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69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제목] 왜 갓난아기가 표적인가?(2:8~12)

[일시] 20161218, 대강절 넷째주일

[찬송] 30장 전능하고 놀라우신, 122장 참 반가운 성도여, 112장 그 맑고 환한 밤중에

PW: 믿음, MIW: 아는

T.S: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께서 구주이심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며칠 전 로마황제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이상한 글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거대교단의 신문이었는데, 거기에 누가 투고한 글이었습니다. 거기에 보니,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복음서의 내용이 서로 다른 것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사건을 믿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글쓴이가 무엇 때문에 그리 고민을 했는가를 살펴보니, 이런 것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첫째, 왜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기사가 나오지 않으니 탄생기사는 신화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둘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탄생기사도 불일치하는 것을 보니 더욱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에서는 동방박사들이 방문한 곳은 베들레헴의 어떤 집이라고 나와 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마굿간에서 태어났다고 나와있으니 어느것을 믿어야 할지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도 다르게 나와 있는데, 마태복음은 하향식 계보인데 비해, 누가복음은 상향식 계보이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분은 과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으며, 성경이 얼마나 팩트에 입각한 기록인지 제대로 연구서적들을 읽어보았는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성경을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이야기인 것이 이미 드러나 있는데, 지금의 시대에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사실 마가복음은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쓰게 되었으니 족보가 필요없었던 것이고,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쓰게 되었으니 또한 족보가 필요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에서 동방박사가 방문한 시기는 예수께서 이미 태어난 후라고 마2:1에서 분명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같은 장소가 아니라고 이상하다고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마태복음의 동방박사들의 방문은 예수께서 태어나신지 적어도 한 달 이상이 지난 후의 기록인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그들이 베들레헴에 온 시기가 호적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어서 결국 방을 구하지 못해 마굿간에서 예수님을 낳게 되었다는 것인데, 그것이 서로 다른 상이한 기록 때문에 어느 것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님의 법적인 부친에 해당하는 요셉의 족보이고, 가복음에 나오는 족보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족보이기에 아담부터 다윗까지는 서로 일치하지만, 그 아래에서부터 다르른 것인데, 어느 족보를 신뢰할지 모르겠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우리가 가기고 있는 이 성경의 기록은 설화나 신화가 아닙니다. 성경은 가장 오래된 책에 속하지만, 성경만큼 사실적인 기록물은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사복음서의 경우처럼 서로 다른 부문을 기록함으로서 상호보완적으로 쓰여졌습니다.

 

그렇다면, 기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예수께서는 과연 역사적으로 언제쯤 태어나셨던 것인가요? A.D.11225일에 태어났을까요?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마태와 누가의 기록을 통해서 예수께서 과연 언제 태어나셨는지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가 있습니다.

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이미)(태어)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1-2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첫째는 마2:1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헤롯왕 때에 태어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헤롯왕은 B.C.73년경에 태어나서, B.C.37년에 유대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B.C.4년에 사망했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는 적어도 B.C.4년 이전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2장에 의하면, 동방박사에게 속은 줄 헤롯왕이 사람을 보내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아기를 다 살해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에 사망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탄생은 B.C.6년경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2:1에 의하면,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호적하라고 할 때에 예수께서 태어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의 초대황제로서 B.C.27년에 황제가 되어 A.D.14년까지 다스렸습니다. 그때 로마에서는 보통 14년을 주기로 세금징수를 위해 인구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인구조사는 B.C.8~7년경과 A.D.6~7년경에 있었다고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인 베들레헴은 B.C.8~7년보다는 약간 늦게 인구조사가 단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탄생은 B.C.8~7년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점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구레뇨가 수리아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레뇨가 수리아의 정식으로 총독으로 임명된 시기는 A.D.6~9년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기록이 발견되었는데, 구레뇨는 이미 B.C.12년에 수리아에서 총독처럼 공직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원문에는 구레뇨가 수리아를 다스리고 있었을 때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번역을 잘못하는 바람에 성경의 기록이 이상하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태어나셨을 때는 겨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밤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양떼를 치고 있던 시기였으니, 그 시기는 4월에서 11월 사이입니다. 1:14에 보면, 원문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고 되어있으니, 아마도 장막절 즉 이스라엘 달력으로 초막절인 715일경에 태어나신 것 같습니다.

