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의 차이(고전12:1~3) [일시] 2017.01.29. 주일낮예배 [찬송] 9장 하늘에 가득 찬, 406장 곤한 내 영혼,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PW: 신앙, MIW: 분별하는 T.S: 신앙이란 영적인 것이라고 해도 분별하여 수용하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어떻게 설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설명절을 맞이하여 고향을 방문하고 이어서 웃어른께 새 해 인사를 올리는 것은 좋은 풍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언젠부턴가 설명절이 조상제사와 결합하여 조상에게 제사드리는 것이 설명절을 지키는 것의 핵심으로 탈바꿈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그것은 조선시대였습니다. 조선 500년동안 우리 민족은 설이나 추석에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늘날에는 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것이 설을 쇠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는지 모르지만 그대로 지켜 행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런 것과도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새 해를 맞이하여 잉어에게 독한 술을 먹인 다음에 놓아주는 행사가 있습니다. 그러자 어떤 단체에서 동물학대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왜 잉어의 입 속에다 독한 술을 먹여 술이 몸부림을 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 속에는 그렇게 하면 자신에게 찾아올 액운이 떠나간다고 믿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잉어 입 속에다가 독한 술을 먹여 그 잉어를 놓아준다고 해서 정말 한 해의 액뗌이 되는 것인가요?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새 해를 맞이하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면 조상이 후손들에게 복을 준다고 믿고는 설이 되면 조상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우상숭배의 어리석음과 아울러 성령을 체험하는 일에 신앙고백이 얼마다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영적인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더 중요하도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어떻게 되어서 영적인 일들에 대해서 무조건 수용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인가요?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온 영적인 일이라면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떠나서 무조건 따라 해야 되는 것인 아닌가요?
왜 사도바울은 수많은 영적인 은사들보다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더 중요하다고 언급하는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 우리에게도 조상제사는 우리 민족의 고유의 전통이요 관습이니까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면서 차례상 앞에서 절을 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55년경 바울이 3차전도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고린도교회를 위해 쓴 첫 번째 편지입니다. 그때는 이미 고린도교회에 수많은 다양한 은사들이 나타나서 저마다 자기가 받은 은사가 최고라고 자랑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언의 은사가 최고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방언의 은사가 최고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러자 바울은 이때에 고린도교회가 겪고 있는 영적인 은사들에 대한 혼란에 대해 지침을 일러줄 필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것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여지 말고, 또한 남들이 하니까 나도 따라 해서도 아니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령한 은사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예수께서 주님 곧 하나님이라고 하는 신앙고백이라고 말했습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영적인 은사를 분별해보고 수용하라는 말을 들어도 비웃을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나면 무슨 신령한 은사를 받은 것처럼 착각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어떤 영적인 현상이 나타나든 그것을 자랑하고 떠벌리려고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신앙고백보다도 성령의 은사를 최고로 여깁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권면의 편지를 받고는 믿음으로 영적인 은사들라도 분별해서 수용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은사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신앙고백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것에 대해서 이제는 분별해보고 수용하려고 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더욱 더 큰 분별력을 주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고린도교회가 왜 영적인 것에 대해서 아무런 저항없이 무조건 수용하려 했는지를 살펴보고, 그 위험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 고린도는 어떤 지역이었으며, 고린도교회의 영적 상태는 어떠했는가?
고린도는 B.C.27년에 아가야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고린도는 무역으로 부자가 된 인구 75만명의 거대 항구도시입니다. 그러니 이 도시는 무엇보다도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고, 항구도신인 만큼 우상숭배와 퇴폐적인 술과 밤문화 그리고 음행이 성행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도시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습니다. 가난해야 주님도 의지하는데, 그들은 부자였고 그리고 음행을 허용하는 도시였으니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던 어느날 그곳에 바울전도팀이 도착했습니다. 마침 천막만드는 동업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 전도한 끝에 여러 명의 유대인들과 많은 이방인들을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환상중에 나타나서 “이 도시에 내 백성이 많으니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행18:9)”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1년 6개월간 그곳에 체류하면서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어떤 다른 교회보다도 영적인 은사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왔는데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첫째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자신은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라고 주장하면서 분열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소식이었고, 둘째는 돈과 여자 때문에 음란과 소송, 이혼문제가 교회 안에서도 대두되었다는 소식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셋째, 다양한 은사들로 인하여 자기들이 가진 은사만이 최고라고 우기는 자들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에게 바른 지침을 주고자, 편지를 써보냈는데, 오늘본문 말씀은 그것들 중에서 세 번째 문제에 대한 바울의 해결책입니다.
나. 영적인 것들에 대한 바울의 권면은 무엇이었나?
바울은 이제 고전12장부터 14장까지 각종 은사에 대한 수용과 활용에 대해서 권면하였습니다. 첫째로, 은사는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은사라고 해도 그것을 개인의 자랑거리로 떠벌릴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서두에 은사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 1절입니다.
고전12:1 형제들아 신령한(영적인) 것들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고린도교인들이 은사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들이 영적인 은사들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 있었음을 뜻합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문지가 고린도교회를 혼란에 몰아넣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선적으로 알아야할 2가지 사항을 말했습니다.
