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수님은 왜 모든 민족을 제자삼으라고 했을까?(마28:16~20) [일시] 2016년 3월 13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찬44장 복의 근원, 찬84장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찬514장 먼동 튼다 일어나라 PW: 믿음, MIW: 모든 민족 T.S: 믿음은 모든 민족을 제자삼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어제까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있었습니다. 그것은 구글의 인공지능(AI)포로그램인 알파고가 세계 최고의 바둑고수인 바둑9단 이세돌과 우리나라에서 맞붙었는데, 알파코가 3승을 해버려서 사실상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SNS상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겨났습니다. 이세돌 때문에 전국 중3엄마들 난리들이 났다는 것입니다. 알파고가 어디있는 고등학교냐고 묻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알파고’가 세계바둑참피언인 이세돌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알파고’가 어디에 있는 고등학교인지 물었더니 아줌마들이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알파고는 바둑명문 특목고라는 것입니다. 알파고에 내장된 컴퓨터의 CPU가 1202개이니까, 학생수가 천재로 구성된 1202명, 그러니까 이세돌 혼자서 바둑 천재들 훈수꾼 1200명과 싸운 거라는 말을 하더랍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다른 특목고를 소개주었다는데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바둑 명문 고등학교는 알파고, 골프 명문 고등학교는 리디아고, 미모관리 명문 고등학교는 미스고랍니다.
믿음이란 무엇을 들어도 거기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3년반동안 자신에게 훈련받은 11명의 제자들에게 이제는 나가서 모든 민족에게 세례를 주면서 그리고 지키도록 가르치면서 제자를 삼으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제자삼는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라는 말인데, 예수께서는 왜 이전에 유대인들이 했던 것과는 달리 자기 민족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로 가라고 하셨던 것일까요? 제자를 삼으려면 자기보다 어리거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제자삼아야지, 왜 누구든지 제자삼으라고 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많이 배우거나 똑똑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예수께서는 왜 무식한 사람들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을 제자삼으라 하셨던 것일까요? 제자를 삼으려면 어떤 교재라도 주면서 가라고 해야지, 예수께서는 왜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삼으라고 하시는 것인가요?
믿음이 없으면 가서 제자삼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의 부족한 점만 바라보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쉬운 방법만 알려달라고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어떤 도구를 달라고만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2)청중적 접근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 해오던 일을을 하라고 하면 금방 순종하겠지만, 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는 일이나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일에는 순종하려하지 않습니다.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30년경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갈릴리의 한 산에서 제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명령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이전에도 여러번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님과 이별해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일러주셔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되, 그들에게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들을 그대로 지키도록 가르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제자들이 이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이자,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가장 큰 사명이었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전과는 달리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전파하고 가르칠 대상이 바뀌었으며 전파하고 가르칠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이전에 그들은 구약의 율법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 했으며, 그 대상은 자기의 자녀들과 손자들에만 국한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과 달라졌습니다. 특히 가르쳐야할 내용과 대상이 확 달라진 것입니다. 그럼, 구약시대에는 어떠했는지 잠깐 살펴볼까요?
신6:6-9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너의)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설명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먼저, 제자들이 가르칠 내용은 구약의 율법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그동안 자기들에게 들려주었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르칠 대상도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오직 자기 자녀와 자기 손자들에게 가르치면 되었습니다(신4:9). 하지만 이번에는 민족의 장벽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제자들은 이 명령에 순종할 수 있을까요?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자신이 한 번도 해보지 않는 일은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이전에 해오던 방식과 차이가 있으면 그 일이 두렵게 느껴집니다.
믿음이 있어도 교재가 없으면 가르치기가 어렵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가르칠 대상이 자기가 생각하던 것과 차이가 나면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11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이제는 성령이 깨닫게 해주시는 대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려 합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께서도 제자들을 도와주시려 하십니다.
