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 여인의 행함은 죄사함을 위한 것이었나?(눅7:36~50) [일시] 2018년 03월 18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찬11장 홀로 한 분, 찬488장 이 몸에 소망 무언가, 찬311장 내 너를 위하여 PW: 믿음, MIW: 죄사함 T.S: 믿음이란 자신이 받은 죄사함의 감격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겨주시며,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해주셨으며, 아울러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의 발을 씻겨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주는 것이 의무니라”면서, 서로 섬기라고 했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진실로 회개한 자는 그 뒤로 자범죄들을 차근차근 회개하면 된다는 것과 죄용서를 받은 자는 반드시 섬김의 헌신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씀을 드리고 나니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다. 그것은 “주님이나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이야말로자범죄에 대한 회개의 일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을 통회자복하며 입술로 죄를 고백하는 회개는 아니지만, 행동으로 회개를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세족식에 장면을 보면서, 얼핏 보기에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자범죄에 대한 회개의 표시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 주 화요일에 <제3차 회개와 천국복음 공개세미나>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참석한 목사님들 중에 어떤 분께서는 구원의 조건을 “믿음과 회개”로 보지 않고, “믿음과 행함”으로 보는 목사님도 계셨습니다. 행함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그러한 믿음으로는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고 성경에 쓰여있기에, 구원의 조건은 다름 아닌 “믿음과 행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십분양보해드렸습니다. 믿음과 더불어서 구원에 꼭 필요한 요소로서 소극적인 것으로는 자신의 자범죄들을 처리하는 회개가 있다면 적극적인 것으로는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행함이 있으니, “회개와 행함”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한 가지 것에 대한 다른 표현들이다. 즉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속으로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사함의 다른 쪽이 행함인 것을 말해주는 성경본문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행함이 죄사함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닌가를 확인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2가지 본문이 떠올랐는데, 하나는 요21장의 주님께서 세 번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어린양을 먹이라”는 본문이었고 또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아시다시파, “향유를 부은 여인”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번 여러 본문들을 가지고 이 본문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헬라어원전을 가져다놓고 하나씩 하나씩 다시 직역해보았습니다. 그래서 과연 행함으로 지은 죄들을 용서받을 수 있는지에 관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셨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살펴보는 과정은 그리 쉬운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본문을 가지고, 천주교에서는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선행 혹은 공로가 있어야 한다는 본문으로서 오늘 본문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지난 <제3차 회개와 천국복음 공개 세미나>에서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진 어떤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질문은 3가지였는데, 2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회개없이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기억나지 않거나 잊어버린 한 두가지 범죄들 때문에 천국에 못들어갈 수도 있나요?”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자신이 분명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깨닫게 되어서 교회가 가서 회개하려고 가다가 그만 교통사고로 죽었다면 그 사람은 과연 천국가겠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답변해드렸습니다. “첫째, 어떤 사람이 진정 예수님이 누구시며 인류의 구속을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분명히 믿고 진정 회개한 자라면, 그때에 그가 미처 고백하지 아니한 죄들도 다 함께 용서되었을 것입니다. 혹시 그때 따로 고백해서 용서받아할 죄가 있었다면 그때에는 성령께서 그 죄를 생각나게 하셔서 회개하게금 도와주었을 것입니다.”라고 답변해드렸고, “둘째, 사람이 정말 회개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지은 죄가 진정 지옥갈 죄였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날 교통사고 가운데서 그를 건져주셨을 것이고, 그런에도 불구하도 교통사고가 났다면 그는 곧바로 죽지 않고 반드시 회개할 기회를 주셔서 회개하고 죽었을 것입니다.”라고 답변해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번 주에 전할 눅7장의 향유부은 여인을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여인이 눈물로 예수님을 발을 닦아드리고, 그 발에 입맞추고, 그 발에 향유를 부은 후에 주님께서 그 여인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해주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니 얼핏 생각하기에, “하나님을 사랑해서 혹은 교회를 사랑해서 행하는 선한 행위는 죄사함의 근거가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 다 고백하지 않은 죄들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과 몸된 교회를 위한 선한 행위를 하면 그 행위 때문에 자신의 지은 죄들이 용서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고민들은 제가 처음으로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천주교의 신부들이 했던 고민이었습니다. 그리고 천주교에서 내린 결론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세례를 받아 자신의 죄들을 용서받고, 그 이후에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용서받는 것이지만, 혹시 남겨진 죄랄지, 아니면 기억나지 아니한 죄 때문에 바로 천국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연옥으로 들어갈 영혼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 때에 선행과 공로를 쌓아서 연옥없이 곧바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니 제가 생각하는 것이 영락없이 천주교신부들이 내린 결론과도 흡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다가는 나도 천주교인이 되겠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지, 성경을 제대로 다시 살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일일이 대조하여 헬라어원문으로 이 분문을 직역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을 이 시간에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죄인인 어떤 여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사랑으로 어떤 행동을 하자, 주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여인은 대체 어떻게 되어서 예수님으로부터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는 선언을 듣게 된 것인가요?
