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주님은 교회가 아닌 교회를 왜 붙드시고 있는가?(계3:19~20) [일시] 2017년 6월 18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찬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찬298장 속죄하신 구세주를, 찬535장 주 예수 대문 밖에 PW: 믿음, MIW: 열심, 회개 T.S: 믿음이란 열심을 내고 회개하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아담의 타락이후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얼마나 파괴되었을까요? 완전히 파괴 되었을까요 아니면 파괴되기는 했지만 조금이라도 남아있을까요? 중세초기의 신학자였던 어거스틴은 타락이후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고 말하였습니다. 한편 종교개혁자 루터는 인간에게 만약 자유의지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의지나 마귀의 의지에 종속되는 노예의지(奴隸意志)일 뿐 인간 스스로 자유롭게 자기의 의지를 사용할 의지는 없다고 했습니다. 정말, 인간은 더 이상 자유의지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서 절대 선을 행할 수 없으며 구원을 위하여 그 어떤 것을 행할 수 없을까요?
오늘 우리는 지난주 서머나교회와는 정반대에 속한 또 하나의 교회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서머나교회는 핍박받는 교회였지만 서머나 교회는 책망 하나 전혀 없었습니다. 서머나교회는 오직 칭찬만 있었던 교회입니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라오디게아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단 한 건의 칭찬도 없습니다. 그리고 오직 책망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에게 예수님께서 직접 들려주신 말씀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이미 성도들의 마음 문 밖에서 오랫동안 서 계셔왔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구원을 받기까지 인간에게 남아있는 자유의지가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왜 교회가 교회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그 교회를 포기하지도 않으시고 그 교회를 붙들고 계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연다면 언제라도 그들을 도와주시겠다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구원받을 영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러면 그냥 버리시지 왜 주님은 그들을 붙들고 계시는 것인가요?
교회구성원 전체가 아무도 영적인 일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데, 왜 주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는가요?
신앙이 뜨뜻미지근하여 주님이 수만 번 노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반응이 없었다면 그때를 내버려 두셔야지, 왜 주님께서는 또 문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것인가요?
지금까지 그들이 어떻게 했던 것을 돌이켜볼 때에 그들이 괘씸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다면, 당장 그들을 심판해버리시지 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한 번 기회를 더 주시려 하시는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만약 우리에게 라오디게아 성도들처럼 신앙이 미지근한 상태에 있는데도, 누군가에 나에게 “그래도 기다려주어라, 그래도 붙들어주어라”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95년경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갇혀 있었을 때, 하늘의 일곱금촛대 사이에서 거니시던 예수께서 소아시아에 위치한 일곱교회들 가운데 하나인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편지를 써보내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럼에도 주님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그들 자신의 마음문을 열 때까지 계속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남아있는 자유의지로서 열심을 내어서 회개할 것을 기다리십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 사람을 보게 되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전혀 무반응으로 나오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해 주고 싶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영적인 말씀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를 그냥 내처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아무리 좋은 성경말씀을 들려주어도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미지근한 자에게는, 영적인 비밀을 알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회개하고 돌아와 열정적으로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마음 문밖에서 계속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라오디게아 교회가 보인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면, 토하고 싶어지는 교회임에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그 교회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교회를 내처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그 교회를 어찌하든지 살려내기 위해 문밖에서 그날도 줄곧 계속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자, 그렇다면 라오디게아교회는 어떤 교회이길래 이런 상태에 처해 있게 된 것일까요?
가. 라오디게아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이 교회는 부자동네에 위치한 교회여서인지 첫째, 물질적으로 전혀 어려움이 없는 넉넉한 교회였습니다.
또한 둘째로, 또한 다른 교회들이 교회에서 겪고 있는 문제들이 거의 없던 교회였습니다. 첫째, 그 교회에게는 이단이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교회는 당시 니골라당이나 이세벨이단이 들어와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었습니다. 둘째, 그곳에는 유대인들이 살지 않아 유대인들로부터 핍박도 받지도 않았습니다. 셋째, 이 도시 자체가 부자도시였기에, 로마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황제숭배거부로 인한 핍박도 없었습니다. 고로 우상숭배 때문에 감옥에 갇히거나 사자밥이 되거나 재산을 몰수당하는 등의 경제적인 고난을 당하지도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셋째로, 영적인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들려주어도 말씀을 배우려고 하지 않았고, 천국에 대한 소망의 말씀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것에 뜨뜻미지근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교회에 대한 주님의 평가는 어떠했습니까? 비참하다고 했습니다. 가련했던 것입니다. 부끄러운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에 대한 주님의 평가를 들어봅시다.
계3:15-17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이 말씀을 오늘날의 말로 표현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복음사랑방모임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바른 구원관을 갖자고 해도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이 민족의 장래와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 기도하자고 해도 기도하러 나오지 않습니다. 주일오후찬양예배를 통해서 좀 더 깊은 메시지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바로 세우고 견고케 하라고 해도 도무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오늘을 살아가는데 별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과도 일치합니다.
