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란 무엇인가?(요16:7~9) [일시] 2017년 8월 27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찬8장 거룩 거룩 거룩, 찬87장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찬216장 성자의 귀한 몸 PW: 회개, MIW: T.S: 회개란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으로 오신 것을 믿지 않았던 것을 돌이키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의 회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믿는 자들은 과연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요? 그것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나옵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회개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하지 않게 생활한 모든 것들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눅15:18-19 내가 일어나(일어난 후에)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 (안으로)과 아버지께(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 (나는) 아버지(당신)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불리기에) 감당하지(합당하지) 못하겠나이다(않나이다) 나를 [당장] (당신의) 품꾼(들)의 하나로 보소서(행하십시오) 하리라 하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자녀라도 항상 자녀답게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당장은 우리와 아버지의 관계가 깨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죄를 범하고도 회개를 뒤로 미룰 경우 언젠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더욱이 그러다가 회개치 못한 자는 결코 아버지의 집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에 맞지 않게 산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고로, 회개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깨어진 아버지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인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고백입니다. 이러한 회개는 이미 믿는 자들이 이미 얻은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정확히 잘 모르는 자들은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요?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 인간의 근원적인 죄는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그것을 어떻게 회개하는지를 살펴도록 하겠습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곁을 떠나가신 후에 보혜사 곧 성령을 보내주실 것인데, 그가 와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되,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책망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성령께서 오시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일까요? 사람은 나쁜 짓을 저지르거나 악한 마음을 품는 것이 죄인 것이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정말 죄라고 할 수 있을까요?
2)청중적 접근
오늘 누군가 나에게 “당신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렇다고 수긍할 수 있는가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30년경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마가다락방에서 성찬식제정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이때 예수께서는 보혜사 성령이 와서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할 것인데, 그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씀입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인류를 구원하시러 사람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전능한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행하신 일들을 보고도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을 듣고도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주장을 내려놓고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약속되어졌고 또한 그대로 성취된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가. 죄에도 근본적인 죄가 있다.
과연 무엇이 죄인 것일까요? 사람에게 나쁜 짓을 저지르거나 악한 마음을 품었던 것이 죄일까요? 물론 그것도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다 더 근원적인 죄가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죄란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 천국에 있던 천사로서, 가장 아름답게 창조되었으며 가장 지혜롭게 창조된 천사장 루시퍼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자 마음을 품게 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근원적인 죄란 자기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방인들로 구성된 로마교회에게 편지를 써 보냈을 때에, 죄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롬8:28-32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근원적인 죄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들려주실 때에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던 자들은 누구였을까요? 자, 그들이 누구였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16:8-9 그(보혜사성령)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폭로)하시리라(드러내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여기에 나오는 ‘그들’은 누구일까요? 우선, 그들은 제자들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그들’과 ‘너희’를 확실히 구분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선 여기에 나오는 ‘너희’는 열한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제자중 가룟유다는 이미 예수님을 팔려고 나간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일까요? 그들이 누구인지를 이 본문이 시작된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까지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먼저는 바로 앞의 본문으로 가보겠습니다.
요16:1-3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그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그들은 나중에 유대교인들로서, 회당에서 예수믿는 제자들을 쫓아내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또한 사도바울이 바울이 되기 전의 경우처럼 예수믿는 자들을 ‘죽이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죽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을 인정하고 싶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조금 더 앞으로 가 봅니다. 그들은 누구일까요? 요15장으로 가봅니다.
요15:20-24 사람들이(그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그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행하지)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로서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이라면 도무지 행할 수 없는 일들을 예수께서 행하던 것을 보았으면서도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자들입니다. 특히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그들의 대표는 바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렇다면, 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그들도 예수님을 자기들의 마음에 두기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탄마귀나 이방인들이 자기들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처럼, 그들도 예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했던 것입니다.
나. 그들은 왜 예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왜 예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었고, 예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자기들이 율법을 이용해 백성들의 주인노릇을 해왔고, 백성들의 통치자로서 심판자 노릇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수께서 오자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가니까. 더 이상 자기들이 하나님 노릇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결국 그들은 자기들의 마음 속에 예수님을 두기를 싫어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형식적으로는 율법의 선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명목하에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마음대로 다 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나타나셔서, 그럴 수 없게 되자, 그들이 화가 난 것입니다. 자기의가 주인처럼 맘대로 할 수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에는 자기가 주인되어 자기 맘대로 행할 수가 있었는데, 막상 예수께서 그들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시고, 율법의 근본적인 뜻을 해석해주시자 그들이 주인노릇을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 화가 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예수님이 누군신지를 알지 못했던 것인가요? 그것은 주님이 자신을 누군지 계시해주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이 세상통치자인 마귀처럼 자기 마음에 예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께서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한 것은 사실은 자기들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던 것이라고 말입니다.