정말 그녀의 행동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죄사함을 선포케 만들어주는 근거라도 되었던 것인가요?
다시 말해, 이 여인이 사랑의 마음으로 행했던 행동들 즉 자신의 눈물로 흘려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드리고, 그 발을 연신 입맞추며, 그 발에 향유를 발라드린 일이 바로 그녀로 하여금 그녀가 지은 죄들을 사함받게 한 도구였을까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 우리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은 허다한 죄들을 가지고 있는데, 회개함없이도 주님께 대한 헌신으로서 다 용서받을 수가 있을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28년경 예수님의 공생의 비교적 초기에 어떤 도시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다른 복음서들 즉 마태복음(26:6~13)이나 마가복음(막14:3~9) 그리고 요한복음서(요12:1~8)에는 예수님의 공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을 앞두고서 베다니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은 공생애 전기 가운데 예루살렘이라고 추정되는 어떤 도시에 일어난 사건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이때 한 여인이 예수님이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하러 들어가셨다는 것을 알고는 급히 향유를 가지고 그분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예수님의 발 곁에 서서 울면서 자기의 눈물로서 예수님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꿇어앉아 자기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린 후에는, 그의 발에 입을 맞추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가져온 향유를 부어 발에 비싼 항유를 발라드렸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인 시몬은 그 여인이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그냥 놔두는 예수님은 선지자가 아니라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가지 비유를 들어서 그에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행동이 얼마나 귀한 행동인지를 칭찬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들사함을 받았느니라”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예수께서 왜 죄인이 하는 행동을 그냥 놔두셨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께서 왜 그녀의 행동을 칭찬해주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께서 왜 그녀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사람은 사랑의 행위로도 죄를 용서받을수 있는 것이로구나 생각하기 쉽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께서 왜 그녀에게 죄들사함을 선포하셨지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녀로부터 칭찬들을 만한 행동을 나오지 않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앞으로는 정말 주님께 칭찬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결론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과연 이 여인이 예수님께 한 헌신적인 행동이 그녀로 하여금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근거로 작동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여인은 어떤 여인이었는지부터 하나씩 하나씩 풀어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가. 이 여인은 어떤 여인이었는가?
첫째, 이 여인은 “죄를 지은 여자(귀네) 특히 결혼한 부인”입이라고 나와 있습니다(눅7:37). 이 말씀을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그 도시 안에 죄인으로 있었고 지금도 죄인이며 아직도 죄인인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이다”라는 동사가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인칭 단수”구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평가는 사실 주님의 평가는 아닙니다. 그 동네 사람들에게 그렇게 알려져 있다는 것만을 말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죄인’이란 어떤 사람을 가리킵니까? 그것이 만약 남자를 가리킨다면 그 남자는 “세리”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만약 여자를 가리키면 그 여자는 “창녀”를 가리킵니다.
마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마21:31-32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들과 창녀들은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그 도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여인은 과거에 창녀로 알려져 있었던 바로 그러한 여인이었던 사람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식사자리에 초대했던 이 집 주인인 바리새인 시몬과 그와 함께 있던 그의 동료들이 그녀를 매우 경멸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39절에 나와 있습니다.
