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내 기도, 너무 얌전하지 아니한가?(눅11:5~13) [일시] 2017년 7월 30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찬33장 영광스런 주를 보라. 찬295장 큰 죄에 빠진 나를, 찬361장 기도하는 이 시간 PW: 기도, MIW: 끈질기게 T.S: 기도란 악착같이 끈질기게 집요하리만큼 강청하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늘 기도하기에 힘을 썼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시험 즉 유혹에 들지 않도록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사탄은 결코 쉬지 않고 늘 밀까부르듯 우리를 유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기도에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때에 어떻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도바울은 살전 5:17에서 “쉬지 말고 기도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이것입니다.
마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그렇습니다.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예수께서는 그냥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 될 것을 가지고, 왜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삼중적으로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리고 이 명령법구문을 현재 명령법을 사용하여, 한 번만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구하고, 계속해서 찾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오늘은 예수님의 기도에 관한 삼중명령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관한 말씀을 우리가 함께 나눌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름하여, ‘강청하는 벗의 비유’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관한 말씀을 상당히 많이 말씀하셨는데, 그중에서 기도에 관한 비유는 딱 세 번만 말씀하셨습니다. 그중 첫 번째 비유가 바로 “강청하는 벗의 비유(눅11:5~8)”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비유는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데, 두 번째 비유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눅18:1~8)”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비유(눅18:9~14)”입니다. 이처럼 누가복음은 기도에 관한 비유들이 세 가지 나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누가복음서는 기도의 복음서라고도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말씀하신 기도에 관한 비유인 강청하는 벗의 비유는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강청하는 기도란 어떤 기도를 가리키며, 이 기도가 왜 필요한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기도의 비밀을 풀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한밤중에 찾아온 벗을 위해 이웃집 벗의 떡을 빌리려하는데 끈질기게 요청함으로 얻게 된다는 예수님의 비유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미 문을 잠근 채 온 식구가 침소에 누워있고, 불도 꺼진 상태인데도, 이 친구는 어떻게 되어서 이웃집에 가서 떡을 달라고 문을 두드릴 수가 있었던 것인가요?
이 사람은 파렴치한 사람이 아닙니까? 이웃집 친구에 미안하지도 않는 것인가요? 그 집 말고, 아직도 불이 켜져있는 다른 집으로 가야 하지 않는가요? 찾아온 친구를 아무리 먹이고 싶다고 해도 너무 늦은 밤에는 삼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대체 이 친구는 어떻게 되어서 실례를 무릎쓰고 이웃집 친구에게 찾아가 무례한 요구를 계속해서 청한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 나에게도 친한 친구가 찾아왔는데 그 친구를 대접할 음식이 없고 또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오직 이웃집에 가서 빌리는 것밖에 없을 때가 되면, 이 친구처럼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너무 실례가 되는 일이자 염치없는 행동인데도 그 친구가 음식을 줄 때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하자,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이후에, 어떻게 기도해야 응답받을 수 있는 기도인가를 설명해주기 위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비유는 한밤중에 찾아온 자신의 친구에게 음식을 주고자, 이미 잠들어있는 이웃집의 친구를 찾아가 떡 덩이를 빌리려 합니다. 그때 이웃집 친구가 이미 문이 닫힌 지는 오래되었고 가족과 함께 침소에 누웠기 때문에 친구됨을 인하여서는 주지 아니하겠지만, 그의 강청함을 인하여는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우선 오늘 본문 중 강청하는 비유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 헬라어 원문을 통해서 직역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구절씩 교독해보시겠습니다.
눅11:5~13
5 그리고 그가 그들을 향하여 말하였다. 너희들 중에 누가 친구를 가질 것인가? 그리고 한밤중에 그를 향하여 갈 것인가? 그리고 그에게 [단번에] 말하기를, “친구여, 세 덩이의 떡을 나에게 [단번에] 빌려주라.
6 친구가 나에게 길로부터 나를 향하여 왔다. 그런데 내가 그에게 먹일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7 저가 안에서 대답한 후에 말하기를, “나를 [계속해서] 괴롭게 하지 말라. 이미 문은 닫힌 상태로 있으며, 그리고 내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대 안으로 누워있다. 그러니 내가 일어난 후에 네게 줄 수가 없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만일 내가 그의 벗됨을 인하여는 일어난 후에 그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몰염치를 인하여는 일어난 후에 그가 필요로 하는만큼 그에게 줄 것이다.
