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믿음은 언제 진짜 효력을 발휘할까?(롬4:11상) [일시] 2016년 11월 13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67장 영광의 왕께, 찬302장 내 주 하나님, 찬254장 내 주의 보혈은 PW: 할례, MIW: 회개 T.S: 할례란 자신의 죄된 본성을 회개하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목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의 목적을 구원을 받기 위함이라고 말은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말은 좀 피부에 닿지 않는 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잘못하면 이신칭의와 동일한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더 정확하게 답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저를 따라서 해 봅시다. “내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 했다고 하더라도 죽은 다음에 그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면 그는 신앙생활을 잘못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인지 아닌지 우리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믿고 세례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교단에서는 믿음으로서만 아니 되고 성령세례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성령세례의 표가 바로 ‘방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방언은 성령의 선물이지 그것이 구원을 결정지을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진정 앞으로 구원을 받을 자로서, 천국에 들어갈 자로서 합당한 자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은 속으로 늘 자신에게 “나는 진정 구원받기에 합당한 사람일까?”를 질문하고 있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는 말씀이요, 해답을 찾는 귀한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아브라함이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그가 무할례시에 받았던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인침이라는 것은 일종의 소유권에 대한 표시인데, 그렇다면 그동안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온전한 소유가 되지 못했다는 말씀인가요?
아브라함이 이 말을 들었을 때에는 그가 부름받은지 약 24년이 지난 시점인데, 그렇다면 이때까지 그가 가진 믿음으로서는 그의 구원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말인가요?
아브라함은 사실 그의 나이 85세되던 해에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는데, 그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칭의로서는 부족하다는 말인가요?
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때에 그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심으로, 그의 칭의적인 믿음을 인치려 하셨던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 우리에게도 우리가 가진 믿음만으로는 구원받은 자로서 부족하니, 인침을 받을 수 있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바울이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을 언급하면서, 그가 99세 때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할례를 받음으로써 그가 85세 때에 믿음으로 받았던 의를 인침받게 되었다는 해석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2개의 단어에 대해 주목해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할례’라는 단어요 또 하나는 ‘인침’이라는 단어입니다.
‘할례’란 남자의 고추의 끝에 있는 포피를 잘라내는 의식으로서, 오늘날 포경수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남자는 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태어난지 8일만에 전부 다 할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침’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인침이란 인 곧 도장을 친다는 말인데, 이것은 3가지를 의미합니다. 하나는 ‘소유’, 또 하나는 ‘권위’, 마지막 하나는 ‘보호’와 ‘안전’입니다. 즉 우리가 도장을 찍을 때에는 하나는 소유권에 대한 표시이며, 둘째로는 권위에 대한 표현이요, 셋째로는 보호와 안전에 대한 표시입니다.
사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도장을 찍습니까? 그것은 어떤 것을 확실히 보증한다는 표시로 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도장을 찍는 것은 첫 번째로, “그것이 이제 내 것이다”는 소유권의 표시며, 두 번째로, 도장을 찍은 나의 허락없이는 절대 손댈 수 없다는 권위에 대한 표현이며, 세 번째로는 도장이 찍혀 있는 한 그것은 보호받을 것이며, 그것은 안전하다는 표시입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이 그의 나이 99세 때에 할례를 받은 것은 그가 85세 때에 받았던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인침으로서, 이제는 아브라함이 확실히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소유권의 표시요,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누구도 손댈 수 없다는 표시이며, 그가 얻을 축복이 이제는 안전하다는 표시라는 것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나이 99세가 되었을 때에, 그에게 나타나시어 할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가진 믿음으로서는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으며, 그의 영혼을 사탄에게 빼앗길 수도 있으며, 보호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가 할례를 받음으로 그가 이전에 받았던 믿음에 대해 확실히 도장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5)문제 심리묘사
그러므로 믿음이 없으면 왜 믿음만 있으면 아니 되는지 리고 왜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믿음이 없으면 왜 할례가 정말 내게 필요한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으면 왜 할례의식이 영적으로 볼 때 구원의 보증이 된다는 것인지 잘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할례를 받을 때에 자신이 가진 믿음이 안전해지고 보호를 받으며 주님께서 그 믿음을 보증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 사람의 구원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될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온전한 것이 아니며, 또한 안전한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칭의를 인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주문하셨는가?
오늘 본문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롬4:11 그(아브라함)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하나님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맨 처음, 의롭다라고 칭함을 받은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창15:6).