눅7:39 [그런데] 예수를 [초]청한(했던)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자기자신 안)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였다면) 자기를 만지[고있]는 이 여자가 누구며(인지)][그리고] 어떠한 자(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곧 [그녀가] 죄인인(이라는) 줄(것)을 [계속] 알았으리라” 하거늘
이 여자는 창녀로서 얼마나 더러운 여자인데, 이 여자가 자신의 몸을 만질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을 보니, “당신도 알만 한 사람이요. 이같이 더러운 여자를 더럽다고 판단하지도 못한다면 당신은 선지자가 되기는 틀렸소”라고 속으로 있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 시몬의 태도는 예수님을 깊은 존경심이나 진심에서 초청하지 않았음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사용되는 가정법은 “에이 가정법+직설법동사”구문이기 때문입니다. “에안 가정법+가정법동사”구문은 미래의 가능성을 진단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지만, 여기처럼 “에이 가정법”구문은 현실가능성이 없어보일 때에 쓰는 가정법 구문이기 때문입니다.
나. 주님께서는 왜 이 여인의 행동을 칭찬해주었고 죄사함까지 선포해주었을까?
그때였습니다. 그 여자를 경멸히 여기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마저 형편없는 사람으로 판단하고 있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 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일러줄 말이 있다.”그러자 태연하게도 시몬은 “선생님이여, 말씀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하나의 비유를 들어서 왜 이 여자가 예수님에게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그것을 헬라어원문으로 옮겨보겠습니다.
41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 둘이 아직도 있었다.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아직까지 빚지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만을 [아직까지 빚지고 있었다]
42 그러나 그들이 당장 갚을 것을 없음으로, 그가 둘 다를 자기를 위하여 탕감(면제)하여 주었다. 그런즉 그들 중에 누가 더 그(빚주는 사람)를 앞으로 사랑(아가페)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한 후에 말하였다. “더 많이 탕감(면제)받은 자라고 생각됩니다.” 그러자 그가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옳게 판단하였노라.”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녀가 한 행동과 예수님을 초대한 시몬이 한 행동을 정확히 일러주었습니다.
눅7:44-47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그가] 시몬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러나] 그[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계속해서]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바르지) 아니하였으되 [그러나] 그[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발랐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녀]의 많은 죄(들)가 [이미] 사하여졌도다(용서받은 채로 있다). 이는 그[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많기 때문이라) 사함(용서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다. 이 여인이 한 행동은 죄사함을 받기 위한 행동이었을까?
결국 이 여인이 한 행동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죄들을 사함받기 위한 행동이었습니까? 아니면 이미 자신의 죄를 탕감 즉 용서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행동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이 지은 죄들을 용서받기 위해 그날 그 자리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선한 행동으로 자신이 지은 죄들을 용서받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이미 비교적 많은 죄들을 이미 용서받았던 여자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가 지은 죄들은 그냥 용서받을 수 있는 성질의 죄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지 지었던 죄들은 동네사람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어야 마땅할 죄들인 지었던 사람입니다. 율법규정을 잠깐 봅시다.