4)문제발생원인
오늘 본문에는 이웃집 친구에게 음식을 빌리는 친구의 악착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친구가 이웃집에 음식을 구하러 간 시간은 결코 음식을 빌리기에 합당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5)문제 심리묘사
응답받는 기도가 무엇인지 모르면, 늦은 시간에 이웃집에 음식을 빌리러 가지 못합니다.
이웃에게 음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꼭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이웃집까지 간다 하더라도 감히 염치를 내려놓고 요구하지 못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면, 이웃집에 가서도 계속 노크할 수 없습니다.
이웃집에 가서 어찌하든지 음식을 얻어오겠다는 굳은 각오가 없다면, 집을 나설 수도 없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모처럼 여행 중에 자기집에 찾아온 친구를 위해 염치를 무릎 쓰고 이웃집에 가서 떡덩어리를 빌리려고 합니다.
설령 그렇게 하다가 이웃집 친구로부터 욕을 얻어먹고, 그 집에서 쫓겨난다 하더라도 모처럼 찾아온 친구를 위해 기꺼이 이웃집의 문을 두드리려 합니다.
가. 기도란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기도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가 있습니다. 내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지만 지금은 내게 없기 때문에, 그것을 주실 수 있는 존재에게 자신의 사정을 아뢴 후에 그것을 결국 얻어내는 것입니다. 이때 기도하는 대상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해 주실 수 있는 전능자이십니다.
창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계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그러므로 기도에는 2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기도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대상이 어떤 일이나 문제이든지 다 해결해줄 수 있는 전능자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둘째, 기도는 아뢰는 것만으로 끝마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얻을 때까지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께 아뢰는 것으로 끝내버리는 것은 ‘부탁’이지 결코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부탁이 아닙니다. 기도는 분명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그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절대적으로 믿어 그분으로부터 얻을 때에 비로소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나.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며, 강청하는 기도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전능자로부터 우리가 필요로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강청하는 벗의 비유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해야 요청한 것을 얻을 수 있는지에 관해 말씀해줍니다. 즉 응답받는 기도의 방법이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어떤 자가 결국에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강청기도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 비유에 대한 결론적인 말씀으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눅11:9-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강청기도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말씀은 한 번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계속해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모습’은 강청하는 기도자의 모습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 명령은 현재 명령법입니다.
헬라어에는 명령법으로서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하나는 현재명령법이고, 또 하나는 과거명령법입니다. 현재 명령법은 계속해서 어떤 행동을 하게 할 때에 사용하는 명령법입니다. 그리고 과거 명령법은 행하기는 하되, 단호하게,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결단력있게 하고, 단 번에 끝낼 각오로 하라는 명령법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처음 사랑을 버렸던 에베소교회에게 권고하는 주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여기는 ‘생각하라’는 단어는 명령법 현재구문이며, ‘회개하라’, 그리고 ‘처음행위를 가지라’는 명령은 명령법 과거구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생각해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회개하여 처음행위를 가지라는 명령은 단호하게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교회를 없애버리시겠다는 굳은 의지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비유에서 강청하는 친구는 이웃집 친구에게 어떻게 하고 있었습니까? 7절 말씀입니다.
눅11: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계속해서]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닫힌 채 있으며)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누워 있으니] 일어나(일어난 후에)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이웃집 친구는 자신을 더이상 괴롭게, 성가시게, 귀찮게 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이 명령법 역시 ‘현재 명령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친구가 와서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줍니다. 아마도 일어나서 불을 켜고 떡덩이를 줄 때까지 그 친구가 그렇게 문을 두드리면서 강청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웃집 친구는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다음구절을 보겠습니다.
눅1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일어난 후에)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일어난 후에) 그[의] 요구대로 주리라
그렇습니다. 이웃집 친구의 첫 번째 반응은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귀찮으니까, 번거로우니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었습니다. “이미 문은 닫아 놓은지 오래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이미 침소에 누워있다.” 등등의 말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가 떡 덩이를 빌려달라고 하는 것을 그칠 것 같지가 않아보였다는 것이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계속해서 요청하고 있었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웃집 친구는 그의 벗됨을 인하여서는 주지 않는다 하더라고, 그의 강청함을 인하여서는 줄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간청함’, 옛날 개역한글성경에서는 강청함이라고 나와있는데, 이 ‘간청함’이라는 말은 대체 어떤 뜻일까요?