2)가르쳐야할 내용과 가르쳐야 할 대상
가. 제자들이 나가서 가르쳐야 할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렇다면 제자들이 나가서 가르쳐 제자삼아야 할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율법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유대인들은 율법말씀과 그것의 해설서인 미쉬나, 장로들의 유전을 가르쳐왔습니다. 하지만 그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라고 명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자, 19절을 보시겠습니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명령했던)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제자들에게 명령했던 모든 것들을 지키도록 가르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회개하라는 것이며, 성령충만함을 받아서 이제 예수께서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말씀을 다 성취했으니 그분을 믿고 구원받을 것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진짜 그랬는지, 오순절날 성령을 받았던 제자들이 나가서 무엇을 했는지 잠깐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행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행2:38-3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행5: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다같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나가서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던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것을 가르치고 전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구원받게 하는 것은 어떤 방법에 있지 않습니다. 어떤 시청각교재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전하려는 것이 우리 주님의 뜻이면 됩니다. 그것은 회개하라는 것이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기 위해서 사람이 되시었고 그리스도로 사역하시고 죽으셨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명기6:4~9인 쉐마에만 푹 빠져 있었니다. 신6:4~9의 말씀에 따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려고 하는 것에는 주의하지 않고, 오직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집에 앉았을 때에는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자기의 자녀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손목에 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두 눈 사이에 띠들로서 동여맸습니다. 그것을 유대인들은 ‘테필린’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집의 문설주들과 문들 위에 기록했습니다. 그것을 유대인들은 ‘메주자’라고 부릅니다. 자꾸 들려주어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케 하여 마음에 새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만져보고 키스하고 하면서 또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여 자기의 후손들에게 수천년간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들은 진짜 메시야가 왔을 때에 회개하지도 않았고 메시야를 영접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메시야를 배척하고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새기라고 했던 율법말씀의 본뜻에 주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유대인들에게 율법말씀을 주었습니까? 단지 그 말씀을 계속 들려주고 만지게 하고 키스하게 하여 암송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그들이 암송해야 할 말씀의 내용이 중요합니까?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말씀의 내용에는 주의하지 않고 오직 그 말씀을 암송하는 것과 잊어버리지 않는 일에만 최선을 다할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말씀을 주신 것입니까? 그것은 그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람이라도 율법말씀을 전부 다 지킬 수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를 믿고 회개하여 죄용서를 받아 구원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지 문구를 암송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 말씀들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잘 암송하느냐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에만 다닌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와서 귀로 들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강대상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듣는 자가 말씀의 핵심을 파악하여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성경암송대회가 나가 1등을 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이 몇장 몇절에 나온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면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요, 그 죄 때문에 우리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었음을 믿고 죄용서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죽은 다음에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이렇게 생각하고 예배에 나옵니까? 다같은 말씀인데 어디에 가서 듣든지 다 똑같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배시간에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예배당에 나와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예배 시간에 나와서 졸고가든 딴 생각만 하다가 가든 혹은 주보에 나오는 말씀 중에 오타가 있는지 찾다가 가든, 예배시간 내내 핸드폰이나 만지다가 가든 상관이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생활에 불과합니다. 그것으로는 결코 자신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결코 자신의 영혼에 유익을 끼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으로는 결코 자신을 회개로 이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는 결코 예수님을 붙들려고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말씀을 암송하고 있느냐, 암송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핵심을 파악하고 순종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율법말씀의 핵심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자신들은 율법의 문구대로만 그냥 살고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율법의 속뜻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죄를 자꾸 들추어냈기 때문입니다. 깊숙이 감추어둔 죄를 끄집어내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죄인인지를 막 깨닫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있는지만 살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암송하고 있는 대로 그 여자를 돌로 쳐죽일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여인은 자신이 죄인인지를 깨달아야 하는데, 돌로 치려는 자들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의 죄가 생각나게 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율법에 의하면, 어떤 일에 있어서 증인이 되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정작 자신들의 죄를 보지 못하고 여인들을 어떻게 누가 먼저 돌로 쳐 죽일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율법은 정죄하는 법이지 살리는 법이 아니었기에, 예수님께서도 그 여인을 죽이지 못하게금 한 마디로 그들을 다 죄인만들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죄를 제일 많이 지은 사람부터 그 자리를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청년까지 다 도망갔습니다. 그들은 율법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본뜻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율법의 문구를 얼마나 잘 암송하고서 그대로 실천했느냐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자는 죄를 용서해주시러 오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제자를 삼을 대상을 유대인들에게서 모든 사람들로 확대하신 것일까요?
첫째, 우선은 좀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유대인들은 자기의 자녀들에게 신앙전수하는 방법에만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진정 알아야 할 율법의 본뜻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구원하시러 오신 메시야를 주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율법말씀을 얼마나 잘 암기했느냐가 중요하며, 그대로 실행에 옮겼느냐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들이 율법을 맡은 자로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맡은 유대인들의 사명은 자기들이 먼저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다음 모든 민족에게도 그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자녀와 손자에게만 그것을 가르치다보니, 나중에는 자신들이 먼저 선택된 사명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창22:17-18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자손)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자손)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자손=메시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그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은 먼저 자신이 복을 받되 아브라함의 씨로 오실 메시야를 통해 복을 받게 되고, 그후에는 천만만민, 땅에 거하는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게 할 사명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정작 아브람함의 씨인 메시야가 왔지만 메시야도 거부해버렸습니다. 그들은 오직 율법말씀의 전승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할례를 행했고, 안식일을 지켰으며, 음식을 가려먹었습니다. 그리고 손목과 미간에 테필린을 붙이고 다녔으며, 문설주에는 메주자를 달아놓고 그것을 만지고 키스하는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정작 그들이 만나서 복을 받아야 할 메시야에는 주목하지 않고, 그냥 율법을 맡은 자라는 자부심만을 자랑했습니다.
셋째, 이제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주어질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즉 믿고 회개하고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자에게 주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정말 유대인들이 회개와 메시야에 대해 관심이 있는지를 확인해보셨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는 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율법으로 남을 정죄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야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왕이 자기의 땅에 오셨지만 그들은 왕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임시로 파송하실 때에 오직 이스라엘집의 잃어버린 양들 곧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세리와 창녀들, 병든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이방인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대했습니까? 먼저 수로보니게 여인을 봅시다. 자신의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으니 고쳐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싸늘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그래도 그 여인은 계속해서 달라붙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 여인의 말이 예수님을 감동케 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15:28)”. 그렇습니다. 이방여인의 믿음이 더 컸던 것입니다.
