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람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는 이유(마11:20~24) [일시] 2016년 2월 12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찬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찬 254장 내 주의 보혈은 PW: 믿음, MIW: 회개하는 T.S: 믿음은 자신이 지은 죄를 인식하여 회개하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얼마전 부천에서 중학생 1학년인 친딸을 무자비하게 폭행하여 숨지게 하고 미라상태의 시신을 11월간이나 집에 방치한 혐의로 아버지 이모목사와 새엄마 백모씨를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어제 구속되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작년 3월에 7일간이나 새 엄마의 여동생 주거지에서 도벽이 의심된다며 다섯 차례나 신실할 정도로 때렸습니다. 그리고 이후 부부는 중학생 딸을 부천의 소사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또 오전5시30분부터 7시간을 손바닥과 종아리, 허벅지 등의 부위를 한 번에 50~70대에 걸쳐 나무 막대기가 부러질 정도로 때렸는데, 때리다가 지쳐서 휴식을 취하고 또 때렸다고 합니다. 이들의 비이성적인 아동학대행위는 그동안 숨겨져 있었지만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의 장기결석자를 조사하는 가운데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의 지속적인 폭행으로 인해 몸속 혈관이 터져서 혈류가 뭉치게 되고 피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하게 되자 결국 쇼크사를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미필적고의(未必的故意)’란 법률용어로서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어떤 범죄결과의 발생가능성을 예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의 발생을 용이한 심리상태를 가리키는 말인데, 그렇다면 이들 부부는 자신의 아이가 그렇게 때리고 방치하면 죽을 것을 예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목회자부부가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요? 이모목사는 부천모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으며, 또한 신학대학교수로서 신학생들을 가르쳐왔던 엘리트입니다. 독일에 유학까지 다녀와 신학대학교수로 활동할 만큼 공부도 잘하고 뛰어났던 인재가 이렇게 비이성적인 행동을 했다니 도무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시대가 악랄해졌을까요? 이제는 학력을 속이고 논문을 표절하고, 젊은 여자들의 하체를 촬영하고, 재정을 마음대로 집행하고, 부정부패를 일삼고, 자살하는 일까지 서슴없이 범하는 작금의 일들은 일반인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기독교인들 특히 기독교지도자들에게 나타나는 흔한 현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왜 예수믿는 사람들이 이 지경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오늘은 사람들이 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지, 왜 죄를 짓고도 자수하지 않고 은폐하려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있는 고라신과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의 백성들을 향해 그렇게 많은 권능들이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훗날 그 백성들에게 엄중한 하나님의 심판이 따를 것임을 선포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그렇게 많은 권능들을 베풀어주셨다면, 그들은 최소한 자기들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뜻에 따라 회개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에게 그렇게 많은 말씀들을 직접 들려주셨으면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도 왜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예수께서 그 어떤 다른 지역보다도 그렇게 많이 찾아가셔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그들에게 천국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곳 사람들은 회개하여 천국백성의 삶을 살았어야 마땅하지 않았을까요?
대체 그들은 어떻게 되었길래 예수님의 능력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많은 은총을 베풀어주시어 병도 낫게 하시고 천국말씀도 들려주었다면, 회개하여 천국백성으로 살아가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29년경 그러니까 예수님의 공생애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그분의 능력들이 가장 많이 행해졌던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들을 꾸짖기 시작하셨습니다. 21~24절의 말씀입니다. 본문을 직역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11:21-24
21 너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고라신아! 너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벳새다야! 왜냐하면 너희에게 그 능력들이 두로와 시돈에서 행해졌다면 그들은 아마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서 회개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22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의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3 그리고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질 것이 아니냐? 음부에까지 내려갈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행한 그 능력들이 소돔에서 행해졌더라면 그 성은 아마 지금까지 남아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4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왜냐하면 심판날에 소돔의 땅이 너보다 더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의 고라신과 벳새다를 책망하셨습니다. 그 고을들은 땅에서 나는 것과 바다에서 나는 것으로 풍성했던 지역입니다. ‘고라신’은 ‘나무가 많은 곳’이라는 뜻이며, ‘벳새다’는 고기잡이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물질적으로는 매우 풍요로운 삶을 살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영안이 흐려있었습니다. 마치 라오디게아교회처럼 말이죠.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그렇게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천국말씀을 많이 들려주신 가버나움 사람들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께서는 그들의 교만함을 책망하시면서 그들이 음부에까지 내려가게 될 것이며, 심판의 날에는 죄많은 소돔백성들보다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가버나움은 갈릴리의 수도로서 당시에 그곳에만 세관이 있었으며, 고위관원들이 살고 있었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 마을들은 어떤 다른 고을들보다도 더 풍족하게 살았으며, 경제와 정치의 중심지에 살고 있었으며, 예수께서 그 동네에 거주하셨기에 예수님으로부터 온갖 기적들을 맛보고 수많은 천국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예수께서 무엇 때문에 그들을 고쳐주셨습니까? 그들에게 천국말씀을 들려주신 것입니까? 그들의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가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ㄴ
4)문제발생원인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은혜와 혜택을 받았다면 마땅히 자신의 죄악된 삶을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수많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왜 기적을 베풀어주는지 모르면 회개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왜 천국말씀을 들려주는지 모르면 천국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적을 보고 천국말씀을 들어도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며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의 완악하고 교만한 것을 보지 못하며 회개하지 않습니다.
