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은 왜 예루살렘교회에 핍박을 허락하셨나? (행8:1~8) [일시] 2016년 6월 5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12장 다 함께 주를 경배하세, 찬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찬 519장 구주께서 부르되 PW: 전도, MIW: 아는 T.S: 전도란 아버지의 뜻과 마음을 아는 자가 하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예루살렘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이 땅 위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다른 이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아 제자가 되었던 어린양의 12사도들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흩어버리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흩어버리실 때에는 그냥 그렇게 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과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 살던 유대인들을 흩으실 때에도 하나님께서 느닷없이 그 일을 행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결코 그냥 하루 아침에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생각하시고 또 생각하신 후에 그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속성상, 만약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교회를 그때 흩어버리지 아니하셨다면 아마도 예루살렘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을 것입니다.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졌을 것입니다. 결국에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은 전부 다 지옥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거꾸로 말해서,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흩어버리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예루살렘교회를 버리지 않기로 결정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을 아주 버리기로 결정하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그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시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행하는 것이 만세전에 품으신 하나님의 뜻을 성취되기에 그렇게 결정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왜 예루살렘교회를 흩어버리셨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흩어짐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루살렘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자, 예루살렘교회의 교인들이 전부 다 흩어졌는데, 그들 중에 빌립이라는 집사는 사마리아라는 동네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다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탄생한 최초의 교회가 더 견고해지도록 놔두지 아니하시고 흩어버리신 것일까요?
기왕 이 세상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가 더 크게 성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라도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예루살렘교회가 성장해 가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시기질투라도 하신 것일까요?
교회가 성장해 가는 것은 잘못된 일인가요?
교회가 복음을 전파하려면 힘을 결집해야 하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을 흩어버리신 것일까요?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31년경 예루살렘교회 세워진지 약 1~2년정도 지난 시점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당시 예루살렘교회는 마가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이 부어지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전세계 15개국에서 온 유대인들이, 오순절날에 마가다락방에 모여있던 120명의 성도들이 자기나라의 말로 방언을 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배우지 않은 촌사람들이 유창하게 자기나라의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이여,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너희에게 알게 할 것이니, 여러분은 제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행2:14) 지금은 오전 9시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이 술취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B.C.800년경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으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너희가 얼마 전에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가 누군지 아십니까? 그는 우리 조상들로부터 우리에게 보내주시겠고 약속하신 메시야이십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분을 몰라보고 법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렸습니다. 이것도 다윗이 시편에 기록한 예언을 이룬 것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아십시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게 되었고, 그리고 자기가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던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찌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베드로가 이렇게 또 외쳤습니다.
“여러분은 지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이 패역한 세대에서 나와 구원을 받으십시오”(행2:38~40) 그러자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도들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날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무려 3천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루 아침에 큰 교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사도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좀 더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말씀을 나누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적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붙은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자가 낳았습니다. 심지어는 베드로의 그림자만 지나가도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자신의 소유물이나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고 사도들은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그것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벌어진 성전미문에 앉은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에 의해 고침을 받게 되자, 온 성이 소동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데에 앞장섰던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이 예수안에 부활이 있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싫어하며 그들을 잡아 감옥에 쳐넣고 말았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사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전도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감옥에 갇힌 12사도들을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꺼내주셨고, 공회에서 죄인으로 몰려고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그러자. 믿는 성도들은 더욱 더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공동으로 소유하고, 자기의 재물을 자기의 것이라고 하지 않으며, 자기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섬겼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은 또 계속 늘어났습니다.
그러자 그만 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난한 자들과 과부들을 구제하는 일에 파가 생긴 것입니다. 외국에서 살다온 헬라파 과부들이 자기들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에 비하면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고 원망섞인 말을 한 것입니다. 결국 교회는 그들의 원망을 잠재우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했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이 모였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말씀을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념합시다. 하지만 우리 교회 구성원 가운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여 칭찬듣는 일곱사람을 세워 그들에게 구제의 일을 맡깁시다”
그러자 교회는 잠잠해졌습니다. 공평한 구제가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더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믿는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사람, 일곱집사 중의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도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여, 사도들처럼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것을 지켜본 헬라파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시기질투하였습니다. 하지만 말로서 당해낼 수가 없자, 사람들을 매수하여 스데반을 죄인으로 몰아갔습니다.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였다”고 거짓고소를 하게 한 것입니다. 결국 스데반은 예루살렘공회의 법정에 서야했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은 그것에 굴하지 않고, 유대인들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스데반이 모세와 율법을 모독하였다고 판결하고는 그를 데려다가 돌로 쳐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때 이를 지켜보던 사울이라는 청년이 “때는 이 때다”하고는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믿는 성도들을 전부 다 잡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12사도외에는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왜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것을 그대로 허락하신 것일까요? 그러면 하늘의 공의가 사라지고, 유대인의 법정이 더럽혀지는데 왜 하나님은 가만히 있으신 것일까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교회가 좀 더 견고해지도록 놔두시지 왜 그들을 흩어버리신 것일까요?