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신가요?
그렇다면, 대체 예수님은 누구로서 그 당시에 유대 나라에 나타나신 것인가요? 예수께서는 자기가 누구인지에 대해 수많은 말씀들과 삶들을 통해서 그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구약에 약속되어온 바로 그 메시야이신 것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약속의 말씀에 따라, 처녀에게서 잉태되시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갈릴리에서 공생애를 보내시고, 예루살렘에서 죽으시고, 죽은지 3일만에 부활하시고, 감람산에서 승천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약속대로 감람산으로 재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10:24-26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온 자 곧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이심을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한 두 번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수십번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16: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요8:4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셋째, 더욱이 예수님은 아버지로서, 구약에 “나는 ~이다”라고 선언하신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십니다.
비록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나온 분이며 동시에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분이시지만, 예수님은 사실은 아버지이십니다.
요14:7-10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약속된 메시야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 자신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고 그들의 마음에 예수님 두기를 싫어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알고고 그분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주인되어 유대인들의 통치자 노릇을 해왔는데, 예수께서 나타나시자, 그분을 미워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 마음 속에는 오래전부터 하나님이 없었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기가 주인되어 왕노릇 하고 있었습니다.
다. 무엇이 죄인가?
무엇이 죄입니까?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실제로 육신을 입고 약속대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주인노릇하고 싶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입니다.
성령께서 왜 오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을 책망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령께서 그것을 폭로하고 드러내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일부러 성령의 책망을 외면하였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예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완전히 마귀에게 마음에 빼앗겨,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2)청중의 문제와 해결
오늘날 우리들의 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어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근원적인 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자기의 마음에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시기를 싫어하고 자기가 인생의 주인되어 사는 것이 죄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자기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게 되는 것일까요?
첫째, 자기가 인생의 주인되어 살다가, 온갖 저주와 온갖 질병과 지극한 가난에 시달리면서, 비록 자기가 자시의 인생의 주인으로 살지만, 그것이 자기 마음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체장애자를 낳고 모든 돈을 그에게 다 쏟아부어보지만 차도가 없고 돈은 바닦이 났는데 더 이상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을 때입니다. 또한 남 괴롭히지 않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것이 자신의 인생이었는데, 어느날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서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았더니 간암말기라면서 사형선고를 받을 때입니다. 또한 열심히 밤낮으로 일하면서 쉬지도 못한채 집에도 제대로 한 번 제대로 들어가 본 일이 없었는데, 권력에 아부하는 놈에게 그냥 하루 아침에 자신의 회사를 빼앗기를 될 때에,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자는 자기 인생의 중인이 자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오직 고통과 아픔 뿐이었음을 알게 될 때, 그때 회개합니다.
둘째, 건성으로만 알고 있었던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 깨닫게 될 때입니다. 예수님을 인류의 4대성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을 때에는 그분이 누군지를 잘 모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말씀이라고 해도 다 꾸며낸 이야기로 들릴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확 달라집니다. 왜 내가 내 인생의 주인되어 살려고 했던가, 내 인생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내 인생을 맡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됩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역사적인 증거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입니다. 이때 인간은 확 달라집니다.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잘 몰랐습니다. 그들이 알았던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낸 아들이시자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야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죽은 다음 정말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시어 그들 앞에 나타나시자 그들은 깜짝 놀라자빠질 뻔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죽으면 절대로 다시 사람들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이미 죽은 자가 다시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만약 그런 것이 있었다고 할 때에는 다 귀신이 그렇게 장난친 것입니다. 죽은 자는 절대 다시 우리 인간 세상에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영적 세계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죽어서 천국이나 지옥에 들어간 자는 절대 이 세상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타났다가 사라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자 그때에 비로소 제자들도 전능자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제자들 중 어느누구도 예수님을 선생님이나 랍비라고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때부터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를 때에는 언제나 “주님” 혹은 “주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때 주님이라는 뜻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4. 영적 법칙
회개란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오신 것을 믿지 않았던 것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내 인생이라고 내 맘대로 해서는 안 되지만 전능자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될 때 모든 문제들이 다 풀어진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선생님이나 선지자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붙잡히시자 그들은 걸음아 나살려라고 하고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자기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신 뒤에는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러자 성령받은 그들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치거나 주님을 부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을 옥에 가둘 수 있고 죽일 수 있는 산헤드린공회 앞에서도 그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담대히 예수님의 부활과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을 전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비록 감옥에 쳐넣어졌어도 그들은 결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미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으며 또한 예수께서 보내주신 성령을 받은 상태에 있었기에, 그들은 예수께서 세상 끝날까지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명을 마치는 그날까지 그들을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우리들 중에도 예수님을 믿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며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이 세상에 남겨둔 부활의 증거들을 통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확 달라집니다.