고로 이러한 모든 경우를 종합해본다면, 예수께서는 B.C.6년경 4월에서 11월 사이에 탄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초대교부였던 터툴리안은 구레뇨가 재임하던 기간 곧 B.C.8~6년 사이에 예수께서 탄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께서는 B.C.6년경에 가을쯤에 동정녀 마리아의 태를 빌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께서 탄생하신 날에 있었던 천사들의 메시야탄생고지 사건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탄생이 과연 인류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커다란 사건이었인지를 영적으로 살펴봄으로 그분이 탄생이 나에게 주는 놀라운 은혜를 아울러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자 한 천사가 목자들을 찾아가서 구주가 태어나신 것을 전하면서, 강보에 싸여 뉘여있는 갓난아기가 있을 것인데, 그것이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표적이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왜 구주께서 갓난아기로 태어난 것이 인류구원을 위한 표적이 되는 것인가요?

갓난아기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돌볼 수도 없는 연약한 존재인데, 어찌 그것이 인류구원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인가요?

따뜻한 방 한 켠이 아니라 초라한 마구간의 말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어찌 온 인류에게 좋은 기쁨의 소식이라는 말인가요?

멋지고 훌륭한 젊은 총각이 지도자로 세워진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갓난아기의 탄생소식이 인류에게 복된 소식이 될 수 있는 것인가요?

혈통을 이어줄 아들이 탄생했으니 한 집안의 경사이거늘, 그것이 어찌 온 인류를 위한 경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만약 오늘날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그것도 초라한 마굿간에서 태어난 갓난아기를 일컬어 구세주라고 한다면 과연 얼마나 그것을 믿으려고 할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B.C.6년 가을쯤 베들레헴의 어느 마굿간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당시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탄생소식을 전하도록 하나님께서 한 천사를 이 세상에 내려 보냈습니다. 그 천사는 당시 잠을 자지 않고 있는 사람을 찾을 터인데, 그때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양떼를 지키고 있는 목자들을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그 천사 주위에 빛이 둘러 비치었습니다. 그러자 목자들이 두려워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천사들에게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2:10-12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있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 ()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발견하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이 부분은 한글성경은 무엇에 강세가 있는지 잘 모르게 되어있습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11절과 12절을 직역해보겠습니다.

2:11-12 그리스도 주님이신 구주께서 다윗의 성읍 안에서 오늘 너희에게 나아지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싸인)이다. 갓난아기(브레포)가 포대기에 싸여진 채 있으며,구유 아에 놓여 있는 것을 너희가 발견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 소식은 그날 밤에 베들레헴에 구주가 태어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갓난아기를 보게 될 것인데, 그것이 곧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아니, 연약하여 스스로 몸을 가누기도 힘든 아기가 구유에 누워있는데, 어찌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표적이라고 하는 것인가요? 귀족집안의 아기로 태어나지 못했기에, 이 아이의 앞날이 전혀 보장된 것도 없는데, 어찌 이 아이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표적이라는 말입니까?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갓난아기가 인류구원의 표적인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이 아기로 탄생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잘 모르면, 그것은 하나님의 완벽한 구원역사의 첫출발인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갓난아기를 방 한 켠이 없어 구유에 누워있는 연약한 갓난아기로만 보면, 이것이 과연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일인지를 잘 알 수가 없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자들은 그 소식을 직접 확인해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갔고 그 아기를 찾아내어 그의 어머니에게 천사가 들려준 소식을 전해줍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태어난 갓난아기는 왜 표적인가?

사실 이 아기는 그냥 마리아와 요셉 사이의 맏아들로서 갓난아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왜 이 연약한 아기가 표적으로서 인류구원의 놀라운 소식이라는 것입니까?

이 아기는 사실 마리아가 낳은 맏아들입니다.