마11: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그런데, 주님은 그 교회가 실상 어떻다고 말씀하십니까? 물질적으로는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주님의 눈에 보기에는 그들이 곤고하며 가련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가난한지 그대로 놔두면 영의 생명이 곧 끝날 지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과 귀는 감기어서 영적인 메시지를 들려주어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영적 분별력도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들의 영적 상태가 거의 발가벗겨진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놔두면 결국 죽게 될 것입니다.
나. 주님은 왜 라오디게아교회를 붙들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주님께서도 빨리 그 교회를 정리해야 되지 않을까요? 에베소교회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 교회가 첫사랑을 잃어버렸다고 꾸중하시면서, 만약 회개하지 아니하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겨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뜨뜻미지근한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해서는 엄포를 놓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아니 교회가 더 이상 교회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어, 그러다가는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하나도 없게 생겼는데, 왜 그 교회를 붙잡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라오디게아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때까지도 계속해서 붙들고 계시는 것입니까? 그러면 아예 그 교회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그 교회를 붙들고 계시는 이유는 대체 무엇입니까?
첫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아직까지 교회를 떠난 상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교회에 출석하여 말씀을 듣고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들이 아직 죽음에 넘겨진 상태는 아니므로, 그들이 회개하고 충성할 기회가 그들에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변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만약 그들이 회개하여 변화되기만 하면 그들이 가진 자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더 놀라운 일들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더 큰 일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3가지를 종합해서 말하면, 그들이 가진 신앙의 불이 아직까지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기 때문이요, 그들이 가진 능력이 그리스도께 붙들리기만 하면 그들도 큰 일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끝나기 전까지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끝날 때까지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들의 눈에 보기에 신앙적인 열정도 없고, 하늘의 소망도 없어 보이지만 언젠가 그들이 변화되기만 하면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큰 일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쉽게 포기해서는 아니 됩니다. 쉽게 놓아버려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라오디게아 성도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변화받을 수는 가능성이 있기에, 그들을 향해서 2가지를 주문하셨고, 한 가지 행동을 예수께서 계속해서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19절에서 20절에 나옵니다.
계3:19-20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먼저, 2가지 처방책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첫째는 영적인 일에 열심을 내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돌이켜 잘못된 것은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열심을 내라”는 말씀은 “젤류에” 동사의 명령법, 현재, 능동태 구문입니다. 현재 명령법은 지속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것이어서, “(계속해서) 열심을 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라”는 말씀은 “메타노에오” 동사의 명령법, 과거, 능동태 구문입니다. 부정과거 명령법은 시급함을 동반하는 특별한 행위를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단번에 결정적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단번에 결정적으로 회개하고 계속해서 열심을 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한 가지 행동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오늘도 변함없이 그들의 마음문 밖에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맞아들이기까지 주님은 쭉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셔왔습니다. “서서”라는 말씀은 “히스테미” 동사의 직설법, 완료, 능동태 구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날도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문열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그림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언제부터 거기에서 그렇게 기다리고 계셨을까요?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워 기다리고 계셨던 것일까요?
우리는 이 모습을 통해서 인간이 비록 타락했어도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주님을 영접하고 그분을 주인으로 모셔들임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정말 완전 타락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주님이 이렇게 기다리시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기다리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아무리 뜨뜻미지근하여 물에 술탄 듯 물에 술탄 듯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사용해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기를 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만약 문을 열어준다면, 그때부터는 주님께서 그들의 삶에 들어오셔서, 다시 말해 전능자께서 들어오셔서 그들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다시 19~20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계3:19-20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렇습니다. 첫째, “네가 (계속해서 쉬지 말고) 열심을 내라”는 말씀을 통해서, 이제는 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되면 즉시 자신의 자유의지를 움직여서 그것을 계속해서 실천으로 옮겨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한 번으로 끝내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도해보라고 하십니다. 넘어지더라도 해보라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서 해 보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주님이 바라시는 것을 해 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도와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단번에 확실히 돌이켜) 회개하라”는 말씀을 통해서, 자신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고 판단되면 단호하게 그것을 끊어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흥취와 즐거움이 내 영적 진보에 방해가 된다면 과감히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술과 담배가 그러한 요소라면 오늘부터 당장 끊어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잘못된 행위가 우리의 영적 진보를 방해한다면 그것을 단호하게 끊어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게으름이라면 게으름을 끊어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일예배를 방해하는 것이라면 그 방해요소를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젊은이들은 컴퓨터일 수도 있습니다. 자매들은 SNS일 수 있습니다. 만약 단호하게 끊어버리지 못하면 우리의 의지는 그것에게 끌려다니는 노예의지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자신의 영혼을 위한 삶에 더 충실하기를 원하십니다. 라오디게아성도들이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족한 삶을 살았어도 영적으로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천국에 들어가서 얻을 것을 준비함이 턱없이 작았습니다. 기도가 부족했습니다. 전도가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앞에 충성봉사한느 것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태평했습니다. 물질적으로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신앙마저 잃어버려 결국 멸망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러한 삶을 고치라고 명령하십니다. 만약 혼자 할 수 없다면, 얼마나든지 전능자이신 주님을 모셔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에게 전능자께서 들어가셔서 일하시면 거뜬히 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변화, 주님께서 원하시는 쪽으로의 바람직한 변화는 우리의 주도권을 우리 자신에게서 주님께로 옮길 때에 훨씬 더 수월해집니다. 우리의 시간의 주도권을 주님께로 옮기도, 우리의 물질의 주도권을 주님께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서 우리에 대한 희망이 생명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새롭게 탄생하여 주님 앞에 충성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돌이켜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될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우리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영적인 것에 열심을 내고 잘못된 것을 돌이켜 회개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이제까지 실패하고 살았던 나, 내 인생의 주인이 나였던 인생에서, 이제는 인생의 주인을 이제는 주님으로 바꾸어, 이제는 주님께 내 인생의 주도권을 넘겨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를 통하여 일하시도록 그분에게 내 삶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계속해서 영적인 것에 열심을 내고, 잘못된 것을 돌이켜 끊어버리고 그리고 주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들인 자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첫째, 영적인 것에 부자가 될 것입니다. 즉 천국에서 위대한 자라 칭함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회개를 통해 자신에게 줄줄이 붙어다닌 저주가 다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귀신에게 시달리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는 것에 자신의 인생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가짜이자 잠깐 보였다가 사라지는 것에서 속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일에 열심을 내고, 잘못된 것을 날마다 회개하게 되면 우리의 삶이 변화될 것입니다. 하늘에서 위대한 자라고 칭함받게 될 것입니다. 내 인생을 괴롭히던 수많은 저주들이 다 떠나게 될 것입니다.