3. 문제해결
성도여러분,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죄인인지 모르고 있는 자들에게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여 회개시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사역의 초점은 바로 사람들이 회개하는 데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해야 첫째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둘째로,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셋째로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생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신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가.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죄인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 와서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도 지옥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금 행하고 있는 것이 죄인지 아닌지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크게는 3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무엇이 죄인지 규정해놓고 있는 율법말씀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추도예배나 장례예배가 우상숭배의 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잘 모릅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에 있어서 약70%가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그리스도인들도 상당수 포함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제사 대신에 추도예배를 드리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제사를 드리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도 동일한 제사행위 곧 우상숭배행위에 해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상에 절하지는 않지만 음식을 만들어놓고 그 음식을 먹는 것도 동일한 우상숭배행위에 속합니다.
시106:28-29,36 그들이 또 브올의 바알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29 그 행위로 주를 격노하게 함으로써 재앙이 그들 중에 크게 유행하였도다... 36 그들의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들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고전10: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우리교회와 저도 5년전까지만 해도 장례식장에 가서 영정사진 앞에 국화꽃을 바치고 기도하는 것이 우상숭배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절만 안하면 되는 것이지, 제사음식을 만들어서 그것을 차려놓는 것은 우상숭배행위에 속하지 않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특히 우상숭배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구약의 율법말씀에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구원받으니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만 믿으면 우상숭배해도 상관없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인가요?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예수님을 믿어도 우상숭배를 계속하는 자는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똑같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게 된다고 보좌에 앉으신 이요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며 시작과 끝ㅊ이 되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서도 성령의 깨닫게 하심과 책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은 구약시대와는 달리 성령님을 자기 안에 모시게 됩니다. 구약시대에도 성령이 계시긴 했지만 사람 속에 들어오시지는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율법말씀을 늘 읽고 묵상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행하는 것이 죄인지 아닌지를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율법말씀을 읽어 묵상했을까요? 그래서 그들의 대부분은 죄를 모르고 행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 들어와서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가르쳐주시기 때문입니다(요14:16~17).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렇습니다. 설령 우리가 율법말씀을 잘 모른다고 칩시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기 안에 통제장치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들어오셔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우리를 책망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아, 이렇게 하는 것은 죄인가보다.”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존의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대놓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초신자들도 양심에 담력을 얻어서 우상숭배를 따라서 행합니다. 아닙니다.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셋째, 앞에서도 조금 언급했지만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지 않아도 자신의 구원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배운 잘못된 교리 때문입니다. 사실은 개혁교회의 칼빈교리가 오늘날은 예수 믿고도 천국 못들어가게 하는 주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칼빈주의는 5대교리가 중요한데, 그것은 전적 타락,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 속죄, 불가항력적인 은총, 성도의 견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교리를 자기 개인에게 적용하여 자기자신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무조건적으로 선택을 받은 자이고, 자신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구원의 은총을 거부할 수도 없으며, 또한 한 번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했다면 어찌하든지 하나님께서 천국까지 인도해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번 이 교리를 들어버린 자는 자신이 죄를 지어도 죄를 그렇게 대수롭게 않게 생각해버립니다. 그러다보니 회개가 그들에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교리를 믿고 있는 이들의 저변에는 정말 자신의 죄가 지옥에 끌고 갈만큼 큰 죄를 지은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회개하게 하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고자 하는 은총은 말로다 형용할 수 없는 놀랍고도 큰 것이지만 인간이 그것을 지속적으로 죄를 지으면서 회개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어떤 개인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해놓으신 것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끝까지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자 그리고 지은 죄를 날마다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은 만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이라고 완전히 믿어버립니다. 아닙니다. 믿고 신앙생활을 했던 자라도 얼마든지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행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랬고, 딤전 1장에 보면,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그랬습니다. 또한 딤전 4장 1절에 보면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서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그렇습니다. 한 번 믿어 구원받는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이 만고불변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지켜야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타락하거나 버림받지 아니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죄 때문에 결국 천국 문턱에서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겔18:3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나.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데도 그 기회를 놓쳐버리기 때문입니다.