이 단어는 ‘아나데이아’라는 단어로 나옵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단 한 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부정을 의미하는 접두어인 ‘아’라는 접두어에다가, ‘아이도스(염치, 수치)’라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수치를 모름, 염치가 없음, 뻔뻔스러움”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를 표준새번역에서는 “귀찮게 졸라댐”이라고 번역하였고, 한글KJV성경에서는 “끈질긴 간청”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문번역주석성경을 펴낸 고영민박사는 “끈질지게 졸라댐”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복역성경에서는 “염치없이 졸라댐”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친구는 이웃집 친구에게 빵을 빌려줄 때까지 염치도 잊은 채, 뻔뻔스러울만치 계속해서 졸라대었던 것입니다. 그 친구가 필요로 하는 빵을 얻을 때까지 그는 요구하는 것과 문을 두드리는 것을 그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청한 것을 즉시 주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웃집 친구라도 결국 그의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이러한 비유로 제자들에게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주신 것입니까? 너희가 진실로 기도하면 한 번 기도한다고 해도 그 기도를 들어준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왜 끈질기게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제자들이 응답받는 기도의 방법을 알고 기도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응답받는 기도의 방법에 대해서 주님께서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던 제자들에게 먼저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를 먼저 가르쳐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으로 남아 있습니다(눅11:2~4). 그리고 이어서 예수께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기도가 응답되는지 그 방법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강청하는 벗의 방법이 바로 응답받는 기도의 방법인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이 비유를 요약해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삼중간구의 기도방법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요청해야 하고, 계속해서 찾아야 하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응답받는 기도의 방법이었습니다.
다. 우리의 기도생활은 어떠한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기도생활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얻고자 하는 것 곧 여러분의 필요를 얼마나 요청해보았습니까?
우리에게 그동안 왜 기도응답이 없었습니까? 우리는 말씀을 믿어 영혼이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풍성한 삶, 복받는 삶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바로 기도라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 육신 때문에 한계로 가득찬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렇지만 한계가 없는 전능자께서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우리가 기도했다고 말은 하지만 기도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히 그냥 하나님께 ‘부탁’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들어주면 좋지만 들어주지 아니해도 별다른 불만이 없습니다. 그것은 부탁이지 결코 기도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여러분은 ‘부탁’만 하고 있는 것입니까? 왜 주님이 말씀하신 ‘기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이제는 달라지십시오. 강청하는 기도, 끈질기게 졸라대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얌전하게 기도해 보았는데도 응답받는 기도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기도의 방법을 고쳐야 합니다.
4. 영적 법칙
기도란 무엇입니까? 악착같이 끈질기게 집요하리만큼 전능자에게 강청하는 것입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내가 요청한 것에 대해 끝까지 끈질기게 요청하고 또 요청하여 그 결과를 얻어내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강청하던 친구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친구는 이웃집 친구로부터 떡덩어리를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여행중에 자기 집에 찾아온 귀한 친구를 그 밥에 음식으로 대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여행중에 그 집에 들어온 친구는 이 친구가 참 이웃간에도 대단한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있었구나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찌 이 늦은 밤인데도 빵을 구해올 수 있었을까 생각하고 음식을 먹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집 친구를 보십시오. 이 집 친구의 집요함은 어느 누구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간절한 요청은 그것을 받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그렇습니다. 우리도 한 번도 기도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마쳐서는 아니 됩니다. 결과가 우리의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기도를 멈추어서는 아니 됩니다. 내가 드린 기도의 결과를 우리가 얻기까지 우리는 기도를 멈추어서는 아니 됩니다. 계속해서 요청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2)결단
지난 주에 우리는 신섭장로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신섭장로님께서 어떻게 해서 세계적인 서적판매왕이 되었는지 들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생각하고 고객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내가 이 책을 판매하지 못하고 나온다면, 오직 시체가 되어 나오리라” 얼마나 굳은 각오입니까? 얼마나 대단한 각오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도 기도를 드릴 때에 이렇게 굳은 각오로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이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나는 절대로 이 기도를 멈추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귀찮아서라도 내 기도를 들어주실 때까지 나는 기도를 끝내지 아니하라”라고 각오해야 합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더욱더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예수께서 기도의 방법에 관하여 이 말씀 외에도 한 번 더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기도에 관한 비유를 딱 세 번 밖에 말씀하지 않았는데, 그 비유 가운데 두 번을 기도의 방법에 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강청하는 벗의 비유와 비슷합니다. 그것은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눅18:1~8)입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을 존중하지도 않는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됫에 한 과부가 늘 그 재판관에게 찾아가서 “나의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주십시오”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재판관이 한동안 그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그녀가 와서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그 재판관이 속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지만, 이 과부가 늘 나를 괴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어야겠다. 만약 내가 이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면 이 과부가 계속해서 와서 나를 못살게 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원한을 풀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8:6-8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새겨]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고 있]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기도도 믿음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봅시다. 왜 하나님께서는 즉시 즉시 우리가 비는 기도에 응답해주시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를 주님께서 ckwsrh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믿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믿음있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런 자에게만 놀라운 체험을 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로지 집중하고 기도하는 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 테스트에서 이기고 승리하십시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응답해주실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말로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기도의 방법입니다.