2)결단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뜨뜻미지근하여 신앙에 열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내버리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계셨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이 변화되어 자신의 영혼을 위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그들에게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아직까지 계속해서 충성할 기회가 남아있고, 단호하게 잘못된 것을 끊어버림으로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만들어갈 기회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 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찾아봅니다.
계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우리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을 3가지로 소개합니다. 첫째, “나는 아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말은 무슨 뜻입니까? “나도 그렇게 되어질 것을 소망하고 믿습니다”라고 믿고 나가면, 주님은 그렇게 되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나는 충성되고 곧 신실하고 참된 증인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실행될 것이니 절대 의심하지 말고, 너의 자유의지를 이제는 잘못된 관행을 끊는데 사용하고, 주님의 뜻을 성취하는데 내어준다면 틀림없이 그대로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셋째, “나는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전까지는 너희들이 이 세상의 물질의 풍요로움 가운데 살아왔지만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거지로 만드는 일이었으니, 이제부터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도려내고, 주님이 바라시는 영적인 것에 열심을 내면, 새 창조를 시작하는 주 님께서 이루실 것이다”는 뜻입니다.
나. 결단의 축복
그러자 그들은 정말 계속해서 열심을 내고 단번에 돌이켜 회개하고 주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들임으로 새 창조의 역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결국 어떤 복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천국에서 권세를 누리고 사는 자 곧 왕노릇하는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뜨뜻미지근 신앙이라도 할지라도 변화되기만 하면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 중에 이런 자가 나오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전에 충성된 자요 회개하던 자는 그대로 충성되게 살아가시고 회개하십시오. 하지만 이전에는 그와 반대로 게을렀고 돌이키지 않았던 자는 이제 달라지십시오. 누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남아있는 자유의지를 발동해서 하늘의 영적인 축복을 향해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한 번 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죽을 때까지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을 단호하게 즉시 잘라내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가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 보좌에 앉아서 다스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주님은 뜨뜻미지근한 교회라도 왜 그 교회를 붙드시고 있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뜨뜻미지근한 성도라도 그의 앞에는 주님 앞에 회개하고 충성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도가 비록 뜨뜻미지근해도 회개하고 변화되기만 하면 새 창조의 역사를 이루고 하늘에서 왕노릇할 자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은 어떠한 사람일지라도 강제하지 않으시며, 그가 자발적으로 자신을 내어줄 때까지 기다리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의 자유의지는 영적인 것에는 열심을 내고, 잘못한 것은 회개하는 데에 쓰라고 주신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인생의 새로운 변화는 나의 주도권을 주님께로 옮길 때에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잘못된 것은 즉각 단호하게 고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영적 일에는 계속 열심을 내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자유의지를 내 영혼을 위해 사용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자유의지를 죄를 끊는데 사용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자유의지를 충성하는 일에 사용하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영적인 일을 게으르게 조장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자유의지를 죄짓는데만 사용하게 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열심을 내고 회개할지어다. 내 인생의 주도권을 주님께 드릴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인간의 자유의지는 비록 파괴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회개하고 열심을 내는 데에 사용할 수 있구나.
2. 아무리 허물 많은 성도라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새 창조의 역사를 이룰 수가 있구나.
3. 영적인 부자로 인정받는 자가 하늘에서 참된 부자라 일컬음을 받게 되는구나.
4. 인생의 주도권이 주님께로 넘어갈 때에 전능자께서 쓰시는 새 창조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구나.
5. 주님은 모든 인생의 주관자이지만, 결코 강제하지 않으시며, 마음 문 열기를 기다리고 계시는구나.
6. 끝났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서는 그날이 바로 끝나는 날이니만큼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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