2:7 (마리아가)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평범해 보입니다. 그리고 갓난아기가 구유에 누워있는 것만을 보면 좀 불쌍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갓난아기가 엄마 아빠 잘못 만나서 따뜻한 방 한 켠에도 있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셉과 마리아가 그때 돈이라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면, 그 시간에 마굿간에서 출산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베들레헴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런 험악한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외지에도 온 신혼부부, 아무도 그를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보를 환영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천사는 이 아기가 바로 표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기는 무슨 표적입니까?

첫째, 이 아기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성육신이기 때문입니다(11).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목자들은 아무도 이 아기가 처녀의 몸에서 잉태된 아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이 아기의 탄생은 온 백성을 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구주가 나셨기 때문입니다. 구원자가 나셨기 때문입니다. 죄 가운데 빠져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기가 어떻게 하나님이 육신을 입은 것인지를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이사야 선지서에 기록된 2가지 말씀 때문입니다. 먼저는 사7:14의 말씀입니다.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렇습니다. 이 아기는 그냥 남자의 사랑으로 태어난 아기가 아닙니다. 이 아기는 처녀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낳은 아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이 육신을 입고 태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아기는 바로 구주입니다. 구세주 즉 구원자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기는 대체 누구입니까? 이제 이사야선지자의 다른 말씀을 보겠습니다.

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놀라지 마십시오. 이 아기는 오직 한 분이신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은 아기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날 구원할 구주가 되셨도다1224절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아기는 구약의 단 한 분뿐인 구원자 곧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기가 온 인류에게 미칠 큰 기쁨의 놀라운 소식이며 표적인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장막을 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둘째로, 이 아기가 바로 그렇게 많이 예언되어왔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11).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분은 단순한 갓난아기가 아닙니다. 그분은 구약성경에서 무려 350가지 이상의 예언으로 선지자들을 통해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한 바로 그 메시야이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유다지파의 자손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처녀의 아들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한 바로 그 메시야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야가 태어난다해도 그 메시야가 진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인지를 알도록 하기 위해 무려 4천년동안 수십명의 사람들을 통해 메시야에 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그날 그 아이에게 성취된 것입니다.

셋째로, 이 아기가 바로 구약시대에 여호와로 나타나셨던 바로 그 주님(아도나이)이시기 때문입니다(11).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 히브리인들에게 주님이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 이 말씀을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12:12-13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이들이 인용하고 있는 구약성경말씀을 찾아봅시다.

118:25-26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호산나)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26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은 곧 여호와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을 포함한 온 인류에게 갓난아기는 여호와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표적인 것입니다. 그분은 못하실 것이 없는 전능자요, 못 아시는 것이 없는 전지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전능자가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는가?

그것은 이렇습니다. 이러한 성육신의 방법이 아니면 인류를 구원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그 벌로 돌로 쳐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죄를 용서받기 원하다면, 그는 속죄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속제제사의 핵심은 자신의 죄를 흠없는 제물로 넘겨 그 제물이 피흘려 죽었을 때에 그 죄가 사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간은 아담 이후 죄를 지은 상태로 태어나므로 흠없는 대속제물이 될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죽을 수도 없고 피흘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흠없는 속죄양으로 피흘려 대신 죽기 위해 사람의 육신을 입으신 것입니다. 그분이 육신을 입고 오시어 온 인류를 위한 구주가 되신 것입니다. 4천년동안 약속한 바로 그 메시야가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기에 여호와께서 주님으로 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3)청중의 문제와 해결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도 태어난 갓난아기는 특별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불쌍해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갓난아기는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신 것이었고,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였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아기는 온 인류를 위한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보잘 것 없고 약한 갓난아기로 태어나기는 했지만, 이것으로 인하여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갓난아기가 바로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갓난아기가 약속된 메시야이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갓난아기가 주 여호와이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오늘날까지 갓난아기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갓난아기를 구원자로 믿었던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무슨 죄를 지었든지 다 죄사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마귀가 지배하는 이 세상을 탈출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믿는 자는 마귀의 권세를 이깁니다.

그를 믿는 자는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이깁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우리의 속죄와 구원을 위해 갓난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죄용서를 받습니다. 그분으로 인하여 이 세상을 탈출할 수 있습니다.

 

2)결단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우리를 위해 갓난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메시야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 결단의 축복

우리도 이것을 믿을 때에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도 이것을 믿을 때에 속죄를 받습니다.

