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수께서 풍랑에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신 이유(8:23~27)

[일시] 201786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65장 내 영혼아 찬양하라, 432장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371장 구주여 광풍이 불어

PW: 믿음, MIW: 풍랑

T.S: 믿음이란 풍랑은 있어도 배가 전복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동남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에게 해마다 찾아오는 손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태풍입니다. 27도 이상의 고온다습한 바다수온이 찬 바람을 만나게 되면 둥글둥글 원을 그리며 도는데 점점 더 세력을 확장하면 그것이 태풍이 됩니다. 태풍은 중국 광둥어로 타이푼이라 불리는데, 일 년에 약30개정도의 태풍이 생성된다고 합니다. 주로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은 태평양 남서부에서 발생합니다. 우리나라를 지나가는 태풍은 7월에서 9월쯤에 지나가게 되는데, 연평균 약 3개 정도의 태풍이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동안 가장 많은 피해를 주었던 태풍으로는 사라, 매미, 루사 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엄청난 폭우와 거대한 바람 때문에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와 인명피를 안겨다주는 태풍은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요? 저도 농촌출신인지라 다 자란 과실들을 떨어뜨리고 농작물을 쓰러뜨리고, 엄청난 집중호우를 뿌려 재산과 인명피해를 주기 때문에 태풍이 없었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태풍은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수자원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태풍은 우리에게 큰 피해를 입힐 때도 있지만 늘 해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태풍은 중요한 수자원의 공급원으로서 물 부족 현상을 원천적으로 해소시켜 줄 뿐만 아니라, 저위도 지방에 축적된 대기 중의 에너지를 고위도 지방으로 운반하여 지구의 남북온도를 맞춰주고, 해수를 뒤섞어 순환시켜줌으로써 바다의 적조 현상을 소멸케 하고, 엄청난 양의 산소를 발생케 하여, 바다생물이 살아가게 하며, 지구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태풍은 대기의 폭군이지만, 동시에 유용한 면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가끔씩 이러한 폭풍이 몰아치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폭풍우는 태풍과는 달리 우리에게 전혀 유익이 없는 것일까요? 그래서 오늘은 폭풍을 만났던 제자들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만나게 될 거대한 폭풍 앞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주님을 따르겠다며 나선 제자들이 세찬 바람과 큰 파도를 만나자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자 잔잔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바다에서 세찬 바람과 거대한 파도를 만나 배가 뒤집히려 하는데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예수님 제자의 핵심인물들이었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사실 부름받기 이전부터 이 바다에서 고기잡던, 바다에서 잔뼈가 굻은 어부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왜 오늘따라 이렇게 갑자기 겁쟁이가 된 것일까요? 그것은 그날 그들이 맞이한 폭풍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이러한 인간이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폭풍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2)청중적 접근

만약 오늘 우리가 바다를 건너가는데, 이렇게 거대한 폭풍우를 만나 배가 뒤집히게 생겼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27년경 예수님의 공생애의 초기에, 갈릴리바다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의 갈릴리 바다, 수심이 지중해보다 212m나 낮으며, 수심 평균 60m, 그 둘레가 약 52Km가 되는 바다같은 민물호수. 그 생김새가 비파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긴네렛호수라고도 불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에도 가끔씩 폭풍이 몰아치곤 합니다. 갈릴리 호수는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저녁이 되면 찬 공기가 바다 위로 불어오면서 갑작스러운 돌풍이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또한 북쪽에 만년설로 뒤덮힌 헐몬산의 찬 기온이 남쪽의 뜨거운 광야의 기온과 만나서 엄청난 바람과 폭우를 동반할 때도 있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런데 바다에서 자라 잔뼈가 굵었던 어부들이 타고 있는 배이지만, 폭풍을 동반한 거대한 풍랑 때문에 배가 뒤집히려하자, 제자들마저 다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풍랑을 만나면 사람은 누구나 두려워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자신의 목숨이 경각간에 달리게 되면 제자들이라도 두려워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너무나 큰 위험요소를 만나면 비록 자기 곁에 예수님이 있다 하더라도 믿음 없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때였습니다. 제자들은 피곤하여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말씀합니다. 주여, 지금 당장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우리가 지금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셨습니다.