첫째, 영적인 것들이라고 해서 아무 분별없이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면, 그들이 이전에 이방인이었을 때에 말못하는 우상이 끄는 그대로 끌려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고전12:2).
고전12: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이 말씀은 원문 그대로 다시 번역해 보겠습니다.
고전12:2 너희는 알아왔다. 너희가 이방인들이었을 때 말못하는 우상들에게 너희가 이끌리고 있을 때마다 게속해서 이끌려 다녔다는 것을
그들이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그들은 아무런 생각없이 그들의 부모가 하는대로 우상숭배를 행했는데 실은 다 허망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섬기던 우상에 대해 바울은 정확하게 짚어주었습니다. ‘말 못하는 우상’ 이것은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우상들은 다 사람들이 손으로 깎아 만든 조형물이거나 부어만든 조형물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얼굴과 입을 지녔어도 말을 하지 못하며, 사람들이 그것에 복을 달라고 빌어봤자 아무 응답을 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숭배하는 자도 마찬가지로 말을 잘 안 한다는 것입니다. 해서, 어느 누구도 왜 거기에서 음식을 차려놓아야 하는지, 왜 거기에서다 절을 해야 하는지, 왜 거기에다가 향을 피워야 하는지를 물어보지도 않았고 자기의 부모들이 하는데로 그냥 따라했다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도 사람들이 만든 우상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시115:4-8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8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그런데 지금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가지 은사에 대해서도 아무런 분별없이 무조건 신령한 은사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따라가거나 그것을 추앙하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둘째, 고린도교회성도들이 은사에 대해 꼭 알아야 할 사항은,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은사를 보고 추종하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자신의 입술을 사용해 예수님에 대해 신앙고백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고전12:3).
왜냐하면 성령안에 있는 자는 예수는 저주받을 자라고 결코 말하지 않기 때문이요, 오직 예수님만이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신령한 은사를 많이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자기를 천국으로 이끌어주지 못하지만, 내가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신앙고백은 결국 나를 천국으로 인도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말)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말)할 수 없느니라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당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두 부류였습니다. 하나는 유대인인 그리스도인이요 또 하나는 이방인들인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 유대인들은 많지 않았고, 이방인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고린도의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의 유무에 따라 그냥 유대인과 유대인인 그리스도인으로 갈리었습니다. 그때 기준은 2가지 선언이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저주받을 자다. 둘째, 오직 여호와만이 주님이시다. 만약 이것을 고백하면 전통적인 유대인이었고, 이것을 하지 못하는 자는 유대인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또한 이방인인지 아니면 이방인인 고린도교회 성도인지도 2가지 질문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즉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저주받을 자다. 둘째, 로마황제만이 주님이시다. 하지만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자는 이렇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찌 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저주받을 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그들은 오직 예수님에게 이런 고백을 드렸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고백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은사가 주어지지 않아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르게 신앙고백을 하는 자는 결국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성령이 하시는 일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 대해 주체적으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도 사실 이와 비슷합니다.
첫째, 조상신에게 음식을 잘 차려서 대접하고 절을 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물을 수도 없고 물어서도 아니 되는 것이 전통이나 관습처럼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의가 밝은 민족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설명절이 찾아오면 자기조상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면서 차례상에 음식을 차려놓고 가족대로 절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자식들은 1차적으로 이 정도는 물어볼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 우리가 절을 하면 누가 와서 절을 받나요?” “응, 죽은 너희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조상들이 와서 절을 받는단다.” “그럼, 음식은 왜 차려놓나요?” “응, 그것은 여기 오는 조상들이 이 음식을 드시고 우리 후손들에게 복을 주시라고 그러는 거지.”
그러면 이렇게 더 질문했어야 했습니다.
“그럼, 아버지, 여기오는 조상들은 평소 때에는 어디에 머무르고 계신가요?”, “이분들이 명절 때만 되면 음식잡수시러 오신다는데, 그럼, 평소 때에는 누가 음식을 차려 주나요? 혹시 굶고 계시나요?”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돌아올 수 없는 저승으로 갔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명절 때가 되면 이곳에 나타날 수 있나요?” “조상들을 잘 섬겨야 복을 받는다는데, 3대이상 조상들에게는 왜 제사하지 않나요? 그들은 너무 늙어서 굶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요?”