창15:4-6 여호와의 말씀이 그(아브라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다메섹 엘리에셀)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기에 보니,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그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75세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고향과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창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자신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시고, 복을 받게 하여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케 해주시겠다는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갈대 우르를 떠나올 때 데리고 나온 큰 형의 아들 조카 롯을 자신의 양자로 삼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떠나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떠나보냈습니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자식이 생길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흘러갔을까요? 한 10년쯤 흘러갔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중대한 결심을 합니다. 자기 집에서 낳고 자라서 길리운 다메섹사람 엘리에셀종을 양자로 삼겠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몸을 통해 나올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온전히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아브라함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그가 가진 믿음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아내로부터 자식을 얻으려 하지 않고, 아내의 말을 듣고 첩 하갈을 들여 상속자를 낳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의 믿음이 아직도 불안정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기는 믿었지만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이 전능자인 것을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인간적인 생각을 끌어들였습니다. 아내가 자식을 낳을 수 없으니 첩을 들여 자식을 낳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그는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실행해 옮겼습니다. 그런데 시간적으로 계산해보니,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칭함을 받은 같은 해에 그러한 일을 벌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 이스마엘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아예 아브라함을 떠나서 한 번도 그를 만나주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려 13년동안이나 아브라함에게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에게 13년이라는 세월은 회개의 시간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는 그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음을 회개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육체의 생각을 따라 행했던 것을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된 본성을 따라 행했던 것을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13년만에 그에게 나타나시어 하신 말씀 속에 들어있습니다.
창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때까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다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없는 것도 있게 만드시고 죽은 자도 살려내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때가 그의 나이 99세였습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이 자신의 마음대로 행하여 이스마엘을 낳은지 13년이 흐른 시점이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뒤로는 13년 10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이요, 처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뒤로는 24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믿음은 처음부터 온전하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검증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검증합니까? 우리의 행동이 내가 믿음이 있는 자인지 아닌지를 설명해줍니다. 그후도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믿음없는 행동을 했습니다. 입술과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그의 행동은 반대로 갔기 때문입니다. 분명 자신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룬다고 했는데, 그는 처음에는 조카롯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아예 피붙이가 없으니 종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첩의 자식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은 온전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러므로 13년은 아브라함에게 눈물로 회개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느냐 하면, 그가 13년 뒤에 하나님의 방문을 받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창17:26-27 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27 그의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그것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과 그의 집에 있는 모든 남자종들더러 다 할례를 받으라는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그것이 그 공동체에 어떤 어려움을 초래하게 될른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두 번 다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할례는 무엇입니까? 단지 육체의 포피를 자르는 의식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의 마음의 가죽을 베어낸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의 가죽을 베어낸 것입니다. 두 번 다시는 자신의 생각대로, 두 다시는 육체의 본성을 따라 행하지 않을 것임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할례란 죄된 본성으로 가득찬 자기자신을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그 어떤 생각도 깨끗하지 않으며, 자신의 그 어떤 생각도 옳지 않다는 것을 시인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이 옳다고 하는 신앙고백의 행위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그에게 자식을 허락하셨습니다.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아내 사라가 갑자기 임신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전에도 그런 일이 없었고 그 후에도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만 허락된 놀라운 초자연적인 역사였습니다.
2)청중의 문제와 해결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할례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사도바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구원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할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할례로 믿음을 인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할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들려주었습니다.
골2:11 또 그분(예수)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제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육신의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육의 몸을 벗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할 때의 그 회개와 그 각오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내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깨끗한 생각이 아니며, 육체의 본성을 따라 행하는 것임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회개를 합니다. 그런데 회개에도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이 13년동안 행했던 자범죄에 대한 회개입니다. 자신의 낱낱의 행위를 자복하여 용서를 구하는 회개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한 것은 낱낱의 죄를 자복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생각대로 행하지 않겠다고 하는 회개입니다. 지금까지 육체의 본성을 따라 행했던 자신을 뉘우치면서, 앞으로는 육체의 본성을 따라 행하지 않겠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행하는 두 번째의 회개입니다. 자신이 온전히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회개입니다. 자신이 비록 현재 죄를 짓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철저히 죄된 본성으로 가득 차 있는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회개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이 죄된 본성으로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시인하는 회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 그래도 남보다 자신은 더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구원은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할례는 자신의 죄된 본성을 시인하는 회개입니다. 