나. 결단의 축복
우리의 기도를 돌아봅시다. 그동안 어떻게 기도해왔습니까? 몇 번 기도하다가 쉬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내가 가진 죄가 너무 많기에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에 흥미가 없겠지하고 그만 포기해 버리셨습니까? 아니면, 내가 너무 이기적인 기도만 드려서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에 관심이 없으신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것 이런 것 따지면 무슨 기도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몰염치가 필요합니다. 끈질김이 필요합니다. 끈질지게 강청함이 기도응답의 비결이라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기도응답의 조건에 어떤 조건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주님은 범죄하지 않는 자들의 기도만 들으신다고 말씀하시지도 아니하셨고, 목회자의 기도만을 들으신다고 말씀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누가 되었든지 끈질기게 매달려 집요하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이 기도를 응답해주시지 않는다면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이 기도를 쉬지 않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기도하십시다.
아무리 마음 먹는다고 그대로 되지 아니합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마음 먹고 기도회에 나오십시오. 지난 주에는 날씨 더워서 그랬는지 8시50분이 되도록 기도하러 나온 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집사람이 통성으로 제목기도만 하고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다행히도 한 사람이 나와서 같이 기도하는 바람에 기도도 더 뜨겁게 할 수 있었고, 말씀도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기도하러 나오십시오. 집에서 TV본다고 우리의 형편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집에서 쉰다고 해서 우리의 건강의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기도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기도하는 자만이 전능자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가 4차원의 영적 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영적 세계에서 기뻐합니다. 기도하러 나오십시오. 방안에 있으면 기도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성전이 좋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결단하십시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기도하리라. 당면한 기도제목을 놓고 나도 기도해서 응답받으리라 결단하십시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기도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응답받는 기도의 방법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기도는 나의 필요를 요청하되, 응답을 받아야 비로소 기도가 기도로서 인정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기도에 응답받으려면 끈질기게 강청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내가 요청한 것을 얻을 때까지 기도는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염치도 잊은 채 뻔뻔스러울 만치 계속해서 조르는 것이 기도의 정석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끈질지게 기도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염치를 내려놓고 기도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응답이 떨어질 때까지 기도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주님이 가르쳐준 방법대로 기도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계속해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기도하는 정석을 바로 알지 못하게 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기도를 쉬게 만드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끝까지 끈질기게 기도할지어다. 기도결과를 얻을 때까지 쉬지말고 기도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예수님의 기도에 관한 비유는 총 세 가지 뿐인데, 그것들 중에서 두 가지는 기도의 방법에 관한 것이었구나.
2. 예수님이 가르쳐준 기도의 방법은 끈질기게 조르는 강청기도로구나.
3. 얌전한 기도가 기도의 정석이 아니라 강청기도가 기도의 정석이었구나.
4.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말씀은 끈질기게 응답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하라는 말씀이었구나.
5. 강청하는 벗의 비유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는 강청기도가 기도의 정석인 것을 알려주는 것이로구나.
6. 기도는 결과를 받아볼 때에 기도가 기도로서 인정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