리서를 통해서도 아담이 범죄했을 때에 자신도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기에 같이 범죄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만 성경을 등한시하기에 자신이 죄인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었어도 자신의 육체 안에 있는 죄된 본성과 싸워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자기가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었어도 자신 안에 있는 죄된 본성이 올라올 때에는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겨볼 수가 없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지 아니하려고 죄된 본성과 싸워본 일이 없는 자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더더욱 잘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성경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보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죄된 본성과의 싸움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죄된 본성에 오염되어 있는 죄인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내가 경험하는 모든 일을 통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베드로가 비록 자신이 사람들이 보기에 큰 죄악들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하나님 앞에 비춰볼 때에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함으로 말미암아, 먼저는 자신이 예수님의 보혈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수많은 죄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내어 그들을 죄사함받게 하고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어부 곧 사람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그렇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좋은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필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필요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예수님을 필요한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볼수록 예수님은 더 중요하게 봅니다. 그리고예수님의 피가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결단

이제라도 성경을 읽을 때에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죄된 본성이 올라올 때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성령의 은혜를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더 체험함으로 자신은 오직 예수님의 피로 죄로부터 벗어나게 된 사람이 되었음에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당신도 죄용서받게 될 것이고, 다른 죄인들도 구원하는 놀라운 영혼의 어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내가 죄인인 것을 확실히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은 율법선생이나 병고치는 선생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을 만난본 자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아는 자가 주님의 긍휼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할 때 구원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성경을 더 자세히 보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죄된 본성과 더 싸우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이 누군지 더 알아보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주님께 더 감사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주님을 더 의지하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왜 내가 죄인인지 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던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죄인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막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죄인 위해 피흘리러 오신 예수님께 감사하라.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 되었구나.

2. 아담이 범죄할 때 우리도 아담과 함께 범죄에 참여했구나.

3. 죄된 본성과 싸우려는 자가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되는구나.

4.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볼 때에 비로소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아는구나.

5.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구나.

6.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자는 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아는 자로구나.

 

[다운로드하기] 2016-01-24 예수님 앞에 엎드린 어부 베드로(눅5;1~1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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