왜 죄를 지었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것일까요?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그 기회를 무시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벧후3:9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므로 그가 죽기 전까지 계속해서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 기회가 주어지면 즉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만약 자신이 지은 죄가 물질적인 손해를 끼친 것이라면 하나님께 회개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변상까지 해 주어야 하고, 남을 살인한 것이라면 응당의 처벌까지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만 회개할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를 뒤로 미루게 되는 이유에는 칼빈의 교리 중 성도의 견인교리도 한 몫을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인간의 한계에 직면하는 어떤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이 불치의 암병에 걸리게 된다든지, 사업이 망해버리게 된다든지, 교통사고로 인해 생명의 위급하게 된다든지, 자기자식이 그만 자살해 죽는다든지 하는 것 등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지금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계2:21-23 또 내가 그녀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녀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제가 생각하건데 중학생 딸을 때려 숨지게 한 이 신학교교수부부에게도 그러한 유사한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하나님이 분명 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애써 부인하려 했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즉시 무릎을 꿇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과 같이 역사에 길이 남을 수치와 모멸의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에 회개하십니다.
다. 자신의 마음이 완악하고 교만하여 회개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왜 죄를 지었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것일까요? 세 번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라신과 벳새다 사람들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주셔도 거기에 반응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기 때문에 주님의 도움이 없이도 살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좀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사는 불신자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또한 그들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가버나움사람들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자기가 사회적으로, 지식적으로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절대 회개하지 않습니다. 사회의 법망을 피해가면서 죄를 짓지만, 그것이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걸리는 것이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죄를 죄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죄가 자신을 지옥에 보내는 것인 줄 알고 철저히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도 잘 모를 수 있으나 어느날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면 즉각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 즉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할 기회에 그냥 넘기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아픔이 자기에 있다 하더라도 감사하면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질병과 사고가 자기에게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배려임을 깨닫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그렇다면 자기 자신이 지은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는 어떤 복을 받게 됩니까?
첫째,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자신의 영혼이 지옥가는 일은 절대 없게 됩니다(눅13:3,5, 계21:8, 2:5).
둘째, 어떠한 큰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전부 다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게 됩니다(행2:38,3:19). 그것은 하늘에 있는 행위책에서 죄목이 예수님의 피로 덮여져 더 이상 하나님도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히8:12).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받아야 할 처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셋째, 자신이 죽는 날이나 주님이 재림하시어 심판하시는 날에 혹독한 심판을 치르지 않아도 됩니다(겔18:30, 요12:47, 히10:27).
2)결단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있는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않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많이 가졌다고 자긍하지 마십시오. 많이 배웠다고 교만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유학갔다온 박사라 할지라도 다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사라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환경이 좋아서 그것이 나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깨닫게 하심에 민감하십시오. 성령께서 양심에 대고 하는 말에 주의하십시오. 그리고 늘 성경을 가까이 하십시오. 무엇이 이미 죄라고 정의하고 있는지 성경을 배우기를 힘쓰십시오. 그리고 칼빈의 예정론과 견인교리가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나를 배우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육신이 죽는 날에 완성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끝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에 주의하십시오. 회개치 아니하면 촛대를 옮겨버리실 것이다. 교회를 파멸시키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에 주의하십시오. 이것은 목회자라고 해서 봐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아십시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는 벌거벗은 것처럼 자신의 죄가 드러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앞의 심판대 앞에 나아가 심판받기 전에 미리 회개하고 이 땅에서 처벌을 받을 일이 있으면 일찍감치 그 벌을 받으십시오. 죄는 감춘다고 감추어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죄는 반드시 고백해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나. 결단의 축복
왜 우리는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할까요? 회개만이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기 때문입니다(눅24:47). 회개만이 자신이 지은 죄를 예수님의 피로 영원히 덮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회개만이 구원을 얻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고후7:10). 회개만이 자신이 영혼이 받을 죄의 처벌에서 건져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회개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해 주는 통로가 되기 때문(행11:18)입니다. 회개함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을 간직할 수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더라도 그 생명을 영원히 자기의 것이 되게 할 수 없습니다. 회개해야 하나님의 생명도 내 것이 되고 영원히 나와 함께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회개하십시오. 회개할 기회가 있을 때에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사람들이 왜 회개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행한 것이 죄인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은 율법말씀이나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무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구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데도 그 기회를 무시하기 때문에 회개치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자신의 마음이 완악하고 교만하여서도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동안 회개하지 못했나이다. 죄를 짓고도 회개치 아니했던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회개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즉시 회개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회개할 기회를 미루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성령의 깨닫게 하심에 민감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의 배려에 감사하며 회개하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회개를 뒤로 미루게 미혹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회개를 가로막는 거짓된 가르침을 퍼트리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회개할 기회를 미루지 말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회개하지 못한 죄로구나.
2.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죄인으로 하여금 회개하려 함이었구나.
3. 하나님이 주신 율법말씀을 잘 모르면 죄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구나.
4.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에 둔감하게 되면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구나.
5. 지금은 칼빈의 예정론과 견인교리가 오히려 회개를 방해하고 있구나.
6. 사람이 완악하고 교만하면 회개하기를 싫어하는구나.
7. 하나님은 어떡하든지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구나.
8.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해주셨지만 회개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구나.
[다운로드하기] 2016-02-12 사람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는 이유(마11;20~24).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