한편 이방남자들의 믿음도 대단했습니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에게 하인이 있었는데 그만 그가 중풍에 걸렸습니다. 그가 유대인을 사랑하여 가버나움의 회당도 지어주었기에 가버나움의 장로들이 그 사정을 듣고 예수님을 모시러 갔습니다. 그랬더니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8:8~9).” 예수께서는 들으시고는 놀랍게 여기시고, 따르는 자들에게 “이스라엘 중에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복음전파의 대상을 유대인들에게만 국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신호탄이 바로 제자들의 파송명령에 복음전파의 대상을 “모든 민족”으로 확대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나오면 구원받을 기회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대상을 모든 민족들, 모든 백성들, 모든 이방인들에게까지 확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복음전파의 대상 곧 가르쳐서 제자삼는 대상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누구든지 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처럼 자기 민족이나 자기 자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도 이웃도 될 수 있고, 다른 민족과 나라사람들도 될 수 있으며, 심지어 자기의 부모도 될 수 있습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방법에 주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주의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특권을 주신 목적을 정확히 헤아려 그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자신에게 특권을 주신 이유를 알고 그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그 대상이 누구든지 상관하지 않고 복음을 듣고 믿고 따라오는 자들을 제자삼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제자들이 나가서 자기민족이나 자신의 자녀라는 대상에게만 말씀을 전파하거나 가르치지 않고,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전파했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날 유대인들하고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한국 사람들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기자녀에게만 복음을 전하고 자기 민족에게만 복음을 전했다면 아마 한국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이제는 우리 교회도 회개와 천국복음을 맡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 복음을 믿고 나도 천국에 들어갈 사람으로 준비되고 남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회개의 중오성과 천국복음을 전파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2)결단
이제는 우리도 나가서 전도합시다. 누구든지 복음을 받기를 원하는 자라면 그가 남자이든지 여자이든지, 어린 아이든지 어른이든지, 동탄에 사는 사람이든지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이든지, 아픈 사람이든지 건강한 사람이든지, 한국 사람이든지 외국인이든지 상관없이 복음을 전파합시다. 내와 관련이 있는지 없든지 상관없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주님을 따르기 원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합시다.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직접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방법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회개해야 하며, 예수님을 믿어야 죄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전파의 방법은 어떤 방법을 써도 상관이 없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렇게 복음을 받아 천국가게 된 우리가 나만 그것을 소유하고 전하지 않는다면 그 특권을 빼앗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아무리 좋은 복음이라도 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 나갑시다.
우선, 수요일에 나오십시오. 그리고 텐트전도에 참여하십시오. 둘째, 개인전도법을 배워 공원이나 벤취로 가서 복음을 전해보십시오. 그리고 셋째,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가르치십시오. 가보면, 이디오피아 내시처럼 익은 곡식이 있을 것입니다. 예비된 영혼들이 있을 것입니다. 혹 방법이 필요하다면, 수요일에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성경책만 들고 있으면 쉽게 전도하는 방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은 누구여도 상관없습니다. 내 자녀여도 상관없습니다. 타인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넷째, 이제는 좋은 날에 데려오십시오. 오는 부활절이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날에는 강단을 통해 참 복음을 더욱 잘 들려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결단의 축복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하늘에서 큰 상을 주실 것입니다.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자랑스런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행위가 우리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노정에서 결코 버림받지도 않게 될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아멘.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왜 예수께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라 하셨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을 때에는 그것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방법도 중요하지만 내용에 더 충실해야 함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는 회개의 중요성과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도록 가르쳐야 함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이제는 누구든지 회개하면서 주님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자를 제자삼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이제는 구원의 장벽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전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제자삼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회개의 중요성을 가르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도록 가르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방법보다는 내용에 주의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방법에 몰두하여 진리를 놓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말씀의 본뜻을 헤아리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회개의 중요성과 자원함의 중요성을 깨달을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이스라엘의 교육은 너무 방법에만 치중한 교육시스템이었구나.
2. 예수님 시대에 와서 가르칠 내용과 방법이 달라졌구나.
3. 제자들이 나가서 전하고 가르쳐야 할 내용은 회개의 중요성과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라는 것이었구나.
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먼저 율법을 맡기신 이유를 그들은 잘 알지 못했구나.
5.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본뜻을 헤아리지 못한 채, 자기민족에게만 치우친 교육을 하다가 그만 버림을 받고 말았구나.
6. 이스라엘에게 주신 사명은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를 발견하여 회개하고, 메시야를 믿고, 그것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는 것이었구나.
7. 이제는 누구든지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주님을 따르게 되면 구원을 받는구나.
8. 우리 교회도 주님이 우리에게 맡긴 사명을 잘 감당치 못한다면 이스라엘처럼 될 수가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