자신 안에 원죄가 들어있어서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도무지 그것을 이길 수 없음을 고백하는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철저히 죄짓고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인 것을 시인하는 회개인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할례가 무엇이며, 그것이 왜 필요한지조차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혹시 나는 의롭다고 생각하면서 상대방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까? 이 사람은 할례받지 못한 사람일 확률이 아주 큽니다. 이런 자는 결코 구원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할례의 인침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는 지금 혹시 죽는다면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아직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할례란 자신이야말로 죄된 본성으로 조성된 죄인인 그 자체인 것을 시인하고,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날 마음에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 번제물로 바치는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4. 영적 법칙
회개란 자신이 지은 낱낱의 죄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1차적인 회개입니다. 이런 회개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에 대하여 하나님의 보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할례란 자신이 행하는 것을 되돌아볼 때 자신에게는 정말 죄된 본성이 들어 있어서, 하나님이 없이는 절대 죄된 본성을 이길 수 없는 죄인인 것을 시인하는 2차적인 회개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할례란 자신의 믿음에 대해 보증받을 수 있는 회개로 나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아브라함은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날 그 즉시 할례를 행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그 뒤로 절대 자신의 육체의 본성을 따라 살지 않는 회개를 했습니다. 그것이 발로 할례의 본뜻이요 속뜻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날 그렇게 그가 바라던 상속자를 아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아내가 임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중에는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아멘하고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세상 사람 중에 유일하게 하나님의 벗이라고 칭함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만약 우리도 마음에 할례 곧 죄된 본성을 시인하는 회개를 한다면 우리에게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계속해서 꼬이고 풀리지 않았던 모든 문제를 풀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믿음의 사람이라고 칭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2)결단
그러므로 우리도 믿음에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참된 회개를 함으로 우리의 믿음이 인쳐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이 점차 보장되어 천국에 이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믿음이 구원얻기에 합당한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합당한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지은 낱낱의 죄만을 회개하는 회개를 했다고 회개를 끝낼 것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 앞에 진정 죄인인 것을 시인하는 회개를 날마다 행하여 구원에 대한 인침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의롭고 당신은 틀렸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나는 잘 하고 있는데 네가 잘못한 것이야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나도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언제라도 남들과 같은 잘못된 생각을 할 수가 있는 사람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함부로 정죄해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그럴 때마자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부덕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 결단의 축복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은 자는 점차 자신이 죄를 지어서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보니 하나님 없이는 결코 죄된 본성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죄인 자체였구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살펴보면, 자기는 의롭다고 판단하고 남을 멸시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결코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무조건 자신이 죄인인 것을 회개하는 자는 그의 믿음을 인정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눅18:13-14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혹시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판단이 됩니까? 그런 자는 아직까지 자신이 죄된 본성으로 가득찬 존재임을 인정하고 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자는 자신이 가진 믿음이 아직까지 불완전한 사람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믿음을 보증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은 한 마디로 인침받지 못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으로는 천국에 진입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사실을 깨닫기까지 아브라함처럼 13년이 지나야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그렇게 되기까지는 13년동안 자범죄를 꾸준히 회개한 까닭에 주어진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 날마다 자범죄를 진실로 회개하십시오. 참으로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어느 순간엔가 우리는 나 자신이 정말 죄인인 자체였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남을 함부로 정죄할 수 없습니다. 나만 의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혹시 내가 잘못하여 상대방을 더 어렵게 만들지 않았나를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 비로소 우리의 믿음의 의가 인쳐질 것입니다. 구원받는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회개도 진정한 회개라고 하나님이 인정해주실 것입니다. 할례의 회개, 우리에게는 정말 중요한 이슈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놀라운 신앙의 발전이 있기를 고대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할례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할례란 자신이 죄된 본성을 가진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할례란 자신의 죄된 본성을 따라 살지 않기로 굳게 결단하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할례는 내 믿음이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인지에 대한 인침의 표시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 이제야 제대로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이제까지 남의 죄만 보고 내 죄를 보지 않으려 했음을 회개하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나도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주여, 이제는 주님없이는 죄된 본성에 따라 살 수밖에 없는 죄인인 것을 인정합니다.
주여, 이제는 교만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내 죄부터 살펴보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날마다 마음에 할례를 받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내가 죄된 본성으로 조성된 죄인이라는 것을 감추려한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의 죄된 본성을 회개치 못하게 방해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날마다 마음에 할례를 행할지어다. 자신의 죄된 본성을 회개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아브라함이 칭의를 받은 때는 85세였지만 그의 믿음이 참으로 인쳐진 때는 99세였구나.
2. 사람은 낱낱의 자범죄를 참회함으로 회개를 시작하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죄된 본성으로 충만한 죄인인 것을 회개하게 되는구나.
3. 아브라함이 자신의 죄된 본성을 시인하고 그것을 버리기까지는 무려 13년의 세월이 지나야했구나.
4. 남의 죄가 더 크게 보이고 자신은 더 의롭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구원에서 아직 멀리 있는 자로구나.
5. 낱낱의 죄를 회개했다고 회개를 끝마칠 것이 아니라 진정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을 더 회개해야 하는구나.
6. 할례는 자신이 죄된 본성으로 조성된 죄인임을 시인하고, 주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