레20:10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신22:22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그런데 이 여인은 이미 전에 주님을 만나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던 여인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도시가 예루살렘이라면,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바로 그 여인,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으나 예수님 때문에 그날 죽지 않았던 바로 그 여인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러나 갈릴리 가버나움이라면 그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 여인이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죄용서를 받은 여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여인은 자신이 어떻게 되어 살아남게 되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자신이 살게 해준 예수님에게 감사의 인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나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시몬의 집에 식사하러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즉시 달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 앞에 엎드리다시피 하여 예수님께 감사의 눈물을 쏟아낸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주님. 그날 주님이 아니었다면 제가 받아야할 수치는 견딜 수 없는 치욕거리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날 주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른지도 모릅니다. 주님, 주께서 그날 저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주님 때문에 살았고, 주님 때문에 살아갈 용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을 수 있겠나이까?” 그녀는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야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움도 잊은 채 주님께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값진 향유를 부어 발을 닦아드림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녀에게는 사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이 필요없었습니다. 이미 그녀는 죄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죄용서를 받았는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도 그녀를 창녀취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날 시몬과 시몬의 집에 찾아온 동료 바리새인들이 다 듣도록 주님께서는 큰 소리로 다시 외치신 것입니다. 원문으로 직역합니다. “네 죄들이 이미 용서받은 채 있느니라” 그리고 더불어 이제는 그녀에게 한 말씀 더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이미 구원한 채 있느니라. 평안히 살아가라.”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내가 또다시 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너의 죄를 이미 용서했다고 선포했으니 이제는 어느 누구도 너를 죄인이라, 창녀라 말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미 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니 더 이상 괴로움 속에서 지내지 말고 평안히 지내며 살거라”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시몬에게는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너는 처음부터 이 여인처럼 너는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이 여자는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더러운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여자가 이미 용서받은 채 있었더라도 그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의 죄인인 그녀로만 그녀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죄용서받은 은혜를 어찌 표현할지 몰라 눈물로 나의 발을 씻어주었고,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 그녀의 머리털로 내 발을 닦아주었지만, 너는 나를 손님으로 초대했으면서도, 너는 네가 얼마나 큰 죄를 용서받았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발 씻을 물로 내주지 않았다. 그것은 네가 용서받은 기쁨이 작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내 발을 입맞추기를 그치지 않았지만, 너는 그냥 입맞추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째로 외우고 있는 바리새인인과도 같은 사람이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준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전혀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값지게 여기는 향유의 목부분을 깨뜨려 그 귀한 것을 내 발에 부어바르기를 그치지 않았지만,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 않았느니라. 너는 네가 어떻게 너의 죄들을 용서받게 되었는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가 가진 것을 나에게 주는 것이 아깝지 아니하더냐” 사실 그녀는 내가 이 세상에 메시야로 와서 자기자신 대신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을 이미 아는 믿음이 있었기에, 나에게 대한 고마움을 표현할 것은 비싼 향유를 깨뜨려 붓는 일밖에 없었기에 내게 그렇게 하였느니라.”
2)청중의 문제와 해결
우리도 내가 지은 죄들을 어떻게 용서받게 되었는지를 안다면 우리도 눈물로 주님의 발을 씻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거룩한 발에 입맞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소유로 주님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주님께서 내게 베풀어준 용서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이 너무 감사하기에 자신을 남의 발 아래까지 낮추어도 전혀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주님을 대신하는 우리 형제자매의 발을 씻겨드리는 것을 기쁨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란 내게 소중한 것일지라도 주님과 주님을 대신하는 교회와 주의 종의 사역을 위하여 기꺼이 드리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결국 그 여자가 어떻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여자는 이제 죄인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바리새인들에 의해 놀림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선포되었습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그렇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용서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안다면, 내가 낮은 데에 처하는 것이 결코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내 소중한 것을 깨뜨려 주님께 드려도 전혀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2)결단
그렇습니다. 진정 오늘날 우리가 주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도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주의 몸된 공동체와 주의 종의 사명을 위해 내 한 몸 헌신하는 것입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그것이 주님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는 길이라면, 내가 그 자리에게 티나지 않고 또 없어진다고 해도 그것을 기쁨으로 알고 감사할 것입니다. 내가 가진 소유로 주님과 주의 몸된 교회와 주의 종의 사명을 위해 섬기는 것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요 감격이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나. 결단의 축복
그러므로 만약 나를 낮추는 것이 부끄럽다고 느껴진다면 아직 주님이 베풀어주신 용서의 은혜를 너무나 적게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아 햡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그 은혜가 더 깊게 다가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전능한 창조주께서 여러분에게 깊고도 넓은 은혜를 내려주기를 축원합니다. 그분이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여러분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앞으로는 어떠한 낮은 자리에 처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 물질을 드리고, 감사와 찬조와 십일조로 드려도 그것이 아깝지 않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주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사하면서, 맘껏 이 찬송으로 주님께 영광 올려 드립시다. “찬송가 311장 내 너를 위하여”입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용서받은 기쁨을 아는 자는 반드시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용서받은 기쁨을 아는 자는 남의 발 아래까지 자신을 낮추어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용서받은 기쁨을 아는 자는 자신의 것을 드려도 전혀 아깝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전능자께서 베푸신 깊고도 넓은 은혜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자는 늘 감사함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감사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표현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행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섬기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드리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용서받은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가로막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불평의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감사할지어다. 용서받은 기쁨을 누리고 살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믿음과 행함으로서가 아니라, 믿음과 회개가 있어야 하는거로구나
2. 사회의 지탄을 받은 더럽고 추한 자이라 할지라도 용서받을 수가 있구나.