하지만 아무도 그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아니 그러한 질문을 던지면, 불경스러운 말이라고 야단을 칩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하는 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즉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잘 말해주지도 않으며, 절을 받는 실체에 대해서 물으면 말을 못하게 막아버린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그런 것은 묻지도 말라고 합니다. 무조건 절을 해야 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로, 한 번 죽으면 다시 올 수 없는 존재를 두고 차례상을 차려놓고 거기에 절을 하여서 복을 빌기보다는 내가 복을 빌면 복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누군지 정확히 알아보고 섬겨야 하는데 그렇게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조상들이 그날 와서 복을 주고간다고 한다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상을 차려서 복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람이 한 번 죽으면 다시 올 수가 없는 곳으로 가버리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데, 왜 거기에 음식을 차려놓고 왜 거기에 절을 하는 것입니까? 사람은 죽은 즉시 자신의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서 다시는 못 오는 곳으로 가는데, 어찌 그날 그곳에 와서 음식을 잡수고 복을 준다고 하는 것입니까? 사실 “잔말 말고 절이나 해!”라고 윽박지르고 강요한다는 것은 자기도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존재에 자신의 영혼을 바치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방인들이나 우상숭배자들은 확실히 모르는 것을 모르면서도 섬기는 자들입니다. 자기조상때부터 그렇게 했으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을 할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조상에게 절을 하는 것은 조선시대에 비로소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중국에서 들어온 문화입니다. 먼저는 왕이 종묘사직에 그렇게 했고 이어서 양반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구한만 양반과 상놈신분이 철폐되자, 자신이 양반 가문인 것을 표시하려고 조상제사를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더 열심히 드렸습니다. 조상제사는 우리 민족 고유의 풍속이 아니었습니다. 5천년 역사 가운데 조선시대 500년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슨 해를 입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서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영적 실제와 영적인 것들에 대해 분명하게 일러주었습니다.
첫째, 무릇 이방인의 제사는 죽은 조상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전10:20-21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그렇습니다. 제사제도는 2천년전에 이미 골고다 언덕에서 끝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드리는 모든 제사는 다 귀신들에게 하는 것이요, 귀신들이 와서 받는 것입니다. 어떤 귀신들은 조상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제사를 받기까지 합니다.
둘째, 이 세상은 하나님 이외에 결코 신이 하나도 없는데,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들이 하나님의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고전8:4-6 4 그러므로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 이외에 모든 것들은 다 피조물입니다. 하나님만이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이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다른 것들은 다 인간의 종교적 본능이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요, 조상신이라는 것도 다 타락한 천사들이 하나님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오늘날에 들어와서는 귀신들이 성령의 은사를 가장하여 성도들을 농락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은사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다 성령의 은사로 무조건 수용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것이 거룩한 영으로부터 온 은사인지를 분별해보아야 합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보게 하는 것입니다. 은사가 나타나기 되면, “이, 저주받은 귀신아, 내게서 떠나가라.” 그리고 이렇게 더불어 신앙고백을 해보게 합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 외에 모든 보이지 않는 귀신들은 내게서 떠나가라.!”
4. 영적 법칙
신앙이란 남이 하는 것을 무턱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한 채 귀신에게 절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성령의 은사라고 해도 분별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예수님이 누군지를 확실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예수님을 저주받을 자라고 말하지 않는 믿음의 결단이자 태도입니다.
신앙이란 예수님만이 나의 주님이요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때부터 영적인 은사들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디서든지 누구 앞에서든지 예수님만이 자신의 구세주이며 구원자인 것을 말하기를 기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첫째, 헛된 우상숭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은사를 최고로 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넷째, 신앙고백이야말로 성령의 가장 큰 선물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우리들도 영적인 은사들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성령 안에서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과 회개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이들과 같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2)결단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이전에는 모르고 우상숭배를 했다면 오늘부터 중지하시길 바랍니다. 골고다 언덕의 제사를 끝으로 제사는 끝났습니다. 더 이상 제사와 같은 의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사드리면 오히려 귀신들이 와서 받습니다.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도 예배라는 형식은 취하고 있지만, 죽은 자들을 위해 드리는 제사의 변형이므로 귀신들이 와서 받습니다. 절대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이러한 우상숭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징계가 끝나지 않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무조건 신앙의 선배들이 그렇게 행해왔다고 해서, 모든 교회에서 하고 있다고 해서 따라 해서는 아니 됩니다. 또한 영적인 은사를 중요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이 더 중요함을 깨닫고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나. 결단의 축복
만약 우리도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는 분별력을 가지고수용하고, 어떠한 우상숭배행위를 거절하면서, 예수님에 대해 굳건하고 변치않는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면 첫째, 우리도 어리석은 우상숭배행위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우상숭배로 말미암은 저주로부터 해방받게 될 것입니다. 셋째, 은사의 유혹과 미혹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넷째, 바른 신앙고백과 회개를 통해 궁극적으로 천국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우상숭배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무엇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과 회개가 구원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전통이나 관례라고 해서 무조건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은사가 가진 위험성과 한계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남들만 보고 따라가는 신앙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깨닫고 주체적인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결코 우상숭배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무턱대로 믿는 신앙을 따라가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믿어도 물어보고 알아보고 믿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바른 신앙고백에 집중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은사의 수용과 사용에 주의하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우상숭배와 가짜 은사를 무조건 따라가도록 조장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상과 귀신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분별력이 임할지어다. 신앙고백을 굳건히 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물질과 음란의 도시에 세워진 고린도교회는 다양한 은사가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많은 혼란도 겼어야 했구나.
2. 우상숭배자들은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로구나.
3. 신령한 은사보다는 성령 안에서의 신앙고백이 더 중요하구나.
4. 우상숭배는 무턱대고 그냥 따라서 행함으로 후손에게 물려지고 있었구나.
5. 성령의 은사라고 해도 분별해서 받아들여야 하는구나.
6. 사람은 은사가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과 회개를 통해서 구원얻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