 

. 예수께서는 왜 제자들을 책망하셨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그 순간에 제자들에게 , 내가 잠든 사이에 너희들이 매우 놀랐던 모양이구나? 그러나 걱정하지 말거라.”하면서 그들을 위로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오히려 그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책망을 하신 것일까요?

만약 예수께서 자연만물의 창조주이시며 그것을 다스리시는 통치자이신 것을 그들로 하여금 알게 하려 했다면, 예수께서는 그 순간에 굳이 책망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예수께서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적으로는 위험에 빠져있는 제자들을 구출해주시기 위해서 바람과 파도를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와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신 이유가 다른 데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도 이미 자연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갖고 있는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바람과 폭풍우 앞에서 벌벌벌 떨고 있었기 때문에 책망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다음과 같은 2가지의 말씀을 말합니다.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 말씀만을 듣고 있노라면, “제자들은 참 바보였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믿음이 있었다면, 바람과 파도더러 잔잔하고 고요하라고 외치면 되었을 것을 그들이 역시 믿음이 작긴 작았구나. 그래서 책망을 받았구나!” 할 것입니다.

 

한편,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분들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수호천사들이 있기에 그 수호천사를 시켜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라고 명령하면 될 것을 그것을 모르고 당하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2가지 성경구절을 또 들이댑니다.

18: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2:13-15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정말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연만물을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천사들을 부릴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 때문에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인가요?

그렇다면,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도 바람과 파도가 일어나게 되었을 때에, 무조건 바람과 파도를 꾸짖었다면 믿음이 큰 자이고, 그것을 꾸짖지 못하고 그만 보고만 있었다면 믿음이 작은 자이로구나!”

 

.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바람과 파도를 꾸짖을 수 있을까?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바람과 파도를 꾸짖거나 수호천사를 시켜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사례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인간이 자연만물에게 명령할 수 있는지, 그때에는 또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 인간이 자연만물에게 명령한 경우는 언제였으며, 그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 성경 66권 안에는 사람이 자연만물에 대해서 명령한 사건이 몇 번이나 나올까요? 놀랍게도 단 한 번 나옵니다.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던 시기에 한 전쟁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때 기브온 거민들이 아모리의 다섯 왕들로부터 공격을 받자, 여호수아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기브온 거민들을 가서 도와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모리의 다섯왕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혀놓았으니 가서 그들을 무찌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 중 한 사람도 이스라엘을 당해낼 자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10:8). 그러자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밤새도록 올라가 아모리왕의 다섯방백을 쳤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큰 우박덩어리로 적들을 쳤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대승을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날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이 한 가지 더 있었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날 우박뿐만 아니라, 다른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침 일찍부터 아모리의 다섯왕들을 덮쳐 그들을 쳐부수려고 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많았기에,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목전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에 멈춰서라. 그리고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멈춰서라”(10:12)

그러자 태양이 멈춰섰고 달고 멈춰섰습니다. 언제까지 그랬습니까? 백성들이 대적들을 다 죽일 때까지 그랬습니다. 그래서 당시 위대한 업적을 기록한 야살의 책에는 태양이 하늘의 한 가운데서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내려가지를 않았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이 의미심장합니다.

10:14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음성)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 전에도 없었고 ()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싸우시기 때문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제외하고 어떤 사람이 자연만물에게 어떤 명령을 하여 순종케 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유일한 단 하나의 사건입니다. 그 전에도 없었고 그 후에도 없었던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와 달이 동시에 하늘에 머물러 서 있을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사람이 명령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해와 달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태양계를 멈추게 한 것이고, 태양계를 비롯한 전 우주를 멈추게 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여호수아가 태양과 달아 멈춰서라고 명령은 하였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말을 듣고 그대로 해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만물에게 우리가 명령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일하게 하는 것이지, 우리의 말의 권세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명령한다고 해서 자연만물이 내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시기 때문에 자연만물이 순종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약 우리 인간이 자연만물에게 명령할 수 있는 권한과 천사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니 그렇게 된다면 무슨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냥 명령하고 선포하면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사도바울처럼 뛰어난 제자도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단 한 번이라고 풍랑더러 잔잔하고 고요하라고 명령한 적이 있습니까? 사도 베드로의 경우를 봅시다. 그도 여러분 옥에 갇혔지만 단 한 번이라고 천사들에게 옥문을 열어젖히라고 명령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빠지우라해도 그렇게 된다는 것이나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자연만물이나 천사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말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연만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에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섭리대로 지금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태풍도 하나님께서 공기 중의 대류가 그렇게 움직이도록 만들어 놓았기에 지금도 그 섭리에 따라 그렇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태풍이 만들어지지 말라고 명령한다고 해서 태풍이 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태풍은 있어야 하기 때문니다. 그래야 남북의 기온차이를 같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전 세계의 생명체들에게 풍부한 산소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육지에 사는 생명체들에게 풍부한 수자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바다생물이 죽지 않고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태풍이 생겨서 바람이 불어야 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갈릴리 바다에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있어야, 갈릴리호수가 산소부족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갈릴이 호수의 고기들이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게 풍성해질 것이기 때문니다. 그래야 육지에 사는 사람들이 싱싱한 고기를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배에 타고 있던 제자들을 책망한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신 것인가요?