3. 주께서 베풀어준 은혜를 크게 경험할수록 감사하는 마음이도 커지는구나.
4. 받은 은혜의 깊이를 아는 자는 낮은 데 처해져도 부끄러워하지 않는구나.
5.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아는 자는 자신의 것을 드린다 해도 결코 아까워하지 않는구나.
6. 내가 가진 소유로 주님과 주의 몸된 교회와 주의 종의 사명을 위해 쓰는 자는 참으로 은혜를 아는 자로구나.
(36) 그런데 바리새인들 중에 누가 그에게 자기와 함께 꼭 잡수시기를 요청하였다. 이에 그가 그 바리새인의 집 안으로 들어가신다. 그리고 비스듬히 기대어 앉으셨을 때에,
(37) 보라! 그 도시 안에 죄있는(죄인인) 한 여인이 아직도 있었다. 그녀는 그가 그 바리새인의 집 안에 현재 비스듬히 기대어 앉으시고 있음을 안 후, 향유의 옥합을 가지고 온 후에
(38) 그녀는 뒤로 그의 발들 곁에 선 후에, [현재] 울고 있으면서, 눈물들로 그의 발을 계속해서 적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머리털들로 계속해서 닦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발들에 계속해서 입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향유로 기름을 바르고 있었다.
(39) 그런데 그를 초청했던 그 바리새인이 본 후에, 자기자신 안에 말했다. 이르기를 "이 사람이 만일 계속해서 선지자였다면, 자기를 만지고 있는 그 여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곧 그녀가 죄인인 줄을 계속해서 알았을 것이다."
(40) 예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그가 그를 향하여 말하였다. "시몬아! 내가 너에게 단번에 무엇을 말할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자 그가 "선생님이여, 당장 말씀하소서" 그가 말씀하신다.
(41)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 둘이 아직도 있었다.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아직까지 빚지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만을 [아직까지 빚지고 있었다]
(42) 그러나 그들이 당장 갚을 것을 없음으로, 그가 둘 다를 자기를 위하여 탕감하여 주었다. 그런즉 그들 중에 누가 더 그(빚주는 사람)를 앞으로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한 후에 말하였다. "더 많이 탕감받은 자라고 추측이 됩니다." 그러자 그가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게 옳게 판단하였노라."
(44) 그가 그 여자에게 돌아보신 후에, 그가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여자를 보고 있느냐? 내가 네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에, 너는 내게 발들 위에 물도 주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들로 내 발들을 적시었다. 그리고 그녀는 머리털들로 깨끗이 닦았다.
(45) 너는 내게 입맞춤을 주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던 때로부터 내 발들에 계속해서 입맞추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였다.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로 기름바르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 여자는 향유를 내 발들에 발랐다.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한다. 그녀의 많은 죄들이 [이미] 용서받은 채 있다(용서받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많이 [확실히]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용서를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
(48) 이에 그 여자에게 그가 말씀하셨다. "네 죄들이 이미 용서받은 채 있느니라“
(49) 그러자 자기자신들을 위해 함께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는 자들이 자기자신들 안에 계속해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 "이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들도 [현재] 용서하는가?"
(50) 그러나 그가 그 여인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네 그 믿음이 너를 이미 구원한 채 있다. 평안 안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라!"