그때부터는 첫째, 모든 성경말씀이 진리의 말씀으로 순식간에 믿어집니다. 둘째, 성경말씀을 배우고 익히고 그것을 나누는 것이 매우 즐거워집니다. 셋째, 매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큰 기쁨이 됩니다. 넷째, 천국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게 됩니다. 다섯째, 주님과 하나님나라를 위해 자신이 일꾼으로 섬기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2)결단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근원적인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첫째, 내가 내 인생의 주인되어 살았던 것이 죄였다는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며 행복할 것 같고, 그렇게 하면 만족할 것 같아도, 그 어떤 것도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나를 만족하게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으면 안 됩니다. 셋째, 예수님을 단지 메시야나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 믿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분은 전능자요, 모든 것이 가능한 “나는 ~이다”라는 분이기 때문이요,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이자 구약의 여호와 자신이며,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나. 결단의 축복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이제 내 인생의 주인으로 섬기고, 그분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우리들이라도 그 순간 모든 막힌 문제들이 풀어지기 시작합니다.
첫째, 몸의 아픈 부위들이 하나둘씩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둘째, 마귀로부터 벗어나니 내가 중독되어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여겨졌던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셋째, 행복할 수 없었고 만족할 수 없었던 자신의 인생이 이제는 행복해지고 만족하는 인생이 됩니다. 넷째, 성경이 100% 믿어지고, 천국과 지옥이 확실히 믿어집니다. 다섯째, 주님과 주님의 몸된 지체들을 섬김으로 최고의 가치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 일을 위해서라면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더 많이 못 드리는 것이 아쉬움이 됩니다.
따라서 해 봅시다.
“예수님은 내 인생의 참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은 것이 내 인생의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죄 중에도 근원적인 죄가 어떤 것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이 근원적인 죄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자기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는 결과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람이 자기 마음에 예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고 싶어서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람은 자기가 자기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사람은 주님을 찾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건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낸 사건이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하나이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하나이다.
주여, 이제는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나이다.
주여, 이제는 내가 주인된 것을 완전히 버리나이다.
주여, 이제는 주님만 찬양하고 자랑하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군지를 보지 못하게 한 악한 영들은 묶임을 받고 떠날지어다.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주인을 예수님으로 바꿀지어다. 그분께 내 인생을 맡길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죄에도 근원적인 죄가 있구나.
2.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이 근원적인 죄였구나.
3.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자기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해서로구나.
4.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자는 쓰라린 고통을 맛볼 때에라야 비로소 자기 인생의 주인을 바꾸게 되는구나.
5. 예수님은 메시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본래는 하나님이셨구나.
6.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이 확실히 증명되었구나.
<설교본문(직역)>
(7절) 오히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내가 [장차] [단호히] 떠나가는 것, 그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장차] [단호히] 떠나가지 아니한다면 보혜사가 [자기 자신을 위해] 너희를 향하여 [장차] 오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장차] [단호히] 가지게 되면 [내가] 그를 너희를 향하여 [장차]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8절) [저분이] 온 후에는, 저분이 [장차]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할(폭로할, 드러낼) 것이다.
(9절) 참으로 ‘죄에 대하여’라고 한 것은 [그들이] 나를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이요
(10절) 한편 ‘의에 대하여’라고 한 것은 [내가] [현재] 아버지를 향하여 떠나가기 때문이요 그리고 [너희가] [현재] 다시 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요
(11절) 한편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의 임금(통치자, 지배자)이 심판을 받아왔기(받은 채 있기)(완료수동태)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