그것은 크게 3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며 배와 그물과 부친까지 버려두고 따라왔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주님을 따르겠다던 그들의 각오가 어떤 장애물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무너진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들이 믿고 따르겠다고 말하는 예수님이 진정 누구신지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비록 풍랑은 일어날 수 있어도 배는 결코 전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모신 자에게라도 비록 풍랑은 일어나겠지만 결국 예수님의 허락없이는 결단코 헤칠 수 없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함께 있어도 풍랑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이란 전능자요 창조주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다면 비록 우리의 인생에 풍랑은 일어날 수 있겠지만 결코 그것이 우리를 헤칠 수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결국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이 아직은 작다는 것을 알게 된 예수님은 우선 첫째로, 바람과 풍랑에게 명령하여 풍랑을 잔잔케 함으로 제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일을 통해서 제자들과 다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이야말로 자연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전능자이신 것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셋째로, 예수님과 함께라면 그리고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어떤 풍랑을 만난다고도 결단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바울이 자신의 억울함을 탄원하기 위해 가이사에게 상소할 때에, 배를 타고 로마로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라굴로라고 하는 거대한 폭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바람과 풍랑더러 잔잔하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27: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그렇습니다. 바람과 풍랑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돌아가게 하시는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이 땅에 남아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우리를 결단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게 생겼나이다.” 아닙니다. 그들은 주님이 누군지를 잘 몰랐습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그렇습니다. 천지만물의 주관자되시는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께서 나에게 부탁하신 일이 아직 남아 있다면 우리는 절단코 죽지 아니합니다. 풍랑을 만나더라도 배는 뒤집히도 않습니다. 혹 불치병에 걸리더라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빠져나올 구멍이 없어보여도 우리에게는 길이 열려질 것입니다. 죽을 위험에 처해진고 해도 거기에서 빠져나올 것입니다.

 

 

2)결단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그렇다면 우리는 그때 어떻게 해 합니까? 그것을 주님께 우리의 사정을 아뢰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일하십니다. 바람과 풍랑을 잔잔케 해야 할 것 같으면 주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천사를 시켜서 어떤 일을 해야 할 것 같으면 그분이 천사를 시키실 것입니다.

바람과 풍랑더러 잔잔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사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천사를 부려서 어떤 일을 시키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다만 우리는 기도하면 됩니다. 주님을 찾으면 됩니다. 주님께서 두려워하지 말고, 불안해 하지 말고 우리의 사정을 주님께 아뢰면 됩니다.

구약시대 B.C.700년경 히스기야왕은 어떻게 했습니까? 수십만대군의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공해 들어왔고 산헤립왕은 랍사게를 시켜 항복을 강요하였습니다. 그때 히스기야왕은 앗수르를 향해 하늘에서 우박이 내려 적군을 치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천사를 부려서 전염병이 창궐케 되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기도했습니다.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이시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주여, 앗수르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여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왕하19:19).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파송하셨고, 하루 아침에 앗수르의 군사 185천명이 송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실 귀신을 쫓아내거나 환자를 고치는 일은 원래 우리가 해야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마도 퇴마사나 의사가 해야 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께서 그분의 공생애기간에 그리고 부활 후에 제자들과 믿는 자들에게 그러한 일에 대해 권한을 위임하셨습니다(10:1, 16:17~18).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서 물어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귀신을 내어쫓는 일이며, 병자를 고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것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신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위임한 것이 없다고, 우리 앞에 당면한 문제를 놓고 넋놓고 있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그때에는 주님께 우리의 문제를 아뢰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전능자요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하나님이 응답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 결단의 축복