우리도 이것을 믿을 때에 주님의 권세를 받아누립니다.

우리도 이것을 믿을 때에 이세상을 탈출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것을 믿을 때에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메시야 탄생의 비밀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메시야가 갓난아기로 오셨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갓난아기가 온 인류의 구원자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갓난아기가 구약에 약속되었던 메시야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갓난아기가 주 여호와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전능자께서 갓난아기로 오신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하나님이 인류구원을 위해 사람으로 오셨음을 믿나이다.

주여, 이제는 전능자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사람으로 오셨음을 믿나이다.

주여, 이제는 메시야가 갓난아기로 태어났음을 믿나이다.

주여, 이제는 하나님이 갓난아기로 태어났음을 믿나이다.

주여, 이제는 전능자가 갓난아기로 태어났음을 믿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성육신하신 것을 의심케 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하나님의 성육신이 곧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믿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하나님의 성육신하심에 감사하라.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찬양하라.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사복음서는 상호보완적으로 기록되었구나.

2. 예수께서는 B.C.6년경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구나.

3. 메시야의 탄생소식은 천사가 알려주었구나.

4. 메시야는 구원자이시며 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로구나.

5. 하나님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갓난아기로 태어나셨구나.

6. 하나님께서 갓난아기로 오셨기에 속죄와 죽음을 대신 담당할 수 있었구나.

 

[다운로드하기]  2016-12-18 왜 갓난아기가 표적인가(눅2;8~12).pdf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1 믿음은 언제 진짜 효력을 발휘할까?(롬4:11상)_2016-1-13(설교전문) file 갈렙 2016.11.13 453
420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달은 한 사람(눅5:1~11)_2016-11-20(설교전문) file 갈렙 2016.11.19 937
419 죽음 앞에 선 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눅23:39~43)_2016-11-27(설교전문) file 갈렙 2016.11.27 570
418 하나님의 오랜 기다림(눅1:26~35)_2016-12-04(설교전문) file 갈렙 2016.12.04 618
417 누가 과연 메시야를 경배할 수 있을까(마2:1~12)_2016-12-11(설교전문) file 갈렙 2016.12.11 504
» 왜 갓난아기가 표적인가?(눅2:8~12)_2016-12-18(설교전문) file 갈렙 2016.12.18 699
415 마리아가 낳을 아기는 누군가?(눅1:30~33)_2016-12-25(설교전문) file 갈렙 2016.12.25 652
414 왜 우리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계3:22)_2017-01-01(설교전문) file 갈렙 2017.01.02 676
413 우리는 어떻게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가?(신약346면)_2017-01-08(설교전문) file 갈렙 2017.01.08 400
412 여호와를 알되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하는 이유(호6:1~3)_2017-01-15(설교전문) file 갈렙 2017.01.15 883
411 회심의 핵심은 무엇인가?(살전1:6~10)_2017-01-22(설교전문) file 갈렙 2017.01.22 995
410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의 차이(고전12:1~3)_2017-01-29(설교전문) file 갈렙 2017.01.28 538
409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요8:31~32,44~47)_2017-02-05(설교전문) file 갈렙 2017.02.05 638
408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할 수 있나(요11;39~44)_2017-02-12(설교전문) file 갈렙 2017.02.12 415
407 칭의(稱義), 과연 믿음으로만 얻는 것인가?(눅18:9~14)_2017-02-19(설교전문) file 갈렙 2017.02.19 417
406 믿고 회개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마21:28~32)_2017-02-26(설교전문) file 갈렙 2017.02.26 416
405 나만의 간증을 만들라(행5;12과26~32)_2017-03-12(설교전문) file 갈렙 2017.03.11 388
404 나만의 간증을 만드는 실제적인 방법(행4:13~21)_2017-03-19(설교전문) file 갈렙 2017.03.19 371
403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는 실제적인 능력은 무엇인가?(엡3:14~19)_2017-03-26(설교전문) file 갈렙 2017.03.26 385
402 내 안에 사는 이를 왜 그리스도라고 했을까?(갈2:19~20)_+2017-04-02 file 갈렙 2017.04.02 71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7 Next
/ 27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