좀 더 시간이 지나므로,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 중에서 예수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되면, 더 이상 핍박받을 일도 없고, 거짓된 공회에 서게 될 일도 없어질텐데, 왜 하나님은 성도들이 핍박당하고 억울한 재판을 받는 것을 그냥 보고만 계신 것일까요?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을 흩으셨는지 그 이유를 모르면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왜 하나님께서 스데반이 죽는 것을 그냥 놔두셨는지를 모르면 하나님께서는 스데반 하나 보호할만한 능력이 없으신가 의심을 갖게 됩니다.
믿음이 있어도 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계속해서 역행하고 있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을 그냥 지켜만보고 있다는 것에 하나님은 정말 성도들을 위하시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에는 다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당하는 일에는 그것이 고통으로 찾아온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던 어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가. 그렇다면, 큰 부흥을 이뤄가고 있는 예루살렘교회에 핍박을 허락하신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교회의 존재목적에서 빗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우실 때에는 2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음부의 문들이 이기지 못하는 거점을 확보하려는 데에 있습니다(마16:18).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렇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첫 번째 목적은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을 양산해 내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만 성도가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면 그 교회는 더 이상의 교회가 아닙니다. 음부의 권세를 이기지 못해, 죽은 다음에 자신의 영혼이 음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성도들을 양산해내는 교회는 더 이상의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와 믿음으로 꼭 음부의 문들을 이기고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두 번째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구원받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일컬어졌던 유대인들은 그것을 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번째로 선택을 받았던 최초의 예루살렘 교회도 그 일을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자기민족 곧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성도들이 많아지자, 오로지 자기들끼리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스데반의 일로 말미암아 흩어진 그들마저도 오로지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행11:19).
행11: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베니게’는 이스라엘의 서북쪽에 위치한 항구도시 페니키아를 가리키며, ‘구브로’는 지중해의 3대 섬의 하나인 키프로스 섬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안디옥’은 이스라엘의 정북쪽에 위치한 대도시로서, 비록 속국이지만 인구 50만명이 사는 로마의 3대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스데반의 일로 말미암아 도망친 사람들은 이방인 지역으로 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도 여전히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세운 존재목적 중에서 다른 한 가지 목적을 전혀 실천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것은 곧 예루살렘출신도 아닌 변방출신의 어부들과 사람들로부터 죄인으로 취급받던 세리들을 선택했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왜 예수님께서 정통 유대인들이라 일컫는 예루살렘출신의 사람들을 제자로 선택하지 않으시고, 북쪽 갈릴리 변방의 사람들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죄인취급하고 무시하는 세리들을 제자로 선택하셨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이 처음 복음을 받았을 때에 그들은 이제는 출신성분이 좋지 않아도, 많이 배우지 않아도, 심지어 죄짓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채 2년이 지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셋째로, 성도들이 조금 모이니까, 벌써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교만한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기의 혈족에게만 복음을 전할 뿐 이방인에게는 전혀 복음을 전해주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이유가 대체 무엇입니까? 그들은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게 하라는 주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마28:19~20).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막16:15-16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세상)에 다니며 만민(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그리고 넷째로, 그들은 그동안 자신이 이뤄놓은 결과에만 만족하고 그 기쁨에 빠져 있었을 뿐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교회에 핍박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다섯째로, 그들이 가서 복음을 전해주지 않으니,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 시달리고 있었고 결국에 지옥에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루살렘에서 가장 가까운 사마리아가 그러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교회의 재정이 많아지니 자신들이 잘 먹고 잘 사는 문제에 더 고민할 뿐 진정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살려달라고 외치는 사마리아 영혼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지역에는 그 당시 어떤 일이 자행되고 있었습니까? 마술사 시몬이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신을 이 세상에 출현한 하나님, 크신 하나님을 흉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영혼을 노략질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마리아 사람들은 귀신의 힘을 빌어 능력을 행하고 있는 마술사 시몬을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마술사 시몬을 따르는 사마리아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지역에 가서 빨리 불쌍한 영혼들을 구출해내라고 그들을 흩어버리신 것입니다.
나. 그렇다면, 과연 누가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큰 교회라는 특권의식, 자신의 고귀한 혈통의식에만 사로잡혀 있는 자들은 결코 아닙니다.
첫째, 낮고 천한 갈릴리 사람들과 세리와 같은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사람까지 기꺼이 구원으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둘째, 나같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조건없이 복음을 들어 구원안으로 들어오게 했으니, “내가 바로 복음에 빚진 자”라는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혈통에 따라 고귀하고 천한 사람이라고 칭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다 고귀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아는 자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길 원하십니다.