그렇습니다. 어떠한 어려운 풍랑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고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고, 내가 해야 할 사명이 남아있다면 우리는 결단코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빠져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에는 우리의 사정을 주님께 겸손히 아뢰면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처우를 기다리면 됩니다. 거기서 원망하거나 불평해서는 아니 됩니다. 거기서 다 죽게 생겼다고 주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아니 됩니다. 거기서 죽을 사람처럼 낙심하고 원망해서는 아니 됩니다.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말씀 한 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말씀 한 마디로 거대한 풍랑과 파도를 잔잔케 하신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 한 마다로 죽은 자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풍랑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아니 내 앞에 닥쳤다고 허둥지둥 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다 아십니다. 우리가 겸손히 주님께 아뢰면 주님이 쳐낼 일이면 쳐 내십니다. 주님께서 이어줄 일이 이어줄 것입니다. 주님께서 없애버리실 일이면 없애버릴 것입니다. 주님께서 옮겨야 할 일이라면 옮겨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낫게 하실 일이라면 낫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세상에는 거센 풍랑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과 함께 한다고 해도 풍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어떠한 풍랑이라도 예수님이 함께 하고 있으면 배는 전복되지 아니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세상에서 풍랑을 만나더라도 주님을 찾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귀신축사와 질병치료에 대해서는 우리 믿는 이들은 권한을 위임받았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위임받지 아니한 권한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풍랑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풍랑 앞에서 불평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풍랑 앞에서 낙심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풍랑 앞에서 담대하게 행동하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두려움과 공포를 조장하는 악한 영들은 묶임을 받고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주님보다 더 센 척 속이려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풍랑 앞에서 떨지 말지어다. 전능자인 주님을 신뢰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인생에서 만나는 풍랑이라도 여름의 태풍처럼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로구나.

2. 예수님은 자연만물의 창조주로서 지금도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자시로구나.

3. 해와 달, 바람과 파도를 움직이게 하고 멈추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로구나.

4. 믿는 자라도 자연만물과 천사들을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은 위임받지 못했구나.

5. 예수님과 함께 한다고 해도 풍랑은 일어날 수 있구나.

6.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풍랑은 일어나더라도 배는 결코 전복되지 아니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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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우리가 꿈꾸는 교회(계3:7~11)_2017-07-16(창립기념주일설교)

    Date2017.07.16 By갈렙 Views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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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오늘도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려면(살전2:13)_2017-07-09

    Date2017.07.09 By갈렙 Views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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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실까?(룻2:8~13)_2017-07-02

    Date2017.07.02 By갈렙 Views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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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가 되게 하려면(마10:28~31)_2017-06-25

    Date2017.06.25 By갈렙 Views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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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주님은 교회가 아닌 교회를 왜 붙드시고 있는가?(요한계시록 3:19~20)_2017-06-18

    Date2017.06.18 By갈렙 Views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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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2가지 명령(계2:8~11)_2017-06-11

    Date2017.06.11 By갈렙 Views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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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어떻게 다시 일어설 것인가?(시118:1~29)_2017-06-04

    Date2017.06.04 By갈렙 Views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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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누가 진정 복있는 자일까?(마5:3~12)_2017-05-28(설교전문)

    Date2017.05.28 By갈렙 Views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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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가?(롬3:9~18)_2017-05-21

    Date2017.05.21 By갈렙 Views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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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내 사전에 거짓을 용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살후2:10~13)_2017-05-14

    Date2017.05.14 By갈렙 Views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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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하늘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려면(빌4:2~5)_2017-05-07

    Date2017.05.07 By갈렙 Views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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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안디옥교회 그 놀라운 역사적인 이야기(행13:1~3)_2017-04-30(설교전문)

    Date2017.04.29 By갈렙 Views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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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시대적인 소명과 함께한 사람들(빌3:10~14)_2017-04-23(설교전문)

    Date2017.04.23 By갈렙 Views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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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내가 부활생명으로 살고 있다는 흔적(빌3:10~14)_2017-04-16(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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