또한 넷째, 빌립집사처럼, 자기 동족에게만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비록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아무리 못 사는 사람이라도 그들도 복음을 들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한다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가진 자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교회의 존재목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바로 나 자신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바로 믿어 천국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믿은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도 아무런 조건없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초로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 세우신 교회 즉 예루살렘교회는 어떻게 하고 있었습니까? 주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었습니다. 자기만족에 도취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자기들만 구원받기로 예정된 것인량 자기의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자기가 속한 교회가 바로 원조교회요 큰 교회라는 자부심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의 사명을 망각한 교회입니다. 없어져야 할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사라져야 할 교회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 동탄명성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다. 그럼 어느 시기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좋을까요? 예루살렘교회는 그 시기를 계속해서 늦추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특권의식과 자기의 만족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큰 교회라는 자부심, 원조교회라는 자부심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 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당시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단 한 사람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주지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순간 그는 그의 발걸음을 180도 바꾸어버렸습니다. 다메섹에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가 옥에 넘기기로 했었는데, 즉시로 그는 발걸음을 바꾸어서, 오히려 회당에 있는 유대인에부터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행9:20). 그리고는 이어 이방인들에게도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아니하고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성도는 교회가 작든 크든 즉시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행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3)청중의 문제와 해결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자기는 큰 교회 다닌다는 특권의식만 가지고 있을 뿐 아무런 조건없이 오로지 순수한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도를 해도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교회가 큰 교회요 자기교회의 목사님이 훌륭하다는 것만 자라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많이 모이는 큰 교회가 되면, 목사님이 다 훌륭한 것입니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이나 사도바울은 훌륭한 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12명 아니 11명 목회했고, 바울도 에베소에서 12명 정도 목회한 것이 가장 큰 목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럼, 교회가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지면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기교회 재정이 어느 정도 충당되어 선교사를 파송할만한 교회로 성장하면 그때 전도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전도는 즉시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복음에 빚진 자인 것을 알 때에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가 복음을 전해주지 않으면 영혼들이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알 때에 즉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는 자가 전도하는 것입니다.
4. 영적 법칙
전도란 아버지의 뜻을 아는 자가 하는 것입니다. 전도란 자신이 복음에 빚진 자인 것을 아는 자가 하는 것입니다. 전도란 교회의 존재목적이 전도에 있다는 것을 아는 자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전도란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흩어버리신다는 것을 아는 자가 하는 것입니다. 전도란 누구든지 제한없이 복음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자가 행하는 것입니다. 전도란 큰 교회라든지 유명한 목사님이라든지 하는 특권의식을 다 버린채, 오로지 복음을 통해서 지옥갈 영혼들을 살려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행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비록 하나님의 흩으심에 따라 사마리아까지 도망갔지만 빌립집사는 어떻게 했습니까? 혈통의 제한을 뛰어넘어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누구든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구원받을 받을 것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마리아에 살던 자들이 마술사 시몬을 버리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붙어있던 귀신들이 쫓겨나가고 초자연적으로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성 안에 큰 기쁨이 임했습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큰 교회 다닌다는 자부심으로 복음을 전해서는 아니 됩니다. 아버지의 뜻은 어떤 신분의 사람이든지, 어떤 혈통을 가진 자이든지 다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면 즉시 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서 영혼을 구원해주십니다.
2)결단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이 세상 어떤 교회보다도 우리 교회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으며, 구원받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교회가 커져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목적을 아는 자가 전하는 것입니다.
나. 결단의 축복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교회를 끝까지 들어쓰실 것이고,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늘에서 큰 칭찬과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하나님께서 왜 예루살렘교회에 핍박을 허락하셨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존재목적을 상실한 교회는 역사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전도는 아버지의 뜻을 아는 자가 행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전도는 자신이 복음에 빚진 자임을 아는 자가 행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전도는 영혼을 진정 사랑하는 자가 행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동안 전도에 게을렀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전도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복음의 빚을 갚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누구든 전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어디든 가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즉시로 전도하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특권의식과 자기만족에 사로잡혀 교회본연의 사명을 잊게 만드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전도를 방해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전도할지어다. 아버지의 뜻에 집중천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지구상의 최초의 교회는 유대인의 교회로서 예루살렘교회였구나.
2. 예루살렘교회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주려고 시도하지 않았구나.
3. 하나님께서는 존재목적을 상실한 교회는 흩어버릴 수밖에 없구나.
4. 대형교회를 지향하게 되면 자기만족과 특권의식 등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교회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구나.
5. 전도는 누구든지 아버지의 간절한 뜻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복음에 빚졌다는 마음을 가진 자가 행하는구나.
6. 전도는 아